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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과 함께 감상해주세요.
단풍 지다 / 스프
겁쟁이는 사랑을 드러낼 능력이 없다, 사랑은 용기 있는 자의 특권이다.
전생에 들었던 말. 유세프는 문득 그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매니저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들었다. 매니저 방에서 매니저와 그 둘뿐. 유세프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열려있는 창문으로 여름과는 다른 선선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바람이 두 사람의 볼을 간질이고서야 유세프는 느꼈다. 가을이 왔구나.
“요즘 날씨가 많이 선선해졌죠? 더워서 반팔만 입고 다닌 게 엊그제 같은데.”
“그러게, 이젠 외출할 때 얇은 겉옷을 챙겨야 할 것 같아.”
흐음. 유세프가 짧은소리를 내며 창밖의 날씨를 바라보았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 가을이구나. 이제 초록색이던 잎들도 저의 색을 바꾸어 가겠지. 지부가 한층 더 아름다워지겠는걸? 매니저가 무게감 있는 한숨을 푹 내쉬며 창문을 바라보았다. 유세프는 시선만 굴려 매니저의 행동을 살폈다. 일이 많아서 그런가? 흠. 짧게 고민한 유세프가 턱을 괴더니 넌지시 말을 던졌다.
“매니저. 단풍 보는 거 좋아해?”
“네? 네, 좋아해요.”
“그렇구나.”
던진 말에는 분명 목적이 있으니. 유세프는 그것을 원했다.
“그럼. 단풍 보러 갈래?”
“좋죠! 놀러 가는 거면 데이가 좋아하겠어요. 리히트도 좋아할 것 같고. 음, 아니다. 다 좋아하겠네요. 테오 손을 빌려서 도시락도 싸야 하나?”
“하하. 매니저, 너무 흥분했어.”
“앗…. 죄송해요. 너무 들떠서 그만.”
겁쟁이는 사랑을 드러낼 능력이 없다.
“난, 매니저랑 나. 단둘이서 만 보러 가고 싶은데.”
사랑은 용기 있는 자의 특권이다.
* * *
매니저는 유세프의 말을 듣고 난 후부터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단둘이? 유세프씨랑 나만? 매니저는 생각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지부 원들이 모두 모여 다음 임무지에 대해 회의를 하는 그 순간도. 지부 순찰을 하는 순간도. 걷다가 새벽조의 방문 앞에 도착했을 땐 잠시 몸을 흠칫였다. 아, 왜 이러냐. 매니저는 저의 손으로 가볍게 제 뺨을 두드렸다. 정신 차려. 마저 일해야지.
매니저의 시선이 흘끔흘끔 유세프를 찬찬히 훑었다. 저보다 훨씬 더 큰 키. 날렵한 턱선이나 수려한 외모. 처진 눈매, 올라간 눈썹... 매니저는 속으로만 곱씹다 이건 유세프씨에게 실례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어두운 눈동자가 몇 번 더 힐끔 이고 나서야 완전히 눈길을 끊었다. 정말 실례인 것 같을뿐더러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오늘의 야근은 확정될 것 같았다. 끄응, 매니저가 조그맣게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애써 서류로 박았다. 그녀의 머릿속엔 그가 일렁였으니. 일이 제대로 마무리가 되었을 진 미지수였다.
“아구, 온몸이 뻐근하네.”
서류를 냥선배에게 제출하고 나서야 매니저는 주먹을 말아쥐고 저의 어깨를 가볍게 통통 두드렸다. 통, 통, 통. 리듬에 맞추어 두드리며 우연히 돌린 시선 끝엔 생각보다 아름다운 밤하늘이 그녀의 어두운색의 눈동자에 그려졌다. 가을이 되어서일까? 밤이 조금 더 빨리 찾아온 듯했다. 일을 마치고 보는 밤하늘이 나쁘진 않아 매니저는 웃음을 흘렸다.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봐서 그럴까?
“유세프씨는….”
아름다운 것을 보니 왜 인진 모르지만, 그의 모습이 또 일렁거리는 듯했다. 헙. 매니저는 저의 입을 저의 손으로 틀어막고 주변을 살폈다. 내가 왜 유세프씨의 이름을 입에 담은 거지? 매니저는 저의 입술을 꾹 깨물고 주의하자며 스스로를 타일렀다. 혹여나 다른 사신들이 듣기라도 한다면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이었어. 집중하자. 매니저는 두리번거리다 가볍게 저의 두 뺨을 치곤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매니저의 시선엔 울긋불긋 색이 바뀌어 가는 나뭇잎이 들어왔다.
