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끝 / 라일락
매니저가 떠난지 벌써 3년이다. 동생을 찾았다는 이유로 나간다기에는 전에 동생을 찾고도 남아있었던 것과 다른 일자리를 찾아본다는 말을 봐서는 그 이유뿐만은 아닌 것 같아 보였지만 모두 별 말 없이 그녀를 보내줬다. 그리고 거의 3년이 다 되어가던 날. 매니저는 동생의 두 손을 붙잡고 사신지부 앞에 서있었다.
"저 왔어요~"
오랜만에 고향에 온 듯한 밝은 목소리. 그런 그녀를 두 발 벗고 나와 반겨주는 사신들을 보니 매니저는 다시 웃음이 나왔다. 2년에 한 번 명절마다 한 지부는 3일동안 관할을 늘리는 대신 다른 지부는 푹 쉴 수 있는 지부전체 휴가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14지부에게 휴가가 돌아왔다.
"작년에 열심히 일한 보람이 있네~ 이번에 쉬고!! 매니저! 오랜만이다. 와서 음식 만드는 것 좀 도와줘!!"
시릴이 밝게 말을 건내며 매니저를 향해 다가온다.
"저번에 힘들다고 징징거린 사람이 누구더라. 아마 그냥 휴가 필요없고 관할 그대로 가자고 했던 것 같은데...?"
시안이 뒤에서 조용히 나타난다.
"오랜만이야. 매니저. 동생들은 카티랑 엘이 돌봐줄테니까 요리 좀 도와주면 안될까? 나랑 노아 그리고 나인은 다들 조원들 말리느라 바쁘거든. "
"어? 유세프씨! "
"하하. 오랜만이야. 이렇게 보니까 오랜만에 가족끼리 모인 것 같네."
"그러게요."
시끌벅적한 14지부는 역시 생기가 넘쳤고 기분이 좋아보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역시..."
매니저가 조용히 뭐라 중얼거렸지만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지나가고 휴가는 끝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매니저는 여전히 사신지부에 머무르며 무보수로 지부의 일을 도왔다. 그리고 그 일은 매니저가 이곳에 다시 머무른지 3주째 되던 날 일어났다.
매니저가 그날따라 아침식사에 나오지 않았다. 요즘 많이 고생했다는 생각에 모두 그냥 쉬게 놔두자고 했던 게 실수였을지도 모른다. 오후가 지나 점점 황혼이 되어가는데도 매니저의 방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보다못한 시노와 레비가 조심스레 매니저의 방에 들어갔지만 그곳에 매니저는 없었다.
"형!! 형들...!! "
"사신님!"
누나가 자리에 없다는 걸 확인한 아이들은 새파랗게 질려 빠르게 그나마 친했던 카티와 엘에게 뛰어들었다.
"뭐? 누나가 없어? 노아! 어떡해? 누나가 없어졌다는데?"
"네?? 매니저님이요? 유세프님! 매니저님이 사라지셨데요."
카티와 엘이 소식을 전해듣고 그걸 사신들의 비공식적인 리더들에게 전하며 소란이 일어났다. 세이가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 시도는 기이가 들고 온 편지에 의해 산산히 부서졌다.
"기이군. 그게..?"
세이가 주어를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시선의 끝은 누가봐도 노골적으로 편지를 향해있었다.
"후후후 마스터의 편지입니다. 마스터의 이부자리 위에 있더라고요~? 받는 사람은? 두구두구두구두구! 쫜! 14지부 사람들에게~ 그럼 제가 뜯어도 되는거겠죠?"
흥겨운 듯 장난스럽게 말을 건냈지만 기이의 루비같은 붉은 눈동자는 차갑게 식어있었다. 양쪽으로 쭈욱 찢을 것 같았던 무시무시한 기세와는 다르게 조심스럽게 편지를 꺼냈다.
"여기요."
"어? 왜 나한테...?"
아직 펼치지 못한 편지지를 기이는 유세프에게 넘긴다.
