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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 김도이
"으 추워.."
바람이 날깨우듯 세게 불고 있었다 베린은 상체를 조금 일으켜 창문을 흘끗 봤다 바람이 세게 불어 창문이 덜컹거렸기때문에 창문이 약간 열려있었다 비몽사몽한 베린은 뭐라 꿍얼거리면서 창문을 완전히 닫았다 덜컹거리는 소리는 멈췄지만 세게불던 바람때문에 방 온도가 좀 떨어진 느낌이어서 닭살이 돋았다 시계를 흘끗 보니 5시 12분이었다 한숨을 푹 쉬던 베린은 무슨 이유인지 침대에서 일어나 우유를 데우고 핫초코 티백을 하나 꺼내 섞었다 아무래도 잠이 다 달아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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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 달콤한 향기가 물씬 퍼졌다 베린은 그 향기에 취할 때까지 들이마셨다 기분이 좋은지 살짝 미소 지어보았다 베린은 들고 있던 잔을 탁자위에 내려놓고 익숙한 듯이 탁자 위에 있는 먼지가 자욱하게 쌓인 라디오 하나를 꺼냈다 먼지를 털다가 코안으로 조금 들어갔는지 재채기를 연달아 한 뒤 손으로 먼지를 조금 털었다 먼지를 손부채질로 좀 날린뒤 베린은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다이얼을 돌렸다
[오늘의 날씨는 - 치직 .. 오늘은 OO의 신곡 -..치직]
베린은 치지직 거리는 소리에 귀를 잠시 막았다 그 소리가 약해질 씀 맞는 주파수를 찾기 위해 돌리고 또 돌렸다 사실 베린은 라디오를 듣는 사람은 아니었긴 하지만 염원을 이루고 한동안은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약 기운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약을 안 먹어도 괜찮고 밤을 새우고 이른 아침의 영롱한 하늘색을 보는 것이 조금의 소확행이였기 때문에 이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 사실 꿈이어서 자고 일어나면 새벽조 침대에서 깨어나는 거 아니지? '
라는 망상까지 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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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듣다가 추운 감이 들어 손난로라도 꺼낼까 하여 서랍을 드르륵 열었다 무언가 반짝반짝해서 뭐지 하고 손으로 집었더니 팬던트였다 한참 잊고 있었던 기억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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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맘때쯤 베린이 사신지부에 근무할 때의 시점이다. 가을은 차가운 바람이 불어 추운감이 있었다 그랬기에 베린은 일적 외에는 밖으로 한발짝도 안 나가려고 했다 그의 일과는 일어나서 약 먹고 자고 약초를 관리하고 가끔 록 음악을 듣는 것이 다였기에 사신들이나 매니저님이 베린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겠지 라고 걱정하면 퀸시가 베린 상태를 알려주는 것이 다였다 그렇게 가을의 막바지쯤 되었을 때 그가 딱 한 번 밖으로 나간 적이 있었다 이유는 되게 단순했는데 너무 방안에만 있어서 심심하다는 이유라나 뭐라나.. 단출하게 가디건 하나 걸쳐 입고 물 몇병을 챙긴뒤 방문을 여는순간 베린은 까무러칠 수밖에 없었다
" 어? 베린! 둘이 동시에 문 열었나보네? "
" 콜록콜록!! 아... 매니저님.. "
매니저를 보자마자 놀란 마음이 조금 수그러졌다 매니저님은 내가 방에서 너무 안 나오니까 상태체크 하러 오셨다고 했다 그리고 매니저는 나에게 몇 가지 정도를 물어보았다 정말로 단순한 물음이였지만
" 방안에만 있다가 어디 가는 거야? "
" 그냥... 너무 심심해서... 콜록콜록 "
이 말을 하면서 물병을 꽉쥐었다 뭔가 마주치고는 싶었는데 이런 모습으로 만날 줄 몰랐기에 내 생각이 고장난것같았다 서 있던 매니저님이 잠깐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매니저님이 갑자기 결심한듯 내 손목을 딱 잡고 강단있지만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나하고 단풍구경 가자! 라고 베린을 이끌었다
그녀를 따라나선뒤 5분 후 우리는 여기에서 가장 큰 나무 앞에 섰다 바닥에는 다양한 색들의 낙엽이 흐트러져 있었다 노란빛, 빨간빛, 주황빛, 갈색빛 등등... 갈색낙엽이 매니저님의 머리색깔과 똑같아서 더 눈여겨본 것 같다
" 베린! "
매니저님의 목소리에 흠칫하는 순간 내 얼굴에는 낙엽 여러장이 흩뿌려졌다 매니저님의 장난에 나도 몇장을 매니저님에게 뿌리고 신나게 웃었던 것 같다 이렇게 웃어본 적이 언제였더라... 그렇게 놀다 보니 매니저님 머리 위에도 내 머리 위에도 아직 떨어지지 않은 낙엽 한장이 남았다
" 베린, 같은 나무에서 두사람이 낙엽을 가져가 보관하고 있으면 그 두사람이 헤어져도 다시 만날 수 있대! "
" 그런 말도 있었나요..? "
