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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베댓가실? / 엘프리데
“뭐? 국어가 75점에 수학이 72점, 영어가 74점?”
“아...... 아니 그게...... 이 정도면 전보다 5점 오른 건데.......”
“.......막대기 가져와.”
“미.....미안......”
“닥치고 막대기 가져와.”
“...........”
나는 말없이 가서 막대기를 가져왔다.
퍽, 퍽 소리와 함께 나는 비명을 질렀고, 내 몸에 멍이 하나둘 들기 시작했다.
“아야! 엄마, 그만해......내가......내가 잘못했어!!!!!!! 제발......아프니까 그만해!!!!!!”
“너 정신이 있는 놈이야, 없는 놈이야?!! 너 요즘 서울대가 75점 74점을 받아주는 줄 알아?!! 어?!! 와, 미치겠네....이거?!!! 옆집 딸은 이번에 올백 맞아서 벌써부터 미국유학 갈 준비한다더라, 멍청아! 너 중2때 사고당한 이후로 허들 낯춰주니까 엄마가 그냥 만만한가 보지?!! 어?!! 이딴 식으로 할 거면 그냥 평생 알바나 하고 살아!!!”
“엄마 잘못했어.....다음엔 꼭 100점 맞아올게, 그러니까 제발.....!!!! 그만해.....!!!”
“됐어, 이년아! 어우, 이 공부 못하는 멍청이가 내 딸이라니, 으휴......”
*쾅*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고, 그에 따라 내 마음도 저 문에 끼어 부서지는 듯했다.
나는 현재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고2 학생이다. 입시 준비하는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좀 달랐다. 다른 학생들은 자기가 원하는 꿈을 위해 공부를 하지만, 나는 태어날 때부터 운명을 타고 났다.
할머니 말로는 내 돌잔치 때 엄마가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내가 물건을 잡도록 이끌었고 그렇게 나는 판사봉을 잡았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판사봉을 잡았을 때 너무 기뻐 돌잔치 사진을 내가 판사봉을 든 채 찍으려고 했고, 결국 내 돌잔치 사진은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판사봉을 잡은 채 찍혔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미국 하버드대에 들어가 판사가 되어 우리 집안의 자랑이 되길 원했다. 결국, 나는 그렇게 태어날 때부터 운명을 타고난 셈이 된 것이다.
“우리 딸은 누가 뭐래도 판사로 키울 거야.”
아빠랑 다른 가족들,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나를 최고로 키우려 했다. 엄마는 내가 4살 때부터 영어로만 수업하는 영어 유치원에 보냈고, 동네에서 유명한 학원이란 학원은 전부 알아봤다. 그리고 어린 나에게 게임을 금지시켰고 친구들이랑 노는 것, TV를 볼 때도 뉴스와 다큐멘터리 외에는 다 금지시켰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엄마는 다 거절했다. 나는 문자, 편지, 그리고 직접 면담까지 다 시도해봤지만 엄마는 무조건 “너는 판사”라며 전부 거절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커서 그런지 8살 때 이미 수학은 초등학교 전 과정을 끝냈으며, 초6 때는 이미 영어를 고등학교 과정까지 다 끝냈다. 내 인생은 그렇게 엄마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해져 갔다.
그러나 중2 때 내가 밤늦게 학원에서 돌아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한 이후, 엄마와 아빠는 한바탕 크게 싸웠다. 아빠는 왜 내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계속 공부를 시켰냐고 엄마한테 소리쳤고, 엄마는 나를 하버드에 입학시키려면 어쩔 수 없었다며 반박했다. 몇날 며칠에 걸친 싸움 끝에 결국 아빠의 승리로 엄마는 내 허들을 하버드대에서 서울대로 낮췄다. 그리고 아빠랑 엄마는 이혼했다. 그날부터 나는 엄마랑 단둘이 살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퇴원하자마자 엄마는 나를 전보다 더 빡세게 굴리기 시작했다. 내 성적이 하락하면 엄마는 내 몸에 시퍼런 멍이 들 때까지 때렸고, 심지어 밥을 굶기기까지 했다. 아마 엄마는 아빠랑 이혼한 것 때문에 화가 나서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썼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매일 똑같은 것만 가르쳤다. 국어 시간에는 국어, 수학 시간에는 수학, 영어 시간에는 영어, 과학 시간에는 과학, 역사 시간에는 역사......
지겨웠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 처음에는 나도 이제 드디어 모두가 말하는 ‘인싸’가 되나 싶었지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공부만 해 와서 친화력이 없었던 탓에 학년이 끝나갈 즈음이면 어느새 나 빼고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있었다. 설령 친구를 사귀어도 다른 애한테 가기 일쑤였다.
“야, 너 이번주 주말에 어디 갈 꺼야? 나도 데려가줘~”
“우리 요 앞에 카페 생겼다는데 같이 가볼래? 여기 새로 나온 케이크가 그렇게 맛있대.”
나는 애들 사이에 끼지 못한 채 물 위의 기름처럼 겉돌았다. 그러다가 어쩌다 용기를 내어 친구들에게 다가갈 때면, 하루는 내가 다른 친구랑 같이 친구가 그림 그리는 걸 볼 때였다. 그런데 그림 그리던 친구가 말했다.
“저기, 매니저........부담스러워서 그러는데.....좀만 뒤로 가 주면 안 돼....?”
어......? 옆 친구도 보고 있었는데 왜 나한테만 그러지.....? 내가 너무 예민한가.....?
왠지 소외감과 동시에 내 자존감이 짓밟히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매일 오후 5시 퀘스트를 보냈다. 학교에서 배웠던 문제들을 나한테 보내 내가 맞추도록 하는 거였는데, 월요일에는 국어, 화요일에는 수학, 수요일에는 영어, 목요일에는 과학, 금요일에는 역사 문제를 보냈다.
-이성계가 요동 정벌을 반대한 이유 4가지를 서술하시오.
이런 식으로 문자가 왔는데, 이럴 때는 맞는 답을 적어 보내야 했다.
-첫째. ~~~~~~~~~~~~~~ 둘째. ~~~~~~~~~~~~~~~~~~~ 셋째.
~~~~~~~~~~~~~~~~~~~ 넷째. ~~~~~~~~~~~~~~~
이렇게 맞는 답을 적어 보내면 엄마한테선 이런 문자가 왔다.
-정답이다. 다음엔 더 어려운거 낼 테니까 공부 열심히 하고.
엄마는 매정하게 칭찬 한번 해주지 않았다. 어쩌다가 틀리면 엄마는 또 이런 문자를 보냈다.
-너 진짜 내 딸이 맞긴 한 거니? 이렇게 공부도 못하는 멍청이가 내 딸이라는 게 창피하다 진짜 오늘 밥은 없다 방에 들어가서 공부나 해
............
나는 내가 불쌍하고 비참했다. 그러면 울면서 집에 돌아가기 일쑤였다.
드디어 모두가 가고 방과 후 시간이 되었고, 나는 동아리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 책상에 의자가 없는 것을 보고 누가 허락 없이 빼갔나 하는 생각이 들어 괜히 내가 더 비참해져서 눈물이 나왔다. 나는 생각했다. 매일 똑같은 교복을 입고서 똑같은 것을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천편일률적인 삶, 애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떠도는 삶. 그리고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 이런 삶 더는 못 살아. 이젠 울면서 집에 돌아가는 것도 귀찮아.
나는 몰래 가져온 약을 꺼내 입에 넣었고, 가방에서 물통을 꺼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좋은 엄마 밑에서 예쁘게 다시 태어나는 게 나아. 이런 지긋지긋한 인생 더는 못 살아.’
그리고 뚜껑에 물을 부어 마셨다.
‘꿀꺽꿀꺽.....’
이제 물을 약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기려던 그 순간,
“저....혹시 계세요?”
문밖에서 어떤 소년의 가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풉!!!!!!!!!”
나는 너무 놀라서 먹던 약을 물과 함께 뿜어버렸다. 교실 바닥이 내가 뱉은 물에 젖었다.
“아이씨......누구야.......?!!”
그러자 소년이 말했다.
“아, 죄송해요.....콜록. 의자 좀.....돌려놓으러 왔어요.”
나는 고개를 돌려 소년을 보았다. 소년이 문을 열려 했으나, 문이 너무 무거워서 열질 못했다. 소년은 낑낑대며 문을 열려 했으나, 문은 조금만 밀리더니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소년한테로 가서 문을 여는 것을 도와주었다. 소년이 말했다.
“고마워요......콜록.”
그때 나는 소년을 가까이서 보고는 놀랐다. 소년은 웬만한 연예인보다 예쁜 외모와 나보다도 하얀 피부에 약간 긴 은빛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아.....아냐, 됐어. 남을 돕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리고 내가 얼굴이 붉어진 채로 말했다.
“의자 옮기는 거....도와줄게.”
“아....고마워요.....콜록.”
나는 소년이 의자를 옮기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런데 소년이 가져갔던 의자가 내 의자였다는 것을 안 순간 내 얼굴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내가 말했다.
“이거......내 의자잖아.”
그러자 소년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아......당신 의자였어요......? 죄송해요.......”
내가 말했다.
“뭐.....괜찮아. 나한테 다시 돌아왔으면 됐으니까. 그런데 의자는 왜 가져갔었어?”
“동아리 활동 하느라.....콜록.”
“동아리? 무슨 동아리?”
“밴드부요.....”
나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병약해 보이는 애가 밴드부라고? 외모만 봐서는 십자수나 원예부일 거 같았는데 밴드부라고? 내가 물었다.
“너 밴드부에서 역할 뭐 하고 있어?”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를 더 놀라게 만들었다.
“보컬이요....콜록.”
“헐, 진짜.....? 대박......”
이렇게 병약해 보이는 애가 밴드부 보컬을 맡고 있다고? 말도 안 돼. 그러다 문득 궁금한 게 생겨서 소년에게 물었다.
“저기......혹시 넌 락음악이 좋아?”
소년이 말했다.
“네. 전 이 음악을 크게 틀으면 다른 세상에 있는 기분이 들어요. 큰 목소리로 말도 잘 못 하는 절 대신해서 소리도 질러주는 것 같고.....제가 답답하고 초라할 때 들으면......그렇지 않다고 말해주는 느낌이 들어서요......”
순간 나는 ‘이게 무슨 소리지?’하고 생각했다. 저 애는 시끄러운 락음악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에게 락음악이란 그냥 소리나 빽빽 지르는 시끄러운 음악일 뿐이었다. 소년이 또 말했다.
“당신도 혹시 답답하거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콜록. 힘든 일 다 잊어버리고 저랑 같이.......사람들의 영혼을 울릴까요?”
“으.....응?”
하, 참. 저건 또 무슨 소리지? 지금 공부하기도 바쁜데 내 처지도 모르면서 띵까띵까 놀면서 사람들의 영혼을 울리자고? 내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난 지금 무~~~지무지무지 바빠서, 시간 없어.”
나는 한마디로 거절하고 학교를 나왔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을 노래했던 자유롭고 흥 나는 음악은 집이라는 감옥에 사는 서울대 입시생에겐 접해서는 안 되는 금기였다. 그리고 뭐? 락음악을 들으면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다고? 답답하고 초라할 때 들으면 그렇지 않다고 말해준다고? 진짜 이상한 애야. 그럴 시간에 영단어 1개, 수학문제 1개라도 더 풀겠다.
나는 집에 도착했고, 엄마가 말했다.
“왔냐?”
“어, 어......”
“하, 참. 나 이번에 TV 보다가 진짜 한숨이 푹푹 나왔다.”
“어......? 왜.......?”
뭐지......? 내가 또 뭐 잘못했나......? 엄마는 TV에 나오는 천재나 배우들과 나를 자주 비교하곤 했었다.
“야, 너 배우 나리아라고 알지?”
아니,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내가 TV도 폰도 게임도 못하게 했는데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안다고 저런 말을 하지? 갑자기 짜증이 올라왔다.
“엄마가 나한테 TV를 못보게 하는데 내가 그 배우를 어떻게 알아.....”
“이게 엄마가 말하는데 따박따박 말대답을 해?”
엄마가 갑자기 화를 내자, 나는 또 무서워졌다. 엄마가 말했다.
“그 배우가 최근에 살 좀 쪘다고 몸무게 공개하더만, 60kg라고 좀 쪘다고 다이어트 중이라고 하더라, 키가 173cm나 되는데.”
“엄마, 그 사람은 배우잖아......나는 평범한 학생이고......얼굴부터 몸매까지 싹 관리하는 배우랑 학생은 애초에 비교가 안 되지......”
“넌 닥치고, 말 나온 김에 너, 키 몇이야?”
“뭐......뭐?”
“너 키 몇이냐고.”
엄마가 차갑게 협박하자, 내가 겁먹은 듯이 말했다.
“1, 153cm.....나왔는데......”
“하! 153? 그 개같은 153? 네 또래들은 160은 가뿐히 넘는데, 심지어 170 넘는 애들도 있다더라. 그에 비해 넌 뭐? 백, 오십, 삼~~~~~~???? 참나, 넌 가뜩이나 엄마 딸치고는 못생겼는데 키까지 작다니.......진짜 꼴보기 싫다, 싫어. 키 작은 루저니까 아무것도 못하겠네. 스튜어디스나 모델, 배우는 개뿔, 창피해서 어디에도 못 내놓겠다.”
“.........”
“뭐, 그래도 최소한 다른 사람 아내는 될 수 있겠네. 작아서 다른 사람이 안기는 쉬울 테니까. 그리고 금쪽같은 아들 낳아서 미국유학 보내야지. ᄏᄏᄏᄏᄏᄏᄏᄏᄏ”
“........”
나는 왠지 모욕감이 들었다. 키 작은 여자는 하고 싶은 일 말고 결혼이나 하라고......? 진짜 너무 어이없어서 말도 안 나왔다.
하지만 주눅들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키 169cm의 장신이었고, 나는 153cm 단신이었으니 당연히 키 쪽에선 엄마한테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키 쪽뿐만 아니라 나는 아무리 노력해봤자 엄마보다 작으니까 절대 엄마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내 머릿속을 파고 들어와 점점 나를 잠식해갔다.
“가서 문제집이나 풀어, 개미 새끼야. ᄏᄏᄏᄏᄏᄏᄏ”
엄마가 나를 조롱하듯 비웃으며 말했다.
나는 힘없이 방으로 들어와 수학 문제집을 폈다. 그리고 공부를 시작했다.
한참 문제를 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나는 행복할 자격이 있는 걸까?’
‘내가 키가 작고 못생긴 루저라도, 정말 행복할 자격이 있는 걸까?’
다음 날 방과 후 동아리 시간, 나는 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 그게 사실이야.......?”
“응, 어쩔 수 없었어. 선생님들과 우리가 다같이 정한 일이라.....널 퇴출시키기로 했어.....미안해.”
동아리 담당 선생님들과 같은 동아리 학생들이 나를 빼고 의논을 해 불가피한 사정으로 나를 퇴출시키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흐느꼈다.
“아니......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날 빼고 이렇게 멋대로 정할 수 있냐고.....!!!”
“그래도......네가 없을 때 빨리 정하는 게 너를 위해서라도 좋겠다고 생각해서......
미안해. 그럼 다른 동아리 가서도 잘 지내. 안녕.”
그리고 동아리 교실 문이 닫혔고, 나는 그렇게 동아리에서 쫓겨났다.
나는 너무 비참하고 서러워서 잠시 동안 울었다.
“하, 진짜 미치겠네......훌쩍......”
