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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과 함께 감상해주세요.
너를 위한 이별 / 루베아
누군가 나에게 사계절과 사랑을 주제로 글을 써보라고 하면 나는 딱 한 문장 '봄, 짝사랑, 여름, 연애, 가을, 이별 그리고 겨울, 후회와 그리움. 각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다른 의미의 네 개의 계절은 누군가의 모습을 자신들에게 맞추도록 요구하기 마련이다.'라고 쓸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그 누군가는 나 일 수도 있고 당신일 수도 있다. 봄처럼 따스한 사랑의 시작이 오면, 여름처럼 뜨거울 때가 있다는 것이고, 그 계절마저 지나가면 쓸쓸함만 남을 이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별을 맞이한 누군가는 그리움과 후회를 마주하게 될 것이고, 선택에 따라 이 과정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아니, 차라리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여름마저 지나간 나와 그 사람처럼 네 개의 계절 중 3번째 계절에 머물러 있는 아픔을 버티는 것보단 이해하지 못하는 게 나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가 가을의 정점에 다다른 게 된 건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어느 날의 작은 미련 때문이었다.
직장 선배가 부탁하던 서류를 전달하고,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창밖의 붉은 낙엽이 눈에 띄었다. 낙엽을 계속 바라보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발에 무거운 돌이라도 매달아 놓은 거 마냥, 좀처럼 두 발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내가 이러는 걸 본 누군가는 가을을 타는 거라 오해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창밖에 위치한 나무에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가을 낙엽을 보자, 나의 연인과의 제 모습이 떠올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 낙엽이 떨어지자 나무는 몇 안 되는 낙엽만 품은 채, 바람에 흔들렸다.
나인과 마지막으로 만난 지도 대충 두 달이 지나가고 있는데, 나인한테 전화는커녕, 문자 한 통도 없어. 연락을 해도 안 받고. 이젠 우리가 남인지, 연인인지도 모르겠네.....
나는 낙엽에 슬픔이 묻어있는 부담스러운 시선을 던지며 생각했다. 입 밖으론 참을 수 없는 한숨이 나왔고, 조용하게 내뱉은 한숨은 몇 초도 되지 않아, 조용하게 공기에 스며들었다.
내가 자리로 돌아온 건 낙엽이 두세 개 더 떨어진 이후였다. 물론, 선배가 나를 부르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몇 분은 더 있었을 테니만. 자리로 돌아와 보니, 오랜 시간 사용하지 않아, 꺼진 노트북이 보였다. 나는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나 생각을 하면서 노트북을 키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가방 속 핸드폰을 꺼내 그와의 대화방을 열어보았다. 역시나. 그와의 대화방의 오른쪽 위에 '20**년 9월 31일'이라는 날짜가 새겨져 있었다.
'어떻게 이런 건 틀리지를 않냐..'
대화방에 새겨진 날짜는 내 예상이 적중했다는 걸 의미했고, 그와 연락이 되지 않은지 두 달이 넘어가고 있다는 걸 내게 알려주었다. 내 예상이 사실이었음을 알고 나니 다시 한숨이 나왔고, 공기는 이유 없이 탁해졌다. 이런 식으로 둘도 혼자도 아닌 상황을 초마다 마주하는 건 역시, 힘들다. 그때마다 행복했던 두 계절이 나를 비웃는 기분이 들잖아. 그런데도 슬픔을 깨닫는 행동을 반복하는 건 지금은 비웃고 있지만 그땐 행복했던 지나간 두 계절을 돌이킬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일까.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나.'
나는 세 번째 한숨을 내뱉으며, 핸드폰을 책상 끝 쪽에 엎어놓았다.
음악계에서 일하고 있는 나인이 최근 들어, 많이 바빠졌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연락이 한동안 되지 않을 거라는 거쯤은 예상하고 있었고,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소식도 듣지 못하는 이 상황이 두 달이 지나도록 지속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니 당연히, 이해하려는 마음은 한계에 다다라 금이 가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나인을 만났던 그날조차 좋게 기억되지 않았던 게 불 난 집에 기름을 붙인 격이 되어 급기야, 사랑을 의심하고 이별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행복했던 시절의 우리가 미련처럼 내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건 사실이었으나, 이 상황을 버틸 수 있을 거 같았던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에 무너져버렸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게 나의 미련을 흔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진짜로 헤어지자고 할 리가....'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환하게 켜진 노트북 뒤로 나인의 사진이 보였던 그 순간. 지금껏 그에게 서운했던 감정들과 생각들이 이기적으로 느껴진 것은.
