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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과 함께 감상해주세요.
옥상에서 만나요 / 키즈(@KIZ99AFTERLIFE)
1.
「비상시 외 출입 금지」
옆 학교에서 과학 실험을 하다가 화재가 났었다고 했나. 3층 과학실에서 불이 크게 나 4층에서 수업을 듣던 학생들이 옥상으로 대피하는 일이 있었다고 듣기는 했다. 그 이후 얼마 전까지는 불량 학생들의 아지트가 될까 굳게 잠가놓았던 옥상 문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이 학부모회에서 나왔다지. 관리 문제로 옥신각신하더니 결국 학부모회가 이겼나 보다. 옥상 문은 끼이익 낡은 소리를 내며 쉽게 열렸다. 위협적이게 보이려 빨간 글씨로 적었을 경고문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비상시 외 출입 금지라. 엄연히 따지면 지금은 내게 비상시다.
고등학교 3학년에게는 여름방학이 없다. 자율이라는 이름의 강제 학습을 위해 이 무더운 여름에 학교로 끌려왔다. 선생들은 칠판에 ‘자습’이라는 단어 하나 적어두고 에어컨 빵빵한 교무실로 돌아갔다. 에어컨이 22도로 고정되어 미적지근한 바람만이 나오는 교실에 고3들을 버려두고.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 있다면 감시하는 선생이 없으니 크게 떠들지만 않으면 딴짓이 자유롭다는 건데, 딴짓도 하루 종일 하니까 지겨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니 이건 생명에 위협이 되는 비상시가 맞다.
자습 중에 몰래 빠져나오면 너무 티가 나니까 일단은 쉬는 시간이 될 때까지 버텼다. 그리고는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교실에서 튀어나왔다. 짧은 휴식의 끝을 알리는 종이 쳤지만 교실로 돌아가지 않았다. 우리 반 반장은 생활기록부에 한 줄 남기겠다는 이유로 지원한 녀석이라 반장으로서의 사명감을 발휘해 나를 잡으러 오진 않을 것이다. 성적이 좋으니 제 공부나 열심히 하고 있을 테지. 게다가 나도 양심 없게 모든 시간을 땡땡이칠 생각은 아니다. 잠깐만 쉬다가 돌아갈 거라고! 듣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변명하며 옥상에 발을 들였다.
전교생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조회를 할 때마다 ‘전통 있는 우리 학교는~’이라고 운을 떼더니, 학교 옥상의 녹색 우레탄 코팅이 정말 전통적이다. 옥상에 뭐가 있는지 항상 궁금했었는데, 커다란 에어컨 실외기 여러 개가 큰 소리를 내며 뜨거운 바람을 뿜고 있었다. 한여름 강렬한 태양에 뜨겁게 달궈진 옥상 바닥에서는 고무 녹는 냄새가 났다. 일부러 한 사이즈 크게 신고 다니는 슬리퍼가 바닥과 마찰하며 기긱기긱 소리를 냈다.
막상 올라오고 나니 오래 있을 곳은 못 되는 것 같다. 옥상은 여름이라서 뜨겁고, 시끄럽고, 흙탕물이 말라붙은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으며 진짜 별거 없었다. 실망이다. 나름 기대했는데. 이게 다 대중매체에서 학교 옥상을 낭만적으로 보여줘서 그렇다. 괜히 기대하게 만들잖아!
뭐, 하나 좋은 점이 있다면 하늘이 가까워 보인다는 거. 학교 근처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뻥 뚫린 하늘이라 더 그래 보이는 걸지도 모르겠다. 기왕 올라왔으니 잠깐은 있다가 가야지. 열고 들어온 문 옆이 그나마 그늘이라 바닥이 덜 뜨거웠다. 손바닥으로 만져보니 따끈한 정도. 화상 입을 걱정은 없겠다 싶어 그대로 털썩 앉았다.