나는 화난 채로 복도를 걸었다. 이때는 수학 동아리, 영어 동아리, 과학 동아리 포스터도 다 보기 싫었다. 그렇게 얼마 정도 화내면서 걷다가 무슨 포스터를 우연히 보았다. 밴드부 포스터였다.
“밴드....부?”
포스터에는 학교 밴드부에서 지원자를 모집한다고 쓰여 있었다. 나는 한 번 지원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금방 포기했다. 중3 때 음악 선생님께 몰래 몇 개월 동안 노래 부르는 걸 배워보긴 했지만, 결국 엄마한테 들켜서 된통 혼나고 앞으로 음악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역시......지원하지 않는 게 낫겠어.”
그리고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가려던 그때,
“저랑 같이.......사람들의 영혼을 울릴까요?”
갑자기 그때 그 소년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떠오르자 나는 생각했다.
‘아냐, 그래도 엄마한테 혼나더라도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보단 훨씬 낫잖아. 한 번.....지원해볼까?’
하지만 엄마는 나에게 이번엔 무조건 공부랑 관련된 동아리에 들어가라고 단단히 경고했던 게 생각났다. 아, 어떡하지, 이번에 수학 동아리나 영어 동아리 안 들어가면 나는 진짜 죽는데.
‘아냐, 아냐. 정신 차려. 걔랑 사귈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이건 네 생명이 달린 문제라고. 정신 차려.’
하지만 지금까지 본 동아리 포스터 중 밴드부 외에는 흥미가 가는 동아리가 없었다.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진짜, 어떡하지......”
“너 이번에 영어랑 수학 성적 엄청 말아먹은 거 알지? 이번에 수학이랑 영어 동아리 안 들어가면 넌 진짜 죽을 줄 알아!”
“당신도 혹시 답답하거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콜록. 힘든 일 다 잊어버리고 저랑 같이.......사람들의 영혼을 울릴까요?”
나는 두 말이 계속 떠올라 고민하다가, 결국 결심했다.
“그래, 한번 해보지, 뭐.”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나는 밴드부 면접실인 강당으로 뛰어갔다.
한편, 강당에서는 신입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밴드부 멤버들이 투덜거리고 있었다.
“뭐야.....신입 들어와? 씨잉, 귀찮은데......”
“우와~~신입 들어와? 아싸, 신난다~~!”
“야, 데이, 넌 이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오냐? 우리 동아리는 어차피 달 운석이 유성우를 타고 약 23만 9천 마일(약 38만 4천 633km)을 날아왔을 때 지구로 떨어질 확률로 없어질 건데 뭐하러 열심히 해? 지원자도 없으니까 면접 대충해.”
사실 우리 학교 밴드부는 곧 없어질 동아리나 다름없었다. 애들 말로는 보컬 맡은 학생이 음악이랑 분위기가 안 맞아 보여서 인기도 없고 멤버도 적어서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고 했다. 그래서 학생들도 더는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지원했다. 엄마는 나한테 공부랑 관련 있는 영어나 수학 동아리에 가입하라고 했지만, 밴드부 말고는 딱히 관심이 갔던 동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밴드부.....신청하러 왔습니다.”
“아, 네. 그럼 우선......준비해온 곡, 불러주세요.”
“네.”
면접은 강당 안 체육관 창고에서 이루어졌다. 면접관은 밴드부원 3명이었다. 나는 선생님이랑 노래를 불렀던 때를 떠올리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때 우리 반으로 의자를 돌려주러 왔던 그 소년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내가 그때 봤던 그 애는 어디 있지? 분명히 밴드부라고 했는데.....’
하지만 언제 노래 전주가 나올지 몰라 나는 생각을 멈췄다.
드디어 전주가 흘러나왔고, 나는 가수 시아의 ‘샹들리에’를 불렀다.
“Party girls don`t get hurt
Can`t feel anything, when will I learn
I push it down, push it down.......”
그러자 방금까지 무기력하고 심드렁해 보였던 밴드 부원들의 눈빛이 바뀌기 시작했다.
“오오.....”
“우와......”
나는 그럴수록 좀 더 기억을 떠올리며 열정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1, 2, 3, 1, 2, 3 drink
1, 2, 3, 1, 2, 3 drink
1, 2, 3, 1, 2, 3 drink
Throw `em back, `til I lose count......”
“야, 쟤 대박이지 않냐? 어떻게 저런 애가.......”
“그러니까......쟤 진짜 대박이다......”
나는 드디어 고음 파트에 접어들었다.
“I`~~~~~~~~~~~~~~m gonna swing~~~~~~~~~~~~~~~~~!!!!!!!!!!
from the chandelier,
from the chandelier~~~~~~~~~~~!!!!!!!!!
I`~~~~~~~~~~~~~~~m gonna live like tomorrow doesn`t exis~~~~~~~~t,
like it doesn`t exist~~~~~~~~~~~~~!!!!!!!!!!!”
내 노래에 밴드 부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곧이어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와.......!!! 야, 쟤는 무조건 합격이다.”
“저런 진주가 왜 이제야 들어왔을까......”
하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고 계속 노래를 불렀다.
“I`~~~~~~~~~~~~~~m gonna fly~~~~~~~~~~~~~like a bird through the night, feel my tears as they dry.......”
드디어 노래가 끝나고, 밴드부 멤버 중 안경 낀 사람이 말했다.
“음.....매니저씨는.......사람이 사람에게로 한 점과 한 직선의 거리로부터 수직이 되는 점들의 집합을 그리며 돌을 던졌을 때 사람이 맞을 확률로 합격입니다.”
나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하고 갸우뚱했지만, 곧 기뻐졌다. 이 말은, 사람이 사람에게로 포물선을 그리며 돌을 던졌을 때 정확히 맞을 확률, 즉 100% 합격이라는 소리였다.
내가 말했다.
“아.....네, 감사합니다.”
안경 쓴 사람이 말했다.
“월요일부터 동아리 시간에 강당으로 오시면 되고요, 이제 가보셔도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너무 좋아서 신발장으로 급하게 뛰어가다가,
그만 누군가와 부딪치고 말았다.
“아얏!”
내가 급하게 사과를 했다.
“앗,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아, 전 괜찮아요......콜록.”
그때 나는 부딪친 사람의 얼굴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앗, 너, 너는......”
“앗, 당신은.....”
내 의자를 돌려주러 우리 반으로 왔던 그때 그 소년이었다.
“그때 우리 반으로 의자 돌려주러 왔던 애, 맞지?”
“네, 맞아요, 콜록. 그런데 아까 그 노래......당신이 부른 거예요?”
“아.....어! 어떻게 알았어?”
“콜록.....아까 보건실 갖다오다가 강당에서 노랫소리가 들리길래.....”
“아....나 아까 밴드부 면접 보고 왔어.”
“아.....그럼 면접 보고 오신 거예요?”
“응.....밴드 멤버분들이 나 합격이래.”
“오......그럼 월요일부터 밴드부 하시는 거예요?”
“응. 월요일부터 강당으로 오면 된대.”
“네. 축하해요.”
“응, 고마워.”
하지만 기쁨도 잠시,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네 또래들은 160은 가뿐히 넘는데, 심지어 170 넘는 애들도 있다더라. 넌 가뜩이나 엄마 딸치고는 못생겼는데 키까지 작다니.......진짜 꼴보기 싫다, 싫어. 키 작은 루저니까 아무것도 못하겠네. 스튜어디스나 모델, 배우는 개뿔, 창피해서 어디에도 못 내놓겠다.’
동시에 어릴 때부터 내 머릿속을 잠식해왔던 생각도 떠올랐다.
갑자기 합격했다는 기쁨은 사라지고, 걱정이 앞섰다.
“근데 나 고민이야......”
“네? 왜 그러세요?”
“난 키도 작고 못생겨서.....이런 걸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내 또래 애들은 160은 가뿐히 넘고 심지어 170 넘는 애들도 있다는데, 나는 155도 못 넘는 루저니까 진짜 내가 이걸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어렸을 때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해보기가 두려워.”
소년이 말했다.
“그럼.....단지 그 생각 때문에 해보지도 않고 당신의 가능성을 포기하려는 거예요?”
내가 말했다.
“응, 결국 나는 키 작은 루저니까 아무것도 못 할 거 아냐. 나 같은 루저 하나 때문에 밴드에 폐 끼치긴 싫어.”
그러자 소년이 말했다.
“저도 늘 매일 보건실이나 들락거리고 약을 하루에 5번도 넘게 먹어야 되는 제 아픈 몸 때문에 이렇게 마른 게 항상 콤플렉스였어요. 하지만 다른 애들이랑 밴드를 할 때면 제가 몸이 아픈 것도, 그런 콤플렉스도 점점 잊혀지게 되더라고요. 콜록. 사실 저 진짜 아파서 마른 게 너무 싫었거든요...”
하지만 나는 어제 봤던 소년의 얼굴을 생각하니 또 얼굴이 빨개졌고, 마른 게 콤플렉스라는 소년의 말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나머지
“무, 무슨 소리야!”
내 입에서 갑자기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소년은 약간 놀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아, 왜 갑자기 이런 말이 나왔지, 이놈의 입, 제발 닥쳐라, 닥쳐. 하지만 내 입은 내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말했다.
“나는 비록 너를 어제 처음 만났지만.....네가.....얼마나 예쁘고.....잘생겼는데. 웬만한 연예인보다 예쁘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넌, 나처럼 키가 작진 않잖아. 그러니까.....콤플렉스 같은 건 잊어버려.”
나도 모르게 말이 아무렇게나 나와버렸다. 아, 어떡해, 난 몰라. 어떡하지. 그러자, 소년이 말했다.
“그래요? 저도 비록 당신을 잘 모르지만.....콜록, 당신이 키가 작아도 제 눈에는 당신이 루저로 보이지 않아요. 오히려 귀엽고 예뻐 보여요. 정말로요.”
그러자, 내 귀와 얼굴은 토마토처럼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남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엄마가 했던 절망적인 말들과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잠식했던 생각은 순식간에 거짓말같이 모두 사라졌다. 소년이 물었다.
“저기.....괜찮으세요.....?”
내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아, 난 괜찮아! 그리고, 고마워.”
소년이 말했다.
“아.....네. 그럼.....전 이만 가볼게요. 월요일날 봐요.....콜록!”
말을 마치고 소년은 가려 했다.
소년이 가려 하자, 내가 물었다.
“저, 저기!”
소년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름이.....뭐야?”
소년이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전......베린이에요.”
베린. 우아하고 아름다운 이름이었다. 나도 자기소개를 했다.
“난......매니저라고 해. 앞으로 잘 부탁해.”
그리고 나는 집으로 뛰어갔다.
나는 집에 돌아와 밤늦게까지 공부를 했다.
“If you becomes lazier, It will be the first step to become a loser......”
그때 루저라는 단어를 본 순간,
‘저도 비록 당신을 잘 모르지만.....콜록, 당신이 키가 작아도 제 눈에는 당신이 루저로 보이지 않아요. 오히려 귀엽고 예뻐 보여요. 정말로요.’
아까 그 말이 떠올라 내 얼굴은 또 빨개졌다. 아, 나 오늘 왜 이러지, 안돼, 안 돼.공부에 집중해야 돼. 공부해야 돼.....아니, 걔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그 애 말이 떠오르는 거지. 나는 내 뺨을 손으로 쳐보기도 하고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그 애의 말은 내가 공부를 하는 내내 떠올라 나를 괴롭혔고 급기야 내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나를 괴롭혔다. 나는 얼굴이 완전히 빨개진 채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주말이 가고 월요일이 되었다. 나는 방과 후 시간이 되자 강당으로 뛰어갔다. 강당으로 가자 베린이 나를 밴드부로 안내했다.
“어, 안녕하세요....콜록.”
“아. 베린 안녕. 밴드부 어느 쪽으로 가면 돼?”
“아, 밴드부.......이쪽으로 오세요, 콜록.”
나는 베린을 따라 강당 무대 옆에 있는 창고로 들어갔다. 창고로 들어가자 밴드부원들이 보였다.
모든 멤버들이 모이자 베린이 말했다.
“이번에 다들 알다시피 새로 신입이 하나 들어왔어....콜록. 인사해. 나와 함께 새로 보컬을 맡게 된 매니저 님이라고 해.”
내가 말했다.
“모두 안녕. 나는 이번에 새로 들어온 매니저라고 해.”
그러자 부원들도 하나둘씩 자기소개를 했다. 모두 하나같이 자기만의 개성이 뚜렷하고 밝고 유쾌한 사람들이었다.
“잘 부탁해! 나는 팀에서 드럼을 맡고 있는 데이야!”
“나는 메인기타를 맡고 있는 카티야! 누나 잘 부탁해!”
“흠흠, 나는 베이스를 맡고 있는 IQ 300의 천재 시릴이라고 해!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물어봐! 나는 4살 때 미적분을 풀고, 9살 때 건축에 관한 논문을 썼으며......”
설명이 길어지자 옆에 있던 카티가 시릴의 입을 막았고, 그제야 시릴은 설명을 멈췄다. 정말 요란한 자기소개였다.
내가 말했다.
“저기.....우리 일단 뭐부터 할까? 노래를 작곡한다거나 신입 환영 파티를 한다거나......”
그러자 카티가 말했다.
“음......우선 밴드 이름부터 바꾸면 좋겠어.”
“밴드 이름? 너네 밴드 이름 있지 않았어?”
“아니......원래 이름은 있는데.....시릴이 지은 이름이 너무 어렵다고 사람들이 투덜대.”
“뭘로 지었는데?”
“그.....뭐더라.......무슨 타우마타......뭐였더라......씨잉, 모르겠어!”
그때 시릴이 끼어들었다.
“타우마타와카탕이항아코아우아우오 타마테아투리푸카카피키마웅아 호로누쿠
포카이웨누 아키타나타후.”
으......응? 뭐지? 타우마타와카탕이......대체 뭐라는 거지? 나도 어리둥절했다.
“으.....응? 다시 말해 봐, 뭐라고?”
“타우마타와카탕이항아코아우아우오 타마테아투리푸카카피키마웅아 호로누쿠
포카이웨누 아키타나타후.”
시릴이 다시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말했다.
“저기, 시릴......아마도 밴드명을 바꾸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아니야! 내가 지은 이름은 어디에 내놓아도 완벽한 이름이라고! 이 이름은 원래 뉴질랜드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긴 지명을 가진 곳이자, 마오리어로 ‘타마테아라는 이름을 가진 발이 큰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피리를 불었다는 언덕’이라는 아주 멋지고 의미 있는 이름이라고! 그러니까 절대 못 바꿔!”
내가 말했다.
“하지만 밴드부를 위해서라면 바꾸는 게 좋을 거 같아. 이렇게 이름이 어려우면 팀원들도 관객들도 외우기 어려울 테니까. 너 하나의 자존심보다는 전체가 중요하겠지?”
“바꿔!”
“바꾸자!”
내 말에 팀원들도 다들 인정하는 분위기였고, 그러자 반박을 할 수 없게 된 시릴이 말했다.
“으윽......그래......그래라......”
결국 우리는 밴드 이름을 다시 짓기로 했고, 팀원들 모두 밴드 이름을 생각하며 고민하고 있었다.
“밴드 이름을 뭘로 짓징.....?”
“흠......”
“음......”
“콜록.”
모두가 고민하고 있을 때, 내가 말했다.
“얘들아, 그럼 이건 어떨까?”
“뭔데요.....?”
“뭐야?”
“뭐야뭐야?”
“뭔데뭔데?”
