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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야기 / 라일락
아 어서오세요. 연락하셨던 분 맞으시죠? 이쪽으로 앉으세요. 14지부가 요즘 혼란스러워서요. 아무래도 이제 얘네들도 졸업할 때라 그런가... 아. 제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요? 아 아마 당신이 찾으시는 분은 첫 번째 매니저같네요. 저는 사신력으로 400년 전에 새로 들어온 두 번째 매니저입니다. 첫 번째 매니저분은 결혼해서 인간계로 내려갔는데... 하하.. 왜 이렇게 충격받은 표정일까요? 고백이라도 하려고 하셨나요? 어머... 제가 실언했네요.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아 결혼.. 이야기가 궁금하세요? 제가 말해도 되나...? 근데 여기 사람들은 다 알긴 하니깐.. 두 분은 정말 동화 같은 이야기로 결혼한 것 같네요. 아직 새 사감이 오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깐 잠깐 들려드릴게요.
제가 매니저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그땐 대부분의 사신들이 매니저님에게 사랑한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제가 끼어들 자리조차 조금 모자랐어요. 아무래도 어렸을 때라 처음에는 매니저님이 조금 미웠지요. 하지만 며칠 지나 보니 알겠더라고요. 매니저님은 엄청나게 착했어요. 누구든 마음을 따뜻하게 헤아려주고 그 사람을 최대한 배려해주니까요. 저까지 반해버릴 뻔 했다니까요. 하지만 사신들의 만화경이 채워질 수록 그들은 마음을 접더라고요. 일부러 접었는지 자연스레 꺼진 건지는 저도 몰라요. 그렇게 세세한 감정까지는 모르거든요. 아, 제가 말씀 안 드렸나요? 제 능력은 감정을 읽는 거예요. 간단한 감정만 보이지만요. 이야기가 조금 새버렸네요. 어쨌든 그들에게 사랑이 아닌 좋아한다는 것에 의미만 남을 때 절대로 변하지 않는 두 사신이 있었어요. 테오님이랑 유세프님이였죠. 온갖 곳에서 묘한 신경전을 벌이며 다니는 둘 때문에 서류 작업보다 온갖 장소로 심부름 다니는 저에게는 매우 고역이였어요. 가는 곳마다 둘이 있었으니깐요. 이럴 바에는 둘 중 하나를 빨리 이어줘 버리는 것을 어떨까? 라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 예비 사신 교습소의 시노가 저를 붙잡더라고요.
"혹시.. 우리 누나에게 찝쩍거리는 사신은 없지..?"
이러면서요. 웬만한 잘난 놈 아니면 안된다. 아니 아예 사신이면 안된다. 우리 누나 누가 채가지 못하게 잘 좀 지켜달라... 만날 때마다 이런 말을 하며 사정을 하는데 이어준다는 계획을 계속 실행시키기도 어려워지고... 하하.. 많이 곤란했었죠.
음... 원래 유세프님은 테오님에게 딱히 큰 감정은 없었어요. 다 같은 동생들이니깐 분란이 조장되지 않게 조절하는 역이였죠. 그리고 나이 차이가 8살은 나는데... 자기보다 한참 어린 아이랑 싸우는 것도 이상하기는 했고요. 유세프님도 배려 그 자체였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도서관에서 유세프님이 테오님에게 약간의 분노의 장면을 본 적이 있어요. 아마 그 때 이후로 조금의 신경전이 벌어진 듯 한데... 그 날 도서관에서 테오님은 첫 번째 매니저님이 평소 자주 보는 책을 꺼냈어요. 첫 번째 매니저님이 워낙 바쁜 게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매니저님은 항상 그 책의 1권만 빌려 갔었어요. 저는 그때 도서를 정리하고 있던터라 테오님이 어떤 책을 꺼내시는지 정확하게 볼 수 있었죠. 테오님은 한참을 앉아서 그 책을 읽었어요. 한 2권의 반 정도 읽었을까? 유세프님이 도서실로 들어와 테오님을 빤히 쳐다보더라고요. 테오님도 그 시선을 눈치챘는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유세프님을 노려봤죠. 저는 몰래 숨어서 그걸 지켜보고 있었고요. 테오님이 먼저 입을 열었죠.
