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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과 함께 감상해주세요.
가을이 찾아준 봄 / 블루베리
"벌써 가을이구나. 여름의 뜨거운 햇빛과 추적추적 비가 내렸던 장마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단풍들이 다 물들었네."
여름의 뜨겁고 푹푹찌던 공기는 어느새 시원한 바람이 코를 간지럽히는 계절의 가을로 변했고, 가을로 바뀐 계절은 자연풍경과 곡식, 그리고 그 두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벌써 가을이라..."
아직 가을이 되기 전 여름. 이 두사람은 산골짜기를 2개씩이나 넘어야 있는 시골마을에 살고있다. 기이는 선조에 선조때부터 이 마을에 살고 있었지만 매니저는 이 시골마을에 제 발로 찾아온 사람이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이사온 매니저라고 합니다! 잘부탁드려요!"
마을사람들은 모두 매니저를 반겨주며 좋아했지만 매니저가 이 마을로 들어왔을때 처음 보기에도 도시에서 온 사람이 왜 이곳으로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기이도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도시사람은 절대 시골에서 못버틸턴디..."
"긍께, 농사일도 많이 힘들고 혼자 살기에는 무서울텐디 아가씨 혼자서 시골에서 살기는 너무 힘들지 않을까 모르겄네..."
"괜찮아요! 저 원래 시골에서 살았었거든요. 잠깐 도시로 나갔었는데 도시는 너무 저랑 맞지 않아서 다시 시골로 돌아왔어요."
"아이고 정말? 근데 여기가 고향은 아니지 않어? 이 동네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아가씨는 처음봐."
"네, 이곳이 고향은 아니에요. 원래 고향이 이곳에서 멀지 않은곳에 있는데 재개발때문에 모두 밀어져버리는 바람에..."
"아, 그랬구먼... 그려, 잘 왔어! 여기가 제 2의 고향인가 뭔가 하면 되지! 우리가 잘 챙겨줄랑께 걱정하지 말어~"
"앗 감사합니다! 혹시 농삿일 힘드시면 저 부르세요! 서로서로 돕는거죠! 저 이래봬도 꽤 농삿일 잘해요!"
"아이고, 싹싹한거 봐. 우리 손주가 이랬으면 좋겠다야."
"하하하하-!"
"아, 참! 그리고 여기는 기이청년이여! 둘이 나이도 엇비슷해 보이는디 잘 지내! 기이청년네는 이 마을 터줏대감 집이여, 선조의 선조때부터 이 마을에서만 살아왔다네."
매니저의 시선은 기이를 향해갔고 둘은 눈이 마주쳤다.
"우와, 정말요? 저희 앞으로 잘 지내봐요!"
기이는 시골에서 살기가 보통 쉬운일은 아닐텐데 용감하다고 해야할지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네. 어려운 일이 있으면 편하게 부르시지요."
기이는 생긋 웃으며 매니저에게 말했다.
"정말요? 말만이라도 감사해요!"
사람들은 혼자 지낼 매니저가 걱정되고 안쓰러워 매니저에게 갓 수확한 자신들의 곡식들도 나누어주며 매니저를 도와주었다. 매니저도 받기만 할 수 없어 어르신분들의 농사를 거들어 드리며 농사를 지을때에 팁들과 조언들도 많이 받게 되었다.
그렇게 매니저가 이 마을에 온지 1달이 지났고, 기이도 오늘 박씨어르신의 복숭아 품앗이를 하러 갔다가 본 매니저의 열정적인 모습에 무엇인가 장하기도, 대단하기도 하였다. 품앗이를 하며 매니저의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니 매니저도 그 시선을 느꼈는지 기이를 보곤 환하게 웃어주었다.
자신에게 환하게 웃어주는 매니저를 보곤 기이는 잠시동안 그대로 멈춰질 수 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본 박씨어르신이 기이에게 와 말씀하셨다.
"어이, 기이. 저 처자가 마음에 드는가?"
"...네?? 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기이는 놀라 당황하였지만 어르신은 그런 기이에게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그렇게 당황해서 거짓말까지 할 필요 없다네. 자네가 매니저를 보는 눈빛이 꼭 내가 우리 부인을 좋아할때에 눈빛과 똑같아. 저 매니저와 자네를 보고있을때면 꼭 나와 내 부인을 보고있는것만 같네. 우리도 자네들 만큼 젊었을때 서로를 좋아하면서 좋아하지 않는척, 무척이나 신경쓰이면서도 신경쓰이지 않는 척.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둘 다 내성적이였던 탓인지 제대로 고백조차 하지 못하고 1년을 넘게 그 상태로 보냈었지. 그러다 어느날 다행이게도 하늘이 도운건지 어느날 갑자기 나에게 용기가 생기더군. 우리 부인은 바로 내 고백을 받았고, 그렇게 지금껏 살아왔지. 지금은 자네도 매니저도 확신이 없어보이는것 같네. 그래도 언젠가 확신이 생기거든 꼭 붙잡아야 하네. 하늘은 기회를 놓친자에겐 다시 기회를 주지 않거든. 난 자네들이 행복해지길 빌어."
