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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 L하몽
펄럭-
새벽 6시경.
도서관에선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고요한 새벽의 사신지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평소엔 잘 들리지도 않던 책장 넘기는 소리가 거슬릴 정도로 조용했다.
사신지부가 조용한 이유는 새벽인 이유도 있었지만,
또 다른 이유는 곧 있으면 기약 없는 이별을 마주하기 때문이었다.
밝은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사신지부 최초의 매니저가 사신지부를 떠난다는 것은 사신들에게도, 매니저에게도, 이별의 아픔으로 다가왔다.
애석하게도 시간은 우릴 기다려주지 않고 하염없이 흘러갈 뿐이었다.
그런 시간을 원망하며, 그런 시간에 절망하며, 그런 시간에게 애원하며,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냈다.
모두 눈을 뜨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
서로를 잊으려고 노력했다.
잊지 못하면, 나만 괴로운 뿐이니까.
그럼에도 에단은 매일매일 매니저를 찾아갔다.
매니저는 그런 에단을 미소로 반겨주었다.
"어서 와 에단. 기다렸어."
'기다렸어'라는 그 한마디에 애써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럼에도 에단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 그 감정을 다시 억눌렀다.
가슴이 아려왔다.
'기다렸어'라는 그 한마디가 너무나도 슬픈 목소리여서.
그 말을 하는 당신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있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걸 알면서도 당신을 떠나보낼 수 없어서.
그럼에도 떠나보내야 해서.
그대를 처음 만난 과거가 그리워서.
그대를 떠나보내야 하는 현재가 복잡해서.
그대 없는 미래를 마주하기가 두려워서.
그래서...
가슴이 아려왔다.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감추기 위해 급히 매니저룸을 빠져나왔다.
·
·
·
에단은 매니저룸을 빠져나와 하염없이 걸었다.
행선지 없이 발길이 가는 곳으로 걸을 뿐이었다.
어느새 에단은 시내를 빠져나와 인적이 드문 드넓은 초원에 도착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에선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태양과 가까운 하늘일수록 주황빛으로 물들었고,
태양과 멀어진 하늘은 파란색을 띄었다.
바람이 불어 초원의 잔디는 흔들렸고, 구름은 태양에 빨려 들어가는 듯 보였다.
태양이 점점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이날의 태양이 지면,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겠지.'
에단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지 않기를 바랐다.
내일의 태양이 뜨면 내일의 사랑이 져버릴 테니까.
떠나보낼 수 없는 사랑.
떠나보내기엔 너무나도 좋은 사랑.
그럼에도 떠나보내야 하는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가슴 아픈 사랑이란 걸 알면서도,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랑이었다.
·
·
·
태양은 모습을 감췄고, 달이 떠올랐다.
달이 떠올랐음에도 에단은 그 초원을 떠나지 않았다.
그저, 드넓은 초원에 누워 하늘의 별을 바라볼 뿐이었다.
에단은 별을 바라보다 별자리를 발견했다.
사자자리였다.
매니저의 별자리도 사자자리였다.
잊을만하면 매니저가 떠올랐다.
어쩌면 잊지 못했지만, 잊었다고 생각하며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걸 수도 있다.
잊어야만 떠나보낼 수 있는 사랑,
짝사랑이었다.
·
·
·
에단은 그 초원에 누운 채 별을 바라보며, 그 밤을 지새웠다.
수도 없이 많은 별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오늘의 태양이 떠올랐다.
에단은 몸을 일으켜 지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길을 걷고, 익숙한 골목을 걷다 보니 어느새 지부에 도착했다.
에단은 분수대 앞에 서 있는 매니저를 발견하였다.
"매니저님."
에단의 목소리를 들은 매니저가 입을 내었다.
"에단! 어제 어디 다녀온 거야? 루이가 걱정했어. 자정이 넘어도 안 들어온다고..."
"...차가 끊겨서 하숙집에서 하룻밤 머물고 오는 길입니다."
"그런 거였어? 그럼 연락을 하지... 무슨 일 생긴 지 알고 걱정했잖아."
"걱정 끼쳐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꼭 연락해 줘! 약속!"
"..."
에단을 알고 있었다. 다음은 없다는 걸.
"에단?"
"...네?"
"약속 안 할 거야?"
매니저는 새끼손가락을 보이며 말했다.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슬픈듯한 표정에,
에단은 미소를 짓고선 새끼손가락을 걸고 말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마워, 에단."
"대신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해 주시겠습니까?"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해 달라는 말에 매니저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할게."
둘은 새끼손가락을 걸고선 약속했다.
" 에단이 말하는 약속의 꽃은 어떤 꽃이야? "
매니저는 에단에게 물었다.
"저도 모릅니다."
에단이 말했다.
"뭐어? 그런데 그 꽃을 어떻게 장식해?"
매니저의 말에 에단은 매니저의 손등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흰색 꽃입니다. 천천히 찾으십시오. 시간은 많습니다."
·
·
·
에단은 시간이 많다고 했지만, 매니저가 떠나기까진 고작 일주일밖에 안 남았었다.
일이 많았다면 길게 느껴질 수 있었을 테지만 나날이 줄어드는 업무 때문에 시간이 더욱더 빠르게 흐르는 느낌이었다.
타다닥- 타다닥-
책상을 손톱으로 두들겼다.
'에단이 말한 약속의 꽃이 뭘까..?'
매니저는 에단이 말한 약속의 꽃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매니저는 궁금증만 쌓여갔다.