'그래'
어쩌면 넌 내가 무너지기 훨씬 전부터 무너졌던 걸지도 모른다. 바쁜 일을 하면서 나까지 신경 쓰느라, 지칠 대로 지친 건 내가 아닌 너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바쁜 너를 재촉한 격은 아니었을까. 내각 이기적으로 행동했던 건 아닐까. 만약 그런 거라면 나는 우리를 위해 아니, 그를 위해서라도 나인과의 이야기를 결말을 지어야 한다. 나는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어, 그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남기었다.
[오늘 나인의 회사 근처로 갈게. ]
이유도,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무작정 찾아간다고만 보낸, 나는 무언가 다짐이라도 한 표정을 짓고선 이내, 업무에 집중했다.
나는 꽤 많은 업무를 끝내고 나서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 늘 그렇듯, 밝았던 하늘은 하늘에는 달이 희미하게 보일 만큼 어두워졌다. 나는 동료들의 기약 인사의 답변만 해주고 나인의 회사로 갔다. 아까, 그가 보낸 [알겠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라는 답변이 그를 만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을 주었지만, 또 다른 불안감이 나를 감싸 안았다. 이유는 알 거 같았다. 오늘은 다른 이유가 아닌, 이별을 그에게 고하러 가는 것이니까.
....하필 오랜만에 받은 나인의 답장이 마지막 문자라니, 씁쓸하네.
"오랜만이에요."
카페 앞, 나는 흐트러진 마음을 정리하고 나인이 기다리고 있을 카페의 문을 열었다. 그는 나를 보자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해 주었다. 그리고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염려와 슬픔이 뒤섞인 얼굴로 말을 이었다.
"... 그동안 연락하지 않아서 미안해요. 마음 쓰게 하고 싶진 않았는데... "
"......"
처음부터 말 문이 막히게 하는구나. 내가 오늘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내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잖아! 정말이지..
'여우 같으니라고.'
나는 속으로 찹잡한 눈물을 흘리며 나인의 앞에 앉았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찾아와서 미안해. 바쁠 텐데...."
"괜찮아요. 한동안은 계속 바쁠 거 같아서 저도 오늘... 연락드리려고 했거든요."
초면도 아닌데 나인과 나의 사이에는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그 공기 속에도 나는 계속 이별을 고할 타이밍을 찾기 위해 나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나인과 눈이 마주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최대한 다정한 미소를 얼굴에 그렸다. 그러면 다행히 억지로 그린 미소에 속은 듯했다.
".... 계속 제 눈치를 보시는 걸 보니,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연락을 하신 건 아닌 거 같군요."
"......"
아니, 그건 나의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긴, 눈치 빠른 그가 이 상황을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그는 눈치 보던 내가 이상해 보였는, 몇 번 눈이 마주치더니 가슴을 찌르는 말을 하며, 그 어떤 말이든 괜찮다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그런 내 앞의 남자 때문에, 나는 또 한 번 말을 잃었다. 어쩜 그렇게 마지막까지 날 당황스럽게 하는지.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곳에 온 이유를 다시 근 상기한 뒤 더 이상 이 시간을 끌지 않기로 했다.
"오랜만에 봐서 이런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는데, 사실 내가 오늘 너에게 연락을 한 건... 너에게 이별을 고하기 위해서야."
당황한 표정. 정말 비겁하다. 항상 그런 표정으로 내가 해야 하는 말을 주저하게 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나는 테이블 밑에 있어, 그에게는 보이지 않을 두 손을 꽉 쥐었다.