"은희아빠! 어린애 잡고 뭣혀! 애 쉬게 두고 빨리와서 일이나 도와! 매니저 혼자 열심히 하고있잖여!!"
"아이고~ 가네 가. 알겠지? 꼭 붙잡아야 하네. 난 우리 아내를 만난게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이였다고 생각하거든."
"은희아빠!!!"
"아이고, 간다니까!"
기이는 어르신의 말을 듣곤 더욱 매니저가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매니저가 이 마을에 온지는 1달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서로에 대해 아는것도 별로 없으니 매니저는 자신에게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텐데 말이다. 그걸 알면서도 매니저가 신경쓰이는 기이는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할 시간에 복숭아 하나라도 더 따는게 효율적일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이는 일부러 생각을 하지 않기위해 더욱 열심히 복숭아를 땄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하다보니 뜨거운 햇빛아래 덥고 힘들었지만 일은 빨리 끝낼 수 있었다. 다들 일이 끝난 이제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때 매니저가 기이에게 찾아왔다.
"기이씨!"
"...매니저씨?"
일 때문에 잊고 있었던 매니저의 생각들이 일이 끝나자마자 기이의 머리 속에서 튀어나오고 있는 순간이였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게 이런것일까, 말도 아니고 생각이였는데 말이다.
"생각해보니까 제가 이 마을에 온지 벌써 한달이 넘어가고있는데 맨날 저도 기이씨도 일하느라 바빠서 제대로 이야기 한 번 못한것 같더라구요. 이 마을에 나이가 비슷한건 저희밖에 없는데도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매니저는 친하게 지내자는 의미로 자신의 오른손을 기이에게 내밀었다. 기이는 속으로 아까 어르신께서 말하신 기회가 이거였던걸까. 생각했다. 기이는 웃으며 자신의 오른손으로 매니저의 손을 잡았다.
"저도 잘부탁합니다. 매니저씨."
기이의 대답에 매니저는 생글 웃어보였다. 매니저는 기이에게 물었다.
"제가 처음 이곳에 와서 인사했을때는 되게 걱정이 많아보이는 표정이셨는데 지금은 안그러시는것 같아요."
"아, 제가 그랬습니까?"
기이는 능청맞게 물어보았다.
"네. 그래서 제 말에 '네, 잘 지내봐요.' 가 아니라 '네, 필요하면 부르십시요.' 이셨어요."
매니저도 장난을치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후후, 제가 그랬었나 보군요. 사실 산골짜기에 있는 이 마을까지 누군가가 이사올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었습니다. 시골에 살면서 힘든일들도 많을텐데 왜 이곳까지 오게되었을까 싶었지요. 그래서 힘든일에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도움을 드리고 싶어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 그래서 필요하면 부르라고 하셨던 거군요. 사실 그때도, 지금까지도 기이씨의 그 말 덕분에 되게 든든했었어요. 어렸을때부터 시골에 살았던지라 큰 어려움없이 다행히 잘 지내고 있는것 같아요. 마을 어르신 분들께서도 너무 잘 대해주셔서 더욱 적응을 잘 할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인지 기이씨가 초반에 걱정해주시던 표정들이 다 사라지신것 같아요."
"후후, 제가 얼굴에 티가 많이 나는 사람이 아닌줄 알았는데 아니였나봅니다. 그때는 걱정이 되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다른분들의 품앗이도 해주시고 참 기특하십니다."
"우와, 저 기특하다는 말 진짜 오랜만에 듣는것 같아요. 한 15년만에 듣는것 같은데요?"
"오랜만에 들으시니 기분이 어떠신지요?"
"뭐, 나쁘지 않네요~ 아, 그러고 보니 기이씨의 가족분들께서는 선조의 선조때부터 이 곳에서 살아오셨다고 했죠?"
"네, 저희 조상때부터 이 곳에 살아왔다고 들었습니다. 뭐, 지금은 저 혼자지만요, 후후."
"...네?"
