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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과 함께 감상해주세요.
미련의 잔재
"응응? 매니저님, 듣고있어?"
말갑게 자신을 마주해오는 반짝이는 눈동자.
햇빛을 받은 나뭇잎 같기도, 언젠가 책에서 보았던 맑은 초록빛 바다같기도 한 청록색의 눈동자.
마음속의 파도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듣고있지."
"그래? 헤헤, 그래서 말이야… "
가만히 눈을 내리깔며 이야기하면 다시 주절주절 이어지는 목소리가 마치 어젯밤 들은것처럼 아득하게 멀어진다.
그 목소리를 배경음 삼아 가만히 조잘거리는 옆모습을 바라보며 다시금 생각 속으로 빠져들면, 마음 깊은곳에서 다시 눈동자가 떠오른다.
대답을 바라듯 깜박이는 눈동자.
이것을 마주하면 늘 느껴지는 약간 가슴이 내려앉는 이 느낌.
요 근래 들어 익숙해진 이 느낌은 매니저를 괴롭히는 많은 것 들 중 가장 최근의 것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런걸 느끼게 된게.
아, 그래. 그때부터.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눈빛이, 내가 아닌 어느 먼 곳을 향하고 있다는걸 알아차린 그 때.
애초에 알았다면 좋았을걸.
매니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어디론가 도망가듯 눈을 감았다.
* * *
"매니저님, 잘자. 내일보자."
"응. 내일봐."
어둑하게 내려앉은 어둠을 밝히는 그를 위해 준비한 자그마한 향초의 불빛이 방 안을 채우고, 함께 이불을 덮고 누우면 부스럭 부스럭 이불을 헤치는 소리가 잠깐동안 조용한 방 안을 채운다.
자신을 바라보는 내려앉은 데이의 눈꺼풀을 보며 가만히 뺨을 건드리면 자연스레 부벼오는 살결.
옅은 웃음을 흘리며 팔로 몸통을 감싸안으면, 응답하듯 마주안아오는 이 순간에는 매일매일 새삼스럽게도 여지껏 경험한적없는 것 같은 충족감이 온 몸을 감싸온다.
한시도 쉬지않고 자신을 조여오는 생각들이 의식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 고요한 주변 속에 포근하고 따뜻한 사람의 체온에 푹 빠질 수 있는이 순간.
이 순간이 내가 살아가는 수많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하면 넌 믿을 수 있을까?
이토록 행복한데도 왠지 어느 한구석에 누군가 커다란 구멍을 파놓은 것처럼 저릿하게 아려오는 느낌에 다시한번 데이의 품에 얼굴을 파묻는다.
자.하나,둘,셋...
그리고 눈을 감은채 마음 속으로 느리게 하나부터 열까지 세면 이불소리는 잦아들고, 그 자리에 고른 숨소리가 채워진다.
"데이, 자?"
돌아오지않길 바라는 물음이 공허히 방 안의 공기에 섞여 사라지면, 매니저의 하루는 다른 이보다 한 발 늦게 끝이 난다.
후.
촛불의 불빛이 사라진다.
어둠속에 눈이 익숙해질 때 쯤 고개를 들어 데이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고있는 그 사이,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어둠과 침묵이 조용히 맘을 갉아먹기위해 다가오고, 그것을 피하려 괜히 이불을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보지만 그깟 작은 소리에 기죽을 내가 아니라는듯 조금씩 머리를 잠식해오는 어둠은 잠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달갑지않은 손님에 서둘러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들려오는 숨소리. 심장소리.
그 소리를 자장가삼아 잠을 청하면 피곤했던 몸이 침대에 녹아드는 감각이 온 몸을 뒤덮는다.
그 감각에 그대로 몸을 맡기면서, 매니저는 오늘도 편안하게 잘 수 있길 기도한다.
* * *
살랑, 바람이 한껏 자신을 뽐내던 알록달록한 나뭇잎들을 살며시 건드리면 한여름의 비처럼 눈 앞을 채우는 색채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가을이었다. 수많은 생명들이 기나긴 잠에 들 준비를 하는 가을.
각양각색의 낙엽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차가워지는 공기가 낮설어 몸을 움츠리며 그 짧은 생을 마감한다.
다시한번 바람이 불어오면 조금은 괴짜같은, 바람을 타고 먼 여행을 떠나길 꿈꾸는 나뭇잎들이 흩날린다.
"매니저님! 저기봐! 낙엽이 빙글빙글 춤을 춰!"
"그러게.“
"응응! 이거봐! 나~도!"
삶을 마감하는 낙엽들 사이로 꽃보다 더 생기있고 화사한 기운을 뿜는 새싹같은 목소리가 신이 난듯 울려퍼지고, 그것에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모양을 가만히 보다보면, 쏴아아- 바람소리와 함께 낙엽들이 휘날리며 시야를 가린다.
"매니저님! --이야!"
아득하게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가 마치 바람을 타는 꽃잎처럼 흐려졌다.
비가 쏟아지듯 귀를 가득 채우는 바람소리와 함께 흩날리는 낙엽에 가린 모습을 보려 가늘게 눈을 뜬다.
나뭇잎사이로 이쪽을 향해 환하게 웃는 얼굴.
"데이, 너무 멀리가면 안돼!"
"--인-걸."
"응? 안들려-!“
"멀리가도 공원 안인걸!"
