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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과 함께 감상해주세요.
종이비행기가 가는 길 / 몰랑 복숭아
그녀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서 애써 차분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색색, 슬픈 숨소리에 고여 울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여름은 이미 가을의 바람에 젖어 꽃들이 모두 져버린 모습이었다.
"... 말해줄래?"
누나는 가녀리고 작은 두 손을 뻗어 내 양볼을 살짝 잡아 감쌌다. 아련함이 젖어있었던. 나는 닿은 것들의 여운에 머물다, 그 따스함을 이루는 손들을 나의 손에 깍지를 끼며 꼭 잡았다. 잡은 이 손들은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쳤던가? 말없이 나는 꽉 잡은 그녀의 손에 눈물을 흘려 적셨다.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뜨거움이 서려있던 눈물이 그녀에게 닿아 온도가 말을 했는지. 누나는 짧은 순간 나의 흐린 눈을 지긋이 바라보다 그 빛 잃은 눈을 감았다.
" 그게 무슨 말이야. 눈을 떠, 제발... 응? "
누나의 은은했던 눈길이 흐릿하게 공허를 날아오른 순간 나의 마음에 낙엽들이 휘날렸다. 요동치는 나락들 사이에 가려진 탓에 나만이, 그녀가 날개를 달고 이름 모를 곳을 향해 가라앉는 것을 보았다. 누나는 어둠이 그린 듯한 먹구름을 작은 품, 두 팔로 끌어안고 있었다. 나는 그 하늘의 방향을 좇아 숨이 차면서도 달렸고, 몇 번이고 소리쳤다. 구름은 잡히지 않는 것. 소심한 여우비가 찔끔 흘리는 눈물처럼 나의 머리칼을 어두운 빛으로 적시던 쓸쓸한 가을 날이었다. 그리움이 자꾸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쌀쌀했고, 붉게 물든 단풍은 함께 피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춤을 췄다.
작은 호랑이 3443
카티 녀석이 매니저를 자꾸 봤다고 그러네. 한두 번이 아니야.
하긴.. 그 어린 애도 충격이 컸겠지. 헛것이라 말하기에 이번엔 나도 못 하겠다. 정말, 정말로..
*
해바라기가 졌다. 그 미소가 졌다. 빛 하나 없이, 태양이 사라진지 사일의 시간이 흘렀다. 지부에는 온기가 차갑게 식어들어 앙상한 바람이 들었다. 차가운, 서럽게 우는. 사신들은 모두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 평소 신나게 말을 걸어오던 리히트도, 그에 즐겁다며 웃던 루이도. 사신들은 달빛에 잠들기라도 한 것일까. 달만이 날을 채우던 며칠은 심장이 멈춘 것만 같았다. 감정들이 엇갈린 우리는 위태로이 비추던 달의 뒷면을 보았던 것이다. 이미 몇몇 사신들은 방에서 나오질 않고 친절하며 밝았던 이들은 거칠어진 감정에 서툴게 밴드로 뒤덮고 있었다. 말이 없던 사신들은 소름 끼치게 폭소한다던가. 다들 모르는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뒷면, 다를 것 없이 모두 앙상했다. 나 또한 나도 모르는 나, 죽은 사람처럼 조용하게, 힘 없이 쳐진 소파에 종일을 기댔다.
움직일 순 있지만, 그러고 싶은 기분은 남아있지 않았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멈춘 듯 장단을 맞췄다. 그러나 가끔. 눈앞에 아른거리는 그녀의 모습을 뒤쫓았다. 그런 현상들은 한두 번이 아니었고, 누나에겐 단 한순간도 닿은 적이 없었다. 하는 일은 그것뿐이었으며 나는 잡지 못했다는 비참함에 붙잡는 상상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그녀를 봤다.
신난 마법사 11861
오늘, 카티가 갑자기 사신 지부 정문으로 펑펑 울며 달려왔어...
거긴 나밖에 없었는데. 매니저님을 계속 울부짖더라고. 저번에도 몇 번 그러지 않았어?
*
" 카티, 잊지 않았니? 잊었어? 그 말, 듣고 싶었는데. 말해줘. "
" ... 말해줘. "
금방이라도 가쁘게 숨 쉬는 목소리가 나의 눈을 가렸다. 그런 꿈을 꿀 때마다 깰 수가 없었다. 깨지 않길 바랐다. 나는 몰아치는 바람에 묻히고 말았다.
말하게 해줘.
왜 다시 온 거야? 그런 몰골로? 내가 보고 싶었어? 왜 나는 말할 수 없어? 답을 알고 있어. 그런데, 그런데 나는. 난 아직 어린 앤데. 누나가 가고 나서 이해할 수 없는 감정만 남았어. 말할 테니까, 슬픈 표정을 짓지 마. 누나를 다시 보고 싶은데, 그건 헛된 꿈이래.