깜짝놀란 매니저는 기이를 쳐다봤다.
"...단순한 사고였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저 혼자밖에 남지 않았더군요. 그 당시에는 추억이 많은 이곳을 떠날까 생각도 했습니다만, 이 곳을 잘 지켜서 추억을 간직하는게 더 좋을것이라고 생각해서 이곳에 남게 되었습니다. 마을 어르신 분들께서도 너무나 잘 챙겨주시기도 했고요, 후후."
기이는 덤덤히 과거의 일들을 매니저에게 말해주었지만 비슷한 슬픔을 가지고 있는 매니저는 기이의 눈에서 슬픔과 외로움을 보았다. 매니저도 잠시 망설이다 말을 꺼냈다.
"...그러셨군요. 사실 저도 비슷해요. 불의의 사고로 부모님과 동생들까지 잃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곳으로 저 혼자서만 이사오게 된거였어요. 그래도 아까 기이씨가 말씀하셨던것처럼 마을 어르신분들께서 너무 잘 대해주시고 잘 챙겨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농삿일이던 뭐던 제가 해드릴 수 있는것들은 다 해드리고 싶어요. 정말 이곳에 제게 제 2의 고향이니까요."
기이도 매니저의 말을 덤덤히 들어주었다. 매니저의 말 이후 두 사람 사이에선 정적이 흘렀지만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달래주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기이~ 매니저~ 이리와서 수박들 좀 먹어! 제일 열심히 일해줬는데 제일 많이 먹어야지들~"
"네! 갈께요! 갈까요, 기이씨?"
"네, 갑시다."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수박을 먹으러 향했다. 두 사람은 방금 대화들로 인해 서로가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고 심적으로 조금 다가가졌다.
이후 두 사람은 종종 마을일과 농삿일들을 거들어주며 만나게 되었고 둘은 점점 더 친밀감이 쌓여갔다. 친밀감이 더욱 높아질수록 두 사람은 알게모르게 서로의 대한 마음도 더욱 커져만 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바쁘게 지내다보니 어느새 가을이 찾아왔다. 괜히 가을을 추수의 계절로 부르는것이 아니기때문에 일이 더욱 많아지고 바빠져만 갔다.
하루는 앞집 장씨 어르신네 밤 따는것을 도와드리고, 또 하루는 뒷집 이씨 어르신네 고구마 수확을 도와드리고, 하루는 옆집 박씨 어르신네 땅콩 수확을, 하루는 본인 농사일, 하루는 저 뒷집 신씨 어르신네마늘과 양파심기를 도와드리느라 매니저와 기이 둘 다 엉덩이 한번 못붙이고 눈코 뜰 새 없이 지내야만 했다. 내가 이 곡식을 수확하는건지 이 곡식이 나를 수확하는건지 모를만큼 말이다.
"하아아...오늘도 힘들었다..."
매니저는 일을 다 끝내고 잠시 마을 정자에 앉아 가을의 시원해진 바람을 맞고있었다.
"진짜 가을이구나...바람이 시원해졌어. 하긴, 진짜 가을이니까 벼가 익어가고 밤을따지... 은행도따고...고구마도..."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기이는 매니저가 정자에 기대서 앉아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기이는 장난끼가 발동해 몰래 매니저가 앉은 자리 뒤쪽으로 향했다.
"벌써 매니저씨가 이 마을에 오신지도 꽤 오래 지났군요."
"그러게ㅇ... ?!?!? 기이씨?!? 언제오신거에요? 깜짝놀랐잖아요!! 저번에도 한번 이러시더니 계속 이러시기에요?"
기이는 심장을 부여잡고 큰 눈을뜨며 놀라하는 매니저에게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 놀라셨습니까? 매니저씨가 너무 좋은표정으로 계시길래 한번 와봤습니다만, 금방 표정이 무너지시더군요."
"아, 아까 가만히 앉아있다보니까 바람이 시원하길래 진짜 가을이구나 싶었거든요. 근데 진까 가을이니까 내가 밤을따고 은행도 따는거지 싶어서 금방 표정이 일그러졌던것 같아요, 하하. 아니 근데 어떻게 발소리도 없이 오셨데요?"
"발 뒤꿈치를 때고 걸으면 소리가 안난답니다, 후후!"
"아...?? 잠깐만, 그러면 진짜로 저를 놀래키려고 마음먹고 오신거였어요?"
기이는 말없이 매니저를 보며 웃어보였다.
"와, 기이씨 두고봐요. 언젠간 제가 꼭 발꿈치 때고 걸어가서 기이씨를 놀래켜 드릴꺼에요."
