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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끝자락의 콘서트 / 활력
* 시안 SR 스토리 HALF HEART 스토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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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경을 채운 사신은 염원을 이루기 위해 인간계로 돌아가고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삶은 전생부터 사신까지의 기억을 잃은 채 살아가게 된다. 이것은 공평성을 위한 지부와 인간계의 조치였다. 인생 2회차와 1회차의 차이는 무시하지 못할 만큼 크다는 이유였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염원을 이룬 사신과 한 지부의 매니저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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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염원을 적으면 된다냥.”
방에서는 대화 소리와 무언가를 적는 듯한 소리만이 들려왔고 곧 남자는 쓰던 것을 멈추어 펜을 내려놓았다. 인간의 말을 하는 고양이는 책상에 놓인 펜을 바라보다 시선을 떼며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정말 이걸로 해도 괜찮은 거냥?”
“충분히 고민한 거라서 후회는 없어.”
“그럼 됐다냥. 나가도 좋다냥.”
“간다.”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고요해진 방은 창문에 닿는 바람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창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차갑고 쌀쌀한 바람이자 겨울바람이었다.
***
시안이 염원을 이루고 떠난 후 많은 시간이 지났다. 처음에는 이전보다 무언가 가라앉은 분위기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나아지는 듯했다. 과거를 회상할 만큼 여유가 없었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부에서 일이라도 하면서 차츰 잊어가라는 냥선배 나름의 배려이지 않았겠느냐며 합리화 했다. -솔직히 당시에는 일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경멸했었다.-
오늘도 아침을 커피로 시작했다. 커피를 만드는 동안 향이 주변에 퍼지면서 마셔보지 않아도 벌써 졸음이 가시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만들어진 커피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반듯하게 접힌 봉투가 눈에 띄었다. 봉투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고 봉투를 열어보니 티켓이 있었다. 외관은 굉장히 화려한 아이돌의 콘서트 티켓인 것 같았다. 순간 떠오른 사람이 있었지만, 그는 이미 염원을 이루었고 그 탓에 이전의 기억은 없어졌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사신들이 올려놓은 게 아닐까 싶어 티켓을 봉투 안에 넣고 봉투를 손에 쥔 채 매니저룸을 벗어났다.
새벽조부터 시작해 황혼조까지 물어보았지만 티켓에 대해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아침조 방에 갔을 때 기이가 했던 말이 단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세한 내용을 기이에게 물어봤지만, 그 이상은 모른다며 평소처럼 의미심장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더는 사신들에게 찾을만한 단서는 없는 것 같아 기이의 웃음소리를 흘려듣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
가벼운 노크 소리가 복도에 작게 울렸고 놀람 반, 반가움 반인 듯한 리히트가 문을 열었다.
“오늘은 자기가 먼저 찾아왔네. 나 보러 온 거야??”
“뭐..틀린 건 아니야.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어.”
나는 봉투에서 티켓을 꺼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이 티켓의 출처를 알고 싶어서. 혹시 아는 것 있어?”
대충 훑어보아도 누구인지 알 것 같은 티켓의 외관에 그들의 눈은 잠시 흔들리는 듯했다. 물론 나도 이것을 발견한 후 지금까지도 여전히 볼 때마다 당황스럽다.
“한 가지 의심되는 점이 있습니다만 정말 가능한 것인지 정확히 아는 바가 없습니다.”
기이가 그 말을 끝으로 의심스러워 보이는 웃음을 흘렸다.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지만 정확하지 않다는 그의 발언은 장난스러워 보이는 웃음소리와 겹쳐지며 이 이상 알아낼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에게는 시간을 내어줘서 고맙다고 말한 뒤 발걸음을 옮겼다.
***
도서관은 평소답지 않은 고요함이 느껴졌다. 원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용되고 있는 도서관에 익숙해진 탓도 있지만, 항상 이곳에 도착하면 1명 이상인 장소이기에 조용한 모습이 더욱 어색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책을 찾기 시작하자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책장에서 책을 꺼내는 소리부터 한 장, 한 장 넘기는 소리까지 이전까지 정신없던 생각들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이 티켓의 출처와 관련된 책을 한 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꽤 많이 읽었다. 조금이라도 관련 있어 보이는 책은 아마 다 읽었으니 당연하지만, 알아낸 것은 한 가지 정도였다. 이것마저도 가설에 가까워서 정확하다 보기는 어려웠지만, 충분히 가능성은 있었다.