“너네 이름이 일단 베린, 데이, 카티, 시릴이잖아.....거기서 앞글자만 따면 ‘베데카
시’가 되고.....‘베데카시’랑 어감이 비슷한 ‘베댓 가실?’어때?”
“베댓.....가실?”
“흠.....괜찮네.”
“오! 좋다좋다! 누나 좀 똑똑한데? 근데.....베댓이 뭐야?”
“베댓이란, 베스트 댓글이란 뜻의 약자로,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은 댓글을 뜻하지. 타우마타와카탕이보단 못하지만......그래도 좋네, 누나.”
시릴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때, 카티가 시무룩한 듯 말했다.
“그런데......이름을 이렇게 지으면 누나가 못 들어가잖아! 누나도 끼워줘야지.....”
내가 말했다.
“아, 맞다. 내가 안 들어갔지.....? 그럼 ‘매니저 님, 배뎃 가실?’이거 어떨까?”
그렇게 우리 학교 밴드명은 ‘매니저 님, 베댓 가실’로 정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학교 끼 발표대회 때 부를 곡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시릴은 각자 자신들의 행복했거나 슬펐던 이야기를 넣자고 했다.
멤버들은 자신들의 힘들거나 즐겁거나 슬픈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주었다. 시릴은 스캇 아저씨와의 이야기를, 데이는 사엘과의 이야기를, 카티는 자신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베린은 진과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도 멤버들에게 태어날 때부터 엄마한테 선택권도 없이 꿈을 지정받고 살아왔다는 사실, 엄마는 내 1%의 자유도 허락하지 않았다는 사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빡세게 공부를 시켰다는 사실, 덕분에 나는 친구는 1명도 사귀지 못했고 행복과 자유가 뭔지도 몰랐으며, 그냥 공부만 열심히 하는 영혼 없는 공부 천재로 자라왔다는 사실도 멤버들한테 다 말했다. 그리고 엄마는 지금도 매일 5시에는 퀘스트를 보내며, 그 퀘스트와 내가 맞혔을 때 문자와 틀렸을 때 문자까지 멤버들한테 다 보여주었다. 멤버들은 퀘스트 내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매니저 님.....괜찮으세요......?”
“헉.....매니저 님.....무서웠겠다.....ᅲᅲᅲ”
“이건 말도 안 돼! 너네 부모님 뭔가 모르시는 것 같은데, 기계에게도 일을 시키면 휴식을 줘야 하듯 인간의 두뇌도 마찬가지로 운동을 하고 나면 쉬어 줘야 원활한 뇌 회전이 가능한데.....집중력을 높이는 데는 휴식이 가장 중요해. 휴식 없이 공부만 하려고 하면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지고 집중력도 떨어진다고. 물론 누나 부모님이 무서운 건 나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부모님 때문에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면서까지 공부할 필요는 없어. 오히려 그게 집중력을 더 떨어뜨리고 의욕이 없어지는 지름길이니까. 누나 지금까지 어떻게 지내온 거야?”
“흡, 아니야......어릴 때부터.....훌쩍, 있었던 일이니까......”
그때, 베린이 휴지를 뽑아주면서 말했다.
“매니저 님......눈물 닦으세요......매니저 님 옷이 다 젖었어요.....콜록.”
어......아, 고마워. 나는 그제야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베린한테서 휴지를 받아 눈물을 닦았다.
“아.....미안, 훌쩍......나 원래 슬픈 영화 봐도 잘 안 우는데.....왜 눈물이 나오지......”
그런데 나는 뭔가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다. 내가 밴드부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심드렁하고 무기력해보이던 밴드부 애들이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과정에서 점차 그랬던 모습은 애초에 없었던 듯 서로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서로에게 공감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서로가 이렇게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며 친해지는 이런 분위기가 긴장감만이 감도는 집보다도 좋았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웃기도 하고 펑펑 울기도 하느라 휴지 한 박스를 다 쓰기도 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자 우리는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곡을 만들었다. 작사는 시릴, 카티, 데이가 맡았고 작곡은 베린과 내가 맡았다.
작사가 완료되자 시릴이 나와 베린을 불러 말했다.
“내가 이렇게 가사를 만들어봤는데, 베린 파트는 보라색, 누나 파트는 연두색으로 표현해 봤어. 듀엣 파트는 빨간색으로 했고.”
암흑처럼 어두운 이곳에서 우리는 죽어가
공부, 학업, 성적, 통제뿐인 세상에서
자유와 행복, 사랑을 잃은 채 로봇처럼 감정을 잃고
복잡한 시간 속에 억압받으며 살아가
하지만 이제 이런 삶은 그만 살고 싶어
로봇 같은 삶 이젠 절대 살고 싶지 않아
복잡하던 시간 속에 멈추고 싶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어
그리워 아름다웠던 그 순간이
그리워 자유로웠던 그 시간이
기계적인 세상은 이제 질렸어 I’m enough of the world
날아가고 싶어 Fly to Utopia!
도망치고 싶어 Fly to Utopia!
내게 있는 상처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세계로 떠나고 싶어
날아가고 싶어 Fly to Utopia!
도망치고 싶어 Fly to Utopia!
My Love를 찾아 새로운 세계, 유토피아로 떠나고 싶어
그리고 우리는 열심히 연습했다. 데이는 자기 특유의 에너지로 파워풀하게 드럼을 쳤고, 카티는 기타를 치느라 신이 나서 이게 연습인 줄도 모르는 듯했다. 시릴은 마치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멜로디가 나올까 고민하는 듯하면서 베이스를 쳤고, 베린은 이 음역대에서 가장 길게, 이 음역대에서 저 음역대까지 단숨에, 여러 방법으로 목을 풀면서 엄청 열심히 연습을 했다. 나는 베린이 밴드부 보컬이라는 건 알았지만 저렇게 열심히 연습하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그가 연습하는 모습을 넋 놓고 보게 되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작게 말했다.
“멋있다.....”
그러자 베린이 땀을 닦으며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 매니저 님, 방금 뭐라고 하셨.....”
순간 아차 싶었던 내가 말했다.
“아, 아니야.”
드디어 끼 발표대회 날이 되고, 우리 차례가 되자 사회자가 말했다.
“자! 다음 무대는 ‘매니저 님, 베댓 가실’이라는 학교 밴드부의 공연인데요! 우리 밴드부가 이번에 팀원들끼리 힘을 합쳐 자작곡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와~직접 곡을 작곡하고 가사를 써서 만든 곡이라니, 더 기대되네요! 자! ‘매니저 님, 베댓 가실’팀은 나와주세요!”
우리는 비장한 표정으로 무대로 올라왔다.
그러나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아~또 그 망할 밴드부야? 저 밴드는 이미 망한 거 같은데 대체 얼마나 더 무대로 올라오는 거지?”
“냅둬, 새롭게 이름 고치고 멤버 1명 더 데려왔다고 지네들이 다시 태어난 줄 아나 보지.”
“아~야, 담요 좀 빌려줘봐. 나 자게.”
하지만 나는 저런 반응들에 주눅들지 않았다.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무대가 아니라 그냥 우리가 즐기려고 참가하는 거니까.
드디어 데이, 카티, 시릴이 연주를 시작하고, 베린이 작게 헤드뱅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도 베린을 따라 작게 헤드뱅잉을 했고, 베린이 노래를 불렀다.
“암흑처럼 어두운 이곳에서 우리는 죽어가
공부, 학업, 성적, 통제뿐인 세상에서
자유와 행복, 사랑을 잃은 채 로봇처럼 감정을 잃고
복잡한 시간 속에 억압받으며 살아가”
베린은 자기가 연습했던 대로 날카롭게, 또 거칠게, 파워풀하게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큰둥하고 싸늘했던 아이들
이 점점 우리 노래를 듣기 시작한 것이다.
“오오.....”
“뭐야, 제법이잖아? 노래도 좋고.....”
“자려고 했는데.....좀만 더 들어야지.”
얼마쯤 지나자 드디어 내 파트가 되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열창을 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삶은 그만 살고 싶어
로봇 같은 삶 이젠 절대 살고 싶지 않아
복잡하던 시간 속에 멈추고 싶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어”
“우와....!!”
“와......쟤 목소리 진짜 좋다......”
“쟤 설마 가수 연습생 아냐? 노래 너무 잘하는데?”
이제 나와 베린의 듀엣 파트 차례가 되었다.
“그리워 아름다웠던 그 순간이
그리워 자유로웠던 그 시간이
기계적인 세상은 이제 질렸어 I’m enough of the world~~~~~~~~”
드디어 대망의 고음 파트 차례가 되었고,
“날아가고 싶어 Fly to Utopia!
도망치고 싶어 Fly to Utopia!
내게 있는 상처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세계로 떠나고 싶어~~~~~~~~~~”
나는 옆을 돌아봤다가 깜짝 놀랐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음악과 하나가 되어 땀
을 흘리며 노래하는 베린이 왠지 너무나도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나도 베린을 따라 음악과 하나가 되어 열정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날아가고 싶어 Fly to Utopia!
도망치고 싶어 Fly to Utopia!
My Love를 찾아 새로운 세계, 유토피아로 떠나고 싶어~~~~~~!!!!!!!”
그렇게 ‘매니저 님, 베댓 가실’팀은 무대 아니, 시청각실 아니, 1층 전체를 불태웠고,
학생들은 우리 밴드에 열광했다.
드디어 모든 공연이 끝나고, 사회자가 1등 발표를 했다.
“자, 모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OO고등학교 제N회 끼발표대회 순위를 발표하겠습니다!”
나는 1등 못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 팀의 우정이 더 깊어지고 밴드부의 열정이 더 뜨거워졌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등 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머릿속은 1등해야 된다는 생각과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이 50 대 50이었다.
드디어 사회자가 1등 수상자를 발표했다.
“1등은......‘매니저 님, 베댓 가실’팀입니다! 단상으로 올라와 주세요!”
그래, 매니저 님, 베댓 가실 팀 분들, 축하드려ᄋ.......어......?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우리 팀이 1등이라고.....?!! 헐, 대박. 나는 너무 놀라고 얼떨떨해서 무대로 올라가지도 못했다.
“우와~~~~매니저 님! 매니저 님! 우리 1등이래! 빨리 가자!!!”
“누나~~~~빨리 가자! 우리 팀이 1등이래!”
“아.....응!”
나는 멤버들에게 이끌려 단상으로 올라왔다. 단상으로 올라오자, 사회자가 마이크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번에 제N회 끼발표대회 1등을 차지한 소감이 어떻습니까?”
내가 마이크를 받고 말했다.
“아....저희가 1등 할 줄은 진짜 꿈에도 몰랐는데......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서 1등까지 차지했네요. 이런 우승을 안겨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그저 감사를 표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는 심사위원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그러자 객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고, 나는 왠지 죽어라 공부만 해서 높은 성적을 받은 것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무대에서 내려온 우리는 서로를 따뜻하게 격려해주었다. 수고했다고, 서로 고생 많았다고. 네 연주 정말 멋졌다고. 너도 노래 잘 불러줘서 우리 팀이 우승할 수 있었다고.
그런데 그 후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점심시간에 학교 방송실에선 누가 신청했는지 우리가 만든 노래가 흘러나왔고, 우리가 만든 노래를 흥얼거리는 학생들도 많이 보였다. 그리고 학교 행사가 있을 때는 우리 밴드 공연을 기대하는 학생들도 엄청 많았다.
우리는 그렇게 학교 행사에서 빠지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밴드는 더 유명해지는 기회를 맞았다.
어느 날, 학교 행사가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데, 한 중년 아저씨가 우리에게 말했다.
“저기....혹시 아까 그 락밴드 맞죠?”
그러자 베린이 말했다.
“아.....네.”
그러자 그 아저씨가 포스터 여러 장을 말했다.
“나는 사실 교육부장관인데, 당신들 노래가 너무 좋아서 학교에서만 듣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지인 중에 행사 담당자가 여러 명 있는데, 혹시 기회가 된다면 여기도 한번 나가보는 게 어때요?”
내가 말했다.
“하지만.....우리는 그냥 학교의 작은 밴드일 뿐이라고요. 전 국민이 우리 노래를 들어줄지는 장담할 수 없어요.”
교육부장관님이 말했다.
“에이~그래도 자신감을 가져요. 당신들 정도의 노래 실력이라면 웬만한 대회는 다 1등 할 수 있어요.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면 분명 할 수 있을 거예요.”
내가 말했다.
“음.....일단 생각은 해볼게요. 감사합니다.”
우리는 교육부장관님께 인사를 하고 걸어갔다.
그렇게 교육부장관님의 도움으로 우리는 여러 지역축제나 락 경연대회에도 출전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1등은.....!! ‘매니저 님, 베댓 가실’입니다!!!”
“1등은.....축하드립니다. ‘매니저 님, 베댓 가실’입니다.”
“1등은.....!! ‘매니저 님, 베댓 가실’!! 단상으로 올라와 주세요!!”
학교 대회에서만 우승할 줄 알았던 우리는 여러 축제나 락 대회를 접수하며 8번의 1위, 3번의 2위, 1번의 3위를 했고, 여러 상품과 엄청난 상금까지 받았다. 그렇게 우리 팀은 점점 유명해졌고, 심지어 인터넷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였다.
한번은 지역축제에 참가하러 가다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야, 너 혹시 ‘매니저 님, 베댓 가실’팀 알아?”
“‘매니저 님, 베댓 가실’? 아, 그 락밴드? 알지! 난 매니저라는 애가 제일 좋더라! 아직 고등학생인데 저렇게 노래를 잘하다니......정말 부러워.”
“난.....아아, 누굴 좋아할지 고민이네! 근데 걔네들 노래는 엄청 좋으니까 난 다 좋아할래.”
그러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카티와 데이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매니저 님, 들었어? 우리를 안대!”
“캬하항! 우리 이제 연예인 되는 거 아냐? 기대된다!”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우리 이제 연예인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요즘은 밴드부 활동 하느라 하루하루가 천국이었다. 아니, 아예 집보다 밴드부가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금요일 아침, 나는 교복을 입고 나와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혹시 오늘 뭐 떠오르는 거 없어?”
“응? 뭐가.”
“오늘 무슨 날이잖아.....혹시 뭐 떠오르는 거 없어?”
“무슨 날이라ᄂ......아~너 학원 쉬는 날?”
“아니, 학원 말고......무슨 날이잖아......진짜 기억 안 나?”
“얘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혹시 성적표 나오는 날이야?”
“아, 아니......그건 아닌데......”
“넌 공부도 열심히 안 하면서 오늘이 무슨 날이니 뭐니 하는 거야? 놀 궁리, 살 궁
리, 먹을 궁리, 궁리궁리궁리......지겹다, 지겨워. 빨리 밥이나 처먹고 학교나 가!”
“응......알았어......”
나는 슬픈 얼굴로 집을 나섰다.
나는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했고, 방과 후 시간이 되었을 때는 결국 눈물을 참지못하고 서럽게 울었다.
그때, 때마침 들어온 베린이 나를 보고는 놀라서 말했다.
“어.....? 매니저 님.....왜 울고 계시는 거예요.....?”
내가 급히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아, 아니야, 아니야. 훌쩍.....신경 쓰지 마. 잠시 하품 나와서 그래.”
그러자 베린이 말했다.
“...콜록! 하품했다고 눈 주위가 빨갛게 되고.....눈이 붓는 건 아니잖아요.....매니저님, 혹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베린의 말을 듣고 내가 말했다.
