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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과 함께 감상해주세요.
여름의 자각몽 / 필연
*청춘 AU 기반
으음, 여긴 어디지…
매니저는 작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슬그머니 둘러보았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낯선 천장이라는 흔한 문장이 떠올랐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아무리 기억을 뒤져보아도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현재 자신이 서 있는 곳은 조금 정돈이 덜 되었지만 그래도 깔끔한 편인 방이었는데, 자신의 방이 아님은 단언할 수 있었다. 자신의 방은 이렇게까지 넓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방에 관한 판단을 빠르게 마친 그녀는 자신의 차림을 훑어내렸다. 익숙한 차림이었다.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의 교복이었기 때문이다. 검은빛이 도는 리본을 묶은 반팔 와이셔츠와 검은색의 치마, 그리고 자주 신는 하얀색 운동화. 놀라운 거 없는 복장이었기에 그녀는 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는 마음으로 가장 눈에 띄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뚜벅, 뚜벅. 습관처럼 단정하게 걷는 소리가 방 안에 퍼졌다. 그녀가 걸어간 곳은 서류가 잔뜩 쌓여있는, 이 방이 정돈이 덜 되었다고 여겨지는 주원인 중 하나인 책상이었다. 쓱 읽어보니 명계니 사신 14 지부니 뭐니 알 수 없는 단어들만 한가득하였다. 판타지 세계인가? 어깨를 으쓱이며 종이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이 상황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는 듯 그녀는 익숙하게 둘러보았다. 원체 자각몽을 많이 꾸는 편이었기에, 당연히 꿈인 것을 지레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이건 뭘까.
한 서류 뭉치 앞장에만 '아주 중요함!'이라 적힌 노란색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슬쩍 훑어보니 머리카락 색이 다채로운 이들의 신상 정보와 메모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뭐랄까, 기억하기 위해 섬세히 적어둔 흔적이 가득 묻어나왔다.
매니저는 서류를 하나씩 넘겨보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시선이 끌린 건 종이 끝이 가장 많이 닳아있는 페이지였다. 이 서류의 주인이 그만큼 열심히 읽었다는 뜻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페이지 왼쪽 상단에 있는 사진 하나를 보았다. 붉은 와인 빛 머리카락과 잔잔하게 가라앉은 듯한 연둣빛의 눈동자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존재감 없는 듯한 인상이었으나 눈동자만큼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만큼 지긋한 시선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든 순간, 누군가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노아?"
같은 반인 데다가 같은 아파트라 자주 등하교를 함께하는 친구. 정말 미세한 것마저 다른 부분 하나 없이 그 아이와 똑 닮아있었다. 어째서 얘가 내 꿈에 나온 거지? 눈을 비비적거리며, 종이를 멀뚱멀뚱 쳐다보다 아래에 적힌 메모를 읽었다. 썼다가 볼펜으로 죽죽 그은 흔적 또한 있었다. 왜인지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보.....고...싶다?"
대체 왜 이런 게 적혀 있는 거지? 미간을 찌푸리면서까지 고민을 해보았지만, 당최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똑똑. 느릿하지만 경쾌히 두드리는 것이 정중함이 물씬 느껴지는 두드림이었다. 매니저는 일단 입을 다문 채 곧 들려올 듯한 바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의 예상처럼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니저, 있어?"
헙. 매니저는 숨을 들이마셨다. 저 목소리는 분명 노아의 것이었다. 최근 가장 많이 듣는 목소리인 만큼 자신이 틀릴 리가 없었다. 왜 쟤가 내 꿈에 나온 거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푹 수그려 앉아 책상이 자신을 가리게 했다. 꿈이기에 숨을 필요가 없는데 왜 숨은 거지? 그리 생각하는 순간, 방의 문이 열리고 조용히 걸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흐음. 고민하는 그의 목소리도 들렸다. 매니저는 꿈인데도 제 심장이 거세게 울리는 것이 생경하게 느꼈다. 들키면 무어라 말하지? 꿈속에서도 내가 알고 있는 노아인가?
그때, 자신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지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곤 예쁜 녹색의 눈과 떡하니 마주쳤다.
"왜 숨어있는 거예요?"
노아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 마디는 딱히 위협적인 투도 아니었고, 되려 다정함이 뚝뚝 묻어나오는 한마디였다. 평소보다 더 다정한 그의 말에 매니저는 자신도 모르게 어버버거리고야 말았다.
"어, 어어, 그게…"
"매니저답지 않은 모습이네. 나 때문에 놀란 건가?"
"…"
"맞나봐, 미안해요. 놀라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는데."
