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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과 함께 감상해주세요.
염원念願 / 김육회
▷ 연관 작품 : 랑투 작가님의 [염원念願] 바로가기
시작점이 어디인지. 어느 날 갑자기 동글게 엉겨 굳은 마음이라, 고민을 거쳐도 제대로 답 할 수가 없다. 늦은 밤에는 훤한 불 아래 얹히듯 뭉친 망울을 가만 매만지는 일이 잦고, 간신히 잠이 든 뒤에는 단 꿈을 헤매었다. 지니고 있던 것 중, 가장 깊숙이 사장되어버린 그리움을 투영한.
만화경 속, 부유스름한 젖빛유리에 나비 날갯짓이 닿아 부서진다. 조각난 색채로서 공간을 맴도는 파편과 수많은 정화를 거치며 바래 왔던 것. 가히, 단 하나라 칭할 수 있는 염원이다. 사엘, 너와 다시 만나는 것.
단지, 지금의 나는 너를 부르다가도 종종 다른 이를 떠올린다. 매니저님. 입을 크게 벌려 실없이 웃다가 답지 않게 꾹 다물었다. 내내 비어있던 반대쪽 접시 위, 무형의 감정이 몸집을 키워가는 일. 그럴 적마다 헤아린다. 저울, 마음은 저울과 같다고. 그리고 그건 아마, 중심이 달라져 점점 축이 기울어가는 움직임일 것이다. 미안하게도, 이유는 내지 못 한다. 달리 할 수 있는 것 또한 없어, 추억을 일깨운 날이면 그저 하루하루 무게를 달리 하는 가슴의 천칭을 주시했다. 미동같이 얄팍함에도 돌이켜보면 종내에는 발이 닿았던 길을 전부 교란하게 흔들고 마는 울렁임.
사엘. 내가 어떤 걸 더 바라고 있는 걸까.
―
영문 모를 고민으로 잠 못 드는 날마다 산책을 거니는 일도 점차 익숙해져, 데이가 제 뺨을 긁적였다. 멀뚱멀뚱, 발에 밟힌 풀포기가 폭신하다. 무릎을 쭈그려 호숫가를 들여다보는 얼굴이 잔물결에 휘청거리자 손마저 저어보면 밤에 젖은 물이 손금 새까지 그들먹하다. 여름을 거스르는 온도다. 차고, 차고, 또 차갑고.
심려하던 것도 잊은 채 장난처럼 가벼운 물장구 몇 번을 치고 있자니 저밖에 없던 곳에 설은 인기척이 기웃거려 데이는 다시금 다리를 폈다. 다른 사신들 중 한 명일까. 고개를 주억거리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뒤편을 들여다보면,
“매니저님, 매니저님!”
“데이?”
매니저님이다. 팔을 높이 뻗어 흔들며 인사하니, 똑같이 손바닥 들어 맞인사를 건네면서도 얼떨떨한 감이 깃든 표정이다. 그러면 데이는 더욱 헤실헤실 웃으며 다가가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잎 냄새, 더운 바람 냄새, 그리고 매니저님 냄새. 포근한 목화솜 같은 향.
“아직도 안 잔 거야? 시간이 늦었는데….”
“응? 그냥… 잠이 안 와서! 매니저님은?”
“하하, 나도 오늘은 이상하게 자기가 힘들어서 바람 좀 쐬면 잠이 올까 싶어가지고 나왔어. 설마 데이를 만날 줄은 몰랐네.”
내리쬐는 달빛이 서투르다. 합이 맞는 걸음마다 자연히 슬쩍 닿는 팔뚝께가 따스해, 데이는 잠시 말을 아꼈다. 가만하게 걷는 것만으로도 속이 안온하고, 진안하듯 안정감이 서려 드는 시간. 고요히 음미하다 문득 고개를 치켜들면, 오늘따라 유독 고르게 새겨진 별들이 사방에서 번쩍거려,
“매니저님, 하늘 봐봐!”
“하늘?”
“응! 별이 엄청 엄청 많아!”