그늘에 앉아있으니 제법 버틸 만했다. 간간이 바람도 불었다. 후덥지근한 바람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미지근한 에어컨 바람보다야 건강에는 좋겠지. 초록색 바닥도 계속 보다 보니 정감이 가고 실외기 소리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여름방학 자율학습에 체육은 없었으므로 운동장이 고요했다. 어쩐지 학교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다. 나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불가항력이었다고 변명해본다. 흥의 민족으로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지 않나.
…… 처음에는 멜로디만 새어 나오던 입에서 점점 가사가 튀어나온다. 나만 아는 가사. 다듬어지지 않아 투박하고 아직 미숙한 이야기들. 아무도 없기에 부를 수 있는 노래였다. 누가 듣는다면 부끄러워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운동장으로 내려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눈을 감았다. 입은 여전히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딱히 이대로 잘 생각은 아니지만 잠들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어차피 종 치면 깰 수 있을 테니까.
2.
“와, 노래 진짜 잘한다.”
나 지금 운동장으로 뛰어야 하는 상황인 거지.
눈을 감고 대충 세 곡 정도 부른 것 같은데. 그럼 10분 남짓의 시간이 흘렀다는 말이고. 혹시 그 사이에 잠이 들었나?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 시간 옥상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을 리가……. 목소리가 앳된 것을 보니 선생님은 아닌 것 같고. 슬그머니 눈을 떴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하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시선을 올렸다. 마치 후광처럼 그 뒤로 해가 떠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뭐해? 땡땡이? 헉! 혹시 양아치인가?”
“양…… 아니거든!”
안 그래도 무섭게 생겼다는 말 많이 들어서 고민인데! 울컥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갔다. 사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가고 있었는데 감각이 한순간에 돌아오는 기분이다.
“아하하! 미안, 미안. 장난이야. 진짜 양아치 같으면 말 안 걸었지.”
눈을 비비고 앞에 서있는 애를 똑바로 쳐다봤다. 이제야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얘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쿡쿡대며 웃고 있다. 평소라면 왜 웃어! 내가 웃겨?!라며 한 마디 해줬을 텐데. 여름이라 더워서 기운이 없나, 그냥 멍하니 걔가 웃는 걸 보고만 있었다.
“아까 부른 노래,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누구 노래야?”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학교 옥상에서 노래야 부를 수 있다고 치자. 그렇지만 내가 부른 건……. 처음 듣는 노래일 수밖에 없지. 내가 작사 작곡한 노래니까. 아무한테도 알려준 적 없는 내 노트에만 고이 적혀있는 노래. 침착하자, 침착. 침착…… 할 수 있겠냐고! 민망함에 말이 세게 나갔다.
“그, 그걸 알아서 뭐 할 건데.”
“엄청 좋아서! 혹시 내가 모르는 가수면 오늘부터 팬 하려고.”
그런 말에 넘어갈 줄 아냐.
“……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로 해. 쪽팔리니까.”
…… 어떻게 알았담. 나도 이런 내가 우스운 건 안다. 하지만 팬이라니. 나한테 있어서 이렇게 낯간지럽고 기분 좋은 말이 또 있을까.
"네가 만든 노래라고?! 굉장하다!"
그 애가 눈을 반짝였다. 부담스럽지만 싫지 않았다. 괜히 멋쩍어서 흘러내린 앞머리가 눈을 가리도록 그냥 뒀다. 익숙하지 않은 시선을 직접 맞으니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기에 뭐라도 하나 가림막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얘는 내가 시선을 피하는 거에 아랑곳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옆에 앉았다. 직전까지 에어컨 바람이라도 쐬고 있었는지 닿지도 않은 팔이 서늘했다.
“왜 이 시간에 여기 있나 했는데. 공부보다 중요한 걸 이미 찾았구나? 땡땡이칠 만하네.”
“그럼 너는 칠만한 사정이 있어서 땡땡이치냐?”
나도 모르게 팔을 몸 가까이 붙였다. 멀어진 거리만큼 얘는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렇게 보니 땡땡이라는 말이 참 안 어울리는 얼굴이다. 딱 모범생같이 생겼는데. 솔직히 말하면 땡땡이친 학생을 잡으러 왔다고 하는 쪽이 신빙성 있다. 팔을 감쌌다. 뜨끈한 공기에 열이 오른팔은 땀이 맺혀 손바닥에 끈적하게 붙었다 떨어졌다.
