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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과 함께 감상해주세요.
이별 & 재회 / 김육회
1.
사엘.
예, 도련님.
등을 좇는 걸음. 자욱한 향냄새. 웅장히 곧아 선 사원의 네 기둥, 부름과 대답.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이 낯섦에 가까운 지점에 안착해있다고, 데이는 그리 여겼다. 지난한 권력 다툼, 탐욕과 욕망의 욕이 소실 된 곳. 눈을 두어도 머물 자리가 없다. 가만, 땅을 딛어 가면 그 또한 감촉이 없이 마냥 하얗다. 사막 모래가 물을 먹은 날, 발가락 끝을 굽혀 단단히 뭉친 덩어리를 후벼 파내다 배 아리게 웃던 시간, 그 곁을 지키던 묵묵함을 여직 기억하는 데.
…사엘.
나비를 그득 채운 시간은 이제 옅고, 데이는 재차, 입술 한 편을 뜯어 굴린다. 아무도 다치지 않는 세계, 누구도 울지 않고, 누구도 화내지 않고, 누구도 다투지 않고, 누구도 죽지 않는. 기괴한 행복감이라 누리기조차 염려스럽다. 바라던 게 이런 것이었나. 잠시간, 답을 구하려 의혹한다. 적막이 두려워지지 않게, 그리고 삭막이 진 어둠에 말라가지 않게. 나는 그저, 내가 존재하던 그 때로 돌아가 모든 걸 무르고 싶은 것뿐이었는데.
사엘, 사엘.
발 멈춰 뒤돌아, 유일이 제 기억과 같은 거뭇한 손등을 쥔다. 반질반질한 눈은 시선을 맞춘다. 그 소요의 아우성 속에서도, 단 둘만 남은 것처럼. 만일 그가 이토록 어엿하게 살아 숨 쉰다 할지라도, 그게 진정 제가 있던 곳이 아니라면.
계속 내 곁에 있을 거야?
필경, 의미를 잃어버렸을 질문.
도련님이 저를 버리지 않는 이상, 언제나 곁에 있겠습니다.
종내, 의의를 실추한 회답.
그럼, 내가…… 너를 따라가도 돼?
우리는 가까운 발치에 물이 고이면 무엇이, 얼마나 흐리게 어른거리는지, 알고 있다. 뒤를 좇는 정이 기쁠 수만은 없는 것도, 그렇기에 스러지는 중에도 가슴팍을 밀어 막던 뼈 곧은 손이 어떻게 단단한 지도, 망막에 비치는 누군가의 눈이, 입매가 어찌나 과단한 지도. 그러니까, 그러니까.
도련님이 원하신 다면요.
‘이번엔, 절대 따라오지 마십시오.’
사엘, 네가 그렇게 말할 리가 없는데.
느른히 웃는다. 땅거미가 진 소리는 허탈에 가깝다. 손을 조금 곰질거려본다. 그는 여전히 같은 얼굴이고, 소란도, 해도, 모두가 동일한데 염원하던 염원만이 재앙과 같다면.
……응, 그렇구나.
데이는,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2
“…매니저 님.”
“응?”
“……나, 믿기지가 않아.”
손아귀에 쥐여진 만화경이 찰그랑 흔들린다. 좁은 틈바구니에 유심하도록 한 쪽 눈을 들이밀면 오색 날개가 빽빽했다. 저도 모르게 판판한 가슴께를 바싹 좁혔다, 푼다. 빛 없는 거먼 하늘일지라도 발 떼어 어딘가 거닐지 않으면 날뛰는 숨에 제풀로 사할 것 같은 밤. 맨몸으로 뛰쳐나온 길 위에서 덩그러니 서 있는 매니저를 마주했을 때, 해사한 낯으로 울었나, 아니면 일그러진 낯으로 웃었나.
“나는 데이가 해낼 줄 알았는걸?”
“진짜 진짜?”
“그럼. 열심히 노력했잖아.”
나무 밑동에 기대어 몸을 웅크리면 거리낌 없는 손끝이 뒷머리를 쓰다듬는다. 그에 기껍게 볼을 부풀리다가도 새삼, 피었다 질 얼굴을 담아두는 일이란. 데이는 말을 아낀다. 미련으로 발 닿은 세상에서 새로이 남기는 미련이었다. 이 곳에서 바랄 것은 영영히 하나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짓말 같은 광경, 혹은, 거짓말이기를 바라는 광경.
“음… 근데 데이는 생각보다 기쁘지 않은 것 같네.”
“응? 헤헤… 그렇게 보여?”
“고민이라도 있어?”