“사실은......오늘이 내 생일인데.....훌쩍. 그래서 아침에 엄마한테 말했어. 그런데 엄마는 내 생일도 까먹고 내가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놀 궁리만 한다고 학교나 가라고 소리질러서.....흡, 그래서 조금 속상해서 울었어......”
베린은 잠시 놀란 듯이 나를 보더니, 나에게 말했다.
“콜록콜록! 조금이 아니라......많이 속상하셨겠네요.......오늘이 매니저님 생일인데 부모님이 생일을 까먹으셨다니.....콜록, 저 같아도 속상했겠네요......매니저 님도 늘 꾸중하시고 혼내시는 부모님이라도 오늘만큼은 축하해주시길 바라신 거죠.....?
그리고 제가 이런 말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콜록, 매니저 님 부모님 진짜 나쁘셨네요.....어떻게 자기 딸의 생일까지도 까먹으실 수가 있죠?”
“훌쩍, 그러니까......엄마가 너무 싫어......”
“부모님께서 축하해주시지 않으셨다면, 제가 대신 축하해 드릴게요. 생일 축하해요, 매니저 님.”
그러자 나는 눈물이 더 나와서 입을 틀어막기까지 했다.
“읍....고마워, 베린.....!! 나.....더 울어도 돼.....?”
“얼마든지요.....콜록!”
나는 잠시 동안 슬프게 울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나를 안아주는 게 느껴졌다.
베린이었다. 베린은 내 곁으로 와 내가 울 동안 나를 안아주며 다독여주었다.
그때, 분위기를 깨며 데이랑 카티가 뒤에서 갑툭튀를 했다.
“매니저 님!!”
“매니저 누나!!”
“와, 와악!!”
데이랑 카티가 말했다.
“놀랐지~~??!! 생일 축하해!!!”
데이랑 카티 덕분에 나는 눈물을 멈추고 웃으며 말했다.
“아, 뭐야.....너네도 내 생일인 거 알고 있었던 거야?”
그때, 언제 왔는지 모를 시릴도 말했다.
“천재 시릴은 매니저 누나의 생일쯤이야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뭐......딱히 누나를 위해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데이가 말했다.
“매니저 님 생일이니까, 우리 이번에 탄 상금으로 케이크도 사고 같이 고기 먹으러 가자!”
“좋아~~!!”
“탁월한 선택이군.”
내가 울음을 멈추고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얘들아.....고마워.”
우리는 먼저 케이크를 사러 빵집에 갔다.
케이크가 다 예쁘고 맛있어 보여서 나는 뭘 골라야 할지 고민할 정도였다.
고민 끝에 나는 해골 얼굴 모양의 초콜릿 케이크를 골랐다. 왠지 락 스타일이 느껴지는 케이크였다.
케이크를 고르자 점원이 포장을 해주었고, 우리는 대회에서 탄 상금으로 계산을 하고 나왔다.
식당에 도착하고 데이랑 카티는 의자에, 나와 베린, 시릴은 소파 쪽에 앉았다. 나는 베린과 시릴의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가방은 이리 줘. 내가 맡아줄 테니까.”
시릴이 우리 모두의 가방을 회수해서 한곳으로 모았다.
멤버들이랑 같이 먹는 돼지갈비는 정말 맛있었다. 학교 급식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동시에 나는 엄마도 챙겨주지 않았던 생일을 밴드부 멤버들이 챙겨준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그리고 멤버들은 내게 생일 축하 노래까지 불러주었다.
“생일 축하합니다~~~~생일 축하합니다~~~~사랑하는 매니저 님~~~~~생일 축하합니다~~~~!!! 와~~~~~!!!!!”
데이랑 카티는 신난 듯 밝고 신나게 노래를 불러주었고, 시릴과 베린은 약간은 어색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러주었다.
나는 밴드부 멤버들의 깊은 정성과 우정에 감동해서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했다.
그때 주문한 탄산음료가 나오고, 내가 말했다.
“얘들아.....모두 정말 고마워. 엄마도 챙겨주지 않았던 생일을 너네들이 챙겨주다니....정말 고맙고 너무 행복해. 그런 의미로 건배 한 번 할까?”
“좋아!”
그때, 베린이 말했다.
“매니저 님.”
“응? 매니저 왜?”
“이번 건배사는.....제가 정해도 될까요?”
“어 그래, 좋아! 건배사 뭘로 하고 싶은데?”
“어......Rock Will Never Die!!!”
베린이 크게 외쳤다. 그러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봤지만,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말했다.
“좋아! 밴드부의 흥행과 영광을 위하여!!! Rock Will!!!!”
“Never Die!!!!!!!!”
모두가 각자의 컵을 ‘쨍’하고 맞댔고, 각자의 컵에 담긴 음료를 마셨다. 나는 달콤하고 시원한 음료를 마시자 또 짠 고기가 먹고 싶어져서 다시 고기 쪽으로 젓가락을 옮겼다.
그때, 가방에서 ‘띠링’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고기 먹는 데 정신이 팔려서 그 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식사를 계속했다. 그때 베린이 약간 긴장한 얼굴로 안절부절하는 듯하는 게 보였다.
베린이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고 설마 베린 폰인가.....? 해서 멀리 있는 베린 폰을 힐끗 돌아보았지만, 베린 폰은 아니었다. 멀리 있는 카티랑 데이, 시릴 폰도 아니었다. 그렇다면......혹시나 해서 고깃집 시계를 봤더니, 맙소사, 5시였다. 나는 그제야 그 알림이 내 폰으로 온 것을 알았다. 엄마에게서 퀘스트가 온 것이었다.
갑자기 불안해짐과 동시에 등골이 서늘해지고 심장이 쿵쿵 뛰는 게 느껴졌다. 엄마가 아무리 내 생일을 챙겨주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기에 나는 가방으로 손을 뻗으려 했다.
“망했다.....빨리 확인해야 ᄃ.....”
그때였다.
베린이 가방으로 향하던 내 손을 잡고 그대로 꾸욱 눌렀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야....!! 베린.....!! 뭐하는 거야......!! 빨리 이 손 놔ᄌ......”
하지만 베린은 고개를 젓고 내 손을 풀어주지 않았다.
나는 저항해보려 애를 썼지만, 베린은 끝까지 내 손을 꾸욱 누른 채 풀어주지 않았다. 그러다 그 순간, 나는 베린이 왜 이러는지, 베린이 왜 아까 안절부절했는지도 알았다. 베린은 내 폰으로 엄마 문자가 왔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것을 본 내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내가 엄마 문자를 보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베린에게 고마워졌고 심지어 설레기까지 했다.
내 얼굴은 핑크빛으로 물들었고, 나는 베린에게 말했다.
“고, 고마워.”
그가 내 손을 놓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콜록.”
식당에서 나오고 집으로 돌아갈 때, 멤버들은 나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고 했다.
“매니저 님 매니저 님!”
“응? 왜?”
“그리고 깜빡 잊고 말 안 한 게 있는데.....매니저 님한테.....보여드릴 것이 있어요.”
“응? 보여줄 거라니, 그게 뭔ᄃ......?!!! 우와, 이게 뭐야.....?!!”
데이가 뭔가를 허공에 던지자 어떤 번쩍번쩍 빛나는 통로가 열렸고, 시릴이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누나, 준비됐지? 렛츠 고!”
“아니 잠깐만......이게 무슨 ᄋ.....?!!!”
멤버들은 갑자기 나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갔다. 나는 그렇게 통로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쯤 지나고 멤버들과 나는 어딘가에 도착했다. 내가 눈을 뜨자 어떤 큰 유럽풍 건물 하나가 보였다. 나는 생각했다. 여긴 어디지? 유럽인가? 아니면.....대체 어디지?
그때, 나는 그 건물에서 나온 어떤 검은 머리 남자가 멤버들과 인사하는 것을 보았다.
“어, 모두 왔어?”
“어....유세프 형 오셨어요......? 콜록!”
“응응! 큰 형, 이쪽은 우리가 소개시켜 주기로 했던 매니저라고 해!”
“아....얘가 매니저구나? 귀엽게 생겼네. 아무튼, 고마워.”
어.....? 이 사람들.....혹시 멤버들이랑 아는 사이인가......?! 나는 여기서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때, 검은 머리 남자가 나에게 인사했다.
“안녕, 네가 매니저구나? 귀엽게 생겼네. 난 유세프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아......안녕하세요.”
나는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그때, 지나가던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 인사를 했다.
“어.....혹시 매니저 님.....?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모두에게 기쁨이 되고 싶은 천사 엘이에요!”
“야, 네가 바로 걔냐? 그 매니저라는? 아무튼......만나서 반갑다. 난 시안이라고 해.”
“앗! 매니저 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심장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사나이 준입니다!”
뭐야....이게 무슨......?!!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알고 있다니.....대체 무슨일이지.....?!!
이쯤되자 멤버들이 상황을 설명했다.
“매니저 님, 아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이곳에 데려와서 죄송해요..... 하지만 매니저 님께 꼭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이곳으로 데려온 거예요......콜록, 우리는 사실 사람이 아니라 사신이에요. 이곳은 죽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 명계에요. 콜록.”
“그리고 여기는 사신지부야. 사신지부는 총 1지부부터 14지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여기는 14지부야. 그리고 우리는 14지부의 매니저가 될 사람을 찾고 있어. 우리는 지금까지 매니저를 찾느라 지금까지 총 178.6.km를 해맸.....아야!”
“설명은 거기까지만 해라, 시릴. 그리고......네가 매니저야? 반갑다. 난 시안이라고 해.”
“아.....반가워.”
나는 14지부 사신들과 인사를 했다. 처음엔 모든 게 어색했다. 사신들이 누가 누군지도, 내가 여기서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그냥 모든 게 다 어색해서 빨리 나가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다른 사신들은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건물이 어디가 어딘지,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사신들이 누가 누군지도, 이름과 특징까지도 다 알려주었다. 사신들 덕분인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나는 사신들과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함은 완전히 사라지고 이제는 남들보다사신지부를 즐기기 시작했다. 나인과 테오랑 쿠키와 애플파이를 만들어보기도하고 이제는 논논을 돌보는 것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심지어 에단의 벨라토르에 에단보다 먼저 타보다가 에단에게 혼나기도 했다. 퀸시랑 카티, 시안이 에단을 타도하나 타도 안 하나 찾아보기도 했다.
갈 시간이 되자 멤버들은 나에게 마지막으로 할 게 있다고 나를 강당으로 데려갔다. 뭔가 해서 따라가봤더니 이번 사신지부 여름축제 노래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하러 간 것이었다. 신청서 작성은 시릴이 했다.
“이번 여름축제엔.....콜록, 매니저 님과 노래 부르고 싶었어요.”
“이번 여름축제 노래 대회에서 우승하면 트로피랑 상금, 이 사신지부에서 원하는 건 무조건 들어준대!”
“누나랑 같이 노래 부르고 싶었어! 우리랑 같이 노래 부를 거지?”
곡명은 우리가 여러 행사에서 부르던 ‘Utopia’로 정했다. 여름 축제 참가 신청이 끝나고 멤버들은 나를 다시 인간계로 데려다주었다. 사신지부에 남은 사신들도 나에게 다음에 또 만나자고 인사를 했다. 나는 그렇게 사신들과 밴드부 멤버들 덕분에 최고의 생일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도 베린은 몇 번이고 엄마 퀘스트로부터 나를 구해주었다. 문자가 왔다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일부러 기침을 크게 해서 ‘띠링’소리가 들리지 않게 했고, 자기가 좋아하는 락음악을 나에게 들려주며 엄마로부터 문자가 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도 만들어주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베린에게 고마워졌고, 점점 더 그에게 끌렸다.
한편, 집에서는 검은 그림자가 이를 갈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매니저......이게 진짜 미쳤나....감히 엄마가 보내는 퀘스트를 몇 번이고 씹어?”
나는 이 순간이 너무나 달콤해서 내가 엄마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잊고 있었다.
그러나, 꽃길이 있으면 가시밭길도 있는 법. 우리 밴드에도 서서히 어두운 가시밭길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느 날 경연대회가 모두 끝나고, 시릴과 카티가 말했다.
“오늘 하루도 모두 수고했어~~!!”
“하하! 또 1등이라니, 역시 우리 밴드는 천재야!”
“누나! 우린 먼저 가볼게!”
“누나~~!! 다음에 또 만나~~!!”
“매니저님 매니저님! 다음에 또 만나~~!!”
데이, 카티, 시릴은 먼저 명계로 떠났다. 베린은 내가 부탁해서 조금 늦게 간다고했다. 그리고 나와 베린만 남았다.
“베린.”
“네?”
“있잖아, 나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뭔데요.....?”
“고마워.”
그러자 베린은 갑자기 당황한 눈빛으로 기침을 하며 내게 말했다.
“콜록콜록! 네......? 갑자기 뭐가요.......?”
“지옥에서 죽어가던 나를 구해 줘서.”
“콜록!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말했다.
“나는 밴드부 들어오기 전까지는......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어.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엄마 때문에 맘대로 못 해보고, 맨날 엄마가 정해주는 대로만 살고, 학교가면 친구도 없어서 맨날 외롭게 공부하다가 울면서 돌아오고, 우는 게 일상이었어. 그리고 생각했어. ‘정말 나는 행복할 자격이 있는 걸까?’하고. 하지만 너를 만나고 내 삶이 완전히 바뀐 것 같아. 너를 만나고 밴드부로 들어온 후로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도 많이 해보면서 어릴 때부터 나를 구속하고 있던 보이지 않는 족쇄와 사슬이 풀린 거 같고, 내 마음속 상처도 치유된 거 같아. 심지어 이제는 내가 키가 작아도 전혀 루저로 생각되지 않아. 그리고 울면서 집에 돌아가는 날도, 우는 날도 없어졌던 것 같아.”
그러자 베린이 말했다.
“매니저 님.....콜록, 매니저 님이 밴드부에 들어오신 이후로 안정을 찾으셨다니....다행이네요. 그리고 세상에 공부가 다는 아니잖아요. 전 매일 숨막히게 공부만 하고......성적만 생각하는 삶은 생각만 해도 싫어요. 전 제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콜록, 자유롭게 살 거예요. 혹시 매니저 님이 괜찮으시다면 이제는 모든 힘든일 다 잊어버리고 저랑 같이.......사람들의 영혼을 울릴까요?”
“으.....응?”
나는 갑자기 내 얼굴이 붉게 물드는 것을 느꼈다. 왜지, 분명 전에 그 말을 들었을때는 어이가 없었는데, 지금은 왠지 설렘과 동시에 얼어붙었던 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베린이 갑자기 공부의 지옥에서 썩고 있는 나를 구원하러 온 구원자로 느껴졌다. 베린한테서 왠지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조.....좋...”
“웅---웅----”
그때, 누군가한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 직감한 순간, 내 얼굴은 갑자기 굳어졌다.
“어.....매니저 님, 괜찮으세요.....?”
베린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내가 말했다.
“아, 아니야. 나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
나는 저 멀리 떨어진 나무 밑으로 급히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여....여보세요......?”
“매니저 너 지금 어디야?”
“나.....? 나 지금 학원이지......”
“학원? 참나....야, 지금 학원쌤이 너 안왔다고 전화 왔다. 이게 어디서 엄마를 속이려고 해?”
“아니, 그게 아니라.....”
“그리고 너 학원 빼먹은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더라? 이게 진짜 미쳤나....”
“아니, 엄마, 그게 아니라......”
“시끄러. 당장 집에 돌아와. 집에 와서 보자.”
“아니....할 말 있으면 여기서 해도.....”
“시끄러, 집에 와서 보자.”