잘생겼다. 어? 그런 생각을 한 매니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휙 하니 돌려버렸다. 멋쩍게 웃는 그 모습이 심장에 해로웠다. 게다가 친구니까 당연히 반말만 쓰던 노아를 보다가 존댓말이 중간중간 섞여 있는 것이 마치 다른 이라도 보는 것 같았기에 당연한 처사였다. 그런 매니저를 유심히 살펴보던 노아는 살짝 웃으며 물었다.
"매니저,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왜 그렇게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요."
뭔가 시무룩한 듯한 그 말투에 정곡이 찔린 매니저는 고개를 다시 돌려 노아를 올려다보았다. 이런. 매니저는 자신이 노아에게 속았음을 알아차렸다. 마주한 그의 얼굴은 싱글벙글한 미소가 가득했고, 슬픈 기색은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능글맞은 애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매니저는 슬금슬금 일어나 노아와의 간격을 벌렸다. 사이가 멀어지자마자 그녀는 대번에 눈썹이 축 늘어진 노아를 봐 버렸다. 이러면 내가… 매니저는 입을 열려다 그냥 속으로 말을 꾹 삼켰다.
"오래간만에 여기서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네요."
"오래간만이라니?"
"그런 게 있어요."
매니저는 모르는 그런 거. 노아는 뒷문장은 말하지 않은 채 그저 웃기만 했다. 매니저는 그런 노아를 보고 궁금증만 커졌다. 대체 여긴 어디고, 저 노아는 내가 아는 노아가 맞는 것이며, 왜 오래간만에 자신을 이곳에서 본다고 하는 것일까. 소설 같은 일이라도 일어난 건가? 아니면 남의 꿈에 들어왔나? 매니저는 이것저것 상상의 나래를 펼치느라 노아가 자신을 계속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 생각에 잠겨있을 무렵, 갑작스레 노아가 입을 열었다.
"어… 매니저, 만나서 반가웠어요."
"뭐?"
헤어지기 직전의 인사처럼 건네는 한 마디에 매니저는 퍼뜩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노아는 순식간에 매니저를 자신의 품에 넣어 폭 안아주곤 뒤로 물러났다. 매니저는 그런 노아에게 손을 뻗었지만, 그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이 더 빨랐다. 상황의 마침표가 상당히 허무했기에 매니저는 그 자리를 더듬어 보려 했다. 하지만 누군가 제 어깨를 잡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며 그 옆을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순식간에 책이 가득히 꽂힌 책장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손의 주인은 노아였다. 다시금 어버버 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이 다니는 학교 도서실 구석이었다. 꿈에서 깨어났나보구나. 왜인지 얼굴엔 식은땀이 맺혀있었다. 딱히 꿈에서 식은땀이 날 만한 일은 없었는데? 매니저는 속으로 의문을 품다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별일 아니겠지, 라는 마음으로 넘기기로 했다. 자연스레 시선을 돌려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계를 바라보았더니 점심시간이 끝나기 5분 전이었다. 헉, 소리를 내며 노아를 바라보았다.
"우리 곧 수업 시작이잖아! 얼른 가자!"
이리 말했지만, 도서실임을 잊지 않고 소곤소곤 말하는 것을 잊지 않은 매니저였다. 노아는 사람 좋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일어나 도서실을 나가는 매니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 조금 전 꿈에선 조금 무리를 했다. 임무를 위해 받은 능력이었으나, 악몽을 꾸는 얼굴이라 어떻게든 꿈을 비틀어 참견하였다. 그랬기에 그녀는 깨어났을 때 식은땀을 가득 흘리고 있었고, 노아는 그걸 최선을 다해 모른 척할 뿐이었다.
그는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노력했고, 이리 만나서 모른 척 다시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공간에 서 있는 그녀를 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때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녀가 자신을 기억하던 그때처럼 굴어버렸다. 그렇기에 어쩌면 매니저는 당분간 자신을 보면 꿈이 떠올라 피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렇게 얼굴이라도 보는 것도 괜찮았고, 그때의 추억과 기억을 떠올리지 못해도 괜찮았다. 그녀는 이 모든 게 꿈이라 치부해도 되었다. 어차피 그렇게 알고 있을 테니까. 이것은 모두 14 지부에서 매니저와 사신으로 만났던 그때도 자각몽을 많이 꾼다며 말해주었던 게 기억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딱 한 번 시도해본 것이었는데, 무사히 끝나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자각몽을 많이 꾸는 상태라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녀는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그때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노아는 만족하기로 했다. 이리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것도 기적 같았으니까. 그리고 헤어질 때도 매니저는 자신을 잊더라도 자신은 그녀를 영원토록 기억해주겠노라 약속했으니까. 노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의 뒤를 따라 도서실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작은 해프닝 아닌 해프닝 같은 그녀의 자각몽은 그저 지나가는 여름의 한순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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