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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는 별 / 악개
‘저게, 뭐야?’
나는 지부에서 벗어나 문제의 ‘저것’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루종일 그래프와 문서를 본 눈이 말린 깻잎같이 건조했다. 눈을 비비고 다시 ‘저것’을 보았다. 도통 믿기질 않았다. 그곳에는 악마가 있었다. 퀸시는 공기를 가르면서 잔뜩 신이 나 있었다. 날개에서 빚어나오는 바람 소리가 컸다. 검은 날개는 등을 가득 덮는 크기였고 날갯짓의 바람이 볼을 스쳐 지나갔다. ‘헉’소리가 절로 나왔다. 잠시 이곳으로 와줬으면 좋겠다는 퀸시의 쪽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 순간 두 눈이 가려졌다. 미지근하면서도 작은 손가락이었다.
“매니저! 나 누구~게!”
퀸시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고막을 찔러왔다. 나는 순식간에 다가온 퀸시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목청도 크지.
“어, 어! 퀸시. 어느 틈에?”
“나도 이제 어엿한 악마가 됐단 말씀이야! 이 몸을 숭배하라고!”
나는 그의 등 뒤로 펄럭이는 날개를 멍하니 바라봤다. 무성히 자리잡혀 있는 날개는 바람 냄새를 품고 있었다. 찬 기운이 훅, 올라왔다. 입고 있던 청바지 원단이 차갑게 느껴졌다.
“언제부터 날개가 생긴 거야? 퀸시.”
‘악마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기에 명계에 있는 것 아니었나?’
나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은근히 동생들을 떠올렸다. 좁은 물줄기 소리가 연이어 계속됐다. 의식하지 않고 싶었지만 들렸다. 퀸시의 하늘색 눈동자를 보았다. 하늘의 시원함을 모두 담아낸 것 같았다. 그 눈을 보면서 의아했다. 순수한 것인지, 어떤 의도를 품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퀸시가 대답했다.
“매니저를 만난 다음 날부터 생기던데?”
가볍게 지상에 발을 디딘 그가 빙글, 돌아 내 앞의 난간에 기대섰다. 나도 앞으로 걸어가 난간에 팔을 댔다.
“응? 나를 만났을 때부터라고?”
“왜, 불만 있어!?”
퀸시는 주먹을 쥐고 버럭 화를 냈다. 나는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날고 있을 때의 위압감 같은 것은 모두 사라져 있었고 평소의 퀸시나 다름이 없었다. 멋대로 웃은 것 같아 손으로 입을 가렸다. 저녁이 조금은 쌀쌀하게 느껴졌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나는 팔을 내저으면서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자신을 만난 날부터 날개가 생겼다’는 말이 맴돌았다.
‘만약 퀸시의 신체 변화가 나쁜 쪽으로 생긴 거라면? 어딘가 아픈 곳이라도 있는 거라면?’
나는 퀸시에게 일어날 극단적인 상황까지 생각하고 겁을 먹었다. 그는 오히려 덤덤해 보였다.
“아 맞다. 보여줄 게 있어. 자, 같이 가자.”
퀸시가 손을 내밀었다. 조금 머뭇거리다가 그의 손을 잡았다. 허리를 감싸 오는 팔의 힘이 느껴졌다. 날개가 공기를 가로질렀다. 그와 함께 오른 밤하늘의 별이 내게 가까워 보였다. 별들이 단단히 하늘에 박혀 빛나고 있었다. 퀸시의 가슴이 뛰는 것이 팔언저리에 느껴졌다. 그것이 심장인지 궁금했다. 하늘은 너무 높아서 잠시 눈을 질끈 감고 있어야 했다. 공중에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우리는 한참 동안 하늘에서 지부를 내려다보았다. 지부를 둘러싼 거대한 초원이 아늑하게만 보였다. 물소리가 귓가에서 사라졌다. 그럴수록 퀸시에게 집중하게 됐다.
“기분 좋지 매니저?”
“응, 그렇네.”
퀸시는 나를 지부 숙소 베란다에 내려다 주었다. 오래 하늘을 날고 있었더니 지면에 닿는 것이 어색했다. 무릎이 후들거렸다. 퀸시는 내 머리를 헝클인 뒤로 멀리 날아갔다. “잘자, 매니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뒤로 퀸시는 사라졌다. 나는 그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그가 쓰다듬었던 머리에 손을 얹어보았다. 기분 좋은 느낌이 손바닥에 남아 간지러웠다.
햇빛이 스며드는 오후에 세이사감과 휴게실에서 마주쳤다.
“어느 문헌에서 본 것도 같은걸?"
“네, 검은 날개가 생기는 거요. 악마한테.”
