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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과 함께 감상해주세요.
화이트 크리스마스 / 블루베리
※1980~90년대 서양을 배경으로 합니다.
늘 3시 언저리에 우리 도서관에 오는 남자가 있다. 흑발에 흑안을 가진, 항상 깔끔한 차림을 하고 오는 사람. 이 사람은 내가 이 도서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봐왔다. 내가 근무한지 어언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으니 이 남자를 본 지도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안녕, 매니저?"
그 사람의 인사말에 나 역시 고개를 돌려 도서관 입구를 바라보며 인사를 건넨다.
"유세프 씨 오셨어요? 오늘은 조금 빨리 오셨네요?"
과거, 내가 처음 이 도서관에서 근무하게 되었을 땐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이 남자가 우리 도서관으로 올 때면 왠지 모르게 안도감이 들고 의지가 되었었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장소에서 매일 보는 사람이라 그랬던 걸까.
그 사람은 내용이 짧은 책을 대출할 때는 바로 그 다음날에 다시 도서관에 왔고, 내용이 긴 책을 대출할 때면 그 뒤로 2~3일 후에 다시 도서관으로 오곤 했다.
그렇게 자주 책을 대출하는 사람이다 보니 점차 하나, 둘씩 우리 도서관에 있는 책들의 도서대출 기록지엔 그 사람의 이름들이 새겨져가고 있었다.
거의 매일을 보다시피 하는 사람이니 나는 이 사람의 이름이 자연스레 외워질 수밖에 없었고, 어느 날엔 도서대출을 할 때 성함이 무엇이냐고 묻지않고 바로 만년필을 들어 기록지에 그 사람의 이름을 남겼다.
그런 내 행동에 그 사람은 내가 기록지에 이름을 쓸 동안 나를 빤히 쳐다보다 내가 이름을 쓰고 고개를 들자 나에게 말을 건넸다.
"제 이름 알고 계셨네요."
평소엔 도서관에 와도 가볍게 눈인사 정도만 하던 사람이라 목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상황이었다. 부드럽고도 단단하며 내 귀를 간지럽히는 다정한 목소리였다. 어쩌면 나는 이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건넨 이 순간부터 무언가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네, 거의 매일 책을 대출하시니까 늘 은연중에 성함을 알고 있었어요."
"하하, 내 이름을 기억해 주다니 기쁘네요. 그런데 저는 아직 사서님 성함을 모르고 있는데... 혹시 알려줄 수 있어요?"
"그럼요, 제 이름은 매니저예요. 저희 이제 통성명도 했으니까 앞으로 친하게 지내보는 거 어떨까요? 거의 매일 오시는데 그동안 말 한마디를 별로 안 해본것 같아서 조금 아쉬웠어요."
"저도 사서님과 친해지고 싶었는데 먼저 말씀해 주니 영광이네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저도 잘 부탁드려요."
우리는 앞으로 잘 지내자는 의미로 서로의 오른손을 맞잡고 악수를 했다.
그 뒤로 우리는 점점 친해지며 유세프 씨는 내게 말을 편하게 하기 시작했고, 유세프 씨가 도서관에 오는 날이면 서로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추천해 주기도 하고 추천해 준 책을 읽어보고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유세프 씨가 요즘 따라 피곤해 보인다며 커피와 피로가 풀리는 차 티백을 가져다 준 적도 있었는데, 얼마나 고맙고 감동이었는지 모른다.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내 변화를 알아봐 준다는 게 정말로 마음 한편이 따뜻해져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답례로 내가 구운 마들렌을 유세프 씨에게 선물로 드리기도 하고 도서관 안내 데스크에서 몰래 둘이 함께 먹기도 했다.
그렇게 점점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들이 늘어갔고, 처음이라 어색하고 낯설었던 도서관은 유세프 씨 덕분에 점점 포근하고 따뜻한 마음이 들게 해주는 장소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유세프 씨가 매일 도서관에 왔으면 하는 마음에 나도 몰래 은근슬쩍 책을 추천해 줄 때 내용이 짧은 책들만을 추천해 주고 있었다.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작은 내 마음의 표시였다. 그렇게 해서 매일 유세프 씨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게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 후, 시간은 흘러 하나, 둘 떨어지던 나뭇잎들이 모두 땅으로 내려가고 땅에는 나뭇잎이 눈처럼 쌓여가면서 계절은 내가 처음 도서관에 왔던 겨울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바뀌어가고 하늘과 바람, 공기도 쌀쌀해져가며 12월이 되자 거리들이 모두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바뀌어 갔다.
