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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사랑하고 있어! / 집나간도마도
나는 젊었고, 또한 당신을 열렬하게 사랑하였습니다.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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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읽는 당신이 알아야만 하는 다섯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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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에단은 매니저를 흠모했다. 에단은 매니저에게 천천히 빠졌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를 정도로, 아주 천천히.
에단은 제 주제를 몰랐다. 사실은 알면서도 그랬다. 더 정확히는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그 에단이 의지부족일리는 없었으니까.
어떤 이유였든, 에단은 그 주제에 감히 매니저를 사랑했다.
에단은 매니저를 흠모했다. 그 부드러운 강인함을, 따뜻한 마음씨를, 그리고 그를 사랑했다.
에단의 시선 끝에 매니저가 닿았다. 매니저는 늘 그렇듯, 강인하고 밝게 웃고 있었다. 오르골이 캐롤을 불렀다.
-
둘.
에단은 매니저를 사랑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에단은 매니저를 사랑하면 안 됐고, 그를 향해 영원을 맹세해선 안 됐다. 그저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면 또 모르겠지만. 아무튼 에단은 언젠가 매니저를 떠나가야했다. 에단은 다른 누군가와의 맹세가 있었고, 다른 곳에서의 숙명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에단이 매니저를 무시하겠다던가, 매니저를 지키지 않겠다던가 하는 뜻은 전혀 없었다. 절대로, 맹세코.
에단은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그녀를 존중하고, 그녀에게 충성하고 싶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이라도 그러고 싶었다.
에단은 본디 충성하는 사람이다. 에단은 자신을 용서하고 싶었기에 노력했다.
-
셋.
노력이 결과를 보장해준다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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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그렇다고 해도 하나 정도는, 단 한 번 정도는 그가 원하는대로 될 것이기에 에단은 편지를 부치기로 했다. 이터널 플라워와 함께. 그와의, 언젠가의 만남을 약속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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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이건 삼류 개그물이다. 정확히는 일부만 그렇다.
ㅡㅡ
똑, 똑.
그 노크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아주 적당한 세기로, 아주 명확하게 소리를 냈다. 깔끔한 소리가 기분좋게 울려퍼졌다.
"매니저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잠시만~...... 아, 됐다! 이제 들어와도 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매니저가 책상을 어느 정도 치운 후 그의 방문을 허락했다. 얼마 안 지나 이색적인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에단 아스터 버틀러(Ethan Aster Butler). 그의 이름이었다. 붉은색 머리카락은 태양에 버금갈 정도로 강렬했다. 달은 떼어 박은 듯한 눈 하나와, 태양빛을 담아 보관한 듯한 눈 하나. 그는 밤의 빛과 낮의 빛을 둘 다 지닌 사람이었다. 그 빛은 날카롭고, 또 매혹적이었다. 에단의 쌍커풀이 촘촘히 모여서 고개를 들었다. 에단의 근육은 몸 내부에서 체계적으로 탑을 쌓았고, 그의 다리는 길쭉길쭉했다. 키가 180cm 정도 돼보였다. 뒤로 묶은 머리카락이 그의 널찍한 어깨에 가려졌다. 이 정도면 신을 사기죄로 고소해도 합법이었다.
에단은 몇 걸음 다가온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매니저는 에단에게 한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표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야, 에단?"
"우선은, 임무 보고를 하러 왔습니다. 임무 후 바로 오려고 했는데, 몇 명이 성가시게 하는 탓에..."
에단은 곤란하다는듯 말을 흐렸다. 하지만 매니저는 에단이 말하려던 것을 단번에 이해했다. 이젠 너무 뻔한 클리셰잖아. 문제는 여긴 현실이란거지만.. 매니저는 멋쩍게 웃으며 생각했다.
"에이, 이 정도면 늦은 것도 아니니까 걱정마! 그래서 임무는? 이번에 좀 길었는데, 설~마.... 무슨 큰일 있었던 건 아니지?!"
"그게..."
-
"...임무 보고는 이것으로 이상입니다."
"으음.... 엄청 큰 문제가 있는건 아니네. 이번에도 정말 수고했어, 에단!"
매니저는 활짝 웃어보이며 두 손을 모았다. 사실은 에단을 쓰담아주고 싶은데, 두 가지 이유로 불가능해서 취한 자세였다. 첫번째 이유는, 에단은 그의 신체에 남의 신체가 닿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두번째 이유로는, 키 차이였다. 심지어 에단은 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이제 좀 그만 대박이어도 될텐데! 매니저는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으나, 곧 고개를 내저었다.
"아, 미안미안. 내가 너무 오래 잡아뒀네. 이제 가도 돼, 에단!"
매니저가 그렇게 말하며 에단을 올려다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단은 여전히 뒷짐진 채로 그저 매니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단에게 약간 고민하는 기색이 보였다.
"그.. 에단?"