데이는 황급히 매니저의 반팔 끝을 잡아당긴다. 풀벌레조차 울지 않는 날, 근래 늘 먹먹하던 구름마저 걷어져 영 맑은 하늘 저변. 한참을 못 박힌 마냥 선다. 옅은 감탄을 삼키게 만드는 광경에 꼿꼿이 선 뒷목이 빠근한데, 누구도 쉽게 눈을 못 떼고 입술만 살몃살몃 벌렸다.
“정말이네. 이쁘다.”
“그치, 그치?”
숨을 쉬는 족족, 가슴께가 트인다. 평이하게 들이마시고, 찬찬히 뱉고. 드리운 여름에 호흡을 섞었다. 매니저도 은연히, 비슷한 템포를 밖으로 내고, 데이는 괜스레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별에도, 달에도, 아니면 시간에도 냄새가 있는 걸까. 감싼 공기가 달다.
“아. 별 보니까 갑자기 생각났는데, 데이는 그거 알고 있어?”
“응? 어떤 거?”
“인간계에서 보는 별자리는 명계보다 훨씬 아름답대.”
“헉, 진짜? 처음 들었어!”
“나도 도서관 정리하다가 읽은 책에서 우연히 알게 된 건데… 어쩐지 궁금해지더라. 이름도 같은 별자리인데, 뭐가 다른 걸까?”
“헤헤, 거기서 보면 더 많이 많이 반짝거리는 건가?”
고개가 전보다 주욱 빠졌다. 명계의 별도 엄청 예쁜 것 같은데. 손가락을 들어 공교히 남은 은하수의 흔적을 더듬으면, 딱 정중앙, 십자가를 닮은 백조자리. 시선을 빗겨 정북과 남서쪽을 훑으니 유독이 눈길을 끄는 베가와 알타이르. 그 둘이 다리를 건너 만나는 날이 칠월칠석 이랬던가. 칠석은 조금 멀었지만 슬쩍 손짓으로 이어보다,
“그러고 보니 데이는 인간계의 별자리를 본 적 있어?”
“인간계의 별자리…….”
금시에 멈칫, 손을 거둔다. 그럴 여유가 있었던가. 데이는 회상한다. 허나 살아생전을 되짚으면 기억나는 것은 제 의복과 신분의 무게만이 중후하다. 의식, 제사, 머리를 조아리는 헌 옷의 사람들, 그리고 사엘. 사엘. 위를 보는 일은 익숙지 않다. 그럴 건이 없다. 저를 위로 삼는 이들의 시선이 더 익었고, 제게 주어진 것은 아래의 신앙과 존경을 담아 받는 일만이 오롯했다. 눈 안 그득했던 모든 것들을 헤아려본다. 땅 끝자락에 핀 빛도 없는 잡초들, 종종 옹골지게 여문 어느 이름 모를 꽃봉오리, 두터운 기둥에 두둑이 붙은 나무껍질, 흙, 모래, 잎사귀, 바다. 하지만, 별, 별자리. 명계보다 아름답다는 인간계의 별자리는.
“…제대로 본 적 없는 것 같아.”
조금 시무룩해져, 데이가 입술을 실룩인다. 기껏 호숫물에 흘려보낸 근심이 뭍으로 기어온다. 스스로도 제 마음이 단조로운 아쉬움을 넘어섰음을 깨달으면, 결국 염원을 다시 염원해버리고 만다. 만화경, 나비. 함께 자리한 밤의 별. 별, 별, 사엘, 매니저님.
저기, 매니저님. 나는 어쩌면.
“그냥 하는 말이긴 한데, 만약 다른 삶이 존재한다면… 그 때는 인간으로 태어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
“인간계의 별자리, 진짜 궁금하거든.”
손바닥을 오므려 주먹 두 개 쥔다. 다른 삶, 인간, 나와 매니저님. 먼저 앞서 나가는 뒷모습을 우두커니 주시하다 보다 느리게 뒤를 따르면, 허공에 이었던 별이 흐무러지게 빛나, 그렇게, 데이는 여전히 기울어진, 기울어져가는 제 안의 저울을 자성한다. 다만 전과 달리, 명확한 목적을 갖추고 점과 선을 양분 삼아 형태를 이룬 감정, 그 자체로.
난, 매니저님과 같이 있기를 원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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