어느새 눈 앞에 확 다가온 얼굴에 핀 해사한 미소가 햇살이 부서지는 모양새를 닮았다고, 매니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너무 멀리 가면 안돼."
바람에 날린 머리카락이 눈을 찌를까, 잠시 눈을 감고 시야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늘과 같이 던진 말.
당연히 돌아와야 할 대답.
이어지는게 당연한 그 대답.
곧바로 이어질거라고 생각했던.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의아해하며 고개를 드니, 자신을 보며 미소짓고있을거라 예상했던 그 얼굴은 다른 곳을 보고있었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 모를 시선. 하지만 절대 자신을 향하지않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른 미소.
"…데이?"
뭘, 보고있는거야?
목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다시 바람이 불며 낙엽이 휘날린다.
가려지는 시야 사이로 보이는 누군가.
알 수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야.
하지만 그 누군가를 향해 보이는 그 눈동자는, 자신에게 보여주었던것과 같이, 어쩌면 더 밝게 반짝거리는 빛을 내고 있었다.
그래.
햇빛을 받은 나뭇잎 같기도 하고, 언젠가 책에서 보았던 맑은 초록빛 바다같기도 한 청록색의 눈동자.
마음속의 파도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멈추지않는 낙엽비 사이로 그 누군가를 향해 돌아서는 등이 보였다.
언제나 앞서가는 등. 익숙했지만, 익숙하지않은건 그저 느낌탓일까?
한걸음.
멀어져가는게.
두걸음.
느낌 탓이 아니야.
어디로? 가는거야?
생각보다 먼저 나간 손이 앞서나가던 이의 손목을 붙들었다.
"데이..!"
방해하듯 휘이잉, 바람이 다시한번 거세게 불며 이미 생명을 잃어 빛이 바래버린 나뭇잎을 날린다.
"가지마."
그리고,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언제 그랬냐는듯. 거짓말같이.
낙엽이 가라앉은 자리를 채우는 고요함.
"가지마.."
그 기묘한 고요함 속, 매니저는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를 마주했다.
다정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 빙그레 미소짓고있는 입술.
"가지마..."
대답대신 다시한번, 바람이 분다.
언제 거칠었냐는듯 포근하게 자신을 감싸는 바람.
우수수, 하늘의 별처럼 떨어진 낙엽이 시야를 가렸다.
인상을 찌푸리며 손으로 시야를 가리를 낙엽을 치우자, 시야를 채우는 온화한 초록빛.
봄의 새싹? 물이 들지않은 나뭇잎?
아니. 그 무엇도 아니야.
그건,
"안녕."
가벼히 뱉는 그 단어에, 손에서 스르르 힘이 빠졌다.
한번도 본적없던, 낮선 복장의 데이.
여전히 미소짓고있는 그 얼굴은 익숙했으나, 무언가 낮설었다.
무엇이? 하고 생각하기도 전에 한치의 미련도 없이 다시금 등을 보인다.
붙잡아야한다는 생각도 들지않아 멍하게 바라보고있으려니,
한걸음.
멀어져간다.
두걸음.
어딘가로.
세걸음.
나를 이대로 두고.
봄 날 아지랑이처럼 시야가 일렁였다.
멀리서나마 보였던 등은 자취를 감추고
어둠이.모든걸.지워버린다.처음부터.이래야했던것처럼.
그 따뜻함에, 애초부터 익숙해지지 말았어야 했는데.
* * *
"헉..!"
차가운 밤 공기가 땀에 젖은 등을 스쳤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운 바람에 몸을 부르르 떨며 주변을 둘러보니 은은한 향초의 잔향이 아직까지 방 안에 남아있었다.
익숙한 향기가 콧속을 찌르자 굳어있던 뇌가 반사적으로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아직 해가 뜨지않은, 어슴푸레한 어둠에 잠긴 눈에 익은 방.
서늘한 공기에 소름이 돋은 팔을 쓸어내리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부스럭, 익숙한 이불의 소리에 깊게 숨을 내쉬며 두근두근 진정할 기색이 보이지않는 가슴을 손 끝으로 꾹 눌렀다.
그리고 무언가를 찾듯 시선을 돌리니 봉긋하게 솟아있는 이불이 보였다.
'안녕.'
환청처럼 귀를 울리는 소리에 숨이 훅 들이마시어졌다.
살며시 떨리는 손을 들어 봉긋한 이불 위에 손을 대니, 작고 규칙적이게 움직이는 미약한 움직임과 함께 고르게 들이마시고 내쉬어지는 숨소리가 막혀있던 청각을 뚫은듯 귀에 박힌다.
그와 동시에, 알지도 못하게 들어가있던 몸의 힘이 빠지며 털썩.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답지않게 꼭꼭 덮고있는 이불을 조심히 내리자, 어둠 속의 달빛에서도 선연히 빛나는 밝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살며시 머리카락을 걷어내면 그 아래로 이어지는 짙은 색 피부의 이마, 코, 입술.
손끝을 간지럽히는 호흡에 심장을 두드리던 불안감이 조금씩 사라져갔다.
"으음.."
작은 소리를 내며 뒤척이는 몸짓에 그만 맥이 탁 풀려버리고,허. 하는 헛웃음이 의도치않게 입술 밖으로 흘러나왔다.
현실이다.
여기가. 네가 사라지지않은 여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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