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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그리나 / 루카
화창한 여름날. 날씨는 매우 더웠다. 그런 오늘 나는 친구와 약속이 있어 30분 일찍 음료수를 사러 온 것뿐인데..
"잘생겼다! 오늘부터 팬 해도 돼요??"
"혹시 연예인 해 보실 생각..."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다니..
"하하하.. 자기들.. 이러면 오빠가 좀 곤란해..?"
이 인파 속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늘은 여기밖에 없는 데다가 아직 약속 시간까지 25분이나 남아있었다.
"자기들! 나를 좋아하는 건 알지만, 사진은 찍지 말고 지워줬으면 좋겠어..! 나도 초상권이 있어서 말이야~!"
하나씩 반응을 해주기가 너무 어려웠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쩔쩔매다가 어느새 약속시간이 다 됐다.
"하하.. 자기들의 마음은 알지만.. 이 오빠가 좀 바빠서 말이야, 다음에 또 보자?"
사람들에게 윙크를 날린 나는 얼른 자리를 피해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을 바쁘게 움직여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우리 자기 뭐해?"
이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10년간 내가 짝사랑한 단짝이다. 갈색 머리에 흑갈색 눈동자는 흔하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특별한 사람이다.
"우와, 리히트 대박이다.."
전화기 너머 들리는 내 친구의 목소리는 다시 나에게로 몰린 사람들의 소리를 뚫고 정확히 내 귀에 박혔다.
"자기, 어디야? 감탄하는 걸 보면.. 벌써 온 거야?"
"그러는 너야말로. 약속시간 30분 전부터 나와서는! 아무튼 네가 딸기랑 초코 아이스크림 사 오라며. 나 보여?"
그녀는 핸드폰을 높이 들어 나를 향해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아, 우리 자기 보인다. 눈에 확 들어와. 자기, 내가 그쪽으로 갈까?"
"그럴래? 내가 저 인파를 못 뚫을 것 같다."
"알았어, 끊어봐~ 이 오빠가 갈게?"
뚝-
전화를 끊고 이제 곧 만난다는 생각에 설레어 기분 좋은 웃음으로 사람들에게 잠시만요를 반복하며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녀에게 가는 길은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느껴졌다.
"자기~♡"
최대한 연인인 듯 굴며 난 그녀를 한쪽 팔로 끌어안았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향해 찡긋 윙크를 해줬다.
이를 눈치챈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우리 자기 왔어? 이렇게 인기가 많아서야 마음 놓고 만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자기, 무슨 소리야? 나한텐 자기밖에 없어~♡"
커플 행세를 한 우리를 본 사람들은 하나둘씩 에이 뭐야 커플이잖아 라는 소리를 하며 제 갈길을 갔다.
"이제야 갔네. 자, 너는 딸기라고 했지?"
그녀는 나를 향해서 딸기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
"뭐해? 팔아파."
"아~"
"?"
괜히 나만 설렌 것 같아 머쓱한 나는 이 커플 놀이를 조금 더 이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난 최대한 그녀와 가까이 얼굴을 내밀고 웃으며
"먹여줘."
라고 말했다. 그녀가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여서 성공인가 싶었지만
"으이구. 네가 손이 없어, 발이 없어?"
그녀에게 등짝을 맞으며 완전한 실패로 끝나버렸다.
"아, 덥다. 빨리 가자, 리히트."
시무룩한 내 표정을 본 그녀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귀가 조금 빨간 것 같은데...
"어? 자기!! 같이 가!"
나는 어느새 거리가 멀어진 그녀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따라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녀가 걸음을 멈춰 휙 하고 나를 뒤돌아봤다.
"맞다, 리히트."
"응? 불렀어?"
"넌 도대체 시노랑 래비한테 뭘 가르친 거야?"
"내가 뭘 가르쳤다 그래~?"
난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음료수를 마셨다. 그러고 있던 그때,
"너만 보면 매형이라 하는데 누가 가르쳤겠어?"
