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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시노랑 래비는 비 오는 날이면 물웅덩이에서 장난치느라 안 웃을 날이 없었던 것 같은데.
'미안해, 나 혼자 이러고 있어서.'
「그렇게 미안하다면 오늘 대가를 치르시던지.」
"!"
불길하고 우울한 기운, 분명 원혼이었다.
「동생들을 매우 사랑하나 봐? 하하하하하! 오늘 네 곁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 사신들이 힘든 일을 겪게 될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많이 고단한 일은 아닐 거거든? 키득.」
"!!"
그렇다고 당장 달려갈 수 없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건물 입구에서 벽에 기대어 하염없이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언가가 걸쳐지는 느낌이 나서 뒤를 돌아보았더니 유세프 씨가 서있었다.
"유세프 씨?"
"감기 걸려.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유세프 씨가 나에게 카디건을 걸쳐주면서 말했다.
"아,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어요!"
원혼의 기운을 느꼈다고 하기에는 이상하니까.
"하긴, 비 오는 날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
"여기 왜 나오셨어요?"
"그냥 뭔가 매니저가 여기에 있을 것 같아서 와봤어."
"네? 그럼 제가 여기에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에요??"
"글쎄."
의미심장한 웃음을 날리는 유세프 씨.
내가 무서운 표정으로 유세프 씨를 바라보니
유세프 씨의 표정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뭐야? 왜 그런 눈빛으로 쳐다봐?"
"뭔가 오싹해요.. 유세프 씨.."
"하하, 내가?"
"네.. 매우.."
"흠.. 그런가?"
너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유세프 씨를 보고 웃음이 나왔다.
"하하."
"어? 매니저, 왜 웃어?"
"유세프 씨가 너무 진지해서요. 하하하!"
"매니저가 웃으니까 나도 즐겁네."
내가 웃자, 유세프 씨는 즐거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비가 오고 나면 꽃이 피겠네?"
팔짱을 낀 유세프 씨가 내리는 비를 보며 물었다.
"네, 그렇겠네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들어갈까? 더 있다가는 감기에 걸리겠는걸."
"그래요."
같이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샌가 비가 그쳤다.
'원혼에게 트라우마를 이용해 공격당한 이후로 더 강해지기로 해 놓고서는..'
아까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손이 떨리고 있다. 현재 컵을 들고 있는데 컵 안의 우유가 출렁거린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하하.. 나도 참.."
더 이상 들고 있으면 우유가 넘칠 것 같아서 컵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하, 진짜 우유 한 모금 마시기도 어렵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른 일을 먼저 처리하기 위해서 주변을 둘러봤다.
"아, 아직까지 쌓아놨었네."
마침 예전에 일 처리를 위해 빌려두었던 책을 발견했다.
'도서관에다 돌려놔야겠다.'
저벅저벅-
최대한 손을 신경 쓰지 않고 도서관으로 걸어가고 있었으나..
탁!
결국 책이 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하..."
계속 물건이 떨어져 지쳐버린 나는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
"매니저, 왜 그래?"
떨어진 책 앞에서 한숨을 쉬는 매니저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 유세프 씨?"
"괜찮아? 안색이 안 좋아 보여."
"괜찮아요, 물건이 계속 떨어져서 그렇지."
'표정을 보니 물건들이 한두 번 떨어진 게 아니네.'
"하..."
이미 지친 표정을 하고 있는 매니저를 보고 있으니 매니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떨어져 있는 책을 주웠다.
"이건 내가 들고 갈게. 도서관 가는 길 맞지?"
"아, 그렇긴 한데.."
"매니저, 나도 도서관 가는 길인 거 알지?"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요?"
"푸흡."
"어? 이번에는 유세프 씨가 먼저 웃으시네요?"
왜 웃냐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묻는 매니저에게 대답했다.
"하하, 매니저 지금 새벽 아닌 거 알긴 아는 거야?"
"네??"
놀란 표정으로 창밖을 본 매니저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 모습이 귀여워서 더 놀려주고 싶었다.
"매니저, 혹시 내가 새벽에만 독서를 하는 걸로 아는 거야?"
매니저의 반응을 더 보고 싶어서 조금 속상하다는 듯이 말해버렸다.
"네? 아니요! 유세프 씨는 틈날 때마다 독서를 하시는데 제가 모를 리 가요!"
"하하하, 매니저 귀여워."
"그건 또 무슨.."
"매니저 반응이 너무 귀여워서 한번 떠봤어."
그 말을 들은 매니저가 충격을 받은 얼굴을 하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눈빛으로 '유세프 씨 너무해.'라고 말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음.. 놀린 건 미안. 가던 도서관이나 마저 가자고."
"… 유세프 씨!"
"? 왜 불러?"
한참을 뜸 들인 매니저가 나를 불러서 하는 말.
"고마워요."
나는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쩌면 매니저에게 이 말을 듣고 싶었나 보다.
…
이번 도서관에 가는 건 유세프 씨 덕분에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쨍그랑!
"!"
물을 컵에 따르고 오는 길에 컵을 놓쳐 깨뜨리고 말았다.
"하.. 진짜 왜 이러냐.."
깨진 컵 조각을 집으려던 순간.
