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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과 함께 감상해주세요.
첫눈 / 블루베리
* 가을호 작품 [가을이 찾아준 봄] 과 이어집니다. [바로가기]
1.
그 무엇보다도 바쁘고 정신없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웃음으로 가득 차고 행복했던 가을이 지나고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흘러 어느덧 우리 마을은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노랗게 황금빛으로 물들었던 논들은 하나, 둘씩 지푸라기를 감아 소에게 먹이로 가져다주게 되었고, 여름과 가을 내내 밤을 함께해주던 귀뚜라미의 노랫소리도 점차 사라져갔다.
서리가 내렸으니 홍시를 딸 수 있는 시기가 되었고, 홍시의 껍질을 깎아 곶감을 말릴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해가 점차 짧아져가는 게 느껴졌고, 아침에 일어날 때 콧잔등이 시려졌다.
이렇게 점차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건, 그렇다는 건... 첫눈이 올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나와 기이 씨는 추석 이후 더욱 각별해지고 서로 아껴주는 사이가 되었다. 평소와 같이 안부를 묻고 서로의 일을 도와주며 살지만 우리 둘 다 느끼는 마음의 감정이 달라졌다.
마을 어르신분들의 일손을 도와드릴 때도 서로 눈만 마주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배시시 웃어버리니 눈치가 빠르신 과수원 박 씨 어르신과 부인이신 한 씨 아주머니는 함께 인자하신 눈웃음으로 우릴 바라보신다.
아마 어르신도, 아주머니도 우릴 보시면 옛 생각이 떠오르시는 것 같다. 얼마 전 기이 씨에게 들었다. 우리가 여름에 박 씨 어르신 과수원에서 복숭아 품앗이를 했을 때, 자신과 아주머니의 옛날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우리 둘이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어 함께 나누며 행복해졌으면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나도 나이가 들었을 때 부부가 서로 아껴주며 행복하게 사는 미래를 자주 꿈꾸곤 했었는데 두 분을 볼 때마다 저런 모습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젠가 나와 기이 씨도 저런 모습으로 함께 늙어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2.
어느덧 11월 중순. 이맘때 쯤 되면 농사에는 휴식기가 찾아온다. 1년의 사계절 중 유일한 휴식시간이다. 이 기간에는 할 농사일도, 마을 어르신들의 농사일을 거들어 드릴 일도 없으니 의욕들도 없어지고 괜히 몸이 찌뿌둥해진다. 집에 가만히 앉아 시간만 죽이고 있기는 싫어서 잠깐 산책이라도 하기로 마음을 먹고 걸음을 옮겼다. 정신없이 농사일을 할 때는 하루만이라도 쉬고 싶었는데 정작 이렇게 쉬고 있으니 뭐라도 하고 싶어지는 걸 보니 참 희한하고 신기할 따름이다.
콧속으로 찬바람이 들어오고 머리가 살랑히 날려진다. 바람을 맞으며 내 발이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자연스레 걷다 보니 마을의 정자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이 향하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기이 씨 밖에 없지 않을까요?"
"...네?"
"농담이에요~"]
아, 내가 이 정자에서 이런 말을 했었지... 갑자기 이 생각이 왜 나는 거람. 그때는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매니저 씨?"
갑자기 어디선가 기이 씨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내 생각보다 기이 씨가 많이 보고 싶은가 보다.
나는 혹시 모르는 마음에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어? 진짜 기이 씨네요?!"
기이 씨는 특유의 능글맞은 표정과 눈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진짜 기이 맞습니다 후후. 무슨 생각을 그리하고 계십니까?"
"아, 정자 근처에 오니까 옛날 생각이 나서요. 그러고 보니 그렇게 옛날도 아니네요, 하하."
"아, 혹시 옛날 생각이라면 매니저 씨께서 이 마을에서 좋아할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 한 그때 기억 말씀하시는 겁니까? 후후!"
나는 깜짝 놀라 눈동자가 커지며 얼굴이 빨갛게 붉혀졌다. 그리곤 기이 씨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막 제 생각 읽고 그러시는 거 아니죠?"
"흐음, 완전히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누군가를 정말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이 하고 있을 것 같은 생각들이나 행동과 말 등이 어떨지 그려지기 시작하더군요. 저도 처음 있는 경험이긴 합니다만, 이러한 것들도 생각을 읽는다면 읽는 것이겠지요?"
