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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가을 / 설유
본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다. 매니저는 그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편이었다. 가을은 선선하고, 햇볕도 뜨겁지 않고 적당히 가라앉아 따뜻하고. 그런 날에 따스하게 내려앉는 햇볕을 받으며 한 곳에 앉아 책을 읽는 건 평화롭고 좋았다. 게다가, 꽤나 바쁜 14지부의 일거리를 대부분을 끝내놓고서 햇볕 잘 드는 곳을 찾아 책을 읽는 것은 소소한 행복이기도 했다. 가끔, 아주 가끔 피곤한 날에는 책을 읽으면서 졸기도 했다. 가을로 서서히 접어들며, 매니저는 늘 가던 그 장소를 찾았다. 바람 적당히 불고, 햇볕이 잘 들어오는 그 장소. 책 읽기에 좋은 장소일 뿐 아니라, 주변의 나뭇잎들이 물들며 아름다운 색을 자아낼 때. 다른 계절에도 그 장소는 아늑하고 아름다웠지만…… 가을에 그 장소는 빛을 발했다. 이런 장소를 아무도 모른 이유가 뭔지 궁금할 정도로. 가볍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그 장소에 다다랐을 때, 매니저는 상당히 당황했다.
제가 늘 있던 자리에 유세프가 있었다. 유세프는 여전히 독서에 집중하고 있으니, 지금 당장이라도 뒤를 돌았다가 유세프가 없을 즈음에 다시 오면 됐을 것이다. 그 생각으로 매니저가 걸음을 떼자, 유세프가 고개를 들어 매니저와 유세프의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유세프는 살풋 웃었다.
“매니저도 책 읽으러 온 거야?”
“네. 유세프 씨가 계실 줄은 몰랐어요.”
“그래? 그럼 매니저도 이리 와. 같이 읽자.”
그러면서 제 옆을 툭툭 두드리는 유세프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자신의 독서를 방해받았다는 자각은 전혀 없나보다. 매니저는 조심스럽게 유세프의 옆에 앉았다. 매니저가 제 옆에 앉자마자 만족한 듯이 바로 책으로 시선을 돌리는 유세프를 보며, 매니저는 작게 웃었다. 이래서야, 마치 제가 이 장소에 늘 오는 것을 알고 먼저 와서 기다린 것 같으니까. 뭐, 우연이겠지. 이 장소는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긴 하지만……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유세프라면 조용하고 책 읽기 좋은 장소를 찾아다니다가 이곳을 찾았을 테니까. 그리 확신한 매니저는 다시금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매니저. 다음에도 여기서 같이 책 읽을래?”
“다음에도요?”
둘 다 제가 가져온 책을 전부 읽고, 그 장소를 다시 떠나려 할 때 유세프가 제안했다. 다음에도 여기에서 같이 책을 읽자고. 솔직히, 매니저는 손해볼 것이 없었다. 여유 시간에 책 읽는 메이트가 하나 더 늘어나면 좋은 것이 아닌가. 같은 책을 읽는다면 대화하기도 좋을거고.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세프는 “그럼, 다음부터는 일찍 오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걸로 할까?” 라며 유세프는 살풋 웃어보였다.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일이 일찍 끝나면 유세프를 기다리는 셈 치고 책을 읽고 있으면 되는거니까. 유세프는 낮게 웃었다.
“그래,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 내일보자, 매니저.”
“네, 네!”
……잠깐. 내일? 매니저의 시선이 유세프의 뒷모습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방금 저 말은 매번 여기서 기다리겠다는 소리 아니야?! 물론 매니저가 매일 이 장소에서 책을 읽긴 하지만…… 유세프가 많이 기다리면 어쩌지. 매니저는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 괜찮겠지…….
