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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 / 라일락
14지부의 매니저인 그녀는 처음에는 길거리 양아치같이 생기고 사람 시비나 거는 그 녀석이 정말 싫었다. 처음에는 저 멀리서 시비만 걸다가 요즘13지부와 같이 하는 활동이 생길 때면 은근 14지부쪽으로 다가와 이상한 소리나 하고 가는 일도 잦아졌다. 이제는 급기야 14지부 심부름도 그 녀석이 오는 게 아닌가.... 그녀는 자신의 눈 앞에서 건들건들하게 서류를 들고 서 있는 놈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야 왜 서류배달을 13지부 사감님이 아니라 네가 오냐?"
그 말에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재수없는 대답을 했다.
"왜? 내가 와서 그렇게 좋아? 앞으로 자주 올까?ㅋㅋ"
뭘 잘못먹어서 툴툴대던 녀석이 웃고 실없는 소리만 내뱉는지.... 매니저가 똑바로 말하라는 뜻으로 째려보자 그제서야 원래 날카로운 얼굴과 툴툴대는 목소리로 돌아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감님이랑 너네 사감님이랑 사이 나쁘잖아. 저번에 서류 건네주려고 여기 왔다가 우리지부로 돌아와서는 세이를 연신 외쳐대며 이를 갈던데?"
"아.... 그래서 사감님도 오늘부터 나보고 서류를 받으라고 하셨구나.. "
"그런 난 간다! 앞으로 자주 볼테니까 잘 부탁한다~"
매니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직 중얼거리는 중인데 저
벌써 다시 자신의 지부로 돌아가고 있었다. 저 놈의 이름은 '라이너 쿠퍼'. 13지부의 에이스이자 14지부에게는 밥맛떨어지는 놈으로 통하고 있다. 몇몇 사신들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라이너가 나간 문을 바라보며 매니저는 픽 웃으며 중얼거렸다.
"처음엔 좀 재수 없었는데 지금 보니까 생각보다 자상한 것 같기도... 뭐래 아냐아냐 요즘 야근을 너무 많이 했나? 쟤가 자상하다니.. 말이 되는 소리를.... 자상은 노아나 유세프씨같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이지. 일이나 하자....."
오랜만에 5시 정각에 일을 끝마친 그녀가 휴대폰을 켜보니 두 명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한 명은 친구인데 놀이공원 자유이용권 티켓 두 장이 당첨되었지만 그 날 일이 생겨서 못간다며 그 티켓을 보내줬고 한 명은 냥선배님으로 모처럼 그녀에게 달콤한 휴가를 선물해 주신다는 내용이였다. 휴가와 놀이공원.... 그녀는 오랜만에 즐거운 날이라 생각하며 하루를 빠르게 마무리했다.
휴가 날까지 고작 하루밖에 안남았건만.... 같이 갈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매니저는 절망했다... 얼마 안되는 친구들도 하나씩 일이 있고... 14지부는 그 날 단체 특별 캠프다. 놀이공원을 혼자 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생각에 잠겨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다가온 건 라이너였다. 일부러 몰래 다가와 놀래키면서 손이 있는 표를 뒤에서 빼앗아 내가 잡을 수 없게 머리 위로 손을 쭉 뻗어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원더랜드 자유이용권? 두 개나 있네. 누구랑 가냐?"
그녀가 대답하지 못하자 라이너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쉴 새 없이 웃는다
"너... 설마 친구없냨ㅋㅋㅋㅋ 와.... 대단한뎈ㅋㅋ 살아온 시간이 그만큼이나 된는데 같이 갈 친구가 없다곸ㅋㅋㅋㅋ"
한 대 정도 칠까..?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꽉 잡고 진지하게 고민되기 시작할 때 그 녀석은 웃음을 멈췄다.