"...사실 용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어?! 그랬어? 뭔데?"
"이건 별 일 아닙니다만.."
에단은 뒷짐진 손을 풀고, 두 손으로 상자처럼 생긴 것을 잡았다.
"엇?"
"장기임무가 예상보다 오래 걸렸던 탓에 하루 늦게 되었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안 드리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자처럼 생긴 무언가는 매끄러운 나무로 되어있었고, 중간중간 금색의 무언가로 장식되어 고급적인 느낌을 풍겼다. 에단은 상자처럼 생긴 걸 열려고 했다. 상자의 틈새로 붉은색 천이 보였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엔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아둬야한다. 설마? 아니 근데 너무 큰데. 두 개가 들어가 있는건가? 아니, 애초에 바바반, 반지라기엔 나무 상자잖아? 요즘엔 나무 상자에도 있나?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거람! 매니저는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혼란스러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에단은 그것을 열었다. 그리고 그 상자같은 걸 열자, 고운 재질의 붉은 천 위에, 이쁘게 조각되고 빛을 반사하는 책 모형이 올라가 있었다....책 모형?
...
매니저는 에단에게 정말 미안했다. 그리고 창피했다. 매우. 아주 많이.
"..미안.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봐."
"예?"
"아, 아무것도 아냐! 근데 이건 뭐야?"
매니저가 성급하게 말을 돌렸다.
"오르골입니다."
헐 오르골이었어??? 에단이 한 쪽 손을 치우자 오르골의 태엽이 보였다. 그리고 에단이 한 바퀴 태엽을 감자, 캐롤송이 흘러나왔다. 오르골이구나! 누가봐도 오르골이구나! 매니저가 생각을 고쳤다.
헉 근데 오르골??? 매니저는 오르골을 정말 좋아했기에 순식간에 기쁨에 젖었다.
"우와아.. 태엽이 가려져서 전혀 몰랐어. 제대로 서프라이즈야! 소리 정말 좋다."
"마음에 드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당연하지!! 선물 진심으로 고마워. 아,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야, 에단!"
하루 늦음 뭐 어때. 매니저는 활짝 웃으면서 에단에게 말했다. 에단은 눈을 끔뻑거리다가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매니저님."
...근데 오르골 비싸지 않아?
매니저는 오늘 에단한테만 총 3번 미안했다.
~
제 3자의 발소리가 들렸다. 에단과 매니저는 숨을 죽였다. 매니저가 에단을 올려다봤다. 에단은 한 팔로 매니저를 끌어안고 다른 손으론 칼을 움켜쥐었다. 에단은 재빠르게 뒤쪽 벽으로 몸을 숨겼다. 그의 검과 매니저가 에단과 함께했다. 매니저의 등과 에단의 가슴이 서로 맞닿았다. 매니저는 무전기를 꼭 붙들고 그들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경계했다. 매니저는 입을 꾹 다물어서 스스로 소리를 내지 않도록 했다. 에단은 곁눈질로 복도를 확인했다. 에단은 최대한 숨소리를 줄였다. 그 순간 그 사람이 고개를 획 돌렸다. 기괴스러울 정도로 갑자기, 획. 착시현상일까. 그 사람의 목이 꺾인 것마냥 보였다. 너무 불쾌했기에 에단은 인상을 왕창 찌푸렸다. 에단은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에단은 아주 조용하게 가까워지는 즉시 대처할 채비를 했다. 그러나 발소리는 멎은 상태였다. 그 사람이 그들이 있는 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에단은 입술을 깨물었다. 매니저는 힐끔거리며 복도 쪽을 보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대로 떠났다. 완전히.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에단은 발소리가 점점 연해지자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주 크고 빠른 심장박동이 그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에단은 그제서야 자신이 아직도 그를 끌어안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든, 어떤 속도든 심장은 뛰었기에, 에단은 자신의 팔을 풀었다.
시간은 필요 이상으로 빠르게 뛰었고, 그 시간 사이에 여러가지가 섞이고 섞였다. 긴장감, 불안감, 안도감, 또 다시 생긴 두 사람의 발소리와.. 그리고 온기. 무슨 색의 구두가 함께 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간간히 새가 소리를 냈다. 그들은 애매한 분위기와 함께 춤을 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
"...! 드시면 안 됩니..."
매니저가 그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에단은 매니저의 손목을 잡아챘다. 순식간의 그들의 거리는 좁혀졌다. 아. 에단이 탄식을 내뱉었다. 일을 치고 나서야 그의 행동을 깨달은 것이다. 매니저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에단을 올려봤다. 그의 얼굴이 한 눈에 들어왔다. 당황함에 물든 서로 다른 눈동자가 퍽 예뻤다. 안경테가 그의 눈동자를 강조했다. 에단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그의 어깨에 올라타있었다. 분위기에 매료되어 에단은 손을 놓지 못했고, 매니저는 손을 뿌리치거나 부탁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었다. 그가 한 행동인데 왜 그가 더 당황하는지, 말 한 마디면 되는 일에 매혹되는지.. 아무튼 그들은 그저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냥 그대로, 그대로, 그대로.