"오, 기대하겠습니다. 후후!"
"기대말고 각오하세요!"
기이는 자연스레 정자로 올라가 매니저 옆에 앉았다. 매니저는 기이를 한번 장난스럽게 째려보곤 말했다.
"정말 제가 온지도 꽤 되었네요. 시간은 정말 훌쩍 훌쩍 가버리는 것 같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봄에 심었던 곡식들이 이렇게 자라고 열매를 맺는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어느덧 벌써 추수를 하게 되었으니 이제 눈이 오는것도 얼마 남지 않았을테죠."
"생각해보니까 정말 그렇네요. 이제 겨울도 금방 오고 눈도 금방 오겠죠? 오랜만에 첫 눈 오기 전 봉숭아 물이라도 들여볼까 생각중이에요."
"오호, 좋은 생각이군요. 혹시 좋아하는 상대라도 있으신겁니까? 후후!"
기이는 능청스럽게 매니저에게 물어보았다. 그 말을 들은 매니저는 싱긋 웃으며 기이를 바라보곤 말했다.
"이 마을에서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기이씨 밖에 없지 않을까요?"
"...네?"
"농담이에요~"
기이는 순간 매우 깜짝놀라고 당황했지만 농담이라는 매니저의 말에 다행스럽기도, 섭섭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아마 기이가 지금껏 살면서 가장 표정관리가 안되었던것이 오늘이였을것이다.
"깜짝 놀랐잖습니까... 매니저씨가 농담에 재능이 있으신줄 몰랐습니다, 후후."
"기이씨도 놀라실때가 있네요. 매번 놀래키시는걸 잘하시길래 내성같은게 있으실 줄 알았어요."
"후후, 저도 사람이랍니다. 놀래키는데에 재능이 있는건 맞지만 안 놀라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건 조금 다른종류의 놀람이랄까요?"
"아, 그러려나요. 그럼 이제 기이씨가 놀라신다는것도 알았으니까 저도 기이씨 막 놀래켜드려야겠네요."
"각오를 단단히 하고있어야겠습니다, 후후!"
매니저와 기이는 즐거운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까 이제 곧 추석이네요?"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기이와 매니저는 내색은 안했지만 '우리 둘 다 추석이 그렇게 기쁘지는 않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둘은 동시에 말을 꺼냈다.
"기이씨."
"매니저씨."
"아, 저희 둘 통했네요."
"후후, 그랬군요. 먼저 말씀하시죠."
"그게, 추석때는 마을 어르신분들도 어르신분들의 가족분들이 이곳으로 찾아오실테니까... 혹시 추석때 저희집으로 초대드려도 될까해서요."
"저희 말만 통한게 아니라 그 생각들도 함께 통했나보군요. 사실 저도 저희집으로 모셔도 될까 생각했습니다."
"우외 정말요? 신기하네요. 그럼 첫째날엔 저희집으로 오시고 둘째날엔 제가 기이씨 집으로 가도 괜찮을까요?"
"음, 첫째날을 저희집으로 하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아, 그럴까요? 전 상관없어요!"
"네, 그러면 첫째 날 저희집으로 오시지요."
"네! 저희끼리니까 뭐 준비하고 말것도 없이 그냥 조촐하게 해요."
"네, 그러죠. 매니저씨도 뭐 준비해오지 마십시요, 아셨죠?"
"네, 기이씨도 뭐 준비하지 마세요. 아셨죠?"
"알겠습니다."
매니저와 기이는 그렇게 약속을 하였고,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내색은 안했지만 추석날만을 기다렸다. 그동안 하는 모든 일들이 힘들지 않을만큼 둘은 추석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추석 당일날. 서로 챙기지 말자고는 하였지만 매니저는 아침일찍 일어나 종류별로 다양한 전들을 부치고, 잡채를 준비했다.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매니저는 기이의 집으로 향했다.
"기이씨, 들어가도 될까요?"
"매니저님 오셨습니까, 어서 들어오시지요."
기이는 매니저를 환하게 반겨주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매니저가 기이의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매니저를 반긴것은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차려진 김이 모락모락나는 밥상이였다.매니저는 눈이 휘둥그래져서는 기이에게 물었다.
"?!?! 기이씨...!! 이 많은걸 다 기이씨가 하신건..."
이번에도 기이는 말 없이 웃으며 매니저를 쳐다보았다.
"저희 서로 아무것도 안하기로 약속했으면서 이렇게 혼자 많은걸 준비하시면 어떡해요...!! 제가 너무 죄송해지는데... 이러실 줄 알았으면 제가 더 빨리와서 도와드릴껄..."