"나랑 같이갈래? 나도 그날 휴가거든. 친구 없는 너를 위해서 나는 충분히 가 줄 의향이 있다만...ㅋㅋ"
"뭐라는 거야.... 나 친구 많은데...? 여기 14지부 사신들부터 다른 친구도 몇 명 있거든?"
"근데 왜 같이 갈 사람은 없냐?"
라이너가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로 순수하게 매니저에게 크리티컬 펀치를 날렸다.
"그건 그날 다들 일이 있어서......"
"그러니까 같이 가주겠다고. 내일! 무려 내가!"
같이 가도 괜찮을까? 고민은 짧았다. 어차피 혼자니까 같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 같이 가자. 내일 아침 7시반까지 14지부 정문 앞으로 와."
그렇게 그녀는 내일 처음으로 남자와 단둘이 놀이공원에 가게되었다.
라이너는 약속시간보다 15분이나 일찍 나온 덕에 아침 당번을 하던 사신 몇 명이 그를 보게되었고, 같이 그와 나가는 걸 본 사신들로 인해 지하철 역에 들어설 때 까지 그녀의 등 뒤로 쏟아지는 시선 덕에 등에 구멍이 뚫릴 지경이였다. 아침 지옥철은 역시나 붐볐고 사람이 넘쳐났다. 사람이 빠져나가 지하철이 한산해진 후에야 그녀는 라이너의 옷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검은 와이셔츠에 붉은 넥타이, 바지는 빳빳한 소재로 셔츠보다 조금 더 진한 검정색이였다. 평소와 다르게 나름대로 정갈하게 입었는데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조금 놀랐다. 그와 대비되게 그녀는 하얀 블라우스에 분홍빛이 있는 짧은 반바지를 입었다. 오히려 의상이 극과 극이라 그런지 그 둘이 잘 어울려 보이기도 했다. 그녀가 정갈한 의상에 놀라 라이너를 한참을 빤히 쳐다보자 그 시선을 느낀 듯 라이너는 그제서야 그녀를 바라보며 풉 웃는다.
"뭐.. 잘생겼냐? 왜 이렇게 쳐다봐?"
"어, 좀 잘생겼네."
라이너가 예상 못했다는 표정을 짓자 그녀는 뭔가 이긴 기분이 들었다. 재미있어 생글생글 웃자 라이너가 고맙다는 표시인지 칭찬아닌 칭찬같은 칭찬을 해줬다.
"너도 평소보단 예쁜..... 아니 그냥 평소보다는 나은 것 같네."
매니저가 깜짝 놀라 돌아보니 라이너는 귀 끝이 빨개진 상태로 갑자기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몇 정거장 남았나 새는 척이나 하고 있었다.
도착하고 나서는 쉴 새 없이 놀았다. 그 흔한 사진 한 장도 별로 안 찍은 것 같다. 귀신의 집부터 롤로코스터 회전목마까지.마지막 코스는 역시 퍼레이드라고 생각하고 걸음을 옮기는데 그녀의 눈 앞에 들어온 것은 퀸시 사진이 붙어있는 솜사탕 기계였다. 여기서 인기 많았다더니 진짜였나보네. 이내 사진에서 눈을 떼고 솜사탕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다른 간식을 먹었지만 다시 식욕이 돋는 것 같아 라이너를 잡아끌었다.
"라이너! 퍼레이드 보러 가기 전에 저 솜사탕 사먹고 가자"
"또 먹냐? 아까부터 어묵, 음료수, 아이스크림, 팦콘까지 눈에 보이는 것마다 다 사먹고도 배가 안찼다고? 대단한데?"
"놀리지 말고 빨리 사줘."
"아까부터 진짜 뻔뻔하네. 너 나한테 돈 맡겨놨냐? 아까부터 왜 나한테 사달래. 아까 간식도 내가 사고 점심도 내가 샀잖아"
"이용권 내껄로 들어왔잖아!"
"그거가지고 그렇게 우려먹냐?"
"엉 당연하지. 그러면 저녁 내가 쏠께 그니까 사줄래?"
