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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과 함께 감상해주세요.
향수 / 다이야
사건들은 별로 특별하지 않은 일들에서 비롯된다.
내 일생일대의 커다란 사건도, 지극히 일상적인 일에서 시작되었다.
*
어느 가을날이었다. 웬일인지 지부 전체가 산을 오르게 되었는데, 나는 그것이 내키지 않았다.
“ 하아.. 이제야 지부 내 단합력을 기른다는 게 말이 되냐고..”
나는 책상에 엎드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나는 자기랑 같이 단풍을 보러 가서 좋은걸?”
어느새 나타난 리히트가 나에게 얘기했다.
“리히트, 언제 왔어?”
“방금 전에. 우리 자기를 보러 왔다가 한숨을 들어버려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
“그렇구나... 잠시만, 방금 뭐라고 했어? 맨 처음에.”
“매일같이 하는 자기를 향한 나의 마음 고백?”
진짜. 언제나 똑같이 듣는 말인데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부끄러워진 나는 리히트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알았어, 자기~ 그럼 내일 보자.” 그 말을 끝으로 문이 닫히고 나는 의자에 돌아가 앉았다.
‘하아.. 왜 리히트랑 대화하기만 하면 이렇게 피곤한 느낌이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이 되는 것이 리히트가 워낙 속을 알 수 없기 때문이라며 나 자신에게 변명하고 있었다.
*
이후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 다음 날 아침이 되고, 우리는 산으로 떠나게 되었다.
몇몇 사신들은 뛰어놀고, 어떤 사신은 책을 읽는 등, 나름대로 즐기는 듯했다.
나와 리히트는 그런 사신들을 지켜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날씨가 선선하고 좋다. 기분이 좋아지는 날씨인 것 같아.”
“그러게. 그래서 그런지 오늘따라 자기가 유난히 예뻐 보이고. 자기, 나는 오늘 어때 보여? 자기 눈에 예쁘게 보이고 싶은데~”
“흠흠.. 그나저나 오늘 손수건을 특별히 챙기기는 했는데, 가져오지 말 걸 그랬나? 별로 쓸데가 없어 보이네.”
“자기, 손수건은 언제 어디서 쓰일지 모르는 거라고? 오늘만 해도 우리 자기를 보고 감동의 눈물을 닦아야만 했는걸?”
“콜록콜록 ㅁ... 뭐라고..?”
‘“자기~ 그렇게 격하게 반응해주면 나 서운한데.”
“네가 이상한 얘기를 하니까..!”
눈에 띄게 화제를 바꾸려는 나에게 맞춰주는 듯했으나, 결국 낯간지러운 분위기로 끝이 났다.
그렇게 적막만이 감돌던 중,
“자기, 이거 받아.”
“어?”
리히트는 나에게 음료수를 주며 말했다.
“ 아까 전부터 아무것도 안 먹고 있었잖아~ 이거라도 마셔.”
“아.. 고마워. 리히트 은근 세심하구나?”
“나야 늘 우리 자기 한정으로 세심하지~”
“푸핫, 그게 뭐야~!”
별 의미 없는 대화들을 주고받으며 실컷 웃고 난 후, 나는 사신들에게 별일이 없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 저게 뭐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확인을 위해 가까이 다가가려던 찰나였다.
그 이상한 생물체의 눈을 또렷이 본 순간,
너무나도 익숙하고, 행복했던. 그렇기에 더더욱 서글픈 기억들이 밀려왔다.
“자기야..? 무슨 일 있어..? 흰자가 검어지고 있는데..”
리히트가 무어라 하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 않았다.
시야는 아득해지고, 귀는 먹먹해져 심연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
갑자기 매니저의 상태가 이상해졌다.
흰자위가 검어지고 초점이 사라졌다. 아무리 불러보아도 대답이 없고 먼 곳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레.....”
무어라 중얼거린 것 같지만, 소리가 너무 작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의아해하던 찰나, 저 멀리 무언가가 보였다.
그것을 보기 위해 고개를 찡그린 순간,
“야! 눈 감아! 저 마물의 눈을 보면 자신이 이룰 수 없는 소망들로 절망감을 느끼게 한다고!”
뒤에서 퀸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적으로 들린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
‘매니저는 이 마물에게 당한건가.’
“자기, 이 마물한테 당하면 구할 방법은 없어?”
“모든 감각을 차단하면 돼. 근데 너, 약간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다?”
매니저를 다시 되돌릴 생각에 포커페이스가 무너졌는지도 모르는 채 물어봤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에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퀸시의 말은 매니저가 지금 힘들다는 뜻이니까.
“고마워, 자기~ 나는 다시 매니저한테 갈게, 자기는 저 마물 좀 맡아줘~!”
“야!! 아 나 쟤 싫다고!! 대상을 못 보는데 어떻게 싸우냐?”
툴툴대면서도 무기를 소환하는 퀸시의 모습에 나는 매니저에게 달려가 나의 코트를 둘러 껴안았다.
매니저를 절망에서 빼낼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서 다른 것들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
“시노.... 레비...”
무언가 뺨을 타고 흘러내려 왔다.