"푸웁!"
갑자기 나온 말이라 나도 모르게 음료수를 뿜고 말았다.
"콜록콜록!"
"으이구, 이 화상아."
다행히도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나도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마셨기에 피해본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내 등을 토닥이다가 마지막엔 세게 짝! 하고 쳐주었다.
"아야!"
"내가 진짜 너 때문에 미쳐요. 이러다가 내가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면 매형이라고 안 할지도 모르겠네."
"그럼 나랑 결혼하면 되지~? 자기 동생들이 계속 나 매형이라 부를 수 있게 말이야~♡"
나는 잔기침이 나와도 그녀에게 윙크를 날리며 고백 아닌 고백도 함께 날렸다. 하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다름이 아닌 강력한 스매싱(?)이었다.
"못하는 말이 없어, 아주!"
"아아, 미안해 자기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런 말 했다가 큰일 난다?"
후후, 여유롭게 웃은 그녀는 먼 곳을 바라보며 아까 내가 산 음료수를 마셨다.
"그럼 진심으로 좋아하면 그런 말 해도 되는 거지, 자기?"
"당연하지. 그런데 네 성격에 진심으로 좋아하면 그런 말이..."
"?"
"나오겠네. 근데 말이야, 너 아무한테나 잘해주고 다니면 네가 좋다는 애도 상처 받을걸?"
그녀는 나를 보며 걱정했다.
"자기... 잔인해.."
"응? 뭐가?"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도 모르고 저렇게 걱정을 한다는 것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저 순수한 눈빛이.
"눈치 없는 자기."
"응? 눈치가 없다니, 어디에서?"
거기에서.. 모든 것들이 다 눈치 없어.
하지만 그녀가 눈치가 빨랐다면 어땠을까. 부담스러워 고백하기도 전에 차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 위로한다.
그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위치, 이 자리에서 그녀의 곁에만 있는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야겠지. 네가 행복하다면.
"아무 것도 아냐! 우리 또 뭐 먹으러 갈까?"
"이번엔 이거 먹으러 가자. 여기 분위기 있고 좋대."
"그래, 가보자! 자기가 좋아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
분위기 있는 식당에 앉아 밥을 먹고 나온 뒤에, 그녀가 나를 계속 쳐다봤다.
"... 자기."
".. 응?"
"뭐 할 말이라도 있어?"
"응. 있어."
그녀는 불안한 듯 시선을 내린 채로 가만히 있었다.
아, 뭔가 있구나.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했지?"
"음.. 있는데, 그 사람은 너~무 눈치가 없어서 말이야."
"!"
눈치 없는 자기. 너무 눈치 없는 그 사람. 이 정도면 알아차리려나?
".. 나도 있어."
"응?"
예상과 빗나간 답이었다.
"좋아하는 사람 말이야. 이제 잘 되어가는 것 같아."
그녀가 웃음지었다.
".. 그래? 축하해, 자기."
네가 행복하다면 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리히트? 괜찮아?"
아니, 괜찮지 않아.
"응.. 아니."
"?"
"자기야, 그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난 10년간 너만 바라봤는데, 왜 아직도 그대로일까.
"너무... 질투 난다."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리히트. 고개 들어봐."
"..."
"나도 사실 확신이 안 섰거든. 근데 오늘 확신할 수 있었어."
"?"
달칵-
"시노와 래비의 예비 매형이 되어보지 않겠어?"
그녀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반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 바로 매형이 되어줄 수도 있어, 자기."
나는 그 어떤 날보다 밝은 웃음으로 반지를 빼 그녀의 손에 끼워주었다.
"아, 원래 이런 건 내가 하는 건데."
그녀는 당황했지만, 나는 그녀에게 웃어 보이며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다.
"자기, 사랑해♡"
우리는 깍지 낀 손으로 여름의 노을 지는 거리를 걸었다. 가장 행복한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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