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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ten / 도마도
- 이 몸은 그 누구보다 훌륭한 왕이 될테지. 순리대로 말이야.
루이는 흉부 위에 루이 자신의 손을 올려 고상한 태도를 취하며 말했다. 매니저는 그 일련의 과정들을 묵시했다. 그저 조용히 지켜봤다. 그것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매니저가 대체 무슨 참견을 할 수 있었을까, 도대체 무슨 개입을 한단 말인가? 유려한 호선을 그리는, 지나치게 익숙한 그 미소를 보고서도.
- ...그렇겠지.
이후 대화는 끝났다. 문득, 매니저는 제 수긍이 그저 동정 어린 시선에 불과하단 생각이 들었다.
루이는 자비로운 자인가? 이 질문에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괴이한 일이기 때문이렷다. 다른 이가 다가왔을 때서야 매니저는 황급히 그 자리를 떴다. 등 뒤로 통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매니저는 질보로 걸었다.
연습실 옆 복도에 도착하자 매니저는 멈춰서서 숨을 골랐다. 괜히 고개를 치켜드는데 연주홍색 천장에 달린 전등은 보기 힘들 정도로 밝았다. 매니저는 지금의 모든 순간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부 충동적이고 직감적이었고, 개 중엔 회피본능과 죄의식도 있었다. 매니저는 빛을 막기 위해 서류로 얼굴을 가린다. 그 의지에도 불구하고 빛은 꾸역꾸역 새어들어온다. 매니저는 한 번 걸러져서 흐릿해진 빛을 보다가, 마침내 눈을 감았다.
매니저는 그들이 가엽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은 불쌍하다기엔 너무 강인했고, 강하다기엔 죽었고, 시체라기엔...
아, 루이, 여긴 순리를 거스르는 곳인데, 도리어 네가 역적일텐데.
매니저는 연습실 사이로 새어나오는 노래 소리를 듣는다.
♬ BGM과 함께 감상해주세요.
- 들게.
루이가 찻잔을 들어올리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매니저는 고개를 숙여 제 몫의 차를 바라본다. 맑게 우린 히비스커스 차 위로 매니저 자신의 얼굴이 일렁거렸다. 벚꽃과 함께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마냥. 매니저는 티스푼으로 차를 가볍게 휘저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테이블 위의, 각설탕이 그득히 들은 그릇이 제일 먼저 보였고, 그 뒤로 반짝거리는 금색 브로치가 보였다. 루이의 제복 장식이었다. 브로치 중간에는 꽤 멋지게 조각난 붉은색 돌덩이가 박혀있었다. 거기에서 시선을 올려 흰 제복과 새하얀 목을 지나니, 루이의 얼굴이 보였다. 하필이면 태양이 그의 뒤편에서 지고 있어 루이를 제대로 보기 힘들었는데, 매니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매니저의 눈동자 속에 찬란한 인간의 형상이 새겨졌고, 매니저는 자신의 시력이 저하되고 있음을 느꼈다. 매니저는 티스푼을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새하얀 식탁보가 붉게 물들었으나 아무도 그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온갖 색을 지닌 태양이 한데 모여 하늘을 주홍색으로 물들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지배적으로.
- ...루이, 사랑이랑 추종의 차이는 뭘까?
그리고 연민의. 매니저는 충동적으로 읊조린다. 행위보단 동물적 행동에 가까울 정도의 충동으로 읊조린다. 그 질문을 받은 후 루이는 매니저를 바라보는 듯 하더니, 찻잔을 내려놨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그들 사이의 거리를 다시 메꿨다. 루이는 턱을 괴고 고민 중임을 강조하기 위해 앓는 소리를 낸다. 루이의 시선이 매니저에게 향하는지, 또는 매니저 뒤의 장미들을 향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매니저는 루이가 자신을 바라본다고 생각했다. 매니저는 그의 답변을 기다리며 찻잔을 들고 한 모금을 들이켰다. 혀에 닿은 히비스커스 차는 그렇게 떫지 않았고, 식도에서 무언가가 추락하는 느낌이 지나치게 잘 느껴졌다. 퍽 불쾌한 촉감이었다. 루이는 그런 매니저를 관람하며 샛노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더니, 길고 풍성한 쌍커풀로 눈을 덮으며 답했다. 매니저가 차 두 모금을 마신 직후의 일이었다.
- 이 몸이 학자는 아닌지라 설명은 잘 못 하겠군.
다소 허무한 답변이었다. 아무래도 방금 전의 침묵은 답변을 위한 고민은 아니였던 듯 하다.
- 그래?
- 그래, 그것을 알았더라면 그대를 더 잘 이해했겠지.
- ..나?
매니저는 변명이라도 하고자 입을 몇 번 뻐끔거리다가, 간단한 반문과 찻잔을 내려놓는 것으로 끝냈다. 루이는 그런 매니저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지품을 두고 일어나는 것을 보니 대화를 끝내고자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 그대.
루이는 매니저를 지나쳐갔다. 분명 저 쪽에는 장미 넝쿨들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매니저는 몸을 돌려 시선으로 루이를 좇았다.
- 그렇게 떨떠름하지 않아도 되네. 사랑과 추종은 당연하고. 만일 그대가 이 나를 연민하는 것이라면, 굉장히 우스운 일이 되겠으나...