발끝을 비죽 모아낸다. 목소리에 담긴 수심을 알기에 닫아둔 혀에서 몇 번을 고르고, 고르는 언어. 그리고, 조심스레 떼어내는 입술.
“그냥… 이제 다른 사신들은 못 만날 거라고 생각하니까….”
“….”
“나인 나인도, 타치 타치도, 키르 키르도 보고 싶을 것 같고…. 큰 형, 라니… 땅콩 형… 에단 마마… 전부 지금처럼 같이 지낼 수 없다는 게 안 믿겨서…….”
“….”
“헉! 그리고 매니저님도 엄청 엄청 보고 싶을 거야.”
“하하, 나는 너무 갑자기 끼워 넣는 거 아냐?”
사실, 매니저님이 제일 그립겠지. 심려는 없는 냥, 서글서글한 미소를 낸다. 이어, 도는 바람 앞에 눈을 감는다. 비뚠 입매 사이로는 당신을 재차 왼다. 깜깜한 시야에 보이는 건 없을지언정, 허나, 선명한 것은 있어서.
“데이라면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
“분명히.”
응.
응. 그랬으면 좋겠어. 매니저님.
3.
사막 너머, 길이 지난한 곶에선 소금 절은 내가 나는 바람이 불고는 했다. 훤한 낮에도 발목이 접질리는 땅, 까진 살갗에도 쓰라릴 겨를 없어 묵묵히 저를 내던지는 이들만이 찾는 곳. 밤이 기어 나온 그 위에서는 지평선마저 옻빛이라, 데이는 그게 꼭 아득한 듯 굴었다. 담가질 물은 찰까. 침닉의 시간은 길까. 부푼 몸은 어디로 흘러서, 어디로 스밀까. 무료하던 생이 위무 될 수 있을까. 이리도 부랑해왔는데, 나는 정녕 나로서 이 아래 눈 뜨고 있나.
낯짝 한 귀퉁이 기억나지 않는 이들이 스친다. 돌이켜보면 버려진 넋이 한 무더기고, 데이는 늘 제가 잃은 것을 찾아 헤매었다. ‘저’를 찾아 헤매었다. 의탁할 곳 없는 가련한 몸. 지니고, 바란 것을 손에 넣은 일이 없어 빈 밤을 올려다보며 갈구하고, 갈망하고, 동경하다, 종내에는 목이 타게 울었다. 홀로, 홀로.
장막 덮인 곶을 돌아본다. 언제고 이 한 몸 저물어도 쉬이 잠겨 나락할 수 있을 정경. 폐가 조인 가슴팍을 툭툭 두드리면 딱지가 앉았던 손톱자국에는 살이 돋았다. 못내 견디다 가도, 못내 견디지 못 하던 날들. 발악으로 내쉬기에도 이미 끝이 다한 숨. 흙 거친 길을 따라 신을 놓고 온 맨발이 저벅, 저벅, 닳은 소리를 내고,
…매니저 님.
접어둔 이름을 구깃거리게 펴 내두르면, 남아도는 고적에는 그 때의 그 미련이 붙는다. 탁한 밤에 만나, 말간 밤에 나눈 작별. 혼자, 둘, 다시 혼자. 젖은 감정을 여문 산바람에 말리다가도 문득, 설움처럼 치미다 사그러드는 것은.
데이라면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분명히.
종종, 데이는 제 이름을 잊고 싶었다. 날은 결국 영락을 반복한다는 것도, 버텨오던 낱낱도, 쇠한 땅 끝에서 추락한 열망과 뭉개진 삶도, 혹은 그 안에서 끝끝내 잔류한 스스로도. 아마도 영영 알고픈 건, 오롯 하나뿐이었으니.
그래, 길이 지난한 곶에선 소금 절은 내가 나는 바람이 불었다. 묵은 밤에도 발목이 접질리는 땅, 까진 살갗에도 쓰라릴 겨를 없어 묵묵히 저를 내던지는 이들만이 찾는 곳.
달뜬 허공에 손을 감는다. 우리에겐 여전히 연이 있으며, 당신에게도 내가 있고, 내게도 당신이 있으니. 무엇도 두렵지 않고, 무엇도 동경치 않고, 다만 열렬히 재봉하고, 재봉하다 하얗게 자취를 감추는 희원을 원동 삼아.
매니저 님, 매니저 님. 오늘은, 별이 떴어.
안녕. 작별이 어렵지 않음을 상기하다 그저, 재회를 아로새긴 하늘에 무른 소태만 뚝뚝 흘려보내고. 데이, 속삭인다. 닿을 이 없는 곳에. 이승이라, 저승이라 명명치 못 할 곳에.
우린 곧, 다시 만날 거야.
入水. 沈沒, 沈沒, 沈沒,
그리고 寂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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