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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과 함께 감상해주세요.
"이제 어디로 갈까 매니저?"
"노아.. 넌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구나"
생각지도 못한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겨있는 것도 볼이 화끈화끈해질 정도로 창피해 보이는 자신과 달리, 평온하게 그런 나를 바라보며 천진난만한 말을 하는 노아를 보니, 매니저는 마치 자신만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빨개진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모른다고 답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건 다 냥선배님의 발언 때문이었다··
Sparkling / 유빤쮸
"수고했다냥! 실적도 많이 올랐으니 여름휴가를 주겠다냥!"
처음에는 매니저도 포함해서 모두가 '휴가'라는 말에 마냥 기뻐했었다. 그것도 단체 휴가가 아닌 개인 휴가 시간을 준다는 말이었으니, 매니저에게는 14지부 사신들을 통솔하고 서포트하는 일을 잠시 쉴 수 있다는 꿀 같은 휴식 시간이라는 것이었고 사신들에게는 임무·순찰·당번, 항상 시곗바늘처럼 돌아가는 패턴에 잠시 시달리지 않고 쉴 수 있다는 이야기라 다들 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인생이 항상 순탄하게 흘러가지만은 않는 법, 휴가가 얼마 안 남아 들떠있던 모두에게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안된 일이지만 주변 지부에서 의문의 사건이 일어나서 매니저와 함께 지원을 가줄 사신이 한 명 필요하다냥"
아니.. 냥선배님.. 제 휴가는 아예 묻지도 않고 사라진 건가요.. 그래도 엄연히 냥선배님은 상사시니 참자참자하며 입에서 나올락 말락한 투정과 서러움을 삼켰다. 휴가 전에 14지부 전체 인원을 호출하신 것부터 불길했는데 역시나였다. 매니저인 자신은 무조건 가야 하고 총 20명의 사신들 중 한 명은 무조건 남아야 하는 상황이라 정적이 몇 초간 계속됐다. 역지사지를 떠올리며 '내가 사신이라도 선뜻 자원하긴 그렇겠지' 생각하던 와중에 누가 손을 들었다.
"제가 할게요"
높이 들어 올린 손은 상처가 드문드문 나있고 주먹 부분에 굳은살이 박혀있는 손이었다. 이내 냥선배님의 허락을 받고 부드러운 자주색 머리가 흔들리며 내게 다가왔다. 냥선배님 옆자리나 사감님 옆자리도 있는데 굳이 내 옆자리로 다가오는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아 멍해졌었다. 그러다 순식간에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 다 다른 말을 하는 것 같아도 결론은 미안하다면서 선물들을 많이 사 오겠다는 말들이었다.
노아를 제외한 나머지 19명의 사신들이 제각각 떠들며 시끄러워지자 틈새를 공략한 건지 노아가 머리를 숙이며 내 귀에 속삭였다. 나, 매니저랑 같이 있으려고 지원했어요 잘했죠? 너무 가까이 다가온 것 아닌가 싶어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불꽃처럼 금방 타오르는 볼을 식히느라 결국 대답만 했다. 응, 잘했어 노아. 내 말을 듣고선 활짝 웃는 노아를 보니 나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로 바라보며 바보같이 웃고 있을 때, 옆에서 냥선배님이 눈치챈 듯 우리에게 조용히 파견 나가서 깨만 볶고 돌아오지 말라는 말을 듣고 무안해져 넉살 좋게 넘어갔다. 아 사회생활 힘들다. 휴가라는 희망을 잃고 다시 사회생활을 할 미래의 자신이 불쌍해진 매니저가 순식간에 초췌해진 사이, 그 모습을 보고 노아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옆에서 골똘히 서있었다.
・ ・ ・
어느새 사신들이 제각각의 가방이나 캐리어를 챙기고 보고 싶은, 또는 가고 싶은 곳에 가는 휴가 날이 찾아왔다. 마음 같아서는 가지 말라고 장난치고 싶었지만 워낙 착한 사람들인 걸 알아 마음에 짐을 주기도 싫었고, 휴가를 가는 사신들은 대부분 자신의 추억이 담긴 곳으로 가는 것일 테니 그럴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 명 한 명 인사를 하며 배웅하던 중, 문득 옆에서 같이 배웅 인사를 하고 있는 노아가 걱정되었다. '노아도 휴가 가고 싶었을 텐데..' 안쓰러운 맘에 고개를 돌려 표정을 살짝 봤다.
비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얼굴일 줄 알았는데 동화책에 나오는 해님처럼 웃으면서 반갑게도 인사하고 있었다. 임무 가는데 저리 밝은 표정일 수 있나 싶어 의문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가는 길에 분위기가 축축 처지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 다행이다 싶어 마저 사신들을 배웅했다. 그때 노아의 예쁜 웃음을 의심했어야 했다는 걸 매니저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
"매니저, 이제 출발할까요?"