'누군가를 정말 좋아하면 그 사람이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나 말과 행동들이 그려진다.'라는 기이 씨의 말은 내 가슴을 따뜻하고도 요동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말의 따뜻함을 지닌 온기가 심장으로부터 온몸으로 퍼져만 갔다.
나는 기이 씨의 말에 마치 어린아이처럼 배시시 웃으며 답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면 정말 신기한 일들이 생기나 봐요. 저도 기이 씨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기이 씨가 제 눈앞에 나타난 걸 보면 저도 기이 씨처럼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럼 이 힘들이 사라지지 않게 잘 보살펴 주어야겠군요."
내 말을 들은 기이 씨는 나를 향해 생긋하고 웃으며 말해주었다.
"그러게요, 정말 잘 보살펴 주어야겠죠."
우리의 이 능력들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부디. 그것이 우리의 뜻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서도,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어본다.
이런 생각은 하기도 싫지만 너무나 행복해서, 이 행복이 오래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악몽이다. 그저 악몽일 뿐이라고, 꿈에서 깨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너무나도 행복해서 두려움도 그만큼 커져간다.
점차 조금씩 일그러져 가는 내 표정을 본 것인지 기이 씨가 조심스럽게 내게 말을 꺼냈다.
"매니저 씨. 매니저 씨께서 어떤 생각 하고 계시는지 압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저희에겐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전 믿습니다. 설령 그런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한들, 우리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을 테고,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기이 씨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굳건하고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나에게 확신을 주는 듯했다.
귀신이다. 내 마음을 어찌 저리도 잘 아는지. 정말 내 마음과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건지. 말 한마디 하지 않았는데도 내 마음을 읽으며 날 다독여줄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절대 있을 리가 없다. 아니, 절대 있을 수가 없다. 난 그런 사람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사람 단 한 명뿐이라고 정말 확답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라서, 세상에 단 한 명뿐인 사람이라서 더욱 두렵고 더더욱 행복하다. 난 행복은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든지.
"그럼요. 저도 기이 씨 덕분에 확신할 수 있어요. 이런 사람이 나와 함께 한다는데 두려움이 행복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죠. 그나저나 정말 어떻게 아신 거예요? 진짜 신기하다니까요."
"말했잖습니까, 저는 매니저 씨의 생각을 다 읽을 수 있답니다. 후후! 앞으로도 분명..."
토옥-
기이 씨가 말을 잇던 순간 하늘에서 무언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더니 우리의 이마에 자신의 치마폭을 살포시 떨어트리곤 사라졌다.
"어?"
눈이다. 첫눈.
"기이 씨, 이거 눈 맞죠...?? 첫눈 맞죠!?! 세상에! 웬일이야!"
두려움과 행복이 공존하고 있던 이 순간,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이제 두려움과 불필요한 생각들은 이 눈과 함께 땅에 묻어버려도 된다는 하늘의 뜻인 것만 같았다. 어느 11월의 오늘, 우리는 하늘에게 선물을 받았다.
눈은 우리를 향해 따뜻하고도 포근히 우리의 머리 위로 내려주었다. 눈이 따뜻하다는 건 무슨 말이 안 되는 소리냐고 묻겠지만 우리가 이렇게 느낄 수 있게 해준 망각 또한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 아닐까? 아무리 맞아도 따뜻한 눈을 우리는 하늘이 내려준 선물인 '사랑'이라고 칭하고 싶다.
우리는 한참 눈과 눈이 내리는 하늘을 구경했다. 그 풍경은 지금껏 바라보았던 눈 중에 가장 아름다웠으며, 눈에 담기도 아까울 정도로 새하얀 눈들이 우리를 감쌌다. 우리는 오고 가는 눈을 바라보다 어느새 서로의 눈을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을 때, 우리는 서로가 무슨 말을 할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둘은 서로를 웃으며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먼저 침묵을 깬 건 기이 씨였다.
기이 씨는 무언가 결심한 듯 나에게 한 발짝 다가왔다. 그리곤 차가워진 내 손을 꼬옥 잡고는 내 눈을 바라보며 부드럽고도 진지하게, 떨리지만 진중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했다.
"매니저 씨, 이제 평생 저와 첫눈을 함께 보시지 않겠습니까? 별도, 달도. 처음 보는 것들과 자주 보았던 것들. 그 모든 것을 평생 함께 보고 느끼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기이 씨 다운 말이다. 그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기이 씨 특유의 문장과 말투. 가짜도, 그 무엇도 아닌 진짜 기이 씨가 나에게 청혼했다.