거리엔 온통 초록색과 빨간색이 가득했고, 어느 가게에서 흘러나오는지 모를 캐럴들의 향연으로 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매번 새롭게 들리는 각기 다른 캐럴들이 우리들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렇게 온 거리가 크리스마스이니 우리 도서관에서도 이벤트를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점주님께 얼마 전에 새 책을 구입하고 남은 돈으로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 어떻겠냐고 여쭈어보았고, 점주님께서는 1년도 안된 직원이 이런 생각을 한다며 기특해하시곤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점주님의 허락을 받은 나는 신난 마음에 어떤 이벤트를 할까 생각하다가 평소 자신이 좋아했던 책의 구절을 쓴 책갈피와 편지를 함께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고 싶은 사람에게 우편으로 보내주는 것과 작년 크리스마스에 쓰고 창고에 남겨져있던 트리에 종이를 붙이고 자신의 소원을 쓰거나 다른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게 응원이나 기운을 담아주는 이벤트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점주님께 말씀을 드리니 좋은 생각이라며 편지지와 우편봉투, 책갈피를 만들 종이 등을 준비해 주시곤 창고에서 트리도 꺼내주셨다.
우편은 크리스마스 당일에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아 18일, 19일, 20일 3일 동안 우편 이벤트를 진행하기로 하였고, 우편 이벤트 기간이 끝난 뒤에도 편지지와 종이는 그대로 놔두고 크리스마스 당일까지도 쓸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트리는 도서관 입구 쪽에 세우곤 포스트잇을 옆에 놓아 누구나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벤트 일주일 전, 나와 점주님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많은 사람들이 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도서관 입구에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한다는 종이를 붙였다.
그리고 이벤트 하루 전, 안내데스크 밑에 넣어놨던 트리를 꺼내 장식을 했다. 그런데 장식을 하던 도중 무언가 내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인기척이 느껴진 쪽을 바라보니 유세프 씨가 트리 장식을 함께 도와주고 있었다.
"유세프 씨?"
유세프 씨는 눈이 동그래진 날 보고 한 번 씨익 웃더니 마저 트리 장식을 계속했다.
"매니저 혼자 하면 힘들잖아. 내가 꾸미는 건 잘 못하지만 한 명이라도 같이 도와주면 더 빨리 끝나고 좋지 않을까 해서."
"도와주시면 저야 감사하지만... 유세프 씨도 힘드시잖아요. 정말 안 도와주셔도 돼요."
"아니야, 매니저 도와주는데 힘들게 뭐가 있겠어.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매니저는 좀 쉬어. 도서관 입구에 붙어있는 종이도 다 매니저가 쓴 거잖아."
"그래도 제가 하자고 말씀드린걸요. 이벤트 준비로 바쁠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어요. 원래 크리스마스 때는 이렇게 바쁘게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맛이 있잖아요?"
나는 유세프 씨를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유세프 씨는 나의 말에 기특하다는 듯 웃음을 지어보냈다.
"그럼 매니저, 이벤트 하는 동안은 엄청 바쁠 테니까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도와줄게. 트리 장식은 거의 다 끝났으니까 뭐 하면 돼?"
"네? 아니에요! 유세프 씨도 바쁘신데 정말로 도와주지 않으셔도 돼요...!! 어차피 이 정도는 각오하고 이벤트 얘기를 꺼냈는걸요. 전 괜찮으니까 진짜 안 도와주셔도 괜찮아요."
"아니야, 매니저. 내가 오늘 도서관에 오지 않았으면 몰라도 내가 도서관에 왔고 매니저를 본 이상 안 도와줄 수 없어. 어쩌면 나보고 매니저를 도와주라고 오늘 나를 도서관에 보낸 신의 뜻일지도 모르잖아? 저기 있는 책상 여기로 옮기면 되지?"
"유세프 씨?! 아..."