“반장할 것 같이 생겨서는.”
“어! 맞아. 나 반장인데.”
얘는 그렇게 말하며 짝, 손뼉을 쳤다. 리액션이 되게…… 옛날 사람 같다. 게다가 자랑스럽게 할 말은 아니지 않나. 반장이 왜 자습시간에 옥상에 올라와 있는데. 직접 물어보려다 히죽거리며 웃는 얼굴에 입을 다물었다. 모범생도 땡땡이 칠만큼 여름방학 보충수업이 지루한 거지. 혼자 결론을 내리고는.
딩-동-댕-동.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종 쳤네, 가야겠다! 나는 도망치듯 옥상을 빠져나왔다. 이상한 애였다. 그렇지만 굉장하다!고 말해준 목소리가 자꾸 생각나 기분이 간지러웠다.
3.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습은 지겹고, 담임은 내가 자습 시간에 교실에 없던 걸 모르는 것 같고. -사실 이건 좀 실망했다. 반 애들 나한테 관심이 없나? 이르는 사람 하나 없다니– 좀이 쑤셔 결국 또 옥상에 올라왔다. 그, 몇 반인지 모르겠는 반장도 있으려나? 까지 생각하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나, 사실은 쉬운 남자였던가. 칭찬 한 번에 이렇게 허물어지고. 아무래도 모범생 같으니 또 땡땡이를 치지는 않겠지.
“안녕!”
아니네. 있네. 모범생이라며. 반장이라며. 이렇게 학교 옥상에서 보충수업 땡땡이쳐도 되는 거야?
“좋은 오후야, 시안.”
게다가 뭐야,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지. 나도 모르게 생각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얘는 셔츠 주머니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 보였다. 주머니가 왜? 내 교복 셔츠를 내려다봤다. 쟤한테는 없고 나한테는 있는 셔츠 위 노란 사각형이 눈에 띄었다. 빨래 몇 번 했더니 끄트머리가 다 일어난 채 붙어있는 명찰. 명찰 보고 알았구만.
“이름 알았으니 담임 찾아서 이를 거냐?”
“우리 공범인데 무슨.”
진짜 이를까 걱정해서 물은 말은 아니었지만 태연하게 받아치는 게 얘도 보통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네. 혼나는 건 별거 아니지만 담임 혼낼 때 소리 지르는 건 좀. 꼭 고양이 하악질 같아서.”
“고양이 하악질 같다니, 혹시 냥선생님?”
“어. 유명하지?”
“아하하. 시안, 냥선생님 반이구나?”
얘는 내가 냥쌤 반이라는 게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크게 웃었다. 하긴, 그 쌤 별종인 건 다 아는 사실이니까. 냥쌤을 아는 걸 보니 나랑 같은 학년인 게 확실한 것 같고. 쌤은 매번 3학년만 맡았다고 했으니까. 아니, 애초에 추론할 필요도 없다. 여름방학에 학교에 나오는 학생은 3학년뿐이니.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다른 학년도 신청한 사람들은 학교에 나왔다고 한다. 관심이 없어서 몰랐다-
내가 냥쌤을 포함한 어떤 선생이든 별 관심 없는 것과 달리 얘는 냥쌤을 제법 좋아하는 모양으로, 자연스럽게 냥쌤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나는 말려든 감이 없잖아 있지만.
4.
“안녕!”
오늘도 자습은 지루하고, 선생님은 없고, 그래서 올라온 옥상은 무진장 덥고, 땀이 뻘뻘 나고, 어째 반장이라는 얘가 또 여기 있고. 해맑게 웃으며 인사하는 반장-속으로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에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으나 얘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아니면 외면하는 걸지도.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수다를 떤다. 실없는 얘기가 대부분이지만 시간이 잘 가서 나쁘지 않다.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얘가 주로 말하고 내가 말을 얹는 식의 대화가 이어졌다. 솔직히 내가 좋은 대화 상대는 아닌 걸 아는데. 참 잘도 말한다.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얘는 돌연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나 나름 잘 듣고 있었는데? 내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너무 내 얘기만 한 것 같아서, 라는 말이 돌아왔다. 상관없는데.