행복해서 눈물이 흐른다는 건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슬플 때와 행복할 때 모두 눈물을 흘리지만 하나 다른 점은 행복할 때의 눈물은 뜨거운 눈물이라는 것. 따뜻함도, 차가움도, 미지근함도 아닌 뜨거운 눈물이다. 그 뜨거운 눈물이 내 양볼을 타고 흘러 내려온다.
기이 씨는 눈물로 엉망이 된 내 두 볼을 닦아주며 정말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런 기이 씨를 보며 나도 울음을 멈추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추위 때문인지 이 청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기이 씨의 볼은 한 여름의 잘 익은 토마토처럼 빨개져 있었다. 지금의 우리는 추위 따위 느끼지 못한 채 서로에게만 집중하고 있으니 아마 후자일 거다. 그리고 내 얼굴도 이 한겨울에 뜨거워지고 있는 걸 보니 아마 나도 기이 씨와 비슷할 거다.
나는 그런 기이 씨의 두 볼을 내 손으로 살며시 감쌌다.
"이렇게 하면 조금 따뜻해질까요?"
내 두 손이 기이 씨의 볼에 닿자 기이 씨는 깜짝 놀란 눈치였지만 금세 싱긋 웃으며 기이 씨는 자신의 볼에 올려놓은 나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이렇게 하면 조금 더 따뜻해질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는 말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눈이 내리고 있는 하늘, 기분 좋게 손끝을 건드리는 쌀쌀한 날씨, 눈이 내려 따뜻했던 첫눈이 내리는 날 받은 청혼, 빨갛게 물든 서로의 볼, 그 볼을 감싸주고 있는 내 손, 내 손을 감싸준 기이 씨의 손, 터질듯한 심장소리. 모두 너무나도 완벽하고 행복했다. 이제 앞으로 누군가가 행복의 정의를 묻는다면 오늘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춥지만 춥지 않았고, 눈이 내려 따뜻한 오늘. 우리는 새로운 행복을 찾았다. 엄청 커다란 행복이다.
우리는 그날 이후 조금이라도 빨리 결혼을 올리고 싶어 이듬해 봄, 장미꽃이 피는 오월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우리가 결혼 소식을 제일 먼저 알린 분은 다름 아닌 박 씨 어르신 내외였다. 나와 기이씨는 둘 다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제일 먼저 박 씨 어르신께 알려드릴 생각이었다.
우리가 청첩장을 들고 댁에 들리자 어르신 내외는 정말 누구보다도 기쁜 표정을 하시며 나와 기이씨의 손을 꼬옥 잡아주시더니 마치 부모님처럼 기뻐해 주셨다.
"정말 잘 됐네. 드디어 자네들의 결혼 소식을 들으니 내가 다 기쁘다, 기뻐. 하하."
"그러게 말이야, 진짜 경사네~ 내 말 따라 정말 이 선택이 인생에서 최고로 잘한 선택이 될 거야. 진심으로 축하해."
진심으로 우리를 위해주시는 어르신과 아주머니의 말과 행동들에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울컥하며 눈물이 나올 뻔했다. 마을 어르신 모두가 우리를 잘 챙겨주셨지만 무언가 어르신 내외는 정말 우리의 부모님이신 것처럼만 느껴졌다.
우리는 한참을 어르신 내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는 황혼이 되고 나서야 마을 분들께 청첩장을 나눠 드리러 다녔고,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렇게 청첩장까지 나눠드리고 나니까 진짜 우리가 결혼한다는 게 점점 실감이 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진짜 결혼하네요. 진짜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어요."
나는 입가와 볼에 웃음을 머금고 얘기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희 진짜로 결혼하는군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행복합니다."
"저도요. 벌써 정말 결혼식이 기다려져요. 어떤 모습일까 상상도 되고요. 아마 제가 상상한 것보다 분명 더 행복할 거예요."
"물론입니다. 이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운 신부가 되실 겁니다."
"기이 씨도 이 세상 누구보다 멋있는 신랑이 될 거예요."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흘러 달력에 표시한 별표를 향해 줄을 치며 하루하루를 지워간지도 어느새 5개월째, 첫눈이 내린 날로부터 딱 5개월째 되는 오늘 드디어 우리 이야기에 결실을 맺는 날이다.