“2차 성징, 같은 것 아닌가? 매니저는 기억 안 나? 몸에 무슨 변화가 생겼는지?”
세이사감은 입을 꾹 다문 채 내 대답을 기다렸다. 꼰 다리 위에 놓인 책은 내가 휴게실에 도착한 이후로 좀처럼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그의 책읽기를 방해한 것 같아 찜찜했다. 그 책의 겉표지는 학술서적같이 두껍게 인쇄되어 있었지만, 삽화의 색깔을 보아 인상주의 화폭을 모아둔 서적 같았다. 사감님의 취향이 보이는 것 같았다.
“글쎄요?”
“잘 생각해 봐. 쉬운 문제야.”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세이사감이 낸 문제를 생각했다. 휴게실 창문으로빛이 들어와 살을 따뜻하게 데웠다. 눈을 살짝 찌푸리게 될 정도로 강한 빛이었다. 빛을 피하고 싶었다.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세이사감이 힌트를 줬다.
“자신 말고 타인에게 관심이 가는 일이 생긴 거지. 퀸시한테 말이야.”
“아...”
나는 턱을 잡고 생각했다. 세이사감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찻잔에 든 더운물을 버리고 찻주전자를 꺼냈다. 나는 찻잎 한 줄기가 컵 밑에 내려앉아 있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찻물이 들어오자 잎이 좌우로 위태롭게 흔들렸다. 거기에 내 표정이 비쳤다. 테이블의 가운데에는 커스터드 크림이 얹어진 조각 케이크가 있었다. 나는 포크를 들어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달고, 부드러운 크림의 맛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기가 머뭇거려졌다. 질문의 대답이 ‘좋아하기 때문에’라는 것이 머릿속에서 선명해지고 있었다. 찻잎이 은은하게 우러나왔다. 보다 못한 사감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눈치챘다시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거야”
“큽”
포크를 씹었더니 어금니가 얼얼했다. 입안을 차로 진정시키고 싶었다. “그거 뜨거운데” 사감님이 말을 잘랐다. 나는 들고 있던 컵을 다시 조심히 내려뒀다. 어젯밤에 퀸시가 나에게 한 말을 기억했다. ‘매니저 만난 다음 날부터 생기던데?’.
“저, 저 오늘 업무가 좀 많이 있어서 조금 일찍 일어나 볼게요!”
“아, 잠깐만 매니저.”
세이사감이 펼쳐진 책을 탁, 닫았다. 연분홍빛 책갈피가 옆으로 밀리는 게 보였다.
“며칠 전에 퀸시가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거든.”
“퀸시가 사감님을요?”
나는 퀸시가 세이사감을 찾았다는 것이 우스웠다. 잔소리 듣길 싫어하는 대악마가 사감님을 찾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유세프한테 먼저 넌지시 물었을 법한 아이인데, 세이사감까지 찾아갈 정도면 심각하게 느껴졌다. 나는 챙기던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퀸시가 이렇게 말하더라고”
세이사감이 생글생글 웃었다. 나는 사감님께 인사를 건네고 복도를 걸었다. 빠른 걸음으로 보폭을 넓히면서, 나중에는 거의 뛰듯 걸었다. 복도의 타일은 테오가 청소를 잘 해두어 반질반질했다. 타일 위로 나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후, 하고 내뱉었다. 난감하고 얼굴이 뜨거웠다. 퀸시가 세이사감에게 했던 말은 이랬다. “이상하게 몸이 간질간질해? 저린 것도 같고, 이거 왜 그런 거야?” 가슴께를 짚고 말을 꺼내는 퀸시의 표정이 진지했다고 했다. 나는 내 한쪽 어깨를 감쌌다. 어젯밤 퀸시의 온기가 떠올랐다. 두근두근거렸다.
퀸시가 자신의 날개를 나에게 보여준 이후로는 그것을 다시 되돌려 놓을 수가 없어졌다.
“그냥, 이러고 다니지 뭐. 근사하지?”
퀸시가 밝게 웃어 보였다.
“못 말려 정말.”
지부 사람들도 날개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큰 날개를 감추는 게 더 어려울 것 같긴 했다. 각자 그것을 쓰다듬거나 올려보며 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엘은 과거에 있었던 자신의 흰 날개를 떠올리는 듯 했고, 키르는 박쥐의 생태를 떠올리며 사냥꾼의 굶주림을 살폈고, 리히트는 그 날개가 패션 소품 같다는 생각에 말장난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퀸시가 주목받고 있는 위치에 다가가지 못하고 그 장소를 돌아 지부 뒷마당을 가로질렀다. 얼굴을 마주치는 게 부끄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알아서는 안 될 것을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매니저!”