유세프 씨는 말을 끝내자마자 안내데스크 옆 책상으로 향했다. 마침 저 책상이 트리 옆에 놓을 책상인 건 어떻게 알고.
그 뒤로도 편지지와 우편봉투 정리, 책갈피를 만들 종이를 자르는 것도 유세프 씨가 많이 도와준 덕분에 금방 수월하게 끝낼 수 있었다.
"유세프 씨 오늘 진짜 너무 감사해요. 저 혼자 했으면 절대 이렇게 금방 못 끝냈을 거예요. 제가 이벤트 끝나면 밥 한 끼 꼭 살게요!"
"아니야, 나야말로 매니저를 도울 수 있어서 기뻤는걸. 매니저를 도와주면서 같이 일하는 것도 즐거웠어."
유세프 씨는 별일 아니라는 듯 계속해서 고마워하는 날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보냈다. 그리고 오늘 유세프 씨는 평소와는 다르게 꽤 많이 두꺼운 책 2권을 대출했다.
"오늘 수고했어 매니저. 이벤트 때도 힘내서 열심히 해."
"네, 이벤트 때도 정말 열심히 할게요. 오늘 너무 감사하고 수고 많으셨어요."
유세프 씨는 나와의 대화가 끝나고 나에게 손 인사를 한 뒤 밖으로 행했다. 왜 오늘은 두꺼운 책 2권을 대출한 건지 묻고 싶었지만 뭘 그런 것까지 물어보나 싶어 말을 삼켰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벤트 당일이 되었다. 내 바람대로 우리 도서관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주었고, 그 덕에 나는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저기요, 볼펜이 안 나와서요."
"네, 잠시만요!"
"여기 종이 이거밖에 없어요?"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언니, 이 편지 여기에 넣으면 돼요?"
"네, 여기에 넣으면 언니가 우편으로 보내줄게요!"
말 그대로 정신이 없는 하루였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고사리 손으로 편지를 쓰는 모습,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들을 보니 난 이 바쁨도 행복하고 즐거웠다.
남은 이틀 역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나날들이었다. 특히 마지막 날인 20일은 마지막 날답게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에 왔다. 하지만 그 사람들 역시 전날 왔던 사람들과 똑같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무슨 일인지 나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우편 이벤트를 마치고 트리 이벤트를 할 땐 비교적 사람들이 많이 오진 않았지만 종이들은 계속 두었기에 그래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왔고, 입구 쪽에 준비해놓은 트리 역시 여러 가지의 소원들로 하나, 둘씩 채워져가고 있었다. 소원을 쓰는 사람들도, 그 소원을 응원해 주는 사람들도 너무나 즐거워 보였다.
이벤트의 마지막 날인 크리스마스이브엔 그 커다란 트리에 빈 곳이 없을 만큼 가득히 사람들의 소원으로 가득 찼다.
마지막 날까지 이벤트를 하며 나 역시 매우 즐겁고 행복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이벤트 기간 동안 한 번도 유세프 씨가 우리 도서관에 오지 않았다는 거. 이벤트 준비는 본인이 다 도와줬으면서 정작 이벤트 기간엔 한 번도 얼굴을 비춰주지 않으니 왠지 모를 서운함이 밀려왔다. 이벤트 전 날에 두꺼운 책 2권을 빌려 갔기에 혹시 안 오진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살짝 있었는데 그게 정말일 줄은 몰랐다. 물론 도서관에 오는 건 본인의 자유지만... 정말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를 서운함은 감출 수가 없다.
그때, 누군가가 나의 치맛자락을 톡톡하며 잡아당겼다.
"언니 언니! 저 이거 트리에 붙이고 싶은데 키가 안 다아요..."
"아, 잠깐만 기다려요! 언니가 안아줄 테니까 붙여볼래요?"
"네!"
나는 얼른 아이를 안아 트리에 종이를 붙여주었다.
"됐다!"
"우와! 언니 고마워요!"
나는 아이를 바닥으로 내려주며 아이에게 물었다.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 친구는 무슨 소원 빌었는지 물어봐도 돼요?"
"네! 저는 어~엄청 커다란 사탕을 먹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우와, 정말? 그 소원 언니가 이루어 줄 수 있겠는걸요? 어~엄청 커다란 사탕은 아니지만 언니 손바닥만 한 사탕은 있어요. 이리 와볼래요?"