알아낸 내용대로라면 시안은 만화경을 채우기 직전 염원을 바꿔 인간계로 간 것이다.
곧바로 꺼내놓은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하면서 조금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는 듯했지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도서관에는 아무도 없고 지금 나온 결론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많기에 지체할 것 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냥선배에게 물어볼 것이 산더미였다.
조금 급한 듯 문을 두드리자 냥선배는 들어오라고 하였다. 문을 열고 냥선배의 눈과 마주치자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알고 있음에도 선뜻 말을 하지 않았다. 이대로 있으면 애매한 침묵만 흐를 것 같아 먼저 대화를 시도했다.
“냥선배님, 이거 알고 계시죠?”
봉투를 보여주며 말하자 냥선배는 한숨을 쉬며 질문에 대한 답을 하였다.
“물론 알고있다냥. 매니저도 누가 보냈는지 알고 있지 않냥?”
“알고는 있지만,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왔어요.”
냥선배는 포기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가 알지 못하는 시안이 염원을 바꾸기 직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도 시안이 왜 바꾼 것인지 자세히 아는 바가 없지만, 매니저가 예측한 대로 시안이 염원을 바꾼 것만큼은 사실이다냥. 시안은 지금까지의 기억을 갖고 인간계로 간다고 적었었다냥. 그 티켓도 시안이 전해준 것은 맞지만 직접 전하러 온 것은 아니다냥. 매니저도 인간계에 사는 인간은 이곳으로 넘어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냥.”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냥선배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여태까지 말을 못한 건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비밀로 해달라고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냥.”
“그건 괜찮아요. 시안이 비밀로 해달라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요.”
냥선배의 말을 들으면서 정리해 보자면 시안은 냥선배를 제외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이다. 아까 사신들에게 티켓에 대해 물어봤을 때 대부분 모른다는 반응이 이것과 연관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부터는 나도 정말 아는 것이 없다냥. 다만 확실한 건 이 일은 징계를 받을 만큼의 건이라는 거다냥. 염원이라는 점만 뺀다면 지부와 인간계의 규칙을 어긴 거나 다름없으니냥. 그래도 가겠냥?”
잠시 봉투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녀와야겠어요. 시안한테 들을 게 많거든요.”
냥선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12월 31일. 단 하루만이다냥. 그 이상은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다냥.”
냥선배에게 가볍게 인사한 후 방을 나왔다. 따뜻하던 방을 나오자 차가운 기운의 복도가 맞이했다. 그와 동시에 냥선배의 말을 들으며 빠르게 돌아가던 머리가 공기와 함께 차갑게 식었다. 머리가 식자 몸이 지쳤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복도에서 잠들 것만 같아 숙소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것은 12월 31일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
시간은 흘러 12월 31일이 되었다. 이른 시간이지만 냥선배에게는 이미 허락을 받았기에 바로 인간계로 왔다. 정체를 들킬까 봐 몇 번 오지 못하는 인간계는 올 때마다 많은 것이 변하는 것 같았다. 아마 시안도 변했겠지.
“인사는 할 수 있을까..”
인간계의 아이돌은 일반인은 접근하기 힘들다고 예전에 시안에게 들었다. 어쩌면 힘든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시안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티켓에 적혀있는 콘서트장은 컸다. 크다는 것 외에는 생각나는 단어가 없을 정도였다.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이건 염원이 아닌 직접 이룬 것이라 생각하자 시안이 대단해 보였다. 그렇게 생각이 이어지던 찰나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처음 오는 거라 긴장했던 탓인지 심장이 크게 울리는 듯했다.
******
콘서트가 시작되고 노랫소리와 함성이 들려왔다. 무대에 서 있는 시안을 보자 무언가 비슷한 기억이 나는 듯했다. 춤추며 노래하는 시안의 모습뿐만 아니라 가사 역시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시안을 바라보며 천천히 기억을 더듬자 에브넬 페스티벌에서 있었던 일과 시안의 악보를 본 카티와 시릴이 가사를 읊으며 뛰어다니던 모습이 떠올랐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가사가 기억에 남을 만큼 가치가 있던 것이 아닐까.