분명 처음에는 따뜻했건만, 금세 서늘해져 버렸다.
아이들이 없는 이곳은, 가을바람마저 버티기에 너무 버거워서, 나는 움츠려 떨고 있었다.
이 외로움이, 그리움이 언제까지고 나를 옭아맬까.
너희가 없는 이곳에서 나는 어떻게 버텨야 할까.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의 늪에서 버둥대고 있는 와중에 따뜻한 온기가 나를 안았다.
놀란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자, 리히트가 내 귓가에 대고 이야기를 했다.
“감각을 다 차단하면 효과가 풀린다고 해서. 어때? 좀 나아진 것 같아? 퀸시자기가 이렇게 하면 된다고 했는데.”
그제야 나는 리히트의 품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꼴이 무척이나 민망하다는 걸 깨달은 나는, 황급히 리히트의 품에서 나왔다.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자, 리히트가 말을 걸어왔다.
“자기, 싫었다면 미안. 이 방법밖에 없어서...”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당황한 나는 말을 더듬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좋았다고는... 말 못 해.’
“아. 설마 자기가 나한테 반했다거나?”
“실없는 장난칠 때야 지금?!”
“하하, 나는 언제나 우리 자기한테 진심이라니까~ 자기는 나를 못 믿는 거구나..”
우는 척 장난을 치는 리히트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리히트의 예리한 질문에 당황했던 마음이 점차 사그라들자,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 아무튼, 고마워 리히트. 덕분에 좀 진정한 것 같아.”
리히트의 표정이 순간 당황한 것 같았으나, 이내 원래의 표정을 되돌아왔다.
“자기가 그렇게 말해주니 영광인걸? 자기를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
특유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웃음으로 또 나를 놀리고 있었다. 나는 그를 멈추는 것을 포기하고 말했다.
“ 흠흠.. 아무튼, 이제 저걸 처리해야 하는데.. 리히트, 뭔가 들은 거 없어?”
“ 아, 아까 퀸시 자기가 눈을 보면 안 된다고 했던 거 같은데~ 자기가 슬퍼했던 게 그 때문이랬어. 그나저나 자기, 눈물이 이렇게 고여있으면 내 마음이 아픈데.”
내 눈가에 고인 눈물을 발견한 리히트는 손수건으로 나의 눈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눈을 보면 안 된다고.. 이거 꽤 힘들겠는걸.... 잠시만, 손수건?’
“리히트, 잠시만. 이번 마물.. 손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싸우면 어떨까?”
“자기, 그렇지만 그러면 잘 안 보이지 않을까?”
흥분한 나를 보며 리히트가 당황한 듯이 대꾸했다.
나는 나의 손수건을 꺼내어 길게 네 조각으로 찢었다.
“매니저! 그러면 자기 손수건이...”
“괜찮아, 이미 찢었으니까. 그것보다 지금 고전 중인 사신들이 있잖아. 그리고 이건 다시 사면 돼.”
나의 행동을 예상했던 것인지, 리히트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지만, 그보다 내 행동이 먼저였다.
다급하게 굴러가는 상황 속에, 이제야 귀에 들려오는 웅성거림에, 나의 손수건을 걱정할 여유는 없었다. 딱히 내게 별 의미 있는 손수건은 아니었으니, 미련도 없다.
“자, 이렇게 반으로 접어서 묶으면 마물의 실루엣은 보일 거야. 이 정도면 싸울 수 있겠지?”
“자기... 알겠어, 자기가 이렇게나 도와주는데 못할 것도 없지?”
그는 고민하는 듯했으나 결국 나에게 웃어주고는 달려갔다.
나도 그에게 마주 웃어주곤 다른 사신들에게도 손수건 조각을 넘겨주었다.
내게서 손수건을 건네받은 그들은 언제 끙끙댔냐는 듯, 단숨에 그 마물을 제압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종료된 후, 리히트는 나에게 다가왔다.
“자기, 내 멋진 모습 봤어?” 하고 묻는 것이 강아지 같아서
‘귀여....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고개를 젓고는 그에게 대답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른 사신들과 같이 싸운 거잖아. 그래도 눈을 가리면서 총 쏘는 모습이 멋있기는 하더라. 잘했어, 리히트.”
진심으로 칭찬을 해줄 줄은 몰랐는지, 리히트의 귀가 붉어졌다.
몇 초 뒤, 리히트는 내게 손수건을 건네주며 말했다
“잘 썼어 자기. 근데 자기 손수건이 이렇게 되어서 어쩌지..?”
“ 아까도 말했잖아, 하나 더 사면 된다고. 정 미안하면 나랑 같이 사러 갈래?”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거 데이트 신청 맞지? 당연히 같이 가지~ 언제 갈까?”
데이트 신청이라는 말에 나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정말.. 일단 지부로 돌아가자.”
리히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언제나 들어도 적응이 안 되는 것과 별개로, 그날은 왠지 얼굴이 달아오르고 주변이 더운 것 같았다. 그것이 그때 그의 품에서 나던 달달하지만 씁쓸하게 느껴졌던 향수의 여운인지, 오랜만에 보는 그의 진지한 표정과 대조되게 따뜻했던 그의 품 때문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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