"ㅇㅋ 지부 근처에 맛있는 짬뽕집 생김 거기 가자."
라이너는 결국 솜사탕을 사줬다. 솜사탕을 들고 행복해 하는 매니저의 손을 잡아당겨 간 곳은 사람이 잘 안오는 퍼레이드 보기 좋은 명당이였다. 명당인데 사람이 안온다고 신기해하는 그녀에게 라이너는 갑자기 질문을 했다.
"근데 넌 남친같은 거 안사귀냐? 원래 이런 건 남친이랑 와야하는 거 아니야?"
매니저는 왜 갑자기 그런걸... 이라는 표정으로 째려보다가 그냥 입을 열었다.
"음......왜 갑자기 그런 걸 물었는지 모르겠지만.. 알다시피 우리지부 사신들이 많이 잘생겼잖아. 내가 얼마전에 와인바에 갔는데 여친남친 이야기가 나온거야. 그때 나도 유세프씨한테 인기 많아보이는데 왜 여자친구 안 사귀냐고 물어봤거든?"
"니가 왜 안 사귀는지 물어봤거든? 그 유세프라는 사신이 아니라."
"기다려봐. 유세프씨 답이 내 답이였어. 내가 사신지부에 오니까 더 이상 연을 만들고 싶지 않은 그런 기분이 들었거든? 그냥 동생이 사라져서 심리적으로 잠깐 그러는 줄 알았는데....."
"보통 심리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본인이 판단하나?"
"조용히 해봐! 네가 물어봤잖아. 어째튼 다 생략하고 말하면 그 때 뭐라고 했냐면...........'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보는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마음이 맞는 사람이 생겨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여기 있는 사신들은 모두 염원을 위해 모였잖아. 사신에게 1순위는 무조건 염원이지. 근데 또 다른 1순위를 만들 수는 없지. 언젠가는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니까. 근데 사신이 과연 염원을 포기할까? 그것만 보고 여기까지 왔는데? 당연히 아니겠지. 아무리 고민해도 결론은 염원일꺼야. 그거 때문에 서로 받는 상처를 생각해서라도 안 사귀는게 옳은 일 아닌가?' 이렇게 말하더라고 그 때는 술에 취해 있어서 뭘 말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는데.... 다음 날 생각해보니까 맞는 말이더라고. 꼭 이것 때문은 아니더라도 원래 여친남친 같은 건 서로 좋아해야 하는 거잖아. 딱히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앞으로 좋아할 사람도 없을 예정이거든. 말이 좀 길었다. 이제 저녁먹으러 슬슬 돌아가야겠는걸?"
빠르게 일어나는 매니저를 바라보며 라이너는 작게 "망했다"를 외치며 따라갔다.
밥을 먹고 14지부 앞까지 매니저를 데려다 준 라이너는 매니저에게 작은 반지로 추정되는 게 달려있는 목걸이를 내밀었다. 사신들이 모두 캠프에 가서 다행이지 만약 사신들이 오늘 지부에 있었다면 매니저에게 벌써 선물을 주기도 전에 저 안으로 끌려 갔을 것이다. 선물을 받은 매니저는 환한 표정으로 고맙다고 하며 지부로 돌아갔다. 오늘 이 일로 둘의 인식과 관계는 바뀌었을 거다. 매니저의 입장에서는 좀 짜증나는 얘에서 괜찮은 친구로, 라이너에게는... 친구까지는 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불가한 것을 라이너는 오늘 알았다. 아까 그 얘기와 결심은 자신이 보기에도 확고했다. 자신이 수작 부리는 것 정도로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자신도 염원이 먼저이기에 반박도 할 수 없다. 그래도 아직 수작 부릴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 라이너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일단 1단계는 성공했네"
라이너의 바지 체인에는 매니저에 목걸이와 똑같이 생긴 반지가 마치 원래그 부품인 마냥 조용히 달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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