“아니, 엄마, 그게 아니ᄅ......”
‘삑’
‘뚜—뚜-’
두근. 두근. 두근.
전화가 끊어짐과 동시에 내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고, 심장박동도 빨라졌다.
이 순간이 너무 무서웠지만 일단은 베린에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베린한테로 갔다. 베린이 내 얼굴을 보더니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매니저 님, 안색이 안 좋으신데....무슨 일 있으세요....?”
내가 말했다.
“베린.....”
“콜록, 왜 그러세요.....?”
“아무래도 나.....안 되겠어.”
“콜록......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역시.....엄마가.....너무 무서워. 아까도 엄마한테서 전화 왔어.”
나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목소리까지 떨렸다.
“혹시.....아까도 부모님께서 전화하셨어요......?”
“응.....원래 오늘 학원 있었는데......이번에 밴드부 하느라 학원을 몇 번이고 빼먹었어....그리고 심지어 성적도 엄청 떨어졌어.......”
내가 옆에 있던 벽돌을 붙잡고 울먹이며 말했다.
“아 진짜......어떡하지? 엄마가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분명 또 흉터 날 정도로 때리고, 이번엔 보통 혼나는 게 아닐 거야. 어떡하지, 베린....”
“매니저 님.....”
“역시... 애초에 이곳에 들어온 내가 잘못이였어....”
“네.....? 콜록,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아......씨, 그냥 그때 확 죽어버릴 걸 왜 밴드부에 가입해서....!!”
내가 주먹을 꽉 쥐고 울먹이며 말했다.
“밴드부 활동 하느라 잠시 잊고 있었어.....엄마는 내가 공부만 해서 판사가 되어 성공하길 원했고 나는 그런 엄마한테 어릴 때부터 조종당했던 꼭두각시일 뿐이었어. 그러다 너를 만나 밴드부에 들어와 락을 시작하고, 이제 또 엄마한테 혼나고....갈등만 반복한다고!!! 이제 이런 삶 지긋지긋해!!!!!!”
베린이 말했다.
“그럼..부모님께 한번 솔직하게 말씀드려보시는 게....”
내가 소리를 질렀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하고 싶은 걸 수천 번은 말해봤어....문자, 편지, 전화, 그리고 직접 면담까지 안 해본 게 없었어!! 그래도 엄마는 다 거절했어!! 나는 그냥 한낮 엄마의 꼭두각시 인형일 뿐이야!!!”
“아니에요... 매니저님은 인형이 아니라 저희 밴드의 소중한 멤버에요.”
“그래...? 그냥 나 위로해주려는 말이 아니라?!!”
나는 너무 무서웠던 나머지 베린마저 믿지 못하게 되었다.
“콜록콜록! 아뇨....저는 진심이에요... 그것보다 매니저 님....지금 엄청 흥분하신 것 같은데 조금 진정하시는 게...”
“진정...? 하, 참나.....어이가 없어서.....이게 진정할 일이야?!!!”
그러자 베린이 내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매, 매니저 님....! 잠시만...진정하세요....! 콜록....!! 콜록콜록......!!”
순간 나는 베린이 병약한 애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베린을 더 이상 힘들게 하기 싫어 화를 풀었다. 그러자 베린이 내 손목을 놓았다.
“베린....미안...엄마한테 전화 와서 너무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흥분됐나 봐...괜히 잘못 없는 너한테만 소리지르고....”
“전 괜찮아요... 어...? 매니저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이제 알 것 같아....”
“뭐를요....?”
내가 교복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냈다. 내가 미친 듯 웃으며 말했다.
“결국엔 나 하나만 뒤지면 되는 거였어.....”
딸깍, 하고 볼펜의 심을 꺼냈고, 그리고 나는 그걸 그대로 내 손목에 꽂으려 했다.
그러자, 베린이 내 볼펜을 든 손목을 잡으며 말렸다.
“콜록.....! 안 돼요, 매니저 님....!”
내가 실성한 듯 웃으며 말했다.
“왜......꼭두각시는 이 세상에 도움이 안 되니까 없어도 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베린은 내가 자살하려는 것을 있는 힘껏 막으려 했다.
“매니저 님....콜록, 매니저 님은 스스로를 꼭두각시라 부르시지만......제게는...매니저님이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밴드부 전체에도 매니저님이 큰 도움이 됐어요....원래 망해갔었던 우리 밴드도 매니저 님이 들어오시고 나서 학교에서도 유명해지고 여러 대회에도 나갈 만큼 성공했고.....콜록, 밴드 부원들도 매니저 님께서 가입하고 활기를 띠고 전보다 훨씬 더 밝아졌어요....그러니 매니저 님... 죽으려고 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갑자기 웃음을 멈췄다. 갑자기 고작 두려움 때문에 밴드 전체를 없애려 했던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고 비겁하게 느껴졌다.
내가 말했다.
“정말.....내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베린이 말했다.
“물론이죠.....”
베린의 진심 어린 말에 나는 볼펜의 심을 다시 넣고 볼펜을 다시 주머니에 꽂았다. 그리고 이제, 베린에게 전부터 진짜 전하고 싶었던 내 진짜 진심을 전하려 했다.
“고마워, 베린. 나, 너랑 카티랑 시릴이랑 데이랑 같이 사람들의 영혼을 울리고 싶어. 그리고.....전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나, 네가 좋.....”
‘웅---’
그때, 폰에서 또 진동이 울렸다. 나는 폰을 열어 뭔가 확인해 봤다. 엄마로부터 온 문자였다.
-너 왜 아직도 집에 안 와? 7시까지 안 오면 그땐 진짜 오자마자 디지게 패버릴 줄 알아. 빨리 와.
그 문자를 읽은 순간 난 또다시 두려움에 빠졌다.
“미안해, 베린. 아마 난 안 될 것 같아......엄마가 너무.....무서워.....아마 난 사람들의 영혼을 울릴 수는 없을 것 같아......미안. 그럼....난 이만 가 볼게, 미안해......”
그리고 나는 눈물을 슥 닦고 뒤돌아섰다. 오늘따라 바람이 더욱 강하고 차갑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차마 떼어지지 않는 족쇄를 채운 듯 무거운 발걸음을 억지로 떼며 구원자를 뒤로 하고 ‘지옥’으로 가는 길로 쓸쓸히 걸어갔다. 그때,
“스스로를 가두지 마세요.”
“?!”
베린의 말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베린이 말했다.
“매니저 님, 스스로를 가두지 마세요. 매니저 님의 부모님이 아무리 무서우시더라도, 매니저 님의 인생은 매니저 님의 것이지, 매니저 님 부모님의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매니저 님은 이 세상에 하나뿐이지만 매니저 님의 목소리를 듣고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는 사람은 정말 많아요. 만약......콜록. 매니저님이 부모님 때문에 꿈을 포기하시면 그분들도 분명 슬퍼하실 거에요.”
나는 깜짝 놀랐다. 늘 아프고 연약한 줄만 알았던 베린이 저런 말을 할 줄도 안다니. 갑자기 알 수 없는 용기와 뜨거운 감정이 내 안에서부터 올라왔다. 그가 말을이었다.
“저도...콜록, 매니저 님의 목소리 덕분에 더욱더 용기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 목소리를 스스로에게도 들려주세요.”
베린의 말이 끝나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베, 베ᄅ.......”
하지만 그는 이미 가버린 뒤였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나는 용기가 생겼다. 아까 그가 했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게 들렸다.
‘매니저 님의 부모님이 아무리 무서우시더라도, 매니저 님의 인생은 매니저 님의 것이지, 매니저 님 부모님의 것이 아니에요.’
‘저도...콜록, 비록 몸은 약하지만 매니저 님의 목소리 덕분에 더욱더 용기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 목소리를 스스로에게도 들려주세요.’
그 말은 18년 동안 엄마에게 휘둘리며 살아온 내 고정관념을 한순간에 깨뜨려주었다. 갑자기 아까까지 무서웠던 엄마가 전혀 무섭지 않아 보였고, 내가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여러 락 경연대회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나에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매니저 님 목소리 너무 멋있어요. 저도 매니저 님 같은 목소리 갖고 싶어요.”
“매니저 님 멋있어요!!! 걸크러쉬 매니저 님!!!!! 사랑해요!!!!!”
“‘매니저 님, 베댓 가실’? 아, 그 락밴드? 알지! 난 매니저라는 애가 제일 좋더라! 아직 고등학생인데 저렇게 노래를 잘하다니......정말 부러워.”
그 사람들의 말은 움츠러들어 있던 나에게 작은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그 작은 용기들은 모아져 점점 커져서 불이 되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우리 엄마가 아무리 무섭더라도,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지, 엄마가 아니야. 엄마가 뭔데 감히 내 인생을 함부로 정해?
나는 결심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막상 집에 와서 엄마를 보니 두려움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엄마가 말했다.
“여기 와서 앉아 봐.”
나는 겁먹은 토끼처럼 와서 앉았다.
엄마가 말했다.
“너 요즘 외도하니?”
“무, 무슨 소리야, 엄마......공부하기도 바쁜데......”
“구라치지 말고 말해봐. 너 오늘 학원 왜 빼먹었어?”
“아니....학교에서 공부하다가......”
“너 이제 보니, 학원 빼먹은 게 한두번이 아니더라? 우리 딸이 그렇게까지 공부를 열심히 했나?”
“당연하지.....내가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그러니까 엄마도 이제 그만해......나 너무 스트레스 받으니까.......”
“학교에서 공부만 하던 새끼가 엄마가 보내는 퀘스트도 씹어?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ᄒ......”
엄마는 잠시 말문이 막히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성적표 나오는 날이랬지? 성적표 갖고와.”
“뭐.....뭐?”
“네가 학원을 몇 번이고 빼먹고 엄마 일일 퀘스트도 씹을 정도로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 당연히 성적은 올100이겠지. 갖고 와.”
“.......”
나는 겁먹은 생쥐마냥 걸어가서 성적표를 꺼내왔다. 엄마가 ATM처럼 딱딱하게
내 점수를 읽었다.
“국어 64점, 수학 61점, 영어 69점, ......”
헉.......
망했다. 완전히 망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엄마는 아마 오늘 나를 혼내는 정도가 아니라 죽일 것이다. 내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엄마는 내 성적표를 조용히 놓더니,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어......? 뭐지.......? 순간 무슨 일인가 하고 생각했다. 내 앞에 보이지 않는, 폭발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한폭탄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엄마가 내 뒤로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뛰어오더니
*퍽*
노트북으로 내 머리를 내리쳤다. 내 머리에선 피가 흘렀고, 엄마가 말했다.
“야, 너 지금 정신이 있는 놈이야? 너 뇌 어디다 두고 왔냐?”
엄마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채 소리쳤다.
“이게 어딜 감히 엄마 몰래 밴드부를 해??!!! 엄마가 분명 이번에 수학이랑 영어 동아리 안 들어가면 디지게 맞는다고 했지??!!!”
그리고 엄마는 노트북이 부서질 때까지 내 몸을 내리쳤고, 내 문제집까지 찢어버렸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밴드부 멤버들이랑 나눴던 카톡 내용들을 다 읽기 시작했다.
“우리 연습 시간 언제로 잡을까?”
“오늘 하루도 모두 수고했어, #^@#^@$^$#%^#$%^.......”
“$^@@77$@^&%^&^@%%&.......”
그 소리는 내겐 악마가 영혼을 팔라고 속삭이는 것보다도 끔찍했다. 나는 귀를막았다. 그리고 엄마는 찢은 문제집을 내 머리로 내던졌다.
엄마가 말했다.
“너 학원 빼먹은 것도 맨날 밴드부 하느라 그랬구만?!! 어?!! 이 자식이 입시가 1년도 안 남았는데 엄마를 속이고 밴드부를 해?!! 너랑 같이 밴드부 하는 걔네들도 다 공부는 말아먹고 밴드부 하는 거겠네??!! 어?!!!”
뭐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갑자기 내 이성의 끈이 딱, 끊기는 것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없던 용기까지 생겼고, 내가 말했다.
“적당히 해.”
“뭐? 너 방금 뭐라고 했냐?”
“우리 밴드부 애들 그렇게 멍청한 애들 절대 아니야. 하, 진짜, 사람을 모함해도 정도가 있지. 엄마야말로 왜 그렇게 멍청해?”
“뭐?”
“왜 내 인생을 엄마 멋대로 뺏으려고 하는데....?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지, 엄마가 아니야! 난 엄마의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라고!”
그러자 엄마는 엄청 두꺼운 문제집으로 내 뺨을 후려치고, 머리, 심지어 몸까지 내리쳤다.
“이게 감히 엄마한테 대들어??!! 엄마가 언제 네 인생 뺏으려 했어?!! 그 어차피 망할 밴드부 하느라 내신 다 말아먹은 게 누군데?!!”
그렇게 3시간이 흘렀고, 엄마의 화는 3시간이 흘러서야 겨우 가라앉았다.
내 몸은 엄마한테 맞아 피투성이, 멍투성이가 되었고, 흉터가 생긴 자리도 있었다. 문제집과 상장들은 다 찢어져 조각이 나 있었고, 엄마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2주 후에 미국으로 갈 준비해! 여기 있다간 더는 안 되겠어. 오히려 더 엉망이 됐잖아. 미국 가서 공부하면 어학연수도 되고 일석이조지.”
“엄마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내 인생과 내 행복과 내 권리를 짓밟더니, 이제는 내 인권까지 짓밟는 거야......??!! 뭐가 더 필요해.....??!!! 나한테도 선택할 권리가 있.......”
“아니? 넌 선택할 권리도 없어. 7월에 무조건 미국 가. 넌, 탄핵이야.”
!!!!!!!!!!!!!!!!!!!
탄핵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내 마음속은 산산조각 나 무너져내렸다. 아까 베린이 했던 희망적인 말들도, 탄핵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다 소용없게 되어버렸다.
갑자기 내가 진짜 이 세상에서 제일 하찮고 의미 없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엄마한테 할 말 없으면 찢어진 문제집 들고 가서 풀어!”
엄마가 차갑게 소리쳤다. 그 말에 내 마지막 자존심까지 무너져버렸다. 나는 힘없이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찢어진 문제집을 풀다가 베린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나 2주 후에 미국으로 유학가야되서 공부해야 돼. 그리고 앞으로는 연락하지 말자. 밴드부 재미는 있었지만 내 인생 바칠 정도는 아니었어. 그럼 안녕.
그리고 나는 폰을 끄고 문제집을 폈다.
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위랑 달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
그런데 이상했다. 오늘따라 집중이 잘 안 됐다. 평소 같으면 슬픈 일이 있어도 공부하면 금방 잊었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너무나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에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얄리얄리 얄랴셩, 얄라리......’
눈 앞의 글씨가 일렁이더니, 곧이어 뭔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아, 안 돼, 공부해야 하는데, 이게 뭐야. 앞이 안 보여. 그리고 그것은 멈출 기색 없이 투둑, 하고 또 떨어졌다. 그것은 크고 뜨거웠다. 그리고 그것은 곧 폭포를 이뤄, 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흑흑.....흑......흑.....훌쩍......베린.....미안해......훌쩍......엉엉.......으아앙.......”
나는 문제집 위에 엎드려 그대로 울었다. 사실은 아니었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락 스피릿이 그대로 살아 있었고, 단지 아까 엄마에 의해 잠시 움츠러든 것뿐이었다. 18년 동안 공부벌레로만 살아왔던 나에게도 공부 말고 미치도록 하고 싶은 게 생겼다. 나는 노래하고 싶었다. 미친 듯이 노래하고 싶었다. 그동안 베린이랑 불렀던 노래들이 내 귓가에 스쳐 지나갔다.