"아닙니다, 그렇게 어려운것도 아니고 많은양을 한것도 아니니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매니저씨께서도 약속을 어기시고 이렇게 전과 잡채도 해오셨지 않습니까."
"아니 그래도 그렇지...저는 엄청 조촐한거 몇개만 해왔을 뿐이고..."
"조촐하다니요. 제가 한것도 큰 것이 아닙니다. 음식들이 식기전에 밥부터 드시지요."
밥을 먹는 내내 매니저는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첫째날을 자신의 집으로 하자고 할걸. 너무 후회가 되었지만 야속하게도 기이의 음식들이 너무 맛있었다.
"기이씨...이렇게 준비하시려고 첫째날을 바꿔달라고 하신거죠? 그때 상관없다고 말하는게 아니였어요... 죽어도 상관 있다고 할껄...!!"
"후후, 아닙니다. 언제가 한번쯤은 꼭 대접해드리고 싶었습니다. 혹시 맛이 없으신건..."
"아니요!! 너무 맛있어요! 자꾸 그때 날을 바꿔드린게 후회가 되는데 기이씨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지금 되게 싱숭생숭해요..."
"후후, 맛있다니 다행입니다."
"진짜 너무 맛있어요! 진짜 다음번엔 제가 거하게 차려드릴께요, 진짜로! 매번 기이씨한테 받기만 하고... 진짜 제가 맛있는거 해드릴께요...!!"
"아닙니다, 마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아니요. 제가 안충분해요. 감사는 2배로 갚아야죠. 꼭 기다리세요, 아셨죠??"
매니저의 부릅 뜬 두 눈동자엔 의지가 활활 타고있는듯 했다. 그 눈을 본 기이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기대하지요."
"진짜로 기대하세요!"
둘은 맛있게 밥을 먹고나서 함께 상을 치우곤 그동안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이번 농사는 비가 많이와서 유난히 힘들었다.' '그래도 수확물들을 보니 기분은 좋다.' 둘은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한참을 이야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이야깃거리들이 조금씩 떨어져갈때쯤 매니저가 명절분위기라도 내자며 고스돕을 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윳놀이는 둘이서 하면 재미 없으니까 고스돕치시는거 어떨까요?"
"오호, 고스돕이라, 좋지요. 하지만 절 못이기실텐데요?"
"참, 누가 할 소린데요. 기이씨 저 절대 못이기실껄요? 음, 내기할까요? 10판해서 이기는 사람 소원들어주기 어때요?"
"좋군요, 내기까지 했으니 안봐드릴겁니다? 후후!"
"저야말로 안봐드릴거예요~"
둘은 한참동안 엎치락뒤치락 하며 재미있게 고스돕을 쳤다.
"붙어라 붙어라 붙어라...!!"
매니저가 패를 뒤집자 매니저가 낸 패의 짝이 나왔다.
"오예!! 자, 저 점수 났어요. 그러면 6대4로 제가 이겼네요!"
"후후, 제가 질줄이야... 대단하시군요, 매니저님."
"뭘 이정도로요~"
"소원은 생각해보셨습니까?"
"음, 생각해놓은게 하나 있는데 기이씨 마당에 피어있는 봉숭아꽃 좀 따가도 될까요? 저희집엔 봉숭아가 안피더라구요..."
"엄청 거대한걸 바라실 줄 알았는데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요? 후후. 얼마든지 따다 가시죠."
"전 봉숭아도 거대한 것 인걸요? 소원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별말씀을, 후후."
어느덧 해는 저물고 보름달에 가까운 커다란 달이 두사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요.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는것이 어떠십니까?"
"아, 벌써 시간이... 그래야겠네요."
"가시죠, 제가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저희집 꽤 먼데 저 데려다 주시고 다시 오시려면 기이씨 두 번 걸음하시는거잖아요. 오늘 안그래도 피곤하셨을텐데 저 혼자가도 괜찮아요!"
"집도 꽤 먼데 매니저씨 혼자 가시면 제가 안괜찮습니다. 같이 가시죠."
기이는 자신이 먼저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봉숭아도 따셔야 하지 않습니까. 어서 오시죠."
매니저는 마지못해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매니저가 나오는 동안 기이는 먼저 가장 예쁘게 핀 봉숭아 꽃과 잎을 따고 있었다. 매니저는 기이의 옆으로 가서 같이 봉숭아를 따며 말했다.