유세프는 낮게 웃었다. 귀엽다. 제가 있어서 당황하는 것과, 어버버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유세프는 그 장소를 최근에 알았다. 책 읽기 좋은 장소를 물색하려고 찾아다니던 중, 이렇게 햇볕 잘 들어오고 노곤하고 딱 좋은 장소를 찾을 줄이야. 그런데 매니저도 이 장소를 알고 있을 줄이야. 괜히 기분이 좋았다. 매니저와 둘만의 비밀을 공유하는 거니까. 다음엔 매니저한테 줄 책이라도 추천해볼까. 하하, 유세프는 낮게 웃었다. 매니저랑 둘만의 비밀을 공유할 수 있다니. 매니저는 무슨 책을 좋아하려나.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려나? 아까 매니저가 읽는 책을 봤을 땐, 그냥 평범한 소설이었는데. 한 번 읽어볼까. 그러면 매니저와 공통 주제도 생기는거니까. 그러면 대화하기 더 좋지가 않을까? 곧 추워질 거 같으니까 코트라도 준비해야겠네.
“……책부터 찾아볼까.”
유세프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매니저가 보던 책의 제목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거라도 찾아서 먼저 읽어봐야겠다. 매니저와 공통 주제로 대화를 할 생각에 유세프는 자연스레 웃음이 새어나왔다.
“안녕, 매니저.”
“안녕하세요, 유세프 씨.”
혹시 오래 기다리셨어요? 하고 매니저가 조심스레 물었다. 유세프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매니저가 온다고 생각하면 행복했다. 기분이 들뜨고, 설레고. 전부 매니저를 본다고 생각하니까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행복하고, 좋았다. 오래 기다린 건 맞지만, 매니저가 왔으니 상관 없었다. 그리고 매니저가 부담스러워하면 안되니까. 그래서 아니라고 대답했다. 정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매니저를 기다리려고 이 장소로 온 건 유세프만의 비밀이었다. 물론 굳이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다. 매니저가 부담스러워하고, 미안해하는 건 보고싶지 않았으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좋아하는 사람이 당황하거나 미안해하는 건 보고싶지 않은게 당연한거니까.
유세프와 매니저는 어제와 똑같이 같이 책을 읽었다. 둘의 독서는 슬슬 서늘한 바람이 들 때 쯤이었다. 유세프는 매니저가 감기 걸리면 안된다면서 유세프가 그때까지만 읽자고 한 덕이었다. 매니저는 조금 불만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을 걱정해준 것이니까…… 매니저는 동의했다. 그 여유 시간에 다시 제가 읽던 책을 읽으면 되니까. 매니저가 그새 책을 다 읽고서 책을 덮고 유세프를 바라보았다. ……잘생겼다. 매니저는 그렇게 생각했다. 원래도 잘생겼는데, 책에 집중한 채인 유세프는 정말…… 누가 보더라도 반할 것 같았다. 아, 좋다. 이런 모습을 저만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매니저?”
“아, 아, 네?”
유세프의 시선이 매니저에게로 향했다. 너무 뚫어지게 쳐다봤나……? 매니저의 시선이 유세프를 피했다. 아, 귀엽다. 유세프는 그렇게 생각했다. 너무 귀여운 거 아닌가. 유세프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매니저가 계속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뭐, 책을 읽고 있어서 알아챈 건 꽤나 늦었지만 말이다. 책을 다 읽어갈 때 시선이 느껴졌다. 제 근처에 있는 건 매니저 뿐이니까 당연히 매니저 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유세프는 유쾌한 웃음을 흘리고는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
매니저는 시선을 완전히 돌렸다. 하하, 유세프는 다시금 낮게 웃었다. 그래. 이 정도면 많이 놀렸지. 유세프는 제가 덮었던 책을 들어 매니저 앞에 보여주었다. 매니저도 이거 읽어봤지? 매니저의 시선이 유세프를 향했다. 유세프 씨도 이거 읽어보셨나요……! 응, 읽어봤어. 그렇게 둘은 선선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자신들이 읽었던 책의 이야기 꽃을 피워나갔다. 둘이 책을 읽으며 서로에게 피워낸 감정과 이야기 꽃은 다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자신들의 땅에 뿌리내리고, 그 둘이 헤어질 때는 어둑어둑해진 밤이었을 것이었다. 돌아가서 왜 이제야 왔냐고 추궁 받은 것은 덤이었지만, 그 둘만의 비밀이었기에 서로는 비밀이라고 퉁쳤다. 둘만의 비밀은 서로가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은 쭉 이어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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