우리의 결혼식은 서로의 친구들, 그리고 마을 분들과 함께 크지 않은 스몰 웨딩으로 진행되었다.
"신랑, 신부 입장!!"
행진곡과 함께 우리는 발맞춰 걸었고 우리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환호와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그 커다란 소리들 사이로 기이 씨는 나에게 소곤히 이야기를 했다.
"오늘 정말로 아름다우십니다, 신부님. 눈이 부셔서 그쪽을 쳐다보지 못할 만큼 말입니다."
"신랑님께서도 오늘 정말로 멋지세요. 이런 분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그렇게 어느덧 행진의 끝에 다다랐고,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인사를 했다. 기이 씨는 사회자인 리히트 씨의 말에 따라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내 왼손 약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평생을 행복하게 해드리겠다고 천지신께 맹세하겠습니다. 이 생이 끝날 때까지 저와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목구멍까지 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삼키곤 방긋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죠."
내가 기이 씨의 말을 수락하자 곳곳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경사네, 경사야!"
"진짜 축하해!"
"너희 혹시라도 싸우면 우리가 가만 안 둔다!"
"둘이 너무 잘 어울려~"
"아이고, 잘 살어라!"
환호하는 분위기 속 사회자가 대본에는 없는 한마디를 했다.
"자, 그래도 명색이 결혼식인데 신랑, 신부의 입맞춤은 있어야겠죠? 신랑님, 공주님처럼 아름다우신 신부님께 왕자님 같은 신랑님의 입맞춤을 해주세요!"
우리는 대본에는 없던 일이라 순간 당황했지만 서로를 마주 보곤 둘 다 방긋 웃었다.
"사랑합니다, 매니저 씨."
"저도 사랑해요, 기이 씨."
우리는 그렇게 입을 맞췄다.
-에필로그-
우리의 꿈만 같이 행복했던 결혼식이 끝나고 벌써 몇 년이 지났다. 그 후 우리는,
"○○씨, 나와 결혼해 줄래요? 이런 보잘것없는 나지만 ○○씨만을 위해 평생을 살고 싶어요. 나와 함께해 줄래요?"
"... 당연하죠, ●●씨...!!"
"우와아아...!! 엄마, 아빠!! 이리 와봐!!"
"응? 딸 무슨 일이야?"
"이것 봐!!"
우리는,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는 벌써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걷고 밥도 혼자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 여기! 여기 TV에서 결혼식 한데! 막 뽀뽀도 했어! 막 평생 행복하게 해주겠데! 엄마랑 아빠도 이렇게 했어?? 아빠도 엄마한테 평생 행복하게 해준다고 했어?? 응? 엄마도 아빠한테 사랑한다고 하면서 안기고 그랬어??"
"아이 참, 여보 애 앞에서 드라마 틀어놓지 말라니까요."
"후후... 튼 기억은 없습니다만... 어느새 TV 리모컨까지 마스터해버린 걸까요..."
"아이 차암! 내가 물어봤잖아 엄마, 아빠! 엄마 아빠도 이렇게 했냐구우! 막 엄마도 저렇게 예쁜 드레스 입고 결혼식 한 거야?! 엄마랑 아빠는 어떻게 만난 거야? 저 TV에서처럼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그랬어? 응? 응??"
"엄마랑 아빠?"
우리는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우리도 모르게 빵 웃음이 터져버렸다.
"언제 이렇게 큰 걸까요, 우리한테 이런 것도 물어보고. 말도 못 하고 아장아장 기어 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에요.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후후! 정말 많이 컸군요. 정말 언제 이렇게 컸는지."
기이 씨는 그런 우리 딸의 볼을 눌러 복어처럼 입술이 삐쭉 나오게 만들었다.
"아빠아! 이렇게 하지말구우! 나도 알려죠오!! 엄마랑 아빠는 어떻게 만났는데에!!"
나는 기이 씨와 우리 딸이 이렇게 투닥투닥 다투고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매일 장난을 치는 기이 씨도, 그런 아빠를 사랑하는 우리 딸아이도, 그 무엇 하나 행복하지 않은 게 없다.
"안되겠다! 아빠가 말 안 해줄 것 같으니까 엄마가 말해줄게!"
"우와아아아! 정말? 엄마 최고!!"
나는 기이 씨를 쳐다보며 한번 눈을 마주치곤 싱긋 웃으며 딸에게 말했다.
"엄마랑 아빠는 말이야ㆍㆍㆍㆍ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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