에브넬 페스티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 당시 무대에 있는 시안의 모습과 무대를 마친 후 내려온 뒤 다음에 제대로 된 무대를 보여주겠다던 시안의 말은 아직도 기억의 깊숙한 곳에 남아있다. 어쩌면 그냥 했을지도 모르는 말이지만 지금 떠오르는 것으로 볼 때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던 찰나 공연은 끝자락에 다다랐다.
공연이 끝나가는 만큼 노래도 끝이 나자 시안이 한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순간 몸이 멈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후에 시안의 무대를 볼 때 반쪽짜리 하트를 만들겠다던 나의 의지와는 반대로 손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주변은 반쪽의 하트를 만든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이 하트를 만들었다고 인식하게 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하트를 만들고 있던 시안과 눈이 마주쳤다. 놀란 듯 커진 눈동자를 보자 그제야 정신이 드는 듯했다. 경직되어 있던 몸이 풀렸고 손을 올려 뒤늦게 반쪽의 하트를 만들었다. 내가 만든 하트를 본 시안은 안도하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콘서트가 모두 끝나자 파도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끝났다는 것을 느끼자 꿈을 꾼 것처럼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허탈감이 밀려올 것 같았다. 마치 기분 좋은 꿈을 꾸다가 중간에 깨어난 것처럼.
*******
이른 시간에 왔던 것 같은데 휴대폰을 보니 이미 오후가 되어 있었다. 더 있어도 시안이 나타날 것 같지 않아 떨어질 생각이 없는 발을 떼어 출구로 향했다. 몇 걸음 가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나를 멈추게 했다.
“야! 매니저!”
목소리만 들어도 시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시안은 모자를 눌러 썼지만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어떤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은 어색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흘렀다. 만나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여태까지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고 싶은 말이 이렇게나 많은데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땠냐. 제대로 된 무대 보여주겠다고 했잖아.”
“좋았어. 한 번 더 보고 싶을 만큼. 진짜 시안이 말했던 그대로네.”
시안이 건넨 말을 기점으로 긴장이 풀리자 묻고 싶었던 말들을 하나씩 물었다.
“그나저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물어봐도 아무도 모른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시안은 잠시 침묵하더니 만화경을 채운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만화경을 채운 뒤 염원에 대해 생각했었는데 이전의 내 염원은 환생 후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니까. 그래서 염원을 바꿨어. 모든 것을 기억한 채 환생하는 것으로.”
오기 전에 냥선배에게 들었던 내용보다 자세하게 듣게 되자 시간이 가는 것도 모르고 이야기했다. 긴 시간 동안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밖을 보자 어두운 밤이었다.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이 이상은 시안에게 민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안. 나 이제 가야 할 것 같은데.”
시안에게서 아쉬워하는 표정이 잠시 비쳤다. 시안의 그런 표정을 보자 나 역시 아쉬웠다. 더 있다가는 여운이 남을 것만 같아 미련을 버리고 명계로 돌아가는 포탈을 열었다.
“진짜 가냐?”
“응. 이제 정말 가야 해.”
잠시 정적이 흘렀고 그대로 포탈에 들어가기에는 마무리가 어색한 듯하여 시안에게 다음을 기약했다.
“시안. 다음 연말에도 꼭 찾아올게. 그때는 예전에 말했던 것처럼 무대 아래에서 미리 하트 만들고 있을게. 그때도 오늘처럼 또 하트 만들어줘.”
“꼭 와서 하트 만들고 있어라.”
말투는 퉁명스러웠지만 말끝에 아쉬움이 묻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럼 내년 연말에 보자. 시안.”
“그래. 잘 가라.”
시안의 말을 끝으로 포탈을 통해 명계로 돌아왔다. 명계의 시간으로 따지면 49년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었다. 정작 내년이 되어도 시안을 만날 수 없는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왠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
연말은 그 해의 끝자락.
끝자락이라 함은 끝에 닿는 것.
끝에 닿았다는 것은 시작이 있었다는 것.
그들에게 연말이 특별해진 것은 시작이 존재했기에.
신은 연말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부디 그 선물이 그들에게 행복을 안겨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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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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