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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난 / 이아린
“이번 임무는 키르, 제이미, 노아. 그리고 매니저 넷이 다녀오십시오.”
이번 임무는 어느 산. 그곳은 산세가 꽤나 험하긴 했지만 그래도 등산길이 잘 닦여있어 조난은 일어나지 않던 곳이었다. 하지만 근 며칠 산에만 들어가면 꼭 사람이 한 명씩 실종되었고 산은 곧 등산 금지로 닫혀버렸다. 제보를 받은 세이 사감은 이를 원혼의 짓이라 단정하고 우리를 산으로 내려보냈다.
“거, 사람들이 실종되었다기엔 음산한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구먼요..”
“그래도 산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긴장한 사신들과는 다르게 산의 기운은 청량했고 오히려 빨간 단풍과 노란 은행 그리고 맑은 공기는 우리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원혼은커녕 이상한 기운조차 느끼지 못한 채 정상에 다다랐다. 꽤나 높았던 산의 정상은 올라온 보람을 느끼라는 듯 울긋불긋한 옷을 뽐내고 있었고 선선한 가을바람은 우리의 땀을 천천히 식혀주었다.
“일단 오늘은 허탕 친 거 같으니 일단 내려가는 게 어때 매니저?”
노아는 잘 익은 단풍색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물었고 나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을 거 같아. 어두워지면 곤란하니까.”
하며 정상에서 등을 돌려 내려가는 등산길을 밟는 순간 지름길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어? 저쪽이 지름길이라는데?”
지름길 쪽은 잘 닦인 등산길과는 다르게 꽤 길이 험해 보였지만 그래도 사람이 지나가기엔 무리가 없는 길이었다.
“그래? 그럼 시간도 없으니 일단 저쪽으로 내려가 보자.”
“그래도 산은 조심해야 한다. 온 길로 가는 게 좋다.”
둘로 엇갈린 사신들을 뒤로한 채 하늘을 올려보았다. 좀 전까지 맑았던 하늘은 어디 가고 우중충한 구름들이 몰려와 곧 비라도 퍼부을 듯 흐려져 있었다.
“곧 비가 올 거 같은데..? 일단 서두르는 게 좋을 테니 지름길로 가자.”
그렇게 우리는 지름길로 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빗방울이 후드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이 날은 어두워졌고 앞서가던 나는 낯선 바람에 뒤를 돌아보았다.
“키르, 제이미, 노아 어디 있어??”
“나는 여기 있다! 매니저!!”
옆에 있던 키르는 내 손을 잡았고 노아와 제이미는 새카만 어둠에 묻혔는지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어, 어떡하지... 내가 괜히 지름길로 가자고 하는 바람에...”
“정신 차려라 매니저! 이럴 때 일 수록 침착해야 한다!”
“그,그렇지만.. 아악!”
비로 인해 질펀해진 바닥에 발을 헛디뎠고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바로 일어서려 했지만 발목이 끊어질 거 같은 그 고통에 다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괘, 괜찮나 매니저?!”
“으.... 삐었나 봐....”
“일어날 수 있겠나?”
“아니... 키르 랜턴 있지? 나 여기 있을 테니까 먼저 내려가서 제이미랑 노아한테 연락해줘. 산 중간이라 연락도 안되고.. 같이 있어봤자 같이 조난만 당할 뿐이잖아..”
.........
“매니저! 키르! 어디 있어??”
사실 노아와 제이미는 키르 일행과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앞서가는 키르와 매니저를 따라가던 도중 모퉁이를 도니 키르와 매니저는 사라지고 울창한 나무숲만이 보일 뿐이었다. 비가 오는 것도 날이 흐린 것도 모두 키르 쪽이었고 노아와 제이미가 있는 쪽은 오히려 해가 쨍쨍해 살짝 더운 느낌까지 들 정도로 날이 밝았다,
“이거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한데..?”