"응 그러자"
보통 임무 파견을 나갈 때 사신 4명씩 팀을 짜 작전에 나가는 게 원칙이라 처음으로 임무 나갈 때 빼고는 긴장해본 적이 없었는데, 하필 같이 있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가장 모르겠는 노아랑 단둘이 나가게 돼서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 것 같다고 예상하며 포탈을 다른 지부로 연결하고 발을 내디뎠다. 바로 다른 지부 안으로 연결된 것은 아닌지 나무로 가득한 숲으로 이동된 것 같았다.
다행히 잘못 온 것은 아닌지 노아가 길을 안다며 앞장섰다. 숲 특유의 사박사박 거리는 발걸음과 함께 노아의 뒷모습이 보였다. 넋 놓고 보다 보니 평소 임무를 갈 때 입던 붉은 셔츠에 하네스를 안 입고 조금 꾸몄다 싶을 정도로 입은 게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임무를 가는데도 신나 보이는 듯한 아까의 표정.. 수상쩍은 점은 많았지만 일단 따라갈 수밖에 없기에 따라갔다.
드디어 숲이 아닌 건물이 보여 괜히 길도 알아온 노아에게 의심을 했나 싶어 조금 미안해졌다. 그렇게 지부 안으로 들어가 관리자를 만났는데 우리를, 아니 정확히 말하면 노아 쪽을 의문스러운 눈으로 보며 하는 말이 이미 다 해결됐다고 한다. 어리둥절하게 지부에서 나오고 이제 조금 날려먹은 내 휴가를 어떻게 보내나 싶었지만 다시 14지부로 돌아가 보고부터 하는 게 진정한 매니저의 도리일 것 같아 눈물을 삼키며 노아만 보내려고 했다.
그렇게 노아에게 말을 꺼내려는 순간, 몸이 가뿐히 들리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다. 정적이 흐른 지 10초 정도 지나 상황 파악을 하려 눈을 뜨니 노아에게 안겨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눈 감고 있는 동안, 계속 나를 쳐다봤었는지 내가 눈을 뜨자 태연스럽게 웃으며 말을 걸어온다. 이제 어디로 갈까 매니저? 미소는 순수하고 해맑지만 이게 사실 노아가 다 계획한 게 아닌가 싶어 가자미눈으로 쳐다봤다.
"노아, 이 일들 네가 다 계획한 거지?"
"글쎄.. 어떨 것 같아 매니저?"
나랑 같이 휴가 보내준다면 알려줄게요. 활짝 웃고 있는 사람에게 거절의 말을 표하기도 그렇고, 지금 이대로 냥선배님께 붙잡혀 일더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 같아 기대감을 숨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한 대답이었는지 금방 대답해왔다. 그럼 갈까요? 응 좋아 근데 나 좀 내려줘.. 노아는 미처 깨닫고 있지 못했던 듯 머쓱해하며 부드럽게 내려놓아 주었다.
・ ・ ・
냥선배님 모르게 14지부로 돌아와 포탈을 이용해 노아가 가고 싶다는 곳으로 갔다. 아무리 임무가 일찍 끝났다고 해도 이른 저녁 시간이라 어디로 갈까 싶었는데 눈을 떠보니 저 멀리 노을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게 보였다. 노아와 발걸음을 맞추며 걷고 있으니 많은 놀거리들과 길거리 음식들을 팔고 있는 게 보여 아마 축제일 것이라 예상했다.
예상이 맞아떨어진 듯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덩달아 신난 나와 노아는 어디부터 가야 하나 둘러보고 고민하다 결국 휴가 시간인데 천천히 다 즐기자란 마음으로 하고 싶은 것들 하나하나씩 즐기기 시작했다. 대부분 먹을 것들 투성이라 서로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하며 정신없이 웃고 떠들었다. 풍선 터뜨리기, 사격 놀이 등등 번호를 찍어 엄청 큰 사탕을 뽑기도 하고 솜사탕을 나눠먹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노아가 갑자기 조심스레 물어왔다.
"매니저, 혹시 아직도 호수나 바다.. 많이 무서워요?"
"응? 아 그때 일 말하는 거구나.. 아니! 이제 민폐 안 끼치려고 마음먹어서 괜찮아"
예상한 대답이 아니었는지 고민하는 노아의 모습이 살짝 보여 귀엽다 생각하며 웃었다. 이내 할 말을 정한 듯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매니저가 우리를 이끌어주는 입장인 건 맞지만 그래도 조금 더 우리에게 의지했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노아.."
"특히 나한테 그래주면 더 좋고요"
마지막 말은 분위기를 장난스럽게 만들려고 한 소리인지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생각해 주고 있다는 면에서는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말을 하며 걷다 보니 노아가 가는 대로 걷게 돼서 어느새 축제가 열리던 곳과 멀어져 별이 보일 정도로 어두운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나 싶어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노아와 산책하고 있던 순간, 쏴아아 하는 물소리와 함께 시원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바다였다. 바다란 걸 인지한지 얼마 안 돼서 노아가 뒤를 돌아 미안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미안해요 매니저, 조금이라도 싫다면 지금이라도 빨리 갈까요?