한적한 뒷길에는 우거진 나무들이 많이 있었다. 그중 가지가 두꺼운 나무에서 퀸시의 머리가 뚝, 떨어졌다. 퀸시의 이마가 내 이마에 닿을 것 같이 가까웠다. 나는 뒷걸음질 치다가 나뭇가지를 밟아버렸다.
“엇, 어어”
퀸시가 내 팔을 잡았다. 나무에 매달려 있던 퀸시의 다리가 풀리면서 같이 넘어졌다. 그 와중에도 퀸시의 몸은 종잇장처럼 가벼워 보였다. 바닥에 널브러져서는, 웃음기 있던 퀸시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나는 몸이 밀착되어있는 점이 어색했다. 퀸시가 말했다.
“왜 날 피해?”
퀸시는 비꼬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다 안다는 듯, 어른스러운 것처럼 구는 표정이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 본 표정이었다. 나는 시선을 피하다가 일이 있다며 돌아서려 했다. 그렇게 적당히 말을 둘러대고 다음에도 마주치면, 비슷한 변명을 하고 도망갈 생각이었다.
“아냐! 업무가 조금 많아서, 조금 일찍 가보려고 했거든. 이 뒷골목으로 가면 좀 더 빠른 것... 같아서.”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괜히 말을 꺼낸 것 같아 난감했다. 퀸시는 손가락을 턱에 대고 피아노를 치듯이 두드렸다. 작은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였다. 말간 피부의 결이 보였다.
“뭐, 이 대악마님이 도와주지. 뭘 하면 돼?”
나는 그의 선행이 믿기지 않아 “진짜?”, “정말?”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렇게해서 퀸시는 나의 잡일을 돕기로 했다. 단순한 복사 업무였는데도 신경질을 내며 패드를 두드렸다. 냥선배는 그 복사기를 ‘귀한 것’이라고 불렀는데 나는 퀸시의 모습을 보며 조마조마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프린트기 앞에서 분투하고 있는 퀸시를 보며 생각했다.
‘저러다가 기계가 망가지는 건 아닐까...’
명계전용프린트기의 뚜껑을 내리치는 주먹 소리가 연이어 세 번째 들려왔을 때, 나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퀸시에게 말했다. 작은 탁상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퀸시, 잠깐 쉴까?”
아직 일한 지 삼십 분도 되지 않았지만, 기물 파손이 걱정됐다.
“뭐어? 벌써? 별것도 아닌걸.”
퀸시의 뿌듯한 미소를 보니 배부른 기분이 들었다.
몇 달 전부터 퀸시가 나를 졸졸 쫓아다닌다. 근무 태만한 아이를 통제하기보다는 내가 데리고 다니는 게 나았긴 했다. 제이미로부터 논논의 돌봄 일지를 회수하러 갔을 때도, 유세프의 스터디를 확인받으러 갔을 때도(퀸시는 유세프에게 '매니저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듣고 한참 화를 냈다.), 락스 3L를 들고 있는 테오에게 청소일지를 받으러 갔을 때도... 퀸시와 함께였다. 어떻게 주의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저기 퀸시.”
“응?”
또다. 푸른 눈동자가 내 쪽을 꿰뚫어 보듯이 쳐다보고 있다. 나는 그 눈을 멍하니 보게 됐다. 매혹술이란 이런 게 아닐까. 이렇게 홀려버리는 느낌이 들어버리는 것이, 매혹된다는 말이 아니면 설명되지 않았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복도에 섰다. 퀸시도 걸음을 멈추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점점 그가 신경 쓰였다. 나는 퀸시 쪽으로 다가갔다. 퀸시가 있는 뒷벽에 손을 댔다. 아주 천천히.
벽은 그늘에 가려져 있어 생각보다 차가웠다. 그의 머리카락은 따뜻한 온기를 담고 있었다. 땋은 머리를 조심스럽게 만졌다. 퀸시가 긴장하는 것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3초 안에 대답해”
“어, 어 그래”
퀸시는 눈알을 둥글게 굴렸다가 내 쪽을 똑바로 봤다. 웃음기가 도는 얼굴은 생기있어 보였다. 발끝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퀸시에게서 온기가 품은 향이 났다. 내가 말했다.
“내가 좋아?”
문서를 들고 있던 왼손에 힘이 들어갔다. 들고 있던 서류가 바닥에 떨어졌다.
나머지 손을 벽에 올렸다. 완전히 그를 가둔 자세가 되었다. 퀸시는 당황하기보다 이 순간이 재밌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입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퀸시가 대답했다.
“어. 좋아.”
날개가 손목 아래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간지러운 느낌이었다.
나는 말을 더듬었다.