"식사는 맛있게......어?"
그 시간은 그닥 오래가질 못했다. 불청객이 찾아온 것이었다. 물론 거기엔 그 누구의 죄도 없었다.
헛! 매니저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며 탄식했다. 상황이 그렇고 그러니까 직원이 그들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오해를 할 게 뻔했다. 아직 그런 소리를 들을 준비가 안 됐다고~!! 매니저는 그의 얼굴이 달아올라 터져버리지 않기 위해 이 위기를 모면해야만 했다. 그래도 매니저에겐 20년 남짓의 짬밥과 무려 14지부에서의 짬밥이 있었기에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매니저는 생각을 포기했다.
"에에단 손 좀 놔놔줄래??"
"..네."
에단은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손이 자유로워지자, 매니저는 자연스럽게 주작을 시도했다.
"...하 하하 하!!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네!! 내가 좀 더덤벙대서에단만고생했어잡아줘서고마워 그치 에단????"
"..."
에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보니까 에단의 얼굴은 약간 붉어져있었다....창피한걸까, 설렌걸까.
...어쨌든 종업원은 친절했다. 그 누구도 방금 전의 상황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ㅡㅡ
.
.
.
에단은 빈 편지지를 앞에 두고 매니저와 관련된 여러 생각을 한다. 에단과 매니저에게만 있는 기억들을 계속해서 떠올린다. 에단은 그 때의 감정, 날씨, 장소, 시간, 그 모든 것을 잊고 싶지 않으나, 모든 것엔 이별이 있기 마련이다. 기억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다. 그 분도 마찬가지로.
에단의 머릿속이 온통 어수선해지고 있다. 펜을 집어도 쓸 수가 없으니 무용지물이다. 에단은 눈을 감고 기억을 되짚는다. 냥선배는 상부가 통보한 내용을 모두에게 전했다. 매니저는 12월 31일, 이곳을 떠난다고, 두 개의 달이 뜨는 날엔 만날 수 있을거라고.. 사신들은 마지막으로 그들의 마음을 편지에 담기로 결정했다.
에단은 몇 분 동안, 텅 빈 편지지만을 쳐다본다. 쳐다보기만 하다니 멍청한 짓이군... 에단은 그렇게 읊조린다.
에단은 옆에 이터널 플라워를 두고, 감히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그의 마음과 소망을 한가득 담아낸, 그런 무례한 편지를.
[ 안녕하십니까, 매니저님. 처음으로 매니저님께 긴 편지를 남깁니다. ]
...
...
-
매니저가 떠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에단에게 편지가 다가온다. 그 편지는 명계에서 온, 매니저의 편지다.
에단은 잠깐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게 편지를 뜯는다. 에단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매니저의 편지를 읽어내려간다.
[ 에단, 신경써줘서 정말 고마워. 진짜 고마운데... 우리 맨날 만날 수 있더라..? 너희들이 맨날 놀러가는 쪽으로 알바뛸 수도 있어.
두 개의 달이 뜰 때 사신지부로 가는 건 맞아. 전에 만화경에서 나비가 튀어나온 이후로, 사당에 세이사감님도 있기로 했거든. 그래서 그 때만이라도 사신지부에 있어달라고 냥선배님이 부탁하셨어. 지부에 최소한의 인력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아무나 들일 수는 없으니까 말야.
그렇다고 냥선배님을 너무 욕하진 마.(근데 그냥 욕하는 건 괜찮을 거 같기도 해ㅋㅋㅋ 장난, 장난. 냥선배님한텐 비밀이다?) 냥선배님도 전해들은 내용 밖에 모르셨더라구. 나조차도 두 개의 달이 뜰 때만 만날 줄 알았는데, 뭐.. 막상 집에 와서 보니까, 우리가 맨날 가던 카페도 갈 수 있고, sns도 그대로고, 이렇게 편지도 주고 받을 수 있더라. ㅎㅎ;;
걱정시킨 거 같아서 정말 미안해. 그래도 다시 만날 수 있어 다행이야!
몇 주 뒤에 다 같이 모이자고 얘들한테 전했어. 근데 그 전에.. 우리, 단 둘이 만나는 건 어때? 난 언제든 가능해. 이제 일이 없으니까.
시간 되는 날 알려줘. 꼭 알려주기, 꼭! (밑줄 다섯번 쫙쫙쫙 별표 한 번)
추신. 아니 근데 나한테 맹세해도.. 돼? 네 염원은 어쩌고? 혼난다, 에단~~ ]
....
여태껏 왜 고민한거지?
아무래도 에단은 사치스러운 시간을 더 즐길 수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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