* * *
하루가 흘렀다. 유세프의 입에서 그 충격적인 발언이 나온 지도 하루가 지났다는 소리였다. 유세프는 짹짹 이는 아침 새 소리와 함께 다급히 눈을 떴다. 늦잠을 잔 건가? 부스럭거리며 일어난 주변, 아직 모리가 잠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유세프는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방금 막 지어진 새집 같은 머리카락이 그의 아침을 알려주었다.
유세프의 머릿속에선 어제의 매니저가 잊혀지지 않았다. 떨리는 동공과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어보던 그 모습이, 당황한 기색이 묻어 나오는 그 행동이.
“…너무 성급했나.”
유세프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중얼거렸다. 평소의 그였으면 눈을 뜬 즉시 일어나 준비를 했을 텐데. 오늘은 그답지 않게 걸터앉아 있던 몸을 뒤로 풀썩 뉘였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눈 부셔 손으로 빛을 가렸다. 저의 손을 눈 부근에 올려놓고, 그대로 숨만 쉬고 있으니 시간이 매우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
유세프는 올려놨던 손을 꽉 말아 쥐었다. 이럴 시간이 아니지. 잠깐 생각에 잠기느라 평소보다 늦게 준비를 하게 되었다. 유세프는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흘긋 쳐다보다 화장실로 들어갔다. 씻으면서 생각 정리를 해야겠어. 오늘 매니저를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할까. 평소처럼 대해야 하는데, 평소엔 내가 어땠더라?
유세프는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면서도 생각에 잠겼다. 모리의 진심이 섞인 반쯤의 농담에도 그냥 웃고 넘어갈 뿐이었다. 오늘도 그런 당황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면 어떻게 해야 하지. 물기가 옮겨가 축축해진 수건을 손에 들곤 멍하니 있다, 퀸시의 시끄러운 고함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그래, 나중 일은 나중으로 생각해야지. 유세프가 제복을 손에 들곤 창문을 바라보았다.
유세프의 시선엔 이미 빨갛게 물들어져 있는 나뭇잎이 들어왔다.
* * *
매니저 그녀는, 그녀 스스로 생각하기엔 눈치가 없는 편이 아니었다. 감이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녀가 예상하건대 유세프는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렇게나 지레짐작하다간 실례가 될 순 있지만, 반쯤은 확신을 하고 있었다.
매니저의 머릿속에선 어제의 유세프가 아른거렸다. 턱을 괴며 담백한 시선으로, 저에게 말을 했던 그 모습이. 나긋이 던진 말이 저에겐 직격탄이 된 줄 알기나 할까? 매니저는 낮은 한숨을 쉬며 의자에 앉았다.
유세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매니저의 속이 뒤엉킨 기분이었다. 가능하다면 시원한 물이라도 한잔 마셔 이 답답한 속을 해결하고 싶었다. 마른세수를 몇 번 하고 나서야 정신이 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진짜 어떡해….”
남몰래 중얼거린 목소리에 고민이 묻어있는 것이 저 스스로도 느껴졌다. 어제의 당황한 모습을 눈치 빠른 유세프라면 모를 리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매니저는 다시 한 번 마른세수를 했다. 먼저 용기 내서 말해주신 건데, 내 반응을 보고 당황하셨겠지. 그럼 나는 오늘 유세프씨를 어떻게 대해야 하지?
“평소처럼만 하자. 평소처럼.”
매니저는 두 주먹을 꽉 말아 쥐으며 다짐했다. 의식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지만.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을 고민 중이었다. 앞으로 몇백 년을 같이 일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피해만 있을 건 아니잖아. 자꾸만 신경 쓰이고 시선이 가는 유세프를 떠올리며 매니저는 꿀꺽 침을 삼켰다. 그녀의 고민도 같이 삼켜지길 원하면서.