“그, 그렇게 나온다? 그럼 우리 사귀어?”
나는 고장 난 것처럼 표정을 관리하기가 힘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니 내가 다 초조했다. 퀸시는 손을 가슴에 얹은 채로 무언가 고민했다. 나는 그의 태도가 의심쩍었다. 날 좋아한다고 이렇게 온몸으로 내가 좋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를 모르는 척 지나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퀸시가 대답했다.
“사귀어?”
머리가 꽝꽝 울렸다. 입에 넣으려던 케이크가 바닥에 철푸덕, 하고 떨어졌던 것처럼 도로 주울 수 없는 것을 줍고 싶은 심정이 됐다. 나는 마음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벽에서 손을 떼고 뒷걸음질했다. ‘사귀어?’라니? 왜 되묻는 말이 돌아 온 것인지 맥락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그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야 매니저”
퀸시가 나를 불러도 멈추지 않고 뛰었다. 날개가 있는 퀸시에게는 순식간에 따라잡힐 만한 속도였지만, 그는 자신의 다리로 천천히 걸어왔다.
“매니저!”
나는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의 다음 말이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또는 인간이 아닌 악마의 시선으로는 너무나 말이 돼서 당황한 채로 꼼짝없이 서 있었다. 눈앞이 핑글핑글 도는 것 같았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귀는 게... 뭔데?”
내가 생각하는 ‘사귐’은, 같이 붙어있는 것이었다. 동생들과 함께하지 못했던 과거의 영향인지, 나는 상대방과 붙어있는 것을 좋아했다. 막상 이렇게 명계에 있다 보니 사귄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호했다. 나와 퀸시가 사귀기 전부터도 나는 퀸시와 줄곧 붙어 다녔다. 마치 한 세트인 젓가락 왼쪽 오른쪽처럼.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외롭게 느껴졌다. 내가 그를 거절하게 되면 우리 둘은 지금처럼 지내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퀸시에게는 헤어진다는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나는 퀸시를 동생을 돌보듯이 대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고 그의 피부에 닿았던 손가락 하나하나가 아프게 느껴졌다. 어떨 때는 그게 사랑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처음으로 손을 잡은 것은 다음 계절이 찾아온 저녁, 같이 공중에서 별을 보고 있을 때였다. 퀸시에게 안겨있는 느낌은 썩 좋지 않았는데, 위에서 내려다본 지부는 너무나 작고 아담했고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나는 그 풍경을 포기하기가 힘들었다.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어딘가 시원해지는 구석이 있었다. 악마의 온도는 살을 해치지 않고 너무나 상냥한 기운을 가졌다. 나는 그것이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오고 나면 서로를 한 번쯤 안았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퀸시는 이러한 상황에 거리낌이 없었고 아무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나만 떨리고 설레는 일이 반복됐다. 악마에게는 인간계의 규칙이나 규범이 없었다. 그게 나를 답답하게 하면서 반대로 두근거리게 했다.
별을 봤다. 우리는 줄곧 붙어 다녔고 사귄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나누지 않았다. 사신력이 앞자리가 바뀔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오래 14지부에 붙어있었다. 만화경을 채워 현실로 돌아가는 사신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퀸시의 만화경도 착실하게 채워지고 있었다. 이제는 손에 꼽을 만큼의 나비가 필요해졌다.
이제 그는 곧 염원을 이뤄 마계의 왕이 될 수 있다. 그가 없으면 너무나 쓸쓸해질 것 같았다. 별이 미끄러지듯이 하늘을 건너 바닥으로 떨어졌다.
“우와 매니저, 별이 녹았어.”
“그러게. 녹는 별이네, 버터같다...”
우리는 별자리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명계의 위치는 지구의 밤하늘과는 달라서 별자리 또한 뒤죽박죽이었다. 다리가 녹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움직이지 않고 별만 보고 싶었다. 누군가가 떠나는 게 무서웠다. 여전히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주변에는 물이 흐를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나는 여전히 동생들을 잃은 감정을 잊지 못한 것 같았다.
"매니저"
“응?”
“나는 매니저를 기억할 거야”
그가 새끼손가락을 얽어왔다. 나는 퀸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둥글고 가는 어깨가 나를 단단히 받쳐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날아볼까?”
나는 그의 날개 끝을 매만지던 손을 내렸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퀸시의 날개를 보았던 날처럼, 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조용히, 아주 매끄럽게 하늘을 날았다. 따뜻한 바람이 나를 감쌌고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조금 흘렸다. 더 높이 오를수록 귓가에 들리던 물소리가 잦아들었다.
녹는 별을 보면서, 퀸시와 함께한 일들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무언가 끊임없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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