아까 한 말 때문에 뒷모습으로도 안절부절하는 게 지금까지 다 보였던 건가 싶어 조금도 밉지 않았지만 장난으로 용서해 준다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소한 해프닝이 일어나고 어둡지만 덥지도 않고 시원해서 좋은 조용한 바닷가를 둘이 같이 거닐었다. 아무리 매니저와 사신 관계라고 해도 어딜 같이 사적으로 놀러 가거나 깊게 이야기를 나눠볼 수 없었기에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 때문인지 말이 편안하게 나왔다.
아 맞다. 노아, 정말 이 일 다 네가 계획한 거야? 진짜 다 계획한 거라면 나중에 한 번 따로 불러내서 밥이라도 같이 먹어야겠다 생각하며 이야깃거리가 점점 떨어가던 와중에 꺼낸 말이었다. 진실된 대답이었어도 좋았고 거짓된 대답이었어도 좋았다. 노아가 입을 연 그때, 위에서 크게 펑 하는 소리가 들리며 형형색색의 불꽃이 하늘 위에 그림처럼 나타났다.
펑 펑 퍼엉
하늘에서 터지고 있는 불꽃들은 몇 초간 본인들의 고유한 색깔을 강렬하게 내비치다가 이내 사라져갔다.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슬며시 들어 보니 역시 노아의 눈동자는 하늘에서 찬란히 빛나는 불꽃이 아닌, 불꽃을 조명 삼아 노아를 바라보고 있는 내가 보였다. 분위기가 좀 달라진 것 같아 바보같이 서로 바라보고만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분위기를 바꾸려고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불꽃 참 예쁘지 않아? 노아는 무슨 색 불꽃이 가장 이쁜 것 같아?"
"…갈색 불꽃이 제일 예쁜 것 같아"
노아만 바라보고 있던 얼굴을 돌리며 '내가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한 건지, 비웃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들려온 대답을 듣고 "갈색 불꽃이 예뻤구나.. 그렇구나.."하던 중 문득 갈색 불꽃은 못 봤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쳐다봤다. 빤히 쳐다보다가 말 뜻을 이해하니 볼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반격을 해줬다.
"그래? 난 보라색 불꽃이 예쁜 것 같은데"
직격타였는지 아니면 마침 터진 불꽃의 색이 빨간색이어서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노아의 얼굴이 반짝거리며 붉게 물들었다. 서로 얼굴이 붉어진 것에 대해 티격태격하며 놀리다 결국 웃으며 어느샌가 손을 맞잡고 불꽃놀이가 끝날 때까지 놓지 않았다. 이후 노아가 사온 스파클러를 손에 들고 바라보며 오늘 본 불꽃들은 유난히 반짝거려서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봤던 불꽃 중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생각했을 때 노아가 입을 열었다.
"사실 오늘 일들 다 계획한 건 맞아 매니저.."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치만 매니저도 쉬어야 하잖아 평소에도 그렇게 일하는데.. 기왕이면 나랑 같이 휴가를 보내줬으면 좋을 것 같아서 열심히 계획했지.. 실망했어?"
"아니, 정말 고마워 노아, 덕분에 잘 쉰 것 같아"
진심으로 즐거운 미소를 보이다가 그런 나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노아를 보니 또다시 뭔가 쑥스러워질 것 같은 분위기에 눈을 돌리려는 순간 노아의 손이 부드럽게 얼굴을 감싸며 자신에게 고정시키려 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떡하지 사귀기도 전에 키스라도 하려는 건가 싶어 당황해 어리벙벙하게 머리를 돌리고 있다가 볼살이 위로 올려지는 느낌에 눈을 크게 뜨니 노아가 크게 웃었다.
"아 어떡하지, 매니저 너무 귀엽다 햄스터 같아"
"사람 보고 햄스터라니.. 노아 너.."
"매니저, 나랑 사귀어 줄래요?"
아 글렀다. 고개를 끄덕이고 지금 이 순간은 평생 기억에 남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큰 불꽃이 하늘 위로 터지며 그림자로 노아와 나의 형상이 겹쳐졌다. 아까 터진 불꽃이 마지막 불꽃이었는지 주변은 바다의 쏴아아 하는 소리가 차분하게 들려왔고 규칙적으로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막상 안고 있으면서 남의 심장소리를 들으니 쑥스러워 가만히 있었다. 몸이 다시 멀어지면서 서로 실없이 웃었다. 그렇게 올해부터 나와 노아의 뜨거운 여름날은 일명 오늘부터 1일로 칭해지며 시작되었다.
Sparkling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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