“있잖아, 오늘은 노래 안 해?”
진짜 상관없으니까 그 얘기는 안 하면 안 되냐? 만약 뭔가 마시고 있었으면 그대로 뿜었을지도 모른다. 얘,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하는 재주가 있다.
“안 해. 다른 사람한테 들려줄만한 건 아니거든.”
“엥. 다른 사람한테 들려준 적 없어?”
“없어.”
“내가 첫 번째로 들은 거네?”
그게 그렇게 되네. 긍정의 의미로 침묵했다. 내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얘는 내 첫 번째 관객이었다. 그래서인지 어제 처음 본 사이인데도 친근하게 대할 수 있는 것 같다. 노래를 칭찬도 해줬고……. 그래, 내가 칭찬에 약하다는 거 부정하진 않는다.
“그럼 내가 시안 1호 팬인가?”
그 짧은 문장을 곱씹으며 허공에서 손가락이 너를 가리켰다가 나를 가리켰다가 바쁘게 움직였다. 팬, 1호. 네가?
“뭐, 뭐라는 거야.”
“내가 어제 말했잖아. 노래 너무 좋아서 팬 할 거라고.”
차라리 빈말이었으면 고맙다며 웃고 넘어갔을 텐데.
어중간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 필연적으로 성장하는 능력이 있다. 바로 상대방의 진심을 보는 능력. 그러니까, 어중간한 재능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이 빈말인지 진심인지를 판별하는 능력 말이다. 혹평보다야 빈말이 낫지만, 그래도 노력이란 역시 진심 어린 칭찬을 먹고 사니까.
네 말을 듣고 나는 조금 목이 막혔다.
5.
양아치-아니다-와 모범생. 무명 가수와 1호 팬. 옥상 땡땡이 메이트.
매일 같이 옥상에서 만나는 너와 나를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까?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한 이상한 수식어가 늘어나는 동안 우리는 조금 더 친해졌다.
6.
점심을 먹고 1층 매점으로 달려갔다.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아이스크림을 두 개 집어 든다. 이천 원이야, 학생. 여기요. 바지 뒷주머니에서 체크카드를 꺼내 건넸다. 영수증은 버려줄까? 네. 삑 소리와 함께 카드를 돌려받고 매점을 나왔다. 그리고는 옥상-6층 높이의–으로 걸어 올라간다. 혹여 누군가의 눈에 띌까 봐 살금살금.
끼이익, 옥상 문의 낡은 소리는 언제 들어도 소름 끼친다. 그런데 이 소름 끼치는 소리가 익숙해진 나도 참 나다.
“안녕, 시안!”
마찬가지로 너도 참 너고. 옥상에 올라오면 어김없이 활짝 웃으며 나를 반기는 네가 있다. 당연히 네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온 나도 있다. 없었으면 어쩌려고 그랬지. 어쩌긴 뭘 어째. 혼자 두 개 먹는 거지. 속으로 멍청하게 자문자답을 했다. 네가 내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야, 아이스크림 좋아하냐?”
아이스크림을 든 손을 뒤로 숨기고는 물었다. 너는 두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좋아해!”
손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아이스크림을 아래로 떨굴 뻔했다. 아, 그래. 아아. 아이스크림……. 이래서 선생들이 수업 시간에 질문을 많이 하라고 그러는 건가. 물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멍하게 있는데 눈앞에 작은 손이 다가와 좌우로 움직였다.
“시안?”
“…… 아, 음, 어……. 이거 너 줄게. 아이스크림.”