웃으며 말하는 매니저님의 말은 사실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 미신이지만... 혹시나 해서 낙엽 한장을 부서지지 않게 머리에서 뗐다 그렇게 매니저님하고 시간을 보내다 매니저님은 업무를 다시 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매니저님이 몰래 빠져나온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매니저님과 헤어지고 새벽조 방으로 들어가 자주 읽는 책을 꺼내 낙엽 하나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 가끔 그 책을 펼쳐서 낙엽을 계속 보았다 책에 넣어놓으니 구김 하나 없는 빳빳한 낙엽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매니저가 이런말을 하는걸 보면 혹시 내가 만화경을 다 채워서 지부를 나가야 하는 게 아닌가 라고 잠깐 생각했다
내 예상은 슬플 만큼 딱 떨어졌다 만화경에서 푸른 빛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사파이어 수백개가 반짝반짝하는 느낌이라 황홀한 느낌이었지만
" 만화경에서 푸른빛이 나는 건 다 나비가 다 채워졌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푸른 빛이 난다면 사감실로 와주세요"
세이사감의 말이 어렴풋이 생각났기 때문에 기분이 착잡해졌다 기쁜 감정과 슬픈 감정이 어우러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되어버렸다
곳곳에서 나에게 축하해준다 이제 염원을 이룰 수 있다고 그중에는 매니저님도 포함해서 모두가 입 모아 축하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포탈로 갔다 만화경을 세이사감님에게 주었다 만화경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푸른 빛이 나던 포탈은 연둣빛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나는... 연둣빛이 나는 포탈을 멍하니 바라보다 아까 책에서 빼둔 낙엽을 부서지지 않게 꼭 쥐었다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모든 사신들이 웃고 있었다 매니저님은 표정이 살짝 울상이었던 것 같은데... 기분탓인가?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에는 포탈에 들어가자마자 기절하는듯한 느낌이 들었기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떠봤다 이질감이 들지만 익숙한 침대와 왜인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약봉투들도 가득 차 있었던 책상이였던것같은데 텅 비어있었다 옆에 있던 거울을 들었다 얼굴에 혈색이 돌아 더이상 하얀 피부가 아니었다 다크써클도 없고 내 은색 머리는 푸석푸석하지 않고 윤기가 조금 흘렀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보았다 저혈압 때문에 항상 일어나기 힘들었던 아침이 상쾌한 아침이 된 건 처음이었다
" 이제... 안 아파! "
말을 해도 기침이 나오지 않고 몸에 힘이 돈다 이제 내 피부는 창백해 보이지 않았다 누가 봐도 안아픈 사람 같아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몇 번 만지작만지작 거리면서 이거 정말 꿈 아니지? 라고 중얼거린뒤 대자로 침대에 누웠다 이것이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기를 소망했을 것이다
' 근데 내 옆에 있는 가방은.. '
포탈을 통과하고 나도 모르는 가방이 하나 생겨버렸다 원형 모양의 가방이고 색깔이 꼭 매니저님 머리색을 닮았어... 지퍼를 열고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인했다 다름 아닌 편지와 낙엽 모양의 팬던트...? 편지 봉투를 꺼내 원형의 투명한 스티커를 떼고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그 편지를 꺼내 찬찬히 읽어보았다
"베린! 네가 이 편지를 볼 때는 아마 나하고 다른 곳에 있겠지? 그리고 이 편지를 읽을지도 모르겠어 일단 염원 이룬 거 정말로 축하해! 처음에 널 봤을 때는 너무 아파 보여서 정화 도중에 소멸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어"
꾹꾹 눌러쓴 매니저님의 글씨에 약간 눈물이 핑 돌았다 손으로 눈을 쓱 닦고 이어저있는 글을 찬찬히 훑었다
"진짜 이때까지 별일이 다 있었지? 진짜 베린 겨울에 포탈 무작정 이용하고 영영 안돌아오는줄 알았잖아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뭐 아무튼 잔소리는 이쯤에서 끝내고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가방 하나가 보일 텐데 그 낙엽 모양 팬던트! 언제 인간계에 갔다 온 적이 있었는데 가게에서 팔더라? 낙엽모양 포함해서 이것저것 샀는데 네가 떠날 때 선물 하나 해주고 싶어서 이렇게 보냈어 꼭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마 거기에 사진 같은 것도 넣을 수 있을 거야 말이 너무 두서없게 길었나...? 아무튼 염원 이루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몸 상태 도 좋아졌겠지? 이때까지 못했던 거 마음껏 했으면 좋겠어"