나는 그것을 믿고 싶지 않았어. 나는, 아직 재미없는 어른이 되고 싶진 않아. 그리움 같은 건 하나도 재미없어. 그냥, 내가 이 높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게. 그때처럼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제발 내 손을 놓지 말고 잡아줘.
최면에 걸린 듯이 풀어진 눈을 감았다. 두꺼운 이불은 잠을 재워주지 않았고, 허망한 감정을 덮어주지 않았다. 그 불안을 품고 내일이 찾아오는, 나는 그런 날들을 반복했다. 진전 없이, 짓눌러오는 그리움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너무 깊이 사랑해버려 심연에 빠진 것조차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아직도 사랑하고 있고, 옆에 있다고 무조건적으로 상상했던 나에게 연극처럼 나타난 시간들이 꿈이었다. 보고 싶은 것과 닿을 수 있는 환상이 꿈이다.
놓칠 리 없잖아. 혹시는 역시로 돌변하여 나를 마른 하늘에 등을 밀었다. 현실에 지쳐 지루한 어른도 아이의 마음이 되길 바란. 나는 홀로 나아가야 하는, 그런 어른의 외로운 정의에 닿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영원한 아이처럼, 누나에게만큼은 영원한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써내려 보내기로 다짐했다. 그녀도 그러길 바랄 것이니. 어떤 면에선 성숙한 아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더 좋은 아이가 되려면. 그렇게 생각했다. 놓치지 않고, 하늘에 날려보내 빨려 들어가지 않으며, 함께 날 것이라고.
나는 아직 누나를 만나는 꿈을 꿔. 누나는 바람을 타고 있었지, 단풍에 누나 얼굴이 가려져서 보이지 않아. 작은 말들도 전해지지 않으면서 메아리로 내게 되돌아와. 바람을 일으키는 누나는 아무 말이 없어. 누나의 목소리도 기억하지 못해. 명계의 가을엔 누군가 눈물로 떨어트린 단풍이 꽃이 된다는 전설이 있대. 그 꽃도 언젠가지고, 새로운 열매가 맺히겠지? 열매는 눈물 대신 행복이 올 거라고. 가을은 항상 그랬어. 너무 열정적인 때가 지나가고 홀로 앙상하게 남은 듯한. 차가워지기 시작해버린, 오늘도 형식적인 가을은 공활해. 몇 번의 가을이 지나도 나는 어린아이야. 나는 변하지 않을 거고, 누나는 이대로인 나를 기억할 테니까. 그대로 기다릴게. 그러면, 누나는 언제 와? 누나라는 사람을 어디선가 만나게 되면, 그때는 우리. 우리, 약속 꼭 지키기로 해! 또, 가을이 여름으로 돌아갈지 모르잖아. 나는 바뀌지 않아도, 여기는 뭐든 신기하게 바뀌니까! 계속 종이비행기로 남길게. 나는 약속을 잘 지키는 카티인걸! 그럼, 담백하고 투명한 하늘에 사랑스러운 천사가 찾아올 때면. 누나도 함께 날아와줘.
I say luv you. Say you luv me.
그날 그녀가 흘렸던 미소의 흔적에는 바람에 잠든 해바라기 네 송이가 있었다. 태양이었던 누나를 생각하자 금방이라도 시든 꽃들이 피어날 것만 같았다. 나는 아직도 그녀에게 어린아이가 맞는 걸까? 해바라기가 졌던 곳의 나무에는 붉은 능소화가 피어 붙잡는 것만 같았다.. 계절이 몇 번이고 바뀌어 다시 돌아온 이번 가을은, 역시나 깨끗한 하늘에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언제고 하늘을 올려봐준다면, 너의 손을 꼭 잡아줄게. "
잊었던 화분엔 작은 새싹이 걸맞지 않은 계절로 인사하는 날들이다. 나는 계절을 떠올리고, 메아리를 따라 걸었다.
가을 하늘, 당신의 눈동자를 꼭 닮은
작고 귀여운 구름 한 점 위엔 천사가 있어요,
텅 빈 세상과 어울리지 않으면서
떠돌며 퍼지는 메아리를 따라 하는 입꼬리에요.
의미 없는 말들을 소리치면 잘도 따라 하지만
사랑한다는 배부른 말들을 소리칠 때는
말없이 눈웃음을 짓더라고, 해바라기가 생각나던.
사랑하는 당신, 그곳에선 쓸쓸하지 않았으면 해요.
-아이스티, 나의 사랑하는 천사, 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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