옥상까지 올라오는 동안 약간 녹은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포장지에 맺힌 물방울이 손을 타고 떨어졌다. 헉, 나 주는 거야? 고마워! 받아드는 목소리에서 신남을 숨기지 않았다. 아니, 뭐, 그렇게 신나서 받아주니 내가 더 좋네……. 아마 너는 듣지 못할 크기로 웅얼거렸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시시콜콜한 대화를 했다. -하지도 않는- 보충 지겹다는 얘기로 시작해서 냥쌤 얘기라던가, 오늘 내일 급식 얘기라던가, 이대로 방학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들.
어쩐지 오늘 말문이 트여 평소 궁금했던 점도 물어봤다. 너는 왜 맨날 옥상에 있냐? 너는 잠깐 머뭇거렸다.
“음~ 처음에는 한 번도 올라와 본 적 없으니까 궁금해서 올라온 건데.”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지금은…… 시안 네가 오니까.”
더위를 잘 타지 않는지 송골송골 땀이 맺혀 머리카락이 들러붙은 나와 다르게 바람을 맞은 머리카락이 살랑거린다. 뒤로는 하늘 새파랬다. 청량한 하늘에 하얀 구름 한 점이 딱 그림처럼 보인다. 그림자 속에 있는데도 태양빛이 우리를 직접 비추고 있는 것 같다.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물고 있는 입에서 천천히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장난스럽게 올라가는 입꼬리가, 나에게로 향하는 시선이 전부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순간 네가 나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네 웃는 얼굴을 아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7.
과연 끝나기는 할까 싶었던 보충수업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부터 일주일은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 진짜 방학인 셈이다. 다른 고등학교 3학년에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성적이나 진학이랑 거리가 먼 나한테는 완전한 자유다. 그러니까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환호하고 난리도 아니었을 건데…… 어째 아쉽다. 보충수업의 끝이 곧 십대의 마지막 여름방학의 끝이라서 그런가. 그런데 나도 너도 그 마지막까지 땡땡이를 친다.
"옥상에서 보는 것도 오늘로 끝이네."
"옥상이 아니더라도 볼 수는 있지. 너 몇 반인데?”
솔직히 말하면, 난 너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반장이라는 건 알지만 몇 반인지 모르고,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건 알지만 무슨 맛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고, 왜 옥상에 올라오는지는 알지만 왜 땡땡이를 치는지는 모르고, 웃는 게 귀엽다는 건 알지만 왜 가끔 혼자 웃는지는 모른다.
“비~밀.”
“치사하게?! 나는 냥쌤 반인 것도 말했는데!”
“시안이 말한 게 아니라 내가 맞춘 거지.”
“…… 진짜 안 알려줘?”
“응! 비밀이야. 이게 더 재밌잖아.”
나라고 나에 대해 전부 말한 건 아니지만, 너는 너대로 비밀이 너무 많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웃기는 애다. 반장까지 하는 모범생이면서 하는 행동이 너무 튄다. 그 점이 싫냐고 하면 대답은 아니, 지만. 그래, 더 뭐…… 하는 사람이 약자라잖아. 내가 한 수 접고 들어가야지. 그럼 이렇게 할까.
“개학하고 내가 너 몇 반인지 찾아간다? 찾으면 아이스크림 갚아.”
“아하하, 숨바꼭질 같네. 나 숨바꼭질 잘하는데. 어린 동생들 있어서 자주 했거든. 나 찾기 힘들걸?”
“그래봐야 14반인데 뭐.”
딩-동-댕-동. 기나긴 보충에 있어서 마지막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쳤다. 이상하게 시간이 빠르다. 이다음 종이 치면 선생이 들어오기 때문에 이제는 교실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안녕, 시안. 방학 잘 보내.”
“그래, 안녕이다. 꼭꼭 숨어봐라. 금방 찾을 테니까.”
그때 좀 더 멋들어진 말을 할걸.
8.
여름방학이 끝났다. 쉬는 시간에 옥상으로 올라가는 일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개학과 동시에 옥상으로 올라가는 중앙계단은 감시구역이 되었다. 보충수업의 끝과 개학 사이 그 짧은 일주일 동안 CCTV 비슷한 것도 설치한 모양이고. 나야 뭐 걸려도 귀찮은 잔소리 좀 듣는 일 빼면 곤란한 건 없으니 못 올라갈 것도 없지만, 딱 봐도 모범생인 걔는 아닐 테니까.