"후후 왜긴요. 마스터의 가족분은 읽을 컨디션이 아니신 것 같고, 휴대전화로 문자도 아니고 굳이 편지로 남긴데다가 가족에게 말도 사라지셨다? 그렇게 애타게 찾던 동생들한테도 말을 안한다고요? 바로 앞에 마트갈 때도 일일이 동생에게 보고하고 나가던 마스터가요? 이상한데 그 편지 안에 답이 있을테니 누구나 그 편지의 내용이 궁금하죠. 통솔력이 좋은 사람이 읽어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리고 목소리도 꽤 고우시잖아요? 기이가 가볍게 뒷말을 덧붙이며 유세프에게 다시 편지를 권했다. 기이의 손을 떠난 편지는 유세프에 의해 펼쳐젔다.
"14지부 사람들에게. 갑자기 사라져서 조금 놀라셨죠? 잠시 긴 여행을 떠나려합니다. 조금만 시노와 레비를 봐주실 수 있으신가요? 제가 무리한 부탁을 하는 건 알아요. 14지부 근처에 조그마한 방을 구해놨어요.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잠시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당연히 대가가 있어요. 이미 보셨을지 모르지만 편지와 함께 통장을 넣어놨어요. 그걸 열 수 있는 방법은 레비가 다 알거에요. 그리고 레비한테 레비 통장에 그 때 모은 거 넣어뒀다고 전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끝이 살짝 올라간 물음조로 끝나버린 편지를 유세프가 허망하게 붙잡고 있었다.
"자 일단 진정하세요."
조장들까지 패닉이 되기 시작할 때 세이가 나서서 가볍게 제지한다.
"매니저님이 아무 말도 없이 이럴 리 없어요. 분명 무슨 사정이 있으셨던 거겠죠. 책임감이 불타오르는 분이시잖아요. 조장들은 일단 다들 조원들 데리고 방으로 돌아가고. 아침조와 황혼조에게는 동생분들 한 분씩 진정시키는 거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네."
다들 편지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상황을 애써 무시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평소 행실과는 너무나 대비되는 그 행동에 사신들의 의문은 더욱 더 커져갈 수 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채 걱정과 불안함만 더욱 커져갈 때. 매니저가 사라진지 2주 째 되던 날. 세이는 유세프를 조용히 사감실로 불렀다.
"사감님? 무슨 일로...."
대부분의 임무로 세이사감과 독대를 해봤지만 이렇게 사감님이 멍때리는 건 처음이라 유세프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아.. 불러놓고 딴 생각해서 미안해요. 그 부탁할 게 하나 있어서 말인데요. 혹시 들어주실 수 있나 하고.."
"어..? 임무에 관한 게 아닙니까?"
당연히 임무에 관한 것이라 짐작했을터라 유세프는 조금 놀랐다. 임무는 부탁이 아닌 명령으로 이뤄지는 것이니까.
"임무에 관한 거기는 한데요. 내일 새벽에 데려올 영혼 분포도를 보면 퀸시의 구역에 평소의 두 배가 분포되있어요. 그에 비해 유세프씨 구역은 20대 여성 영혼 한 명뿐이죠."
유세프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성의 영혼을 데려간 후에 퀸시를 도와달라는 말이라면 그냥 출발하면서 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항상 자신의 구역이 정리되면 자신의 다른 조원을 도우러 가기 땜에 사감님도 그를 모르지는 않았을테고..
"그래서요?"
오늘따라 계속 돌려 말하는 사감님 덕에 결국 유세프의 말에서 요점이 무엇이냐는 말이 튀어나왔다.
"유세프씨 구역에 제가 영혼을 수거하러 갈께요. 대신 오늘만 퀸시 구역에서 일해주세요. 이건 말 그대로 부탁이라 거절하셔도 상관은 없지만.."
"사감님은 이제 더 이상 영혼을 수거할 수 없지 않았나요?"
"그러니깐 잠시 눈감아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은거에요."
세이 사감님은 원칙을 누구보다 준수하시는 분. 그걸 깨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도 지금....
"20대 여성 영혼이라.. 아. 설마..?"
"네?"
"아뇨. 사감님이 말씀하신대로 내일은 퀸시 구역에서 일할께요. 퀸시가 조금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그가 뒷말을 흐리며 사감님에게 미소짓는다.
"네? 거절하실 줄 알았는데.. 기록에 법조인이라 되있어서.. 그리고 평소 행실도 규칙을 공수하는 사람으로 보였거든요."