"우와 정말요?!?"
아이는 신이 나 싱글벙글 웃으며 안내 데스크로 따라왔다.
"어...?"
"언니, 왜 그래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 여기 사탕! 사탕 먹고는 꼭 양치질 잘 해야 하는거 알죠?"
"네! 정말 고마워요 언니!!"
"하하, 아니에요. 언니가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니까 꼭 부모님 말씀 잘 들어야 해요. 약속!"
"약속!"
아이는 기뻐 환하게 웃으며 부모님께 달려갔다.
내가 아이에게 사탕을 주려 안내 데스크에 왔을 때 안내데스크 위에 뜨겁게 김이 나는 커피 한 잔과 '많이 피곤하지? 마지막 날까지 힘내.'라는 쪽지가 놓여 있었다. 이름은 쓰여있지 않았지만 난 누군지 알 수 밖에 없었다. 아이를 보내고 급하게 밖으로 달려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유세프 씨는커녕 아무 사람도 없었다.
다시 안내 데스크로 돌아왔을 땐 미지근해진 커피와 서운함 마음만이 가득히 남아있었다.
"...차라리 왔다는 흔적도 남기지 말지. 도서관에 왔으면서도 내 얼굴도 보지 않고 쪽지만 남기고 가는 게 어디 있어."
유세프 씨는 내가 바빠 보여 날 배려하느라 그런 거 겠지만 그래도 서운한 마음은 변함없었다.
어찌어찌 이벤트 마지막 날까지 무사히 끝내고 뒷정리와 마감을 하느라 평소보다 1시간이나 늦게 퇴근 준비를 했다. 도서관의 불을 끄며 문을 잠그고 나가자 하늘에는 새하얀 눈들이 세상 가득히 내리고 있었다.
"눈이다..."
원래 같았으면 나 역시 어린아이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좋아했을 테지만 오늘은 왜인지 이 아름다운 눈도 기쁘지 않았다.
"우산도 없는데...집은 어떻게 가지."
평소였다면 우산이 있어도 일부러 우산을 쓰지 않고 눈을 맞으며 걸어갔을 텐데 오늘은 그냥 걱정을 하게 된다.
그 순간, 차가운 곳에 오래 있어 새 빨간색으로 물든 손이 우산을 든 채 내 눈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 우산을 든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기도 전에 새빨게진 그 사람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 사람의 손을 잡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쏟아져 버렸다. 그리곤 나도 몰래 쏟아진 눈물에 당황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 사람은 나에게 우산을 쥐여주곤 자신의 코트를 벗어 나에게 둘러주며 말했다.
"많이 춥지? 눈이 올 줄은 몰랐는데 아까전부터 하나 둘 내리더니 이렇게 함박눈이 되어 내리더라고. 덕분에 이번 크리스마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아."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유세프 씨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에 그저 고개를 떨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매니저, 괜찮아?"
유세프 씨의 물음에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우산을 유세프 씨의 어깨에 올려놓은 뒤, 내가 차고 있던 목도리와 유세프 씨의 코트를 다시 유세프 씨에게 둘러주었다.
"매니저?"
"전...하나도 안 추워요. 유세프 씨가 훨씬 더 추우시잖아요. 언제부터 여기에 계셨어요?"
"나도 금방 왔어."
"거짓말. 손이랑 얼굴 다 빨개지셨잖아요. 눈도 아까전부터 내렸다면서요. 유세프 씨가 저보다 훨씬 더 춥고, 훨씬 더 눈도 오래 맞으셨으면서 왜 코트를 저한테 벗어주시는 거예요... 전 이벤트 기간 내내 서운해서..."
나는 고개를 떨군 채 주먹을 꽉 쥐고 이야기했다. 차마 고개를 들고 유세프 씨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내 행동을 본 유세프 씨는 허리를 숙여 내와 눈을 마주치곤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매니저, 미안해하지 마. 매니저를 기다린 건 내 의지야. 그리고 이벤트 기간에 매니저를 보러 가지 않은 것도 내 의지지. 내가 보이면 매니저가 날 신경 쓰느라 이벤트에 신경을 못 쓸 것 같았거든. 반대로 이벤트에 신경을 쓰자니 내가 있으니까 신경 못써줘서 미안하다며 나한테 계속 미안해했을 거야. 그래서 나도 내 의지로 안 갔어.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까 매니저도 힘들 것 같아서 몰래 커피만 주고 나온 거고.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마 매니저."