* * *
단풍이 14 지부 주변을 에워쌌다. 매니저는 그 단풍들을 보면서 유세프가 저에게 했던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젠 단풍 하면 바로 유세프가 떠오를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저 자리에서 유세프씨를 처음 만났지. 아무것도 몰랐던 그때, 책을 읽고 있는 유세프씨와 이야기를 나누었지. 매니저는 벤치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다 발걸음을 옮겼다. 저 자리에선 유세프씨와 임무를 마치고 처음으로 같이 밤하늘을 봤던가? 그리고 또 저곳은 처음으로 진중한 이야기를 하게 된 곳이 아니었나. 이곳은 과거 이야기를 했던 곳. 또 다른 곳은...
하나하나, 매니저는 14 지부를 돌아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느 하나 유세프와 같이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일상에 이렇게까지 유세프씨가 깊게 들어와 있던가. 매니저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발걸음이 향하는 곳으로 무작정 걸었다. 어차피 걸어봤자 지부 내 일 테니. 무작정 걸은 곳은 단풍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빨갛게 물든 나뭇잎들이 바람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만 같아 매니저는 살포시 웃음을 지었다. 조금만 더 가까이 가 볼까. 매니저의 발걸음이 성큼성큼 나무로 향했다. 점점 더 가까이.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분명 저 사람은...
“유세프씨?”
“매니저? 여긴 무슨 일이야?
처져있는 눈매, 올라간 눈썹, 수려한 외모. 매니저가 알고 있는 그였다. 매니저는 조금 더 성큼성큼, 가까이 걸어갔다.
”그냥, 무작정 걷다 보니까 여기로 왔어요. 유세프씨는요?“
”난 보다시피 책을 읽고 있었지.“
”단풍나무가 되게 예쁘네요. 커서 그런가?“
나 지금 제대로 말하고 있는 건 맞겠지? 평소랑 똑같이 말하고 있는 건 맞겠지? 매니저의 속이 다시 뒤엉키는 듯했다. 행동도 온전치 못한 것 같았다. 걸을 때 이상하진 않았겠지? 팔다리 같이 나간 건 아니야? 시선을 살살 굴리며 커다란 나무를 쳐다보곤 고개를 돌렸다.
”…“
”…“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공기가 고요해진 기분이 들었다. 여름과는 달리 선선하고 마른 바람이 두 뺨을 간질였다. 가을이구나.
”음. 어제 단풍 같이 보자고 했던 거 기억나?“
”네? 네….“
매니저는 그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직격탄으로 온 그 말을 내가 어떻게 잊어. 그 후로부터 유세프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시선이 자꾸만 유세프 쪽으로 쏠렸다. 내가 이렇게 금사빠였나? 매니저는 생전 겪어보지도 못한 당황을 다 겪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면 자기도 저절로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매니저는 그 말을 들었을 땐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누군가 저에게 관심을 보인 적도 없고. 그런 사람이 있냐며 속으로 웃어넘기던 과거의 저에게 한소리라도 하고 싶었다. 두근두근, 천천히. 그리고 깊게 뛰는 심장 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렸다. 긴장을 해서인가? 침을 넘기는 소리까지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이 생생히 들렸다.
”하하.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같이 단풍을 보게 됐네.“
”…“
”매니저랑, 나랑. 단둘이.“
유세프가 살포시 미소 지었다. 그의 처진 눈매가 반쯤 접혀 예쁜 웃음을 만들어냈다. 매니저는 그 미소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동그래진 눈이 몇 번 끔뻑이더니 홱, 고개를 돌려버렸다. 매니저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뭔데? 분명 평소처럼 하기로 마음먹었잖아? 왜 신경이 쓰이는 건데? 유세프는 그런 매니저를 보고 저도 덩달아 눈을 끔뻑였다.
”…되게, 예쁘네요.“
”음? 그래, 단풍 예쁘지? 같이 보길 잘한 것 같아.“
”네, 그런 것 같아요.“
”다음엔 도시락도 가지고 올까?“
다음엔? 매니저는 그 말을 곱씹다 깨달은 눈으로 유세프를 쳐다보았다. 유세프가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려 매니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매니저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 것만 같았다. 다음에 또 오자는 말. 단둘이서. 그런 웃음인 것만 같아 매니저도 웃음을 흘렸다.
그래, 단풍이 졌구나. 매니저의 시야에 빨갛게 물든 단풍잎이 들어왔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마음에도 단풍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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