네가 없는 옥상에 올라갈 의미도 딱히 모르겠고 말이다.
공부는 손 놓은 지 오래, 적당히 걸리지 않게 딴짓하는 게 일상. 쉬는 시간이면 책상에 엎드려 자는 일이 대부분이었던 나지만 최근에는 좀 달라졌다.
괜히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창 너머로 다른 반 교실을 쳐다보거나, 제 발로 찾아간 적 없는 도서관에 가서 점심시간 내내 자리를 잡고 앉아있거나-책은 거의 읽지 않았지만-, 성적 좋은 애들을 우선으로 배정해 주고 남은 자리는 선착순으로 주는 자습실에 가서 야간자율학습도 해봤다. 그날 자습실에서 마주친 시릴 녀석은 나보고 뭘 잘못 먹어서 여기 있냐고 했었다. 젠장, 나도 내가 여기 있는 게 이상하다는 거 알아!
조용하고 얌전하다고 해도 모범생이란 오히려 눈에 띄기 마련이니까 금방 찾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네 머리카락 한 올도 보지 못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안 보일 수가 있냐. 보기보다 장난기가 많아 보였으니 작정하고 숨어 다니는 걸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 혼자서는 찾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원래 술래잡기하다 보면 술래 점점 늘어나는 거잖아. 반칙은 아니지. 아, 이건 숨바꼭질인가. 아무튼. 그래서 우리 반 반장-생활기록부에 한 줄 남기겠다고 지원한 그 녀석-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반장, 대의원 회의인가 뭔가 하면 각 반 반장 다 모이냐?”
“엉. 학생회랑 선도부랑 일 이 삼학년 반장 부반장 다 모여.”
“찾는 사람이 있걸랑. 반장들 중에 있는지 봐줄 수 있어?”
반장이 부탁을 거절하지 않자 –침묵은 긍정이다– 나는 어깨 아래를 손날로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머리는 갈색에, 이 정도 길이인데…… 묶을 때도 있고. 눈 땡그랗고 좀 귀엽게 생긴 애 없냐?”
“올~ 뭐야. 시안, 관심 있는 애야?”
“아, 그런 거 아니거든!”
…… 아닌 게 아닌가. 나도 모르게 일단 부정하고선 방금 한 말을 곱씹어 보니…… 내가 무슨 말을 한 거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안 돼! 티 내면 이 녀석들이 얼마나 놀려댈지 짐작도 안 간다고! 뻘뻘 쏟아지는 식은땀을 느끼며 애써 표정을 고쳤다.
“수요일에 회의 있으니까 한 번 찾아볼게.”
“고맙다.”
다행스럽게도 반장 녀석은 더 캐묻거나 놀리지는 않았다. 그게 내 표정이 너무 필사적이어서 그랬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9.
“시안, 그런 애 없던데.”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우리 반 반장 녀석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앞뒤 다 잘라먹은 불친절한 말이었지만 나는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없었다고? 임원이 아닌가? 아닌데. 분명 반장이라고 했는데. 딱 봐도 반장 같았고…….
“혹시 몰라서 1학년 2학년도 봤는데 딱히 없었어. 내가 너 연애 사업을 위해 열심히 찾아봤다.”
“그래…… 고맙다.”
아마 놀리려고 일부러 강세를 줬을 연애 사업이라는 말에 태클을 걸 여유가 없었다.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한 대의원 회의에서도 그 애를 찾을 수 없었으니. 설마 나 찾지 말라고 다 모이는 회의에 불참하는 건…… 아닐 테고. 전학이라도 간 걸까. 그래서 혹시라도 찾지 말라고 이름도 안 알려주고 간 건가. 그런 거라면 좀 서운한데.
“캬악! 자리에 앉아라냥!”
이놈의 학교는 침울해질 틈을 안 준다. 소란스러운 교실 문이 열리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네가 좋아하던 우리 반 담임, 냥쌤이다. 냥쌤은 신경질적으로 출석부를 교탁에 내려두고 팔을 걷어붙였다. 이 날씨에 무슨 긴팔 셔츠람.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 듯했다.