나는 너무 서럽고 속상하고 베린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대로 엎드려 울었다.
한편, 사신지부에도 아침이 찾아왔다. 베린은 일어나자마자 폰을 켰다. 그런데 베린은 내 문자를 딱 받은 순간,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나 2주 후에 미국으로 유학가야되서 공부해야 돼. 그리고 앞으로는 연락하지 말자. 밴드부 재미는 있었지만 내 인생 바칠 정도는 아니었어. 그럼 안녕.
...........
베린은 그대로 폰을 든 손을 부들부들 떨며 얼어버렸다.
붙잡고 싶었다. 진짜 미치도록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붙잡지는 못했다.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베린은 속으로 자책하며 말했다.
‘매니저 님이 속으로 얼마나 싫어하셨을까.....역시.....애초에 매니저 님을 억지로 밴드부로 끌고 온 내가 잘못이었어.....역시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리가 없잖아......’
베린은 입술을 꾸욱 물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뜨거운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폰을 끄지도 못하고 그대로 울었다.
그때 우연히 새벽조 방으로 들어온 데이가 울고 있는 베린을 발견하고 달려와 물었다.
“라, 라니! 왜 울고 있엉?!! 무슨 일이야??!!”
하지만 베린은 우느라 대답을 하지 못했고, 데이는 우연히 베린의 폰에 있는 내가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그러자 데이도 울상이 되며
“매, 매니저 님........ᅲᅲᅲᅲ”
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그때 우연처럼 카티와 시릴이 데이와 베린이 우는 소리를 듣고 달려왔고, 카티가 물었다.
“뭐, 뭐야! 너네 왜 울어?!!”
“카티.....ᅲᅲᅲ이거 봐.”
데이가 베린의 폰으로 온 내 문자를 카티와 시릴에게 보여주었고, 카티도 눈물을 글썽이더니 훌쩍훌쩍 울며 말했다.
“정말.....? 누나가....정말 그랬단 말이야??? 누.....누나 너무해ᅲᅲᅲᅲᅲᅲ그딴 미국을 왜 가는데ᅲᅲᅲᅲᅲ카티 버리고 가지 마ᅲᅲᅲᅲᅲᅲᅲᅲᅲᅲ”
그리고 시릴이 문자를 확인하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어휴.....바보들, 너네 회자정리라는 말 몰라?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인데 뭘 그래! 매니저 누나와 우리는 한 52만 5600분 중 43만 3250분을 함께해 왔다고. 이제 놓아줄 때도 되지 않......않......흑흑..... 누나......”
하지만 시릴까지 말을 마치지 못하고 울고 말았다. 그렇게 ‘매니저 님, 베댓 가실’은 잠시 동안 눈물바다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모두가 나를 그리워하며 엉엉 울고 있을 때, 누군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언제까지 울고 있을 건데?”
시릴이었다. 시릴의 한마디에 모두가 울음을 멈추고 시릴을 쳐다보았고, 시릴이 말했다.
“이렇게 주저앉아 울고 있을 수만은 없어. 우리가 직접 누나를 찾아오자.”
베린이 말했다.
“...정말 그럴 수 있어, 시릴? 진짜로......?”
카티가 말했다.
“시, 시릴......?”
그때, 데이가 말했다.
“하지만 매니저님 다시 데려오면 뭐 해.....? 또 밴드 활동 안 할 때는 매니저님 기다려야 하잖아......ᅲᅲ”
시릴이 말했다.
“아니, 우리는 더 이상 누나를 기다리지 않을 거야. 아예 누나를 14지부의 매니저로 데려오는 거지.”
“?!”
“?!”
“.......?!”
“천재 시릴에게 불가능은 없으니까! 나한테 다 작전이 있으니까 모두 울음 그치고 내 말 들어봐.”
모두가 울음을 멈추고, 시릴이 자신이 짠 작전을 설명했다.
“내가 그동안 누나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보니까, 다크서클이 베린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심한 편이었어. 그럴수록 누나의 부모님은 매니저 누나를 더 빡세게 굴리겠지. 또 베린한테 온 이 문자로 봤을 때, 매니저 누나는 어제 부모님께 엄청 혼났을 거야. 이렇게 문자까지 보냈을 정도면 아마 부모님이 누나를 보통 혼낸 게 아니라 학대 수준으로 때렸을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여기다 부모님이 엄청나게 맞고 스트레스 받은 누나의 사정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냥 ATM처럼 빡세게 굴리기만 하면? 누나는 아마 빠르면 오늘 밤쯤 쓰러져서 병원으로 실려 올 거야. 그것도 일반 소아청소년과가 아닌 종합병원으로.”
시릴의 예상은 100% 적중했다. 엄마는 내가 공부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자, 크게 소리치며 집중하라고 했다.
“너 또 집중 안 하지??!! 집중하라고!! 집중!! 서울대가 눈앞에 있는데 성적을 떨어뜨린 새끼가 올라갈 생각은 안 하고 오히려 딴짓을 해?!! 키가 작으면 똑똑하기라도 해야지!! 루저에서 위너로 올라가란 말이야 이 멍청한 새끼야!!!!!”
그러나 엄마의 ‘집중하라’는 말들은 나한테 힘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엄청난 독이 되었고, 나는 도저히 공부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스트레스로 머리가 지끈거렸고, 눈이 침침해졌다. 결국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책상에서 떨어져 쓰러져버렸다.
“매, 매니저? 매니저?!! 뭐야, 얘 갑자기 왜 이래??!! 매니저!!! 정신 차려봐라!!! 매니저!!!!”
놀란 엄마가 나를 깨웠지만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나는 그렇게 한밤중에 앰뷸런스에 실려 시릴 말대로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누나가 실려 간 병원에 몰래 잠입해서 누나에게 몰래 명계로 가기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주는 거지. 그리고 누나가 그것들을 잘
숨기고 공항 가는 날까지 용기를 내서 부모님한테서 벗어나 그것들을 사용해서 명계로 오면 우리 작전은 성공하는 거고.”
시릴의 트로이목마급 작전 설명이 끝나자, 모두가 놀란 눈으로 시릴을 바라보았다.
데이가 감탄하며 말했다.
“우와!! 우와!!! 시릴시릴!! 완전 똑똑해!!! 대단해!!! 진짜 천재야!!”
카티도 말했다.
“흠.....시릴치곤 괜찮은 작전이네! 시릴은 못 믿지만 이번 작전은 믿어주지!!”
시릴이 말했다.
“훗,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라고! 베린, 네 생각은 어때?”
베린은 아무 말도 없이 시릴을 쳐다보다가 약간 결심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비록 내가.....콜록.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매니저님을 위해서라면........콜록, 못할 게 없어.”
“좋아! 자, 그럼 모두 오늘 밤에 휴머나이저 뿌리고 병원으로 출발하자.”
밤이 되자 ‘매니저 님, 베댓 가실’멤버들은 휴머나이저를 꼼꼼히 뿌렸다. 심지어 휴머나이저 냄새를 싫어하는 베린도 나를 되찾아오고 싶은 마음에 냄새를 참고 몸 구석구석에 꼼꼼히 뿌렸다.
그렇게 ‘매니저 님, 베댓 가실’멤버들은 비장한 듯 병원으로 출발했다.
“정신이 좀 드니.....?”
“어......여기가......어디야.......?”
“여기 지금 병원이야......너 쓰러져가지고 엄마가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내가.....쓰러졌다고?”
“너 공부하다가 쓰러져서 엄마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아이구, 우리 딸......많이 아프면 안 되는데......학원도 가야 하고 성적도 올려야 하는데.......”
.........
나는 내가 쓰러져 입원했는데도 공부와 성적에만 신경쓰는 엄마가 밉고 짜증났다.
새벽 2시, 나는 목이 말라서 잠에서 깼다. 나는 침침한 눈의 초점을 집중하며 물통을 찾으려고 했다.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보였다. 나는 별거 아니겠지 하고 무시하려고 했지만, 왠지 익숙한 실루엣이었기에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왠지 그리웠던 느낌도 들었다. 눈이 침침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눈을 비비고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자.......맙소사, 그 사람이 누군지 확인한 순간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링거까지 끊어버리고 달려갔다.
“베린.....베린......!!!”
베린이었다. 너무나도 그리웠던, 진짜 보고 싶었던 사람. 내가 힘들 때마다 나를 위로해주고 격려해줬던 사람. 그리고 지옥에서 썩고 있던 나에게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되찾아준 사람. 그를 보자 나는 잘 움직이지도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며 그에게 달려갔다.
“매니....매니저 ᄂ.....?!”
베린이 내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나는 베린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대로 울어버렸다. 내가 울면서 말했다.
“베린.....흑.....흑.....미안해.....정말 미안해.....너를 두고 가버려서....어흑흑.....”
“매......매니저 님........”
“그때는 집에 돌아가서, 흡, 엄마한테 엄청 혼나고 흉터 날 정도로 맞고......큽, 진짜 너무 속상하고 화나서 그랬어.......훌쩍, 정말 미안해, 베린.....나 하나 때문에 밴드를 망칠 뻔하고.....하지만 이젠 아니야. 나 다시는, 흑, 너랑 밴드부 안 떠날거야.....흐끅.....”
“매니저님.......”
그리고 내가 말했다.
“그리고 나, 결심했어......퇴원하면 14지부의 매니저가 되기로......퇴원하고 나서도 이딴 지긋지긋한 집에서 억압받고 살 바에는, 차라리 웃음과 행복 가득한 14지부로 가는 게 나아.....”
그러자 베린이 내 등을 토닥토닥해주며 말했다.
“매니저님께서.....저를 두고 정말 떠나신 줄 알았어요.....콜록.....떠나지 않아줘서 정말 고마워요. 앞으로 저 두고 어디 가시면 안 돼요.....그리고 울지 마세요......매니저님께서 우시면 저도....콜록, 따라 슬퍼져요......”
베린이 토닥토닥해주자 나는 눈물이 더 나왔다. 그리고 베린의 품에 안겨 그대로 울어버렸다.
베린은 내가 진정될 때까지 내 등을 토닥토닥해주고 쓰다듬어주며 위로해주었다.
그때, 데이, 카티, 시릴이 베린한테 안겨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매니저니이이임~~!!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ᅲᅲᅲ”
“누나~~!! 몸은 좀 괜찮아??ᅲᅲ많이 아파??”
“매니저! 몸은 좀 어때? 괜찮아?”
나는 그 애들을 보고 말했다.
“데이.....!! 카티......!! 시릴.......!! 안녕.......!!”
카티가 말했다.
“누나가 진짜 우리 두고 어디 간 줄 알았어.....ᅲᅲᅲ이제 어디 가면 안 돼! 알았지.....??”
“응. 누나 이제 카티 두고 어디 안 갈게. 약속!”
나는 카티를 품에 안아주며 말했다.
“근데......갑자기 매니저라니? 무슨 소리야?”
데이가 말했다.
“우리는 이미 매니저 님을 14지부의 매니저로 임명했어! 다른 사신들도 다 매니저님이 14지부로 오길 원했고!”
시릴이 말했다.
“밴드명도 ‘매니저, 배뎃 가실’로 바꿨어! 이제 누나가 14지부로 올지 말지를 결정해야 돼.”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가고 싶어. 지긋지긋한 집에서 억압받으며 살 바엔 14지부로 가는 게 나아.”
그러자 데이랑 카티가 말했다.
“우와, 우와~~~!!! 매니저님~~~!! 환영해!!!”
“누나~~~~~!! 그럼 누나 14지부로 오는 거야? 너무너무 환영해!”
나는 내 품에 안기는 나보다 몇십 센치는 큰 카티를 쓰다듬어주었다.
“아, 매니저. 이거 받아.”
그때 시릴이 나에게 뭔가를 주며 말했다. 반짝거리는 푸른색 나비 모양 펜던트였다.
“이건 명계로 올 수 있게 해 주는 펜던트야. 이걸 공중에 던지면 명계로 가는 포탈이 열릴 거야. 그리고 매니저가 그 포탈로 들어가면 포탈은 사라지게 되지.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어. 이 펜던트를 꼭 매니저 눈높이에 맞춰서 던져야 해. 너무 높게 던져서도 안 되고, 너무 낮게 던져서도 안 돼. 매니저가 포탈로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눈높이로 던져야 해. 알았지?”
나는 생각했다. 지난번에 날 명계로 데려갈 때 허공에 던졌던 게 이거였구나. 내가 말했다.
“응, 알았어.”
“매니저님.....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꼭 공연 전까지 와주셔야 해요. 콜록.”
“누나, 누나만 기다릴게. 꼭 와줘야 돼.”
“매니저님.....꼭 명계로 오는 거다! 약속!”
“응. 꼭 약속할게.”
그리고 3명의 멤버들은 사라졌다. 그때 시릴이 말했다.
“아, 맞다. 마지막에는 매니저가 용기를 내서 명계로 와줘야 해. 우리는 이렇게 매니저가 명계로 올 수 있게만 도와줄 뿐, 명계로 오는 건 매니저가 직접 와줘야 해. 매니저 부모님이 아무리 무섭더라도, 매니저 인생은 매니저 거니까, 제발 용기를 내. 축제 때 명계로 와서 우리랑 같이 노래 불러야지.”
“응, 반드시 그날까지 용기를 내서 명계로 올게.”
그리고 시릴까지 사라졌다.
퇴원한 후, 엄마는 당분간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어렵게 구하느라 나를 들들 볶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그동안 펜던트를 엄마가 보지 못하게 숨겨뒀고, 문득 생각이 나 책장에서 오래된 앨범을 찾아봤다. 그러자 내가 판사봉을 든 채로 찍힌 내 돌잔치 사진이 보였고, 나는 그 사진을 몰래 챙겼다.
드디어 명계 여름 축제날이자 내가 미국으로 가는 날이 왔고, 명계는 떠들썩했다.
여름 축제와 관련된 각종 부스들, 축제장 가득 퍼지는 맛있는 음식 냄새, 명계인들이 직접 만든 굿즈 판매까지. 즐길 게 많은 축제였다.
그러나, 축제 중에도 약간 기쁘지 않은 사신들이 있었으니,
카티가 초코 붕어빵을 먹으면서 말했다.
“누나는 과연 진짜로 올까.....? 설마 우리한테 거짓말하고 미국 가는 건 아니겠지.....?”
데이가 아이스크림을 핥아 먹으며 말했다.
“힝.....제발 오면 좋겠다.”
베린은 아무 말 없이 저쪽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매니저님은.....과연 오실까......?’
그리고 시간은 흐르고 흘러, 명계의 여름 축제 공연 시간이자 공항 미국행 비행기 이륙 시간이 다가왔다.
공항에서도 명계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북적였다. 미국에서 나를 더 공부시켜서 명문대에 보낼 생각에 들뜬 엄마가 말했다.
“하아~~드디어 이런 날이 오는구나, 우리 딸이랑 같이 미국에 가다니,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 대신 아이비리그 가자. 아이비리그 가면 사람들이 얼마나 너를 대단하게 보겠니? 나중에 판사 될 때도 엄~~~~~청 유리하고 말이야. 너도 아이비리그 가니까 좋지? 이제 한국을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거야. 기대되지?”
하지만 나는 초조했다. 이대로 독재자한테 이끌려 미국으로 가고 공연까지 망치는 건가. 나는 시릴이 했던 말을 곱씹어보았다.