"저 진짜 혼자가도 괜찮아요. 안그래도 오늘 음식하시느라 피곤하셨을텐데..."
"전혀 피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암만 피곤하더라도 매니저씨를 혼자 가도록 하진 않을겁니다."
그 말을 들은 매니저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부끄러워 뜨거워진 손으로 봉숭아를 따는척을 하는것 밖엔.
"어...얼추 다 딴것 같아요...!! 이제 슬슬 출발할까요...??"
"네, 그러시죠."
둘은 매니저의 집으로 향하며 시원해진 가을의 바람을 마음껏 느꼈다. 시원한 바람은 두 사람주변을 맴돌며 두 사람을 감싸는 듯 싶었다. 두 사람은 별 다른 말을 하진 않았지만 둘 사이의 공기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지만 둘 사이의 공기는 따뜻했다.
매니저의 집까지 최대한 천천히 걸었지만 왜인지 뛰어서 집으로 향할때보다 더욱 빨리 도착한 느낌이였다. '내일 또 만날테니까 아쉬워하지 말자...' 하고 생각하고 있는 두 사람이였다.
"데려다주셔서 감사해요 기이씨. 오늘 정말 너무너무 감사하고 즐거웠어요. 정말 감사해요."
"아닙니다. 저도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명절다운 명절을 보낼 수 있게 된것은 모두 매니저씨 덕분입니다."
"저도 정말 오랜만에 그렇게 따뜻하고 맛있는 밥도 먹어보고 명절다운 명절을 보낼 수 있었어요. 감사해요, 기이씨. 내일은 몇시쯤에 오시겠어요?"
"내일은 한 점심때쯤에 가도 괜찮으실지요?"
"네! 점심때쯤 오세요. 제가 점심 준비해 놓을께요. 기이씨만큼은 무리겠지만...! 최대한 맛있게 준비해 놓을께요!"
"알겠습니다. 대신 무리하지는 마십시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네, 내일봬요!"
돌아가는 기이의 발걸음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기이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있는 매니저도 기이가 자신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때까지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다음날이 되었다. 두 사람 모두 어젯밤은 유난히 짧고도 길게 느껴졌다. 매니저는 어제 기이의 대접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음식들을 장만했다. 어제 만들어 놓았던 잡채와 전도 더 만들고, 나물들도 몇가지 준비했다. 그리고 소고기 무국과 오늘 아침에 마을 어르신 분께서 주신 송편도 같이 올려놓았다. 막 상 차리기가 끝나갈때쯤 기이가 매니저의 집에 도착했다.
"매니저씨, 들어가도 괜찮으십니까?"
"아, 기이씨 오셨어요! 들어오세요, 딱 맞은 시간에 오셨네요. 지금 막 상 다 차렸거든요."
매니저는 기이를 데리고 부엌으로 향했다.
"어제 기이씨가 제게 해주신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소박하지만...! 그래도 맛있게 드셔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이는 잠시동안 아무말이 없었다. 그래서 매니저는 '무슨일이지, 왜 아무말이 없으신거지, 내 음식들이 너무 맛이 없어보이는건가, 너무 소박해서 그런가.' 하며 온갖 잡생각들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게 소박하다니요. 다 매니저씨의 정성으로 만드신 음식들이지 않습니까. 저도 남이 해준 따뜻한 밥을 오랜만에 먹을 수 있겠군요.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매니저씨."
"네, 맛있게 드세요!"
매니저는 속으로 '다행이다' 를 수 없이 말 한것 같다.
"...맛이 어떠세요??"
"아주 맛있습니다. 어제 제 음식들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말입니다."
"에이, 아니에요! 어제 기이씨 음식들이 얼마나 맛있었는데요! 진짜 제 음식들보다 100만배는 더 맛있었어요!"
둘은 서로의 음식들을 칭찬하며 즐겁고 맛있게 밥을 먹었고 짧고도 긴 이틀을 함께 있다보니 얼마만의 사람의 정이 있는 추석인지 두 사람 모두 너무나도 좋고 행복했다.
밥을 다 먹고 난 후 매니저는 기이에게 말했다.
"기이씨, 우리 같이 봉숭아물 들이는거 어떠세요?"
"...봉숭아물을 말입니까?"
기이는 매니저의 말의 약간 당황한 표정이였다.
"네, 봉숭아는 충분히 많이 있고 기이씨 집의 봉숭아였으니까 같이 들이면 뭔가 의미있을것 같아서요! 아, 혹시 싫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아, 싫은게 아닙니다...! 사실 봉숭아 물을 태어나서 단 한번도 들여보지 않아서..."