"매니저!"
누군가가 나를 불러서 고개를 들어보니
"매니저, 이거 치우다가 손에 조각 박히는 거 알아?"
유세프 씨였다.
"아, 유세프 씨.."
"이건 내가 치울 테니까 매니저 룸에 들어가서 쉬고 있어."
"하지만 제가 친 사고인걸요.."
"매니저 손이 다치는 게 더 신경 쓰일 텐데?"
"그래도.."
"대신."
내가 치우겠다는 고집을 끊는 유세프 씨의 말.
"이거 치우면 캐러멜 라떼 사주기?"
"네?"
지금 이 상황에 농담이 나오나 싶다가도
"푸하하, 알겠어요."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상황을 정리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겨우 매니저 룸으로 들어왔지만.
오늘따라 매니저 룸으로 들어오는 사신들이 힘든 일을 겪게 된다.
예로는 청소당번인 테오가 청소 다 마친 것 까지 확인하고 보고하러 들어왔는데
맡은 구역이 다 더럽혀져 있다는 소식이 들려 청소를 더 한다던가,
기수 장인 엘이 들어왔는데 냥 선배님께 호출이 되었다는 일 등등..
'다들 괜찮다고 하지만.. 내가 안 괜찮다고..'
…
손이 떨리면서도 자신이 친 사고는 자신이 치우겠다며 고집부리는 매니저를 겨우 들여보내고 상황 정리를 마무리했다.
"다 됐나?"
주변을 둘러보고 작은 컵 조각이 남아있지 않도록 열심히 바닥을 쓸어 담아 처리했다.
청소가 끝난 후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매니저를 또 만났다.
"… 매니저?"
매니저를 부르며 다가가니 매니저가 하는 말.
"오지 마세요."
"매니저, 무슨 일이야?"
온몸을 떨고 있는데 어떻게 너에게 가지 않을 수가 있겠니.
"매니저."
"저 때문에…"
"?"
"저 때문에.. 사신들이 힘들어하는데.."
"매니ㅈ.."
"제가 가까이 가면 모두가 힘들어지는데!"
"…"
매니저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왜.. 왜 유세프 씨는.. 그걸 알면서도 오는 건데요.."
"진정해. 매니저 잘못이 아니야."
"… 다 나 때문에 힘들어하고.. 나 때문에 고통받고 나 때문에..!!"
"매니저, 정신 차려봐. 모든 것이 매니저 잘못은 아니야."
울고 있다. 울음을 그치게 해야 진정이 될 텐데.
바닥에 쭈그려 앉아 울고 있는 매니저와 눈을 맞추었다.
"저 때문에 이러실 필요 없어요.. 그러다가 또 힘들어지면.."
"매니저, 난 힘들어져도 괜찮아. 그러니까 오늘은 매니저 룸에 들어가서 쉬고 내일마저 일할까?"
"… 미안해요.."
"아니야, 미안해할 필요 없어."
오늘 여러 가지 일로 힘들 텐데 괜히 나까지 힘들게 하면 아마 오늘 하루 제정신으로 못 버티겠지.
덜컥-
매니저가 매니저 룸으로 들어갔다.
"내일 봐, 매니저."
-라고 작게 속삭였다.
며칠 후, 매니저가 제대로 회복이 되었을 때
"매니저, 꽃이 피었어. 같이 보러 가지 않을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좋아지는 매니저의 표정을 본 나는 같이 정원에 핀 꽃을 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와, 정말요? 예쁘겠다!"
다행히도 매니저는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갈까?"
매니저의 환한 미소에 나도 웃게 되네.
"네! 좋아요!"
그렇게 해서 꽃들이 한창 피어있는 정원으로 나왔다.
이제 여기에 봄이 찾아왔는지 꽃잎이 흩날리고…
아, 또 딴생각.
"여기 오니까.. 저 여기 처음 왔을 때 생각나요!"
"하하, 논논이 탈출해서 엘이 쫓아갔을 때 말이지?"
"유세프 씨는 거기에서 책 읽고 계셨잖아요!"
매니저를 처음 만났을 때 꽃잎이 흩날렸지.
"매니저."
"네?"
"며칠 전부터 매니저 울고 나서.."
"앗, 놀릴 거라면 얘기는 하지 마세요!"
"내가 너무 놀렸었나?"
"당연하죠!! 기분 안 좋은 고양이 보는 것 같았다고 하셨거든요??"
"하하, 기분 나빴다면 미안. 그런데 나는 놀리려던 게 아닌데."
"? 그럼 뭐예요?"
"매니저가 계속 떨었던 날 걱정 많이 했어. 괜히 건드렸다가 더 심해지는 거 아닐까 하고.."
"네?"
"그날 이후로 계속 매니저가 신경 쓰여서 매니저 기분 좋게 하려고 많이 애쓰긴 했는데 잘 안되네."
"유세프 씨.."
"매니저가 힘들 때마다 의지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던 매니저가 웃으며 대답했다.
"유세프 씨는 이미 그런 사람이에요. 적어도 저한테는."
꽃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새들이 지저귀고 오늘도 매니저의 웃음은 환하게 빛났다. 우리의 봄날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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