"그래도..."
"그래도?"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곤 유세프 씨에게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해요. 제가 유세프 씨한테 미안해 안할 테니까 제가 최소한의 예의라도 지킬 수 있게 해주세요."
유세프 씨는 나의 반응에 안심한 듯 다정하게 웃어주었다.
"좋아, 그런데 어떤 예의를 지킨다는 거야?"
"저희 집으로 잠깐만 와주시겠어요? 유세프 씨 손 차가운 거 봐요, 이거 다 저 기다리느라 그러신 거 잖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최대한 빨리 나오는 건데... 이대로는 저 절대로 유세프 씨 못 보내요. 저희 집으로 가요."
나는 내 목도리를 제대로 유세프 씨에게 둘러준 뒤에 유세프 씨의 새빨게진 손을 잡고 우리 집으로 향했다. 유세프 씨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향하는 동안 눈발이 조금씩 약해져가다가 우리 집에 도착하니 그전보다도 많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눈을 잠시나마 적게 내리게 해준 것도 우리를 향한 신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조금 누추하지만 들어오세요."
유세프 씨는 나의 갑작스러운 초대에 당황한 기색이 여력 했지만 나의 굳건한 눈빛에 마지못해 우리 집에 들어왔다.
"그럼 잠깐 실례할게."
유세프 씨를 테이블에 앉히고 나는 얼른 따뜻한 코코아를 타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예의를 지키게 해달라고 거하게 말해놓고 대접해 드리는 게 코코아라서 죄송해요."
유세프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니야, 매니저와 함께 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코코아를 마시니까 온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야. 그리고 이렇게 맛있는 코코아는 처음 먹어보는 것 같아."
"...아까 정말 너무 감사하고 죄송했어요. 유세프 씨가 안 오시는 이유를 속으론 다 알고 있었는데도 감정만 앞 나가선. 어린애 같은 말이지만 그 와중에도 이렇게 유세프 씨랑 눈이 내리는 걸 구경하면서 코코아를 마시며 함께 있으니까 좋네요."
"그건 나도 그래 매니저. 이렇게 매니저와 함께 있으니까 도서관에서와는 다른 느낌으로 행복해."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얼굴이 붉어진 채로 어린아이처럼 배시시 웃었다.
"오늘은 내 생에 가장 행복한 크리스마스이브인것 같아. 고마워, 매니저."
"저는 뭐 한 것도 없는걸요. 저야말로 유세프 씨 덕분에 정말 최고로 행복해요."
그 시각 시계는 우리에게 12시를 알려주는 종소리를 내주었다.
"어? 지금 딱 12시네요. 그럼 이젠 제 생에 제일 행복한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요."
"나도 내 생에 가장 행복한 화이트 크리스마스야. 메리 크리스마스, 매니저."
"메리 크리스마스, 유세프 씨도요."
그날 우리가 먹었던 코코아는 그 무엇보다도 달콤했으며, 그날 우리가 맞이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세상에서 제일 눈이 부시게 아름답고도 따뜻했다.
-에필로그-
"이제 도서관에 매일 와주실 거죠?"
"그럼, 이제 사서님이 나의 여자친구인걸. 그러니까 이제 두꺼운 책 추천해 줘도 돼. 매일 보러 갈 테니까."
"네...??"
내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보려 했지만 유세프 씨는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턱을 괴고 씨익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난 너무 창피해서 유세프 씨의 눈을 피하며 대답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난 매니저에 관한 건 다 알아. 더군다나 매니저는 얼굴에 다 드러나는걸? 내가 매니저가 추천해 준 책을 대출할 때 매니저가 얼마나 기쁜 표정을 지었는지 매니저는 모르지?"
나는 유세프 씨의 말들에 더욱 고개를 숙이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꾸 그렇게 놀리실 거에요...??"
"하하, 미안해. 매니저가 너무 귀여워서 그만."
"...그러면 화 못내는 거 알고 일부러 그러는 거죠?"
"응? 뭐라고 매니저?"
"아무것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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