"뭘 봐요?"
가끔 테오님은 예의가 사라질 때가 있어요. 평소에는 누구보다 바른 분이신데... 유독 신경을 건드리는 게 생기면 앞뒤 상황 안 재고 눈앞에서 그걸 치워버리고 싶어 해요. 유세프님은 한참 어린 동생들에게 반말 들어도 웃는 분인데 그 정도로 테오님을 피할 리가 없지요. 유세프님의 굳었던 표정이 풀리고 테오님이 들고 있는 책을 가리키며 물었어요.
"그 책 재밌어...?"
유세프님은 이 도서관의 책은 거의 다 읽었을 거에요. 항상 시간이 남으면 도서관에 있거나 책을 빌려 가는 분이니... 그 책의 자리는 유세프님이 자주 가는 서고 쪽이니까 한 번은 꼭 읽어보셨겠죠. 테오님은 여전히 노려보면서 대답했어요.
"작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
이런 이상한 현상은 매일 반복 되었어요. 테오님은 하루에 한 번씩 이곳에서 그 책을 읽었고. 유세프님은 비슷한 시간에 들어와 테오님께 소감을 물어보았죠.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테오님의 감정은 많이 누그러져있었고, 유세프님의 감정은 여전히 호감이였어요. 사신지부에 있는 마지막을 읽었을 때 테오님은 유세프님께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걸었어요.
"왜 이 책의 뒤는 없을까요?"
"작가가 죽었으니까."
"왜요?"
"그 책에 쓰여진 비밀이 밝혀져 버린 사람들이 죽였거든."
테오님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말을 내뱉었죠.
"작가가 멍청하다고 생각해요."
"왜?"
"꽤 부유한 집안 사람같은데.. 모든 걸 포기하고 진실을 택했다가 어이없게 죽었다는 것이요."
"진실이 얼마나 중요한데..."
"숨기는 것도 중요하죠. 만약 저 책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면 숨겼어야죠. 작가라는 사실을. 끝까지 알리고 싶었으면 그래야 했지 않을까요? 결국 의미 없이..죽었잖아요."
"테오는 그 죽음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으니까요."
"그렇구나."
유세프님의 감정이 아주 잠깐.. 진짜 찰나의 순간 분노로 바뀌었다가 사라졌어요. 그날 밤 저는 그 감정은 정말 분노가 맞을까? 또 제가 감지를 잘못한 건 아닌지.. 제 능력에 대해 의심을 하며 지부 뒤편을 걷고 있었어요. 그리고 술에 취한 유세프님과 그 옆에 매니저님을 발견했죠. 유세프님의 머리를 매니저님이 쓰다듬어주고 있었고 유세프님은 조용히 그 손길을 받고 있었어요. 이 광경에 저는 넋 놓고 그 광경을 바라봤지요. 유세프님은 자기 죽음이 과연 의미가 없을까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하고 분석한 것을 매니저님께 털어놓았어요. 옆에 굴러다니는 빈 맥주캔이 꽤 되는데도 발음 하나 뭉그러지지 않는 것이 그답다고 해야 할까요. 유세프님의 말에 매니저님은 하나하나 정성스레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해주었어요. 유세프님은 울며 고맙다고 말하더니.. 매니저님께 키스하고 자버렸어요. 네. 잘못 들으신 거 아니고 제대로 들으신 거 맞아요. 키스. 더 자세히 설명해 드려요? 혀와 혀가 뒤엉키...는 그거 맞는데... 성격도 급하셔라. 빨리 뒷이야기나 말하라니요. 고작 이거듣고 얼굴 빨개지신 거에요? 후후...
매니저님의 감정은 매일 같았어요. 사랑이었던 거에요. 사랑과 존경은 많이 닮아있어요. 생각보다 많이. 저는 그 당시에 그걸 구분하지 못했어요. 매니저님이 세이 사감님을 볼 때의 감정과 유세프님을 볼 때의 감정이 같다고 생각했죠. 두 개는 확실히 달랐어요. 두 분은 서로 사랑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유세프님은 곧 떠날 거예요. 매니저님도 레비를 찾아야 하고요. 그래도 저는 바로 두 분을 이어줄 루트를 찾기 시작했어요. 결말이 보였어요. 그래도 이대로 끝내기에는 두 명 다 아깝잖아요? 밤새 고민해 본 결과. 제가 레비를 찾으면 매니저님의 염원은 아직 남아있어요. 그럼 매니저님은 그 염원으로 유세프님과 살면 되는 거예요.