‘마지막에는 매니저가 용기를 내서 명계로 와줘야 해. 우리는 이렇게 매니저가 명계로 올 수 있게만 도와줄 뿐, 명계로 오는 건 매니저가 직접 와줘야 해. 매니저 부모님이 아무리 무섭더라도, 매니저 인생은 매니저 거니까, 제발 용기를 내.’
그래. 명계에서 나를 구원해준 사람들이 나를 그리워하고 있는데, 내가 왜 나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독재자를 따라가야 하지? 전혀 말이 되지 않았다. 드디어 나는 두려움이라는 껍데기를 깨기 시작했다.
“......어.......”
엄마가 말했다.
“응? 너 방금 뭐라고....”
“싫어......”
“싫다니, 뭐가......”
나는 드디어 두려움이라는 껍데기를 완전히 깨부수고 소리를 질렀다.
“이딴 식으로 살기 싫다고!!!!!!!!!!”
그러자 공항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고, 엄마는 내 빰을 때렸다.
“이년이 미쳤나....공공장소에서 이러면 어떡해?!! 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엄마는 주변 사람들에게 사과를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만 미안하고 지금까지 엄마한테 휘둘리며 엄마의 소유물로만 살아온 나한텐 전혀 안 미안한가 보지?
엄마는 나를 또 혼냈다.
“네가 몇 살인데 아직도 몰라??!! 어??!!! 왜 갑자기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질러?!! 네가 애기야?!!!! 너 진짜.....미국 가면 엄마가 너 버릇을 아주 단단히.....”
한편, 명계에서는 여름 축제 무대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모두가 옷도 갈아입고 모든 준비를 마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회자가 말했다.
“이제 10분 있으면 공연 시작입니다! 빨리 준비해 주세요!”
그 말을 듣고 카티가 투덜거렸다.
“씨잉, 누나는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설마, 진짜 우리 두고 미국 간 건 아니겠지?!!”
옆에서 시릴이 말했다.
“카티.....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매니저는 분명 꼭 올 거야.”
데이가 말했다.
“매니저니이임.....진짜 미국 간거 아니지...?ᅲᅲᅲ”
그리고 이때 무엇보다도 제일 초조해했던 건 베린이었다.
“매니저님......”
베린은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부디.....한 번만 용기를 내 주세요.’
“뭐? 버릇? 참나......엄마야말로 진짜 양아치야!”
내가 또 소리쳤다.
“너 방금.....뭐라 그랬냐?”
평소 같으면 벌써 미안하다고 싹싹 빌 나였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왠지 내 안에 있던 모든 용기가 모아져서 만든 거대한 불덩이가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고, 명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나를 지옥으로부터 구원해 준 은인과 동료들을 위해 나는 절대 물러설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여권에서 돌잔치 사진을 꺼내 엄마한테 내밀었다. 엄마가 당황하며 말했다.
“너 그 사진 어디서 났어?!! 어?!!! 빨리 이리 ᄌ......”
내가 계속 소리쳤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내 자유를 짓밟은 엄마야말로 양아치 독재자라고! 엄마는 나한테 뭘 더 원하는 거야? 이거 봐! 난 엄마 때문에 돌잔치 때 판사봉을 잡았고, 엄마가 원하는 대로 반에서 1등도 여러 번 해보고, 엄마가 원하는 대로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맞아 주고, 판사 외에 다른 꿈들은 싹 다 포기해줬어! 덕분에 나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고, 학교에선 외롭게 공부만 해야 했어! 근데 뭐가 더 필요해?!!
그리고 엄마 전에 나보고 탄핵이라고 했지? 내가 엄마 소유물이 되어야 하는데 엄마 뜻대로 안 된다는 이유만으로 탄핵이라고??!! 엄마는 내가 엄마 물건이라고 생각하지?!! 아니야! 내가 엄마 몸에서 나온 건 맞고 엄마 핏줄은 맞지만, 엄마 소유물은 아니야! 나도 내 인생이 있는 엄연한 인격체라고! 이제 엄마가 정해주는 삶은 질렸어! 질렸다고!!!!!”
말이 끝나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전부 나와 엄마를 쳐다보고 있었고, 내 얼굴에서는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분명 내 얼굴에서는 뭔가가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태어나서 이렇게 시원한 기분은 처음 느껴봤다. 엄마도 놀란 듯했다. 어릴 때부터 엄마 말이라면 고분고분 잘 따르던 내가 갑자기 소리를 쳤으니, 엄마도 놀란 것 같았다. 엄마가 말했다.
“아......그래, 알았다. 알았으니, 나머지는 비행기에서 얘기하자. 탑승 시간 거의 다 됐.....”
“아니.”
나는 엄마의 말을 자르고 여권에서 비행기표를 꺼내 내 돌잔치 사진이랑 같이 산산조각내서 찢어버렸다. 그리고 그걸 그대로 밟아버렸다. 내가 말했다.
“난 절대 당신 따라 미국 안 갈 거야. 나도 내 인생 살고 싶어. 함께해서 뭐같았고, 다신 보지 맙시다, 독재자 아줌마.”
그리고 나는 여권을 던지고 그대로 공항 정문을 향해 뛰었다. 눈물이 바닥으로후두둑 떨어졌고, 엄마가 나를 쫓아갔다.
“어디 가니? 티켓 찢어먹고 어딜 가는 거야?!! 거기 안 서??!!! 티켓 다시 붙여야 되는데!!!”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독재자랑은 이제 끝이야. 나는 무빙워크를 이용해 달렸고, 2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계단처럼 빨리 내려갔다. 하지만 뚱뚱한 엄마는 사람들 틈에 끼어 빨리 오지 못했다.
몇 분쯤 사람들을 제치고 달리다 보니 드디어 정문이 보였다. 나는 정문으로 달리며 시릴이 줬던 나비 모양 펜던트를 꺼냈다.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베린, 데이, 카티, 시릴, 기다려, 곧 무대 접수하러 갈게.”
나는 드디어 정문으로 빠져나와 내 눈높이에 맞춰 펜던트를 날렸다. 그러자 번쩍하고 빛이 나더니 명계로 가는 포탈이 열렸고, 나는 있는 힘껏 포탈로 뛰어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 포탈은 점점 작아지더니 사라져 닫혔다. 뒤늦게 뒤뚱대며온 엄마는 내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 채 그대로 망연자실한 채 주저앉았다.
그것이 내 인생을 조종하고 빼앗으려던 독재자의 최후였다.
명계에 도착하자 벌써부터 많은 명계인들이 객석에 앉아있었고, 나는 먼저 사신들이 어디 있는지 찾아봤다. 한시라도 빨리 사신들을 찾아야 했다.
수많은 인파를 뚫고 찾아본 끝에 드디어 14지부 사신들이 보였다.
나는 사신들을 보자마자 뛰어갔고, 그때, 멀리서 엘이 나를 알아보고 외쳤다.
“어! 매니저님, 오셨군요!”
그러자 엘의 말을 듣고 다른 사신들도 나를 하나둘 알아보기 시작했다.
“오셨습니까, 매니저님?”
“군사님! 와주셨구려! 정말 잘 왔소!”
“매니저님!! 어서 오십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응! 근데 데이랑 카티랑 시릴이랑 베린은 어디 있어? 빨리 걔네들을 찾아가야 돼.”
“아! 그들이라면 아마 대기실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저쪽으로 가십쇼!”
“알았어, 고마워. 준.”
나는 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대기실로 뛰어갔다.
대기실에 도착하자, 밴드부 멤버들이 보였다. 나는 밴드부 멤버들에게 인사를 했다.
“얘들아.....!! 안녕......!!”
그때 밴드부 멤버들도 나를 알아보고 하나둘 인사를 했다.
“우와!! 매니저님 왔구나!! 어서 와~~~~!”
“우와!! 누나~~~!!! 진짜 와줬구나! 보고 싶었어.....!”
내가 웃으며 말했다.
“데이.....! 카티.....! 시릴.....! 안녕.....!”
카티가 나에게 안기며 말했다.
“누나~~!! 진짜로 미국 간 줄 알았어....ᅲᅲᅲ돌아와서 다행이야.....ᅲᅲᅲ카티 버리고 어디 가면 안 돼.....ᅲᅲᅲᅲ”
“역시 내 계산은 틀리지 않았어! 매니저가 우리에게 돌아올 확률은 99.9%로 정확했으니까.....흠, 아무튼 정말 다행이네, 매니저.”
내가 말했다.
“응.....!! 근데 너네 옷 진짜 멋있다......”
나는 들어올 때부터 멤버들이 입었던 옷을 보고 놀랐다. 데이는 파인애플이 그려진 하늘색 바탕의 하와이안 티셔츠에 선글라스를, 카티는 검은색 해골과 번개가 그려진 흰 티셔츠에 깠던 앞머리를 내리고 옆머리에 사과 머리핀 대신 해골 머리핀을, 시릴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체크무늬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 베린이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봐도 베린이 보이지 않자, 내가 물었다.
“근데 베린은 지금 어딨어?”
“아~라니? 라니는 지금 화장실 갔어! 좀 있으면 올 거야!”
“응, 고마워.”
“참! 매니저님 라니 옷 입은 거 봐봐! 완전 멋있어!”
“알았어, 고마워, 데이.”
그때 화장실 갔다 온 베린이 나를 발견하고 놀란 듯이 말했다.
“매니저님 오셨군요.....!! 콜록!”
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응....!! 베린. 나 왔어.”
“안 오시는 줄 알고 걱정했어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응, 다 네 덕분이야.”
“네....? 그게 무슨 말씀......?”
베린이 얼굴을 붉히며 말하자, 내가 말했다.
“그때 네 말을 듣고 나는 생각했어. 네가 나와 함께라서 더욱더 용기낼 수 있었고 그 목소리를 스스로에게도 들려달라고 했을 때, 나는 깨달았어. 만약 이 기회를 놓치면 나는 영원히 내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나, 드디어 결심했어.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고. 그리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내 무대를 장식하기로.”
베린이 내 말을 듣고 배시시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내가 말했다.
“어? 베린 웃었다! 귀여워~”
그러자 베린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네.....? 전 안 귀여워요.....!!! 콜록.......”
그러자 데이가 맞장구를 쳤고, 카티가 짜증을 냈다.
“그치그치~! 라니 엄청 귀엽지.”
“씨잉~카티가 더 귀여워!”
“....//////”
그리고 나는 아까 데이가 말한 대로 베린의 옷을 살펴봤다. 베린은 각종 체인이 달려 있고 각종 무늬, 영어가 적혀 있는 검정색 가죽 자켓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다리가 엄청 늘씬해보이는 스키니 진과 가시가 달린 초커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락스타 베린에게 찰떡 수준으로 잘 어울리는 너무나 멋있는 코스튬이었다.
“근데 베린, 너 옷 진짜 멋있다.....”
“아, 이거요? 이게 락 스피릿이죠, 콜록.”
“그러고 보니 나 급하게 오느라 옷도 준비 못했는데.....어떡하지.....”
“그거라면 걱정 마, 매니저님! 나한테 맡겨!”
데이가 원반을 소환해 내 옷에 날렸고 그 순간 내 옷은 그냥 자켓에서 로커들이 입는 가죽 자켓으로, 바지는 스커트로 변했고, 다리에는 망사스타킹이 신겨져 있었다.
“우와......”
“매니저님도 잘 어울리시네요. 콜록.”
내 자켓은 베린의 자켓과 달리 빨간색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아, 이게 진정한 락스피릿이구나. 왠지 내 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때, 사회자가 관객들에게 우리 차례를 알렸다.
“자! 다음 순서는 인간계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화제의 밴드인데요!(함성소리듣고)우와~~~벌써부터 관객들 반응이 대~~~단하네요! 그럼 바로 이 자리로 모셔보겠습니다! 우리 한번 베댓 가볼까요?!!(함성소리 듣고)좋아요!‘매니저, 베댓가실’밴드 나와주세요!”
“좋아, 이제 실전이다! 나는야~슈퍼 사신!”
“드디어 우리 밴드 나가신다! 다 덤벼, 덤벼!”
“천재 시릴에게 불가능은 없다! 행동력을 보여주지!”
그러자 멤버들은 하늘도 뚫을 듯한 사기로 무대로 올라갔다. 그때, 베린이 말했다.
“매니저님.”
“응?”
베린이 말했다.
“매니저님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매니저님이라고. 매니저님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매니저님의 무대를 장식하기로 하셨죠?”
“아.....어.”
그러자 베린이 마이크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저도 도와드릴게요. 매니저님의 무대가 빛날 수 있게......”
그 말에 내 볼은 분홍빛으로 물들었고, 내 마음까지 설레었다.
그리고 베린은 내 손을 잡고 나에게 말했다.
“저랑 같이.....사람들의 영혼을 울리러 가볼까요?”
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Rock’n Roll.”
그리고 나와 베린은 같이 조명과 스포트라이트로 빛나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나와 베린이 무대 위로 올라오자, 객석에서 명계인들이 크게 환호했다.
데이가 드럼을 치며 리듬을 만들었다.
왠지 내 안에 잠들어있던 흥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그때 갑자기 베린이 스탠드마이크에서 마이크를 빼고 객석을 향해 외쳤다.
“자 여러분 모두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 힘들지 않으신가요??!!!”
그러자 객석에서 명계인들이 외쳤다.
“네~~~~~~!!!!”
베린이 또 외쳤다.
“이런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으신가요???!!!!”
객석에서 명계인들이 또 외쳤다.
“네~~~~~~~!!!!!!!!”
그러자 베린이 마이크를 객석을 향해 높이 들며 외쳤다.
“그럼 모두 다같이 소리 질러~~~~~~!!!!!!!!”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베린이 다시 마이크를 꽂고 노래를 시작했다.
“암흑처럼 어두운 이곳에서 우리는 죽어가
공부, 학업, 성적, 통제뿐인 세상에서
자유와 행복, 사랑을 잃은 채 로봇처럼 감정을 잃고
복잡한 시간 속에 억압받으며 살아가”
드디어 내 차례가 되고,
“하지만 이제 이런 삶은 그만 살고 싶어
로봇 같은 삶 이젠 절대 살고 싶지 않아
복잡하던 시간 속에 멈추고 싶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어”
나는 관객들과도 눈을 마주치며 여유로우면서도 파워풀하게 노래를 했다.
“그리워 아름다웠던 그 순간이”
“그리워 자유로웠던 그 시간이”
“기계적인 세상은 이제 질렸어 I’m enough of the world~~~~~~~~”
그때 베린이 마이크를 뽑더니 마치 불꽃이 타오르듯 열창을 했다.
“날아가고 싶어 Fly to Utopia!
도망치고 싶어 Fly to Utopia!
내게 있는 상처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세계로 떠나고 싶어~~~~~~~~~”
그러자 나도 마이크를 뽑아 던지고 성대가 터지고 목이 나가도 상관없는 듯이 열창을 했다.
“날아가고 싶어 Fly to Utopia!
도망치고 싶어 Fly to Utopia!
My Love를 찾아 새로운 세계, 유토피아로 떠나고 싶어~~~~~~!!!!!!!”
나와 베린이 같이 고음을 내지르자, 객석은 환호와 박수, 열기로 우리 노래를 반겼다.
한 2분이 더 지나자 드디어 노래는 절정 직전까지 다다르고, 베린과 나는 조곤조곤하고 조용하게 노래를 불렀다.
“I wanna go to Utopia just right now......”
“And I will live happier in there......”
“And I want to go to there with you......”
“Let’s go together, my Friend.......!!”