루이는 장미 넝쿨의 모임 가까이로 다가갔다. 다르게 말하면 점점 매니저에게서 멀어졌다.
- 이 또한 이 몸이 져야 할 일이겠지.
루이는 우아하게 몸을 숙여 장미를 부러뜨렸고, 이어서 몸을 회전시켜 매니저를 바라봤다. 루이의 어깨에 부착된 망토가 크게 펄럭이며 고아한 느낌을 뽐냈다. 매니저는 의자 등받이 위에 손을 올리고 가만히 루이를 응시했다.
- 내 부재로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으니.
루이는 부러진 장미를 또 꺾어, 줄기와 꽃이 분리되도록 했다. 장미는 불청객에게 대항했고, 따라서 흰 장갑이 소량의 혈액을 토해냈다. 루이는 장미에 있지도 않은 먼지를 턴 뒤 쨍할 정도로 붉은 꽃을 매니저의 손에 쥐여줬다. 루이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는데 매니저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장미 넝쿨 쪽을 바라봤다. 매니저는 장미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 미워하고 있어?
- 누구를 말하는건가?
루이가 목적어의 부재에 대해 물었다.
- 널 죽인 사람들.
- 그럴 리가.
- 그들 역시 네 백성이라?
- 온갖 변란은 왕실의 행실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인데, 그것이 어찌 그들의 탓이겠나.
매니저의 등 뒤에서 의자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루이가 다시 의자에 앉은 것 같았다.
- 그 자비가 네 백성들을 죽였어.
- 알고 있네.
- ...
- 슬프게도.
매니저는 루이를 향해 몸을 돌리다가 테이블을 팔꿈치로 걷어찼다. 찻주전자와 그릇이 덜컹거리며 흔들렸다. 찻잔은 급격한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엎어져서 매니저의 소매를 약간 적셨다. 새하얀 식탁보는 붉은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테이블 위는 차가 독재했다. 테이블 위로 낙오된 각설탕은 차를 머금었고, 떫은 차는 테이블 위를 넘실거리다가 풀 위로 뚝뚝 떨어진다.
- 그대는 어설프게 친절해.
대화 끝에 남긴 루이의 말은 그게 전부였다.
ㅡ
- 사랑인가?
매니저는 대뜸 질문했다. 밤하늘에는 별 한 점 없이 달랑 자연위성 하나만이 눈에 보였다, 그 밤하늘 아래에는 루이와 매니저가 앉아있었다. 루이는 생그러운 녹안으로, 가려진 별빛을 찾아 헤매다 매니저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 그런 것 같기도 하군.
루이는 애매한 대답을 하며 예쁘게 웃었다.
- 확신이 없네.
- 그대가 그렇듯이.
- 그건 그렇지.
매니저는 멍하니 대답하다가 돌연 기지개를 폈다. 앓는 소리와 함께 매니저는 풀무더기 속으로 파묻혔다. 흙 사이의 조약돌이 매니저를 찔러온다. 루이는 놀라지 않고 매니저의 손을 잡은 채로 그를 바라봤다. 루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홍소한다.
- 그럼 그냥 내 마음대로 살까..
매니저는 느긋하게 두 눈을 끔뻑이며 루이를 본다. 이제 보니, 도시 저 편의 불빛이 루이의 머리카락을 물들이고 있었다. 퀼트로 만든 눈이 매니저에게 고정되어있다. 매니저는 홀린 듯이 문의한다.
- 멋대로 말하면 멋대로 대답해줄래?
- 그러기엔 이 몸에게 주어진 것이 많아.
- 그것도 그렇네.
- 하지만 멋대로 듣는건 괜찮겠지.
루이가 부드럽고 인자한 미소를 짓자, 매니저는 대자로 누운 채로 눈을 서서히 감는다. 그의 눈을 찌르던 머리카락은 버려진 곰인형마냥 부스스하다.
- 사랑해.
매니저는 실토하고, 루이는 변함없이 웃었다. 매니저는 기어코 그 미소를 보지 않는다. 암갈색의 속눈썹이 그를 보호할 뿐이다. 매니저의 얼굴에 조명의 빛이 닿는다. 스포트라이트는 상현달의 옅은 달빛과 네온, 그리고 저 멀리 있는 형광등의 흔적이다. 루이는 매니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준다. 귀에서 머리카락이 쓸려 넘어가는 소리와, 희미한 승용차의 경적소리가 들린다. 경적소리는 바람에 휘날려 파열된 채 귀에 도달했다. 선선한 밤바람이 부는데도 날은 여전히 무덥다. 매니저의 옆에 핀 민들레가 더위라도 먹었는지 시들시들하다. 매니저는 곧 잠에라도 들 것처럼 몸에 힘을 빼고 있다. 루이는 맞잡은 손으로 그것을 느낀다.
- 청월이 뜰 때, 그대를 찾을게.
루이는 그가 말할 수 있는 최대한을 말했다. 매니저는 느림보처럼 눈을 떠서 또 다시 루이의 모습을 수놓는다. 녹조를 품은 안구에 매니저가 비추어지고 있다. 그 영롱함에 사랑이 있다. 매니저는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루이와 정면으로 마주본다. 밤하늘 대신이라기엔 너무 뿌연 용안을 보면서.
- 넌 너무 아프게 친절하고.
매니저는 루이의 어깨 위로 얼굴을 파묻는다. 그 외의 접촉은 없다.
Fi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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