매니저님이 적은 편지지가 물방울에 의해 군데군데 젖고 있었다 눈이 살짝 붓고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 베린은 탁자에 휴지를 찾으려고 탁자 위에 눈을 둔 순간 그 낙엽 부서지지 않게 노력 했지만 결국은 부서져 버렸구나 책상 위에 조각나있는 상태로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나마 책에 끼워놔서 빳빳했기 때문에 찌그러지지는 않았다 그 낙엽을 멍한 듯이 바라보다가 낙엽 조각 중에 그나마 큰 낙엽을 들어 매니저님이 주신 팬던트를 열어 고이 넣고 닫았다 그리고 더이상 영영 만날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들어 조금 우울해졌다 그 팬던트를 서랍안에 넣고 울적한 마음에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시간이 좀 오래 지났다 진과 함께 콘서트에 가고 주말마다 진의 집에 놀러 가거나 진에 나의 집에 놀러 오는 게 대부분이었다 사실 좀 놀란 게 아프지 않다는 게 내 성격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내 성격이 이렇게 온순했던가 이제는 누군가 시비를 걸어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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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매니저님과 사신들의 안부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없다 난 염원을 이뤘고 지금 이 삶에 행복하다 하지만 사신들과 매니저님의 특징이 내 삶에 간간히 보일때 무언가 비가 오는 방에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는 바람에 눅눅하고 숨쉬기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눈물이 나오는걸 꾹 참고 다 식어버린 핫초코를 호로록 마셨다 다 식은 거지만 아직 컵에 따뜻한 기운이 남아있기 때문에 컵을 꼭 쥐었다 아차 잠이 달아난 것 같았는데 졸음이 몰려왔다 따뜻한 기운에 몸이 노곤노곤 해졌나보다 생각하며 침대에 누워 이불을 어깨까지 올린뒤 눈을 감았다 창문밖에는 새들이 지저대고 조금의 바람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 ... 같은 나무에서 낙엽을 가져서 나누면 만날 수 있대 그러면 우리 가장 큰 나무에서 만나자 올 거지?"
번뜩, 눈이 떠졌다 매니저님 목소리였다 꿈이었고 무시할 꿈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생각과는 다르게 몸이 움직였을까 서랍을 거칠게 열어 부서진 낙엽이 든 팬던트를 가지고 집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두리번거리면서 살짝 어지러운 머리로 생각을 했다 여기에서 제일 큰 나무는..!
탁탁... 전속력으로 달렸다 가장 큰나무가 있는 곳 어느 한 공원이었다 그곳에 도착하고 숨을 거칠게 쉬었다 상체를 숙여서 얼굴에 손을 몇 번 쓸었다 땀이 조금 났다 긴장감과 기대감이 동시에 몰아쳤다 그냥 꿈이면 어쩌나 그저 내 허상속의 매니저님이 꿈에 나타난 거면 어쩌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상체를 천천히 들어 눈을 조금씩 열었다 내 눈에 누군가가 보였다
갈색 머리가 바람에 의해 흩날렸다 나는 그것을 홀로 지켜봤다 사실 넋 놓는 것에 가까웠지만 나지막하게 작은 목소리로 매니저님...? 이라고 목밖으로 내뱉었다 그녀가 뒤를 천천히 돌았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무언가 뒤죽박죽이 되어있었다 얼굴은 웃고 있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났다 그리고 다리는 어쩐지 매니저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매니저님! "
감격에 찬 목소리로 그녀를 안았다 매니저님도 베린을 꼭 안으면서 나의 이름을 외쳤다 어떻게 지냈냐 어떻게 꿈에 나왔냐 질문이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매니저님에게 들었던 것, 믿지 않았고 지금도 진짜인지 모르는 미신이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믿어도 괜찮지 않을까 둘이 팬던트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둘 다 환하게 웃어보았다 팬던트가 반짝거렸다 그리고 바람에 의해 나뭇가지가 살짝 흔들리면서 낙엽이 몇 개가 떨어져 우리 머리 위에 낙엽이 살짝 얹어졌다 우연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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