노래가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 무대에서 폭죽이 터지고 하늘에서 뭔가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불꽃놀이였다.
그러자 분위기가 더 달아올라, 불꽃놀이와 열기 속에서 관객들은 떼창을 했고, 공연장 무대가 부서질 듯 힘차게 드럼을 치는 데이, 평소의 귀여웠던 막내의 모습과 달리 정열적으로 기타를 치고 헤드뱅잉을 하며 머리를 멋있게 휘날리는 카티, 아이큐 300의 머리로 모차르트, 베토벤만큼 천재적이고 열정적으로 베이스를 연주하는 시릴은 이 열기와 이 노래와 하나가 되어 정열적인 연주를 했고, 나와 베린은 마치 퀸과 비틀즈가 만난 듯 엄청난 고음과 성량으로 열창을 했다. 베린은 중간중간 마이크를 객석 쪽으로 들기도 하면서 관객들의 떼창을 유도했다.
그러자 나도 흥이 나서 마이크를 객석 쪽으로 들면서 흥을 유도했다.
“날아가고 싶어 (Fly to Utopia!)
도망치고 싶어 (Fly to Utopia!)
내게 있는 상처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세계로 떠나고 싶어~~~~~~~~~”
“날아가고 싶어 (Fly to Utopia!)
도망치고 싶어 (Fly to Utopia!)
Then I‘ll tell you my best friend, Let’s go to Utopia
together~~~~~~~~~~~~~~~!!!!!!!”
나와 베린은 조화로우면서도 날카로운 목소리합을 자랑하며 3단 고음을 내질렀다.
‘매니저 님, 베댓 가실’밴드는 이 열정과 이 음악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록이라는 하나의 뜨겁고 거대한 불을 내뿜어대고, 그 불은 무대, 객석, 공연장, 축제장을 집어삼키고 심지어 명계까지 자유로운 멜로디와 가사들의 향연, 그리고 끊임없이 노래하고 싶은 열망으로 집어삼켰다. 그리고 명계는 록과 함께 하나의 불티가 되어 뜨겁게 타올랐다.
그리고 나의 진정으로 자유로운 여름도 록과 함께 태양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드디어 모든 무대가 끝나고, 사감님께서 수상자를 발표했다.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제2344회 명계 여름 축제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가 긴장하며 수상발표를 기다리는 가운데, 다른 팀이 속삭이는 게 들렸다.
“아.....제발 1등하고 싶다......1등하면 저 트로피랑 원하는 거 뭐든지 다 들어준다는데......!!”
“제발 우리 팀이 1등하게 해주세요......저희 진짜 1등 아니면 안 돼요......”
“보나마나 1등은 우리 차지야! 우리 팀만큼 잘한 팀도 없었는데, 뭘.”
하지만 우리는 그런 팀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우리가 작게 말했다.
“난 1등 못 해도 상관없어. 거의 잊혀져 가던 우리가 스스로 개척해온 길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고, 설령 1등을 놓치더라도 우리가 성장했다는 사실은 변함없으니까. 그러니까 난 1등 놓쳐도 전혀 아깝지 않아.”
“응! 매니저님만 있으면 난 1등 아니라도 상관없어!”
“누나랑 함께라면 난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아!”
“안 돼! 무조건 1등......을 바라지만, 흠, 오늘따라 1등 자리가 별로 안 갖고 싶네. 매니저랑 함께라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1등이니까.”
“전.....매니저님만 돌아왔으면 그걸로도 충분해요.”
드디어 사감님께서 1등을 발표했다.
“1등 팀은.....축하드립니다, ‘매니저, 베댓가실’입니다. 단상으로 올라와 주세요.”
그 순간 수많은 명계인들의 환호와 박수가 쏟아져나옴과 동시에 나는 너무 놀라 입을 틀어막은 채 얼어버렸다.
그때 밴드부 멤버들이 나를 무대로 데려가려 하며 말했다.
“매니저님 매니저님! 얼른 올라가자!”
“누나.....우리 1등 했는데 안 올라갈 거야? 빨리 올라가야지!”
“매니저! 빨리 올라가자고! 6000명이나 되는 관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안 갈 거야?”
나는 밴드부 멤버들의 응원에 힘입어 무대로 올라가는 데 성공했다. 사감님이 말했다.
“여름 축제 1등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소감 한 말씀 하시죠.”
나는 사감님에게서 트로피를 받고 냥선배님한테서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나는 힘껏 눈물을 참아봤지만, 끝내 눈물은 내 눈물샘을 뚫고 나와버렸다. 나는 수상소감 한마디 말해 보지 못한 채 그대로 울어버렸다.
“으흐흑.....훌쩍.....흑......흐흑.......”
그러자 밴드 멤버들이 나를 위로해주었다. 가장 먼저 나를 위로해준 건 데이였다. 데이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매, 매니저님! 울어?!! 왜 울어?? 내가 위로해줄겡! 울지 마!”
카티도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누나.....울어? 울지 마......카티도 슬퍼지잖아......”
시릴이 나를 위로해주며 말했다.
“매니저! 여기서 울면 어떡해! 여기에는 총 6000명의 명계인들이 숫자 45개 중에서 숫자 6개가 모두 일치할 때 로또가 당첨될 확률로 우리 공연을 보러 온...... 흡.....울지, 울지 마......”
베린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매니저님.......”
그러자 객석에서도 “울지 마”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14지부 사신들이 외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에이~매니저! 왜 울고 그래! 나도 슬퍼지잖아.....훌ᄍ......나, 나는 절대 우는 거아니다!!!! 그러니까 매니저도 울지 말고 힘내!!!!”
“군사님! 전사는 쉽게 눈물을 보이지 않소! 이런 영광스러운 순간을 눈물로 낭비하지 말고 힘을 내시오! 군사님은 소인이 알고 있는 명계에서 제일 강한 분이오! 부디 눈물을 멈추고 힘내시오!!!!!!”
“매니저님! 사나이는 쉽게 울지 않습니다! 눈물을 멈추고 힘내십시오! 이 사나이 준이 언제나 매니저님을 뜨겁게 응원하겠습니다!!!!!!”
객석에서 들리는 사신들과 명계인들의 응원에 나는 간신히 눈물을 멈추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훌쩍, 살면서 이런 건 처음 받아봐서요.....”
나는 눈물을 닦고 수상소감과 함께 내가 마음속에 꾹꾹 눌러뒀던, 하고 싶었던 말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저는 저 같은 형편없고 용기 없는 사람에게도 1등상을 안겨 준 여러분들게 진짜 너무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사실.....명계에 오기 전까지는......부모님의 꼭두각시 인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자 명계인들이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계속 말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에게 자유를 박탈당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저에게 판사가 되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심지어 제 돌잔치 때도 저를 억지로 판사봉 쪽으로 끌고 갔고, 결국 저는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판사봉을 잡았습니다.”
“미쳤다....”
“헐......”
“와.....부모가 진짜 쓰레기네......”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렇게 제 인생은 부모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해져 갔습니다. 제가 어쩌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겨 부모님께 제 결심을 말하면, 부모님은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저는 판사”라며. 저는 제가 할 수 있었던 방법들을 다 시도해보았지만, 부모님은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부모님은 제가 자유시간과 여가 활동도 못 하게 막았습니다. 친구는 당연히 한 명도 사귀지 못했으며, 요즘 유행하는 노래가 뭔지, TV예능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성적은 좋았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고,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습니다. 같이 놀 친구가 없어서 저는 늘 외로웠고, TV예능의 재미를 몰랐기에 공부하고 쉬는 시간에 무엇을 해도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18년 동안 홀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다가, 결국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 객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 대박이다....미쳤다......”
“레전드.....”
“그 부모라는 사람 진짜 죽여버리고 싶다......”
“근데 부모가 저런데 저 사람이 저렇게까지 버텼으면......와.....저 사람 진짜 여걸 아냐?”
내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때, 한 소년이 저를 구해주게 됩니다. 어느 날 늦은 오후, 제 교실로 동아리 시간 때 썼던 의자를 돌려주러 왔다고 저를 부르며 제가 입에 머금고 있던 약을 뿜게 했습니다.”
그러자 그때, 베린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매니저님, 설마......그때가.......?!”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소년과의 만남은 운명이었습니다. 그 애는 저를 밴드부로 이끌어주었고, 제가 그동안 엄마 때문에 사귀지도 못했던 친구들을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도, 제가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TV 프로그램이나, 같이 맛있는 것도 사먹으며 저에게 제가 그동안 몰랐던 재미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친구들은 저랑 같이 노래를 부르고, 베이스랑 기타, 드럼을 치며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늘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들을 만나고 저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그 친구들에게 진짜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리고....저는.....흑......흐흑......”
나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은인을 생각하자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또 나왔다.
고마운 친구들도 소개시켜 주고 나를 집이라는 지옥에서 꺼내 주고 나에게 자유와 행복까지 가져다준 고마운 은인. 객석에서는 또 “울지 마”소리가 퍼져나왔고, 나는 말을 이었다.
“저는.......흑, 이렇게 자유, 행복, 그리고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도 알려 준 그 애한테.....훌쩍,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만약.......훌쩍, 그 애가 없었다면 저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지 모릅니다.....아마 독재자 부모님 밑에서 공부만하고 휘둘리다가.....훌쩍, 결국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인생은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베린 쪽으로 돌아서서 내가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베린, 전부터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훌쩍, 내 인생을 구해주고 내게 빛이 되어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베린. 그리고......”
나는 드디어 내 본심을 고백했다.
“좋아해, 베린......훌쩍......정말, 정말 좋아해.......”
객석에서는 “우와악~~!!”하는 소리가 터져나왔고, 베린은 잠시 놀란 듯했지만 곧 홍조를 띠고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저도 좋아해요.”
그러자 내가 눈물을 닦으며 베린을 올려다보았고, 객석에선 “오오오.....!!”소리가 나왔다. 베린이 말했다.
“거의 망해갔었던 저희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도 다 매니저님 덕분이에요. 매니저님이 아니었다면 저희가 이 무대에 오르는 영광은 절대 누리지 못했을 거예요. 그리고 매니저님의 목소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울렸고, 감동을 주었죠. 그리고 그 목소리를 스스로에게도 들려줄 줄 아는 매니저님이......저도 너무 너무 좋아요. 좋아해요, 매니저님.”
그리고 나와 베린은 포옹을 했다. 그러자 객석에서 함성과 함께 엄청난 박수가 쏟아져나왔고, 동시에 밴드 멤버들도 난리가 났다.
“우와, 우와~~!! 매니저님! 대박이다~~~!!”
“누나!! 카티도 안아 ᄌ......”
“카티, 넌 좀 조용히 해.”
그리고 베린이 말했다.
“고마워요, 매니저님.”
이 한 마디만으로도 베린의 모든 진심이 느껴졌다. 나도 내 모든 진심을 담아 말했다.
“응......나도......고마워.”
나는 이 순간이 너무 좋고 상쾌하고, 달콤하다.
독재자로부터 벗어나 나의 동료들과, 그리고 나의 은인과 함께하는 이 순간이.
행복과 자유라고는 없었던 감옥 같았던 집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고
1등 수상까지 하는 행복을 누리는 이 순간이.
나를 옥죄었던 틀을 깨뜨리고 진정한 나의 삶을 찾은 이 순간이.
이 너무나 영광스럽고 행복한 순간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여름 축제 1등 소원권으로 14지부의 매니저가 되었다.
모든 무대가 끝나고, 데이, 카티, 시릴, 베린은 다같이 안아주며 축하해주었다.
“매니저님, 정말 축하해!!! 그리고 매니저님 이제 밴드부 나갈 일 없는 거지?? 맞지??”
내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응! 나 이제 절대로 밴드부 안 나갈 거야! 여기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나갈 수 있겠어.....”
데이랑 카티, 시릴이 감동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매니저...”
“매니저니이임....”
“누나......”
그때 베린이 말했다.
“...콜록! 그래도 매니저님은 건드리지 마, 내 꺼니까....”
그러자 카티가 징징댔다.
“치! 베린 너무해!! 나도 누나한테 안기고 싶단 말이야!!”
시릴이 말했다.
“카티, 매니저는 이미 베린을 좋아하고 있다고. 그래서 너한테 마음을 돌릴 확률은...거의 1000000000×0%의 확률에 가까워.”
“뭐?! 그런 게 어딨어!!”
내가 싸움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자, 자! 모두 진정하고! 그렇게 바라던 명계 여름 축제 1등까지 했는데 다들 이대로 끝낼 셈이야? 파티라도 해야 더 좋지 않겠어? 그런고로.....1등 상금으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카티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와아!!! 누나 최고!!!!”
시릴은 이 와중에도 자신의 지식을 대방출하려 했다.
“파티란 친목을 도모하거나 무엇을 기념하기 위한...”
그때, 데이가 말렸다.
“시릴시릴!! 오늘 같은 날은 그냥 즐기면 안 돼?”
카티도 말렸다.
“맞아!! 그렇게 설명하는 게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시릴이 말했다.
“설명하는 게 뭐 어때서?! 나의 위대한 지식을 방출해내기 위해서 하는 말인데!!!....뭐, 그래도 오늘만큼은 넘어가 준다...”
시릴은 고맙게도 오늘만큼은 참아 주었다. 귀여워. 내가 말했다.
“자! 그럼 광장 앞에 있는 저 분수대 앞으로 모이자!!”
“응!!!!!”
“그래그래!!!!!”
“뭐....알았어.”
데이, 카티, 시릴은 먼저 가고 나와 베린만 남았다.
내가 말했다.
“...있잖아, 베린.....”
“네? 왜요, 매니저님..? 콜록!”
“나....이대로 행복해도 되는 거 맞지?”
“네......?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말했다.
“나는 엄마한테 늘 휘둘리며 살아오다가.....이런 행복은 진짜 오랜만에 느껴봐.....이런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가도 되는지 모르겠어......나.....이대로 행복해도 되는 거 맞지?”
베린이 말했다.
“콜록! 제가 있는데....무슨 소리에요....당연히 행복해도 되죠....그리고 앞으로도 저희 밴드에 계속 남아 저희랑 같이 노래해주세요. 매니저님의 목소리를.....더 많이 들려주세요...!”
베린이 웃으며 말하자, 내 얼굴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응.....! 어떡해.....이렇게 좋은 말만 해주고 나만을 바라봐주는 사람이 내 남친이라니.....정말 행복하고.....고마워 베린.......”
*쪽*
나는 까치발을 들고 베린의 볼에 입을 맞췄다. 순간 베린은 당황하며 나를 부끄러운 듯이 쳐다보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다.
“그쪽보다는.....이쪽이 더 좋아요.”
“응? 이쪽이라니, 무ᄉ....??!!!”
베린은 한 손으로 내 등을 감싸더니 자기 쪽으로 박력 있게 끌어당겨서 내 입에 입을 맞췄다. 나는 그의 갑작스러운 기습키스에 순간 눈이 휘둥그레해지고 얼굴이 토마토만큼 빨개졌지만, 곧 눈웃음을 짓고 입술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로의 따스한 입술이 서로를 느끼며 천천히 움직였고 나는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베린은 다른 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쓸어 만졌고, 그렇게 우리만의 비밀스럽고 달콤한 시간이 흘렀다.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나고 나와 베린은 입술을 떼었다.
베린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우리도 가볼까요?”
나도 미소를 띠고 말했다.
“그래.”
나와 베린은 손을 잡고 분수대 쪽으로 서서히 걸어갔다.
그리고 우리 둘의 머리 위로 커다랗고 예쁜 달이 아름답게 밤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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