"흰색 꽃이라...."
"뭐 찾으시나요?"
"으갹! 사감님!"
갑자기 나타난 사감님 덕분에 매니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몇 번을 불러도 못 들으시던데, 뭐 찾으시는 거라도 있나요?"
"아... 사실..."
매니저는 사감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흰색 꽃이라는데... 흰색 꽃이 좀 많나요..."
"흐음... 약속의 꽃이라..."
"사감님은 뭔가 짐작 가는 게 있으신가요?"
"짐작하자면 많죠."
"많다고요?"
"아무것도 없는 지금 행복하지 않나요? 원하는 무엇이든 꿈꿀 수 있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흰색 꽃이라는 것만이 단서이니, 어떤 꽃이든 흰색 꽃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네요. 원하는 무엇이든 꿈꿀 수 있네요."
매니저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꿈꾸듯이 약속의 꽃을 찾기 시작했다.
·
·
·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일주일이 지났다.
내일이면 매니저는 이곳을 떠나지만 아직 약속의 꽃을 찾지 못했다.
아무것도 없었기에 꿈을 꿀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없었기에 꿈을 꿀 수 없었다.
"흰색 꽃이라..."
도대체 에단이 말한 약속의 꽃은 무엇인가.
알고 있음에도 말해주지 않은 에단이 괘씸했다.
"...도서관에 오래된 식물도감이 있었던 거 같은데"
매니저는 약속의 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도서관 한쪽에 있던 먼지 쌓인 오래된 식물도감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 도감엔 있지 않을까..?"
매니저는 그 도감엔 있으리라 믿으며 도서관으로 향했다.
·
·
·
"식물도감... 식물도감... 아! 찾았다!"
매니저는 4번째 칸 맨 끝에 꽂혀있던 오래된 식물도감을 꺼냈다.
오래 방치되어 먼지가 많이 쌓였지만 간단히 털어내고 책을 펼쳤다.
매니저는 꼼꼼하게 책을 살펴보며 흰색 꽃을 찾았다.
펄럭-
또다시 한 페이지 넘겼을 때였다.
"...이건가?"
매니저는 14페이지에 나와 있는 '카사블랑카'라는 흰색 꽃을 발견했다.
백합과의 종류이며, 피고 지는 기간이 짧아 보기 힘든 꽃이라고 적혀있었다.
꽃말은 웅대한 사랑, 그리고...
[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했기에 떠나보내겠습니다. ]
...
이 글을 읽은 매니저는 눈물을 보였다.
에단이 날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사랑을 받으면 떠날 수 없을 것 같아서.
내가 떠나면 사랑한다는 말 한번 들어보지 못하고 혼자 남겨질 에단에게 미안해서.
그럼에도 떠나야 하는 내가 미워서.
이런 나를 사랑해주는 에단에게 고마워서.
그래서 눈물을 흘렸다.
·
·
·
약속의 꽃을 찾은 후, 매니저는 카사블랑카라는 약속의 꽃을 찾아다녔다.
꽃집을 여러 군데 찾아갔지만 카사블랑카는 구할 수 없어서 매니저는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하아... 카사블랑카는 결국 못 구했네..."
한숨을 쉬며 의자의 앉은 매니저는 책상 위의 쪽지를 발견했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
매니저님. 내일 아침 시내를 가로질러 골목을 지나면 나오는 초원으로 나와주시겠습니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에단 아스터 버틀러 -
"...약속의 꽃 못 구했는데."
시간이 조금만, 조금만 느리게 흘렀으면..
약속의 꽃을 찾을 수 있었을 거라며,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 시간에 매니저는 한탄했다.
"어떡하지 에단... 약속의 꽃을 장식해 주겠다는 약속... 못 지킬 것 같아..."
미안함에 매니저는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
·
·
틱, 틱, 틱.
아날로그 시계의 시계 초침 소리가 매니저 룸에 울려 퍼졌다.
새벽 6시경.
매니저는 몸을 일으켜 나갈 채비를 했다.
에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약속의 꽃을 구하지 못했지만 기다리고 있는 에단을 위해, 매니저는 에단이 있는 초원으로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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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가로질러 오며, 아침 일찍 문을 연 꽃집도 들렸다.
하지만 결국 약속의 꽃을 구하지 못한 채 에단이 있는 초원에 도착했다.
"에단, 많이 기다렸어?"
"아뇨, 저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미소 지으며 말하는 에단의 표정이 어딘가 슬퍼 보여서.
그래서 매니저는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에단은 그런 매니저를 안아주었다.
"...울지 마십시오. 세상에 영원한 이별은 없습니다."
에단의 다정한 위로에, 매니저는 더욱 슬퍼졌다.
"미안... 정말로 미안해 에단... 약속 못 지켜서..."
"이곳에 와주셨는데 약속을 못 지키다뇨."
"약속의 꽃... 못 구했어..."
매니저의 말에 에단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약속의 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카사블랑카...아니야?"
"맞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지금 제 앞에 있으니 상관없습니다."
"...더 아름다운 꽃이라고..?"
에단은 한쪽 무릎을 꿇고, 매니저의 손등에 입맞춤을 하며 말했다.
"세상의 그 어떤 꽃보다도 아름다운 꽃 매니저님. 사랑해서, 행복했습니다."
떠오르는 오늘의 태양이, 이 둘을 비췄다.
이별의 아침에 장식된 꽃은, 아름답게 빛났다.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했기에, 떠나보내겠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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