"아 정말요? 그럼 저랑 처음 들이시면 되겠네요! 절구랑 백반 가져올께요~ 아, 비닐장갑이랑 고무줄도!"
"아..."
매니저의 초롱초롱하고 기대에 차있는 눈빛에 기이는 차마 거절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기이도 속으론 함께 같이 물들이면 좋을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 먼저 봉숭아 꽃이랑 잎을 이렇게 빻아주고 어느정도 빻았으면 백반을 넣어요. 백반을 넣고 계속 빻다보면..."
매니저의 열중한 모습에 기이는 자연스래 미소가 나오고 있었다.
"...됐다! 이렇게 되면 다 된거예요! 그런데 이게 봉숭아를 올려놓고 잠시 기다려야 돼서 제가 기이씨 먼저 해드릴께요."
"네, 그럼 제 손이 완성되면 제가 매니저씨 손을 해드리면 되겠군요."
"네, 그쵸! 자, 먼저 봉숭아를 이렇게 손톱에 올려두고 비닐장갑을 이렇게 손가락 부분만 잘라서 봉숭아 올려놓은 손가락에 끼우고 고무줄로 막아놓으면 돼요! 꽤 어렵지 않죠?"
"오, 신기하면서 재미있군요, 후후! 어린시절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저도 봉숭아 물만 들이면 꼭 어렸을때가 생각나더라구요. 그런데 앞으론 봉숭아물을 들이면 지금 이 순간의 기억이 날것같아요. 엄청 좋은 추억이 하나 만들어진것 같아서 기분 좋네요."
지금 이 말을 한 매니저도 이 말을 들은 기이도 얼굴이 빨개진채로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웃으며 떠들다 보니 어느새 기이의 손은 열 손가락 모두 봉숭아로 가득해졌다.
"기이씨 손 다 완성 되었어요! 이 상태로 한 20분에서 30분정도 기다리면 될거예요!"
"30분동안 이렇게 하고 있어야 하니 꽤 답답하겠군요."
"맞아요, 어렸을때는 백반으로 말고 소금으로도 해봤었는데 소금은 색이 엄청 늦게 나와서 2시간동안이나 그렇게 있어야 했었든요. 그때는 정말 힘들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답답하다고 칭얼대면서도 끝까지 하고있던게 기억나요.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좋은추억으로 남아있어요."
"저도 오늘 일은 꼭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을것 같습니다."
매니저는 기이의 말에 웃으며 말했다.
"오늘을 그렇게 좋은 추억으로 남겨주신다면 전 너무 행복 할 것 같아요."
어느덧 30분은 훌쩍 가고 매니저는 기이의 손가락을 풀렀다. 다행이도 손톱 옆으로 번지지도 않고 색도 너무 진하지 않은 홍시색으로 잘 들여졌다.
"우와, 기이씨 완전 잘됐어요! 어때요? 예쁘죠!"
"매니저씨가 잘 해주신 덕에 정말 예쁘게 나와주었군요, 감사합니다."
"에이, 뭘요~ 색이 예쁘게 나와줘서 정말 다행이에요."
"저도 매니저씨 손을 이렇게 예쁘게 해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후후."
"처음해보는건데 못하면 어때요. 전 기이씨가 제 손을 물들여 주셨다는 것 만으로도 엄청 행복하고 의미있으니까 못해도 괜찮아요."
기이는 매니저의 말에 경직되어 있던 손이 점차 따뜻해지며 녹아가기 시작했고, 매니저의 '행복하고 의미있다.' 는 말에 기이의 얼굴까지 따뜻해지는것만 같았다.
"봉숭아물을 들이니 왠지 조선시대에 와있는 기분이군요. 자, 그럼 올려드리겠습니다 아가씨?"
기이의 갑작스런 능청맞은 장난에 매니저는 쿡쿡 웃으며 말했다.
"네, 가장 예쁘게 올려주시지요 도련님~"
기이는 봉숭아를 매니저의 손에 하나씩 올려주었다. 매니저의 손에 봉숭아물을 들여주는 기이의 손은 크고 따뜻했다. 서툴지만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올려주는 기이의 모습에 매니저는 기이 덕분에 손톱뿐만 아니라 볼까지 봉숭아꽃의 색으로 물들고 말았다.
그럴수록 매니저는 점점 기이를 의식하게 되고 말았다. 자신이 기이에게 봉숭아물을 들여줄때 기이도 이런 마음이였는지. 매니저의 손은 점점 뜨거워졌고 손에 점점 땀이 나는것만 같았다. 점점 뜨거워져가는 손에 당황한 매니저는 최대한 다른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매니저가 자기 최면을 걸며 다른생각들을 하고있는 동안 어느새 기이는 매니저의 열 손가락에 모두 봉숭아를 올려주었다.