“담임 오늘 어디 가나? 뭔가…… 쫙 빼어 입었는데.”
“응. 평소보다 정장이야.”
“헉, 혹시 그건가?”
뭔데? 말을 꺼낸 놈은 주변에서 흥미를 느낀 애들이 몰려오니 부담스러운 건지 즐기는 건지 괜히 말에 뜸을 들였다. 아, 뭔데~ 하나가 재촉하자 녀석은 그제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 입학하기 바로 전에 학생 하나 죽었대. 형이랑 같은 학년이라서 들었는데, 계곡에서 동생 구하려다가 대신 물에 휩쓸려갔다나. 워낙 모범생이고 선생들도 예뻐해서 매년 학교에서 누가 기일 챙기러 간다던데…… 혹시 우리 담임 아냐?”
그때 왜 네 얼굴이 퍼뜩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수식어들, 그러니까 워낙 ‘모범생’이고 ‘선생들도 예뻐해서’라는 말 때문인가.
"야, 너 그 사람 얼굴 알아?"
"잘은 몰라. 형 졸업앨범에서 봤었는데……."
뒤쪽인지 앞쪽인지에서 도서관에 졸업앨범들 모아뒀잖아. 라는 말이 들렸다. 봐서 뭐 하게? 라는 말도 들렸다.
10.
나는 지금 도서관에 와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졸업앨범을 편다. 앞쪽은 제대로 읽지 않았다. 중요한 건…… 지금보다 젊어 보이는 냥쌤의 얼굴이 가장 처음으로 보이는 14반.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두근대는 심장박동이 너무 커 손이 떨렸다.
페이지를 넘기던 중에 팔랑, 작고 얇은 무언가가 아래로 떨어졌다. 허리를 숙여 주워들었다. 까만 리본이 묶인 말린 꽃 한 송이. 말리는데 아주 정성을 들였을 형태가 고운 꽃. 꽃이 끼워져 있던 페이지를 느릿하게 훑어보았다.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온다.
네 얼굴이다.
“…… 내가 찾던 애야.”
“시안?”
“사서 쌤! 이거 잠깐만 빌려 갈게요!”
학생?! 놀란 사서의 목소리도, 야, 시안?! 따라온 친구 놈의 목소리도, 언놈이 복도에서 그렇게 뛰어! 복도에서 뛰지 말라는 지나가던 선생의 목소리도 닿지 않았다. 2층의 도서관에서 5층의 교무실까지 그냥 달렸다.
11.
“냥쌤. 오늘 저도 데려가 주세요.”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냥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냥!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품에 안고 온 졸업앨범을 펼쳤다. 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오늘 얘한테 가는 거죠. 제가 아는 애예요. 만나야 해요. 나도 데려가 줘요!"
파티션 너머에서 다른 선생들이 쳐다봤다. 이걸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표정으로.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평소라면 총알처럼 잔소리를 할 타이밍인데, 냥쌤은 입을 여는 대신 이마를 짚었다.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내가 아니라 냥쌤한테서. 쌤은 책상 위에 놓여있는 메모지 한 장을 뜯어 뭔가를 적더니 내게 건넸다. 일단 주니까 받았더니 그건 조퇴증과 …… 주소.
“시안 네가 성실하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허튼짓하는 학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냥.”
그것참 애매한 평가였다. 하지만 지금 손에 쥐어진 종이 쪼가리가 금괴보다 귀하게 느껴져 그걸 준 쌤에게 뭐라 할 수 없었다. 그동안 속으로 고양이라 불러서 죄송해요, 쌤. 이제부터 꼬박꼬박 쌤이라고 할게요. 쪽지를 들고 당장이라도 교무실 문을 부수고 나갈 것 같은 내게 쌤이 뒤에서 소리쳤다.
“내 대신 가는 거니까 인사 전해줘라냥!”
“예!”