“그렇구먼요.. 아무래도 저희를 서로 떨어뜨려 놓으려는 속셈에 걸린 거 같구만요”
“이렇게 찾아봤자 곧 날만 어두워질 테고... 먼저 내려가서 세이 사감에게 연락을 취하는 게 어떨까..?”
“그게 나을 거 같네요..”
그렇게 노아와 제이미는 매니저와 키르를 뒤로하고 먼저 하산을 결정했다.
........
“그럴 순 없다!”
“키르. 내 말 들어 그게 맞아.”
“업혀라 매니저.”
그는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아 업히라며 손을 뒤로 흔들었다.
“매니저를 혼자 두고 가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산짐승이 나올 수도 있고.. 절대 매니저를 혼자 두고 갈 수 없다.”
키르 말도 틀린 게 아니다. 주변도 너무 어둡고 비도 오는 데 혼자 떨어진다면 분명 저체온증이나 산짐승에게 죽을 수도 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나는 결국 키르의 등에 몸을 맡겼다.
“그럼 부탁해. 키르.”
그는 나를 업고 천천히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길은 가면 갈수록 질퍽해지고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설상가상으로 랜턴의 배터리마저 기력을 다해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더 가기는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키르는 잠시 멈추어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스럭.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잔뜩 긴장해있던 우리는 풀숲을 헤치는 소리 난 곳을 돌아보았다. 그곳엔 분명 아무것도 없었다.
“흰 사슴...?”
“무슨 소리야, 키르.. 아무것도 없어..”
“매니저 눈엔 보이지 않는가! 저 하얀 사슴이??”
“정신 차려!! 지금 아무것도 없다고!!”
키르는 내 말을 무시하고 나를 업은 채 달리기 시작했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지만 그는 넘어지지도 않고 무작정 달렸다. 그렇게 달린지 30여 분쯤 지났을까.. 겨우 멈춰 선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빗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왜 그래 키르..”
“또 놓쳐버렸다.. 분명 흰 사슴이 보였는데..”
발을 몇 번 까딱 가려보니 아까보다 훨씬 나아진 통증에 그의 등을 밀치며 등에서 내려왔고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놀란 그는 나를 정면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짝. 나는 커다란 소리가 나게 그의 뺨을 후려쳤고 키르는 맞은 뺨을 감싸며 나를 보았다.
“정신 차려. 키르. 주변은 어둠이고 여기서 너까지 그렇게 돼버리면 나보고 어쩌란 거야?”
“미안하다 매니저.”
짧게 사과하고 푹 고개를 숙여버리는 그를 보니 더 이상 뭐라고 할 수도 없어 그대로 입을 꾹 다물고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근처에 계곡이 있는지 졸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고 소리에 의지해 천천히 계곡 쪽으로 걸어가 보니 희미하게 동굴이 보인다.
“저쪽에 동굴이 있어. 일단 저쪽에서 비를 피하자”
가는 길에 그나마 덜 젖은 나뭇가지들을 챙겼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 불을 피웠다. 작은 온기와 작은 불빛이 그나마 조금의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조금씩 긴장이 풀렸고 나도 모르는 새에 잠이 들었나 보다. 동굴 안으로 들어오는 빛에 천천히 눈을 떠보니 우리는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잠들어있었고 동굴 입구에선 세이 사감이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무언가를 든 채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작은 마물 하나를 잡지 못해서 사신과 그 매니저가 조난을 당합니까?”
그나마 안도한 우리는 서로를 한번 쳐다보고는 세이 사감이 들고 있던 작은 마물을 보았다. 크기는 작았지만 아직 힘은 넘쳤는지 세이 사감의 손에서도 열심히 발버둥 치고 있었고 그 뒤엔 노아와 제이미가 머리를 긁적이며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에 우리도 작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세이 사감은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섰고 우리도 그를 따라 명계로 향했다.
“고맙고 미안하다. 매니저..”
“으응... 그래도 키르가 있어서 그 어둠에도 안심할 수 있었어. 고마워 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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