"매니저씨, 완성되었습니다."
"우와, 기이씨 완전 잘해주셨는데요? 솜씨가 보통이 아니세요!"
"아닙니다, 매니저씨에 비하면 전 아마추어인걸요. 후후."
"에이, 이정도면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시죠! 30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네요."
"제가 빨리 지나가도록 마법을 걸어드리죠. 얍."
기이는 매니저의 손을향해 자신의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마법을 거는듯한 시늉을 하였고 그 모습을 본 매니저는 기이의 너무 재밌고 귀여운 모습에 빵 터지고 말았다.
"아하하하-! 그게 뭐에요 기이씨! 진짜 완전 빵터졌어요!"
매니저의 함박웃음에 더욱 기분이 좋아진 기이도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기이의 마법 덕분인지 재미있게 웃다보니 어느새 30분이 시간을 뛰어넘은듯이 지나고 있었다. 30분이 지나 기이는 매니저의 손가락을 풀어주었고 매니저의 손에도 딱 예쁘게 잘 익은 홍시의 색이 물들어있었다.
"우와, 기이씨 너무 예쁘게 잘되었어요! 진짜 예뻐요! 정말 가장 예쁘게 해주셨네요!"
"아가씨의 요청이셨으니 당연히 들어드려야지요."
기이는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매니저도 역시 맞장구를 쳐주며 이야기했다.
"솜씨가 끝네주시네요, 도련님~ 다음번에도 부탁드려야겠어요!"
"아가씨의 부탁이라면 얼마든지요."
매니저와 기이 모두 능청맞게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지었다.
그렇게 웃으며 놀다보니 어느덧 시간은 밤이 되었고 밤 하늘엔 매우 커다랗고 노란 보름달이 온 밤하늘을 빛내며 아름답게 떠있었다. 밤 하늘을 먼저 본 매니저는 기이에게 마루로 나가자고 하였고 매니저와 기이는 마루에 걸터앉았다.
"진짜 정월대보름날이네요. 보름달이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요."
"그러게 말입니다. 정월대보름엔 역시 보름달에 소원을 빌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하죠. 빨리 같이 소원빌어요!"
매니저와 기이는 두 손을 꼭 모으고 눈을 감은채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소원을 먼저 빈 기이가 눈을 뜨고 매니저를 바라보자 매니저는 마지막으로 소원을 한가지 더 빌고 눈을 떴다.
"무슨 소원을 비셨습니까?"
"음, 원래 소원은 알려주면 안되지만 기이씨니까 특별히 알려드릴께요. 내년 농사들도 잘 되게 해주시라고 빌었어요. 기이씨는요?"
"저도 내년 농사도 잘 되게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런데 매니저씨, 그 소원만 비셨는데 저보다 늦게 비셨습니까?"
"아, 어떻게 아셨어요? 사실 너무 유치한 것 같아서 말 안해드리려고 했는데 첫눈 오기전까지 봉숭아물이 빠지지 않게해달라고 빌었어요...!!"
"그 말씀은..."
" 기...기이씨는 소원 하나만 비셨어요?"
"...사실 저도 하나 더 빌긴 했습니다. 내년 추석에도 이렇게 매니저씨와 보내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매니저의 말을 들은 기이도, 기이의 말을 들은 매니저도 둘 다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게 물들었다. 한참을 서로를 바라보지 못한 두 사람은 자신의 심장소리를 가려주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고마울 뿐이였다. 그러다 침묵을 먼저 깬건 매니저였다.
"...기이씨. 조금 이르지만 다음 추석도 저랑 같이 보내주시겠어요?"
매니저는 붉어진 볼과 떨리는 목소리로 기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매니저의 말을 들은 기이는 얼굴이 더더욱 빨개지며 눈이 휘둥그래졌다. 기이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하지요. 매니저씨, 조금 이르지만 첫 눈이 오는 날엔 저를 만나주시겠습니까? 달님께서 그 날에 꼭 제가 매니저씨께 전해야 할 말이 있다고 하시는군요."
"그럼요. 첫 눈이 오는 날은 제가 꼭 기이씨께 달려갈께요."
어두운 밤하늘, 밝은 보름달아래. 매니저와 기이는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로 서로의 손을 잡으며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고도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下情人 사극풍 동양풍노래 아련한피아노 음악모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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