책상 위에 올려둔 책이나 필통은 모조리 그냥 놔둔 채 책가방만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어딜 가냐고 묻는 경비 아저씨에게 조퇴증을 던지듯 보여주고 교문에서 뛰어나와 택시를 잡았다. 택시 기사님도 학생이 이 시간에 어딜 가냐고 말을 걸어왔다. 대답 대신 목적지 주소를 말하자 택시 기사님은 더 묻지 않고 조용히 운전에 집중했다.
창밖으로 휙휙 바뀌는 풍경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손에 힘이 들어가 쥐고 있던 조퇴증과 메모지가 구겨졌다. 다른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고 빨리 도착하기만을 바랐다.
그저 너를 만나고 싶었다.
12.
“도착했어, 학생.”
주변은 온통 초록색인데 눈앞에 우뚝 솟아있는 건물 하나만 회색빛이다. 조금 망설이다가 로비로 들어가자 안내데스크에 앉아있는 사람이 고개를 까딱였다. 땀이 맺힌 팔에 에어컨 바람이 닿아 소름이 돋았다.
나는 메모지에 적힌 꽃 이름의 방-이라고 해야 하나?-에 발을 들였다. 시간이 애매해서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여름인데 풀 내음보다 꽃 내음이 짙었다. 거기에는.
“…… 숨바꼭질 잘한다더니. 진짜 잘 숨었네.”
졸업앨범에서 본 네가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 그리고 푸른색으로 나비가 새겨진 백자 유골함. 이미 누가 다녀간 듯 놓여있는 꽃병에 꽂혀있는 생화는 생기가 있고 주변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너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다음 일은 딱히 생각해둔 게 없다. 너를 찾으면 옥상에서처럼 네가 먼저 말을 걸어줄 거라 믿었으니까. 그동안 너의 친절에 기대고 있었던 나를 새삼 깨닫는다. 먼저 말 거는 거,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 나, 노래 계속해보려고.”
횡설수설 튀어나오는 말이 우습다.
“내 팬이라는 누구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어서.”
그 우스운 말들을 엮어 네 앞에서 다짐을 한다.
“기왕 계속하는 거, 누구보다 높은 곳으로 갈 거니까 거기서도 잘 보일 거다.”
그러니까 잘 보라고.
“나 간다.”
위에서 에어컨이 작동하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뺨을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생각해보면 옥상에서도 너랑 있으면 특히 더웠다. 그늘에 앉아도 부채질을 해도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뜨겁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식힐 수가 없었다. …… 땀이 많이 나서 찬물로 세수라도 하고 돌아가야겠다. 발길을 돌렸다.
13.
“네~ 다음 분은, 와! 저도 정말 팬인데요. 데뷔 후 첫 솔로곡으로 다시 한번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이돌 시안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시안입니다!”
“시안 씨, 이전 앨범에서도 작사 작곡에 참여한 노래가 꽤 있으시죠? 첫 솔로곡도 무려! 직접 작사 작곡하셨다는데!”
“하하, 네. 고등학생 때 추억이 녹아있는 곡이에요. 이렇게 보여드릴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어쩐지~ 가사가 꼭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 쓴 편지 같더라고요.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팬 여러분에게 보내는 편지기도 하고요.”
그래. 이건 편지다. 말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모조리 적어내린 편지. 직접 보낼 수도 답장을 받을 수도 없는 그런 편지.
“낭만적이네요~ 그럼 여기서 들어봐야겠죠? ‘옥상에서 만나요’!”
이 편지가 너에게 닿기를 바란다.
무대로 올라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옥상까지 매일매일 올라가던 그때에 비하면 이 정도는 뛰어오르는 수준이다. 비추는 스포트라이트가 뜨거워 땀방울이 맺힌다. 한여름 옥상에 내리쬐는 태양빛에 비하면 별거 아니다. 무대 위에서 흘리는 땀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그날 여름이 생각나서. 내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흘린 많은 땀방울은 전부 그날 여름으로부터 나온다.
네가 그랬잖아. 내 1호 팬 한다고. 비밀인데, 이건 내 1호 팬에게 바치는 노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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