"당황하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너를 기다리면서 오랫동안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야. 지금 내 상태로는 너를 더 이상 제대로 사랑하지 못할 거 같기도 하고.. 일 때문에 바쁜데 나까지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우리... 이쯤에서 서로가 아닌 개인에게 신경 쓰도록 하자."
"......"
우리 헤어지자. 이 한 마디를 돌려서 말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공기는 무거워졌고, 분위기 또한 무거웠다. 그 공간 안에 공존하는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나는 고개를 들어 나인의 얼굴을 보았다. 슬픔이 가득한 얼굴.. 나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인이 잘못했다는 게 아니야. 네가 나 때문에 힘들지 않길 바라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우리가 함께하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시간들의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는 것을.
능숙하지 못한 내 핑계를 듣던 그가 시선을 내리더니, 입을 열었다.
"이 말을 하시려고 연락을 하신 거군요."
"..... 그래."
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그를 위한 핑계는 더 대지 못할 거 같았다.
"저를 위해서 저와 이별을 하신다는 거군요."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
"...."
"정말 저를 위한 결정이었나요?"
"....."
나는 침묵했다. 그에게 이별은 얼마나 아픈 건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별을 처음 생각했을 땐 수없이 부정했다. 하지만 노트북 뒤에 나인의 사진을 보자, 생각하지 않았는가. 나인을 힘들게 할 인연이라면 아무리 아프더라도 이별하는 게 그에게 낫다고.
아무도 없는 카페. 대화가 끊겨버리면 소름 돋게 조용해지는 이 공간. 나는 내 답변만 기다리는 나인의 두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마지막이 될 말을 입 밖으로 뱉으려던 그 순간이었다.
투옥.
테이블 위로 작은 물이 떨어졌다. 정말 우습게도 그 순간에 생각나 버린 것이다. 나에게 한없이 다정했던 지난날의 나인의 얼굴이. 동시에 내가 무엇을 잃으려고 하는지, 이제서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돌이키기에는 이미 많은 강을 건너왔다. 그리고 우습지 않나. 지난날에 내가 했던 생각들에 대해. 너무나도 우습지만 부정할 수 없어서 나는 눈물을 닦으면서 미소 지었다. 그래야 그가 더 이상 당황하지 않을 테니까.
처음 그를 만나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을 날만 해도 이런 결말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 이런 고비쯤 간단하게 넘어갈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은 이렇게 되어버렸잖아. 우리는 어느 순간, 서로에 대한 서운함을 느끼고 말았던 그 순간부터 우리는 이 길을 걸어왔던 것이다. 그래서 신께서는 나를 말리지 않으셨나 보다. 그가 이별을 아파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그를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으면서도, 이별을 말하게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순수한 내가 이별을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한 만큼 사실은 나도 나인과 이별하는 게 싫었던 거야. 슬펐던 거야.
"....나인, 너는 아직 나를 사랑해?"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를 보내줘야 했다.
"......네, 물론이죠."
우리의 관계는 변해도 서로를 사랑했던 기억이 있고, 무엇보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고마워, 나인. 그렇지만 내 답은 역시, 변하지 않아.. 너무 슬프게도."
한 방울씩 툭 떨어져 내리는 눈물을 계속 막지 못했다. 이건 다 나 때문이라고 울지 말라고 속마음으로 외쳐도 눈물을 멈출 줄 몰랐다. 하지만 이것조차 눈치챈 듯한 나인은 이기적이었고, 억지스러운 이별의 이유를 모두 듣고도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되려,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당황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슬픔은 감출 수 없었지만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를 지어주었다.
우리의 마지막이 마무리되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카페를 나왔을 땐 이미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까.
"너를 만나서 행복했어. 앞으로 잘 지내."
"언젠가 인연이 된다면 다시 만나길 바랄게요."
과거의 행복, 우리의 이별 이 모든 이야기는 마지막 작별 인사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작은 미소를 짓고 묶여있던 발을 떼어냈다. 그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뒤를 돌아볼 때, 그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연인들보다 조금은 아름다웠을 우리의 가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아름다운 붉은 낙엽과 달리, 이별을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내가 이별을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이유는, 우리가 각자 마주할 계절이 부디, 지난 계절을 아프게 기억되게 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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