"아..? 끝까지 안보셨나요? 저는 법의 울타리를 잘라내는 역할이였는데..? 물론 그게 실증나서 그걸 이야기로 만들어 뽑아냈지만요."
유세프가 재빨리 덧붙이며 말한다. 세이사감이 잠깐의 탄식을 내뱉는 동안 유세프는 빠르게 한마디를 더하며 그답지 않게 도망치 듯 문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저는 요즘 로맨스 이야기도 꽤 재밌다는 걸 알았거든요."
속내를 다 틀킨 세이 사감을 놔둔 채 유유히 걸어가는 유세프였다.
다음 날.
"에에?? 유세프? 니가 왜 내 구역이랑 같이 해?"
"오늘 너무 많은데 도와주려고."
"네 구역은?"
"오늘 없더라고. 신기하지?"
"그 넓은 땅에 한 명도?"
퀸시가 의심하는 듯한 눈초리로 쳐다봤지만 결국 퀸시를 묶어 각기 제 구역으로 떠나는 사신들을 지켜 본 세이는 자리에 일어나 오래된 옷을 입었다. 옛날. 명계 대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입던 디자인이라 살짝 촌스럽나? 라는 느낌도 들었지만 원래 이런 옷을 입어줘야 임무라는 느낌이 드는 법이다.
세이가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명계 외곽 병원이였다. 305호 6인실 문을 열자 맨 끝에 한 침대만 사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매니저님? 데리러 왔습니다."
"오늘 내로 사신이 도착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게 사감님이셨을 줄이야.. 게다가 원래 이 구역 오늘 4지부인가. 5지부 차례 아니였나요?"
"잘못보신 모양이네요. 오늘 이 구역은 유세프씨 담당이였습니다. 제가 바꿨지만.."
"사감님도 영혼 수거 하셔도 되요?"
"원칙적으로는 안됩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 저를 데리러 오셨나요? 매니저에 입에서 끝까지 나오지 못한 말이 다시 입 속으로 가라앉았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한 번 더 보고싶어서요."
"네?"
"전에 마지막 가는 길이라면 저 보고 가도 괜찮을 것 같다 하셨잖아요. 그래서 제가 대신 데리러 왔습니다."
확실히 매니저가 굳어진 야근 분위기를 풀기 위해 농담반 진담반으로 잘생긴 얼굴이니 마지막에 사감님 얼굴 보고 가는 영혼들은 행복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걸 기억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듯이 매니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었다. 청량한 웃음소리가 빈 병실에 퍼져나갔다.
"이제 데려가 주세요. 저는 염원이 없어서 사신은 못 될 것 같고... 제 환생포인트는 어느 정도인가요? 이왕이면 환생해서 모두 다시 만나고 싶은데.. "
"그랬으면 좋겠네요. 영혼 20201231호 ☆☆☆. 환생포인트 9046점으로 천국행입니다."
그냥 평소와 똑같이 영혼을 수거하는 일이였지만 왠지 모르게 두 명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며칠 후.
"사감님? 그 소식 들으셨나요? 후후"
"어? 기이군 무슨 일이죠?"
"요즘 은근 기운 없는 사감님을 위한 선물이 도착한 것 같아서요."
"그게 무슨 말이죠?"
"빨리 1층에 가보세요. 후후후"
평소와 똑같은 14지부 현관에는 커다란 짐을 들고 낑낑거리며 올라오는 한 여성이 보였다.
"어? 사감님!! 안녕하세요~ 이번 14지부 매니저로 돌아오게 됬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환한 미소로 현관을 올라오는 매니저에게 이번에는 꼭 말할 것을 다짐했다.
'네 번째 계절 > 우리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리매니][온기]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 / 키즈 (0) | 2020.12.18 |
---|---|
[모리매니] [자유주제] 해피엔딩 / 익명 (0) | 2020.12.18 |
[모리매니] [온기/첫눈] 마음의 온도 / 익명 (0) | 2020.12.18 |
[데이매니] [첫눈] 첫눈 / 김육회 (0) | 2020.12.18 |
[노아매니] [첫눈] 너만을 위해서 / 필연 (0) | 2020.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