다음 날 저는 그 계획을 실행시켜줄 사신을 찾아다녔어요. 그리고.. 잊고 있던 테오님을 만났어요. 그 전날에 그 두 명이 이어진다고 생각되서... 테오님을 생각을 못하고 있었어요. 설상가상으로 테오님앞에서 제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매니저님이 오시고 그 뒤로 유세프님까지... 그 뒤는 정말 아비규환이였죠. 유세프님이 유치해지셨거든요. 자연스레 매니저님 어깨에 팔을 두르고 테오님을 보고 씩 웃는다던가. 그래놓고 매니저님과 헤어지면 머리를 벽에 박는다던가... 제가 와도 신경도 못 쓰고.......
"내가 어린애 상대로 무슨 짓을...."
이러면서 한숨 푹푹 쉬시는 것도 계속 보였지요. 저는 그걸 보며 시릴한테 매일 칭찬과 간식을 바쳤어요. 제발 사람 찾는 기계 하나만 만들어주시옵소서... 천재 시릴님!! 시릴오라버니... 시릴형님... 제발요... 막 이러면서... 일주일 째 되는 날 정말 빠르게 기계가 완성되었고. 그 기계는 레비를 찾을 수 없었어요. 이런 걸로 찾을 수 있다면 진작에 찾았겠죠. 안그래요? 실망스러운 마음을 안고 매니저실로 들어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둘이 끌어안고 고백을 하고 있었어요. 진짜 사랑한다고. 이제 곧 떠날 때 인 데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진짜 사랑한다고... 매니저님을 꼭 안으며 고백하고 매니저님이 사랑한다고 답하며 길고 긴 키스를 하는데... 저는 벙쪄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어요. 키스가 끝난 후 바로 그 순간 그 둘은 저를 발견했어요. 제가 만날 문제죠... 이런 중요한 순간에 방해를 한 게 미안해 그대로 문을 닫고 도망쳤어요.
"저 오늘... 나가서 자고 올게요!! 마저 하세요...!"
있는 휴가 없는 휴가 싹 다 끌어모아서 세이 사감님께 늦은 시간에 죄송하다 연신 사과하며 그 휴가를 처리하고 사신지부 밖으로 달려 나갔어요. 그리고 레비를 만났어요.
갑자기 무슨 소리냐니요? 진짜에요. 정말 드라마 같았어요. 딱 날 레비를 찾다니요. 지부 근처 공원에서 제가 뭘 봤는지 멍하니 있을 때..... 매니저님이 보여줬던 그 사진 그대로의 하나도 늙지도 변하지도 않은 그 사람을요. 그는 맨발이었고 여기저기 생채기가 조금 나 있었어요. 전체적으로 큰 문제는 없어 보였죠. 그리고 아마 아무것도 아닌 그냥 영혼상태인 것 같았어요. 감정이 보이지 않았거든요. 원혼도 아닌 그냥 영혼 상태로 사신에게 수거되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다니... 바로 도망치려 하는 레비를 붙잡아 사정을 설명하고 사신지부로 데려가기까지 이틀이 걸렸어요. 잠도 못 자고 레비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닌 기억만 남아서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왜 그렇게 열심히 둘을 이어주는 것에 진심이였는지는 몰라요. 그냥 정신을 차려보니 상황은 모두 마무리가 되어있었어요. 매니저님은 그 날 하루종일 레비 손을 잡고 울었어요. 그리고 저도 같이 울었어요. 저도 첫 번째 매니저님을 많이 좋아했나봐요.
이제 모두 행복할 거라고 믿었어요. 저는 어리석게도 한 사람을 빼먹었죠. 테오님이요.
"테오" 정말 이쁜 이름이지 않나요? 제 고향에서도 있던 이름이라 그런지 정말 친해지고 싶었어요. 친해지기 쉽지 않았을 텐데... 라뇨. 만나보셨어요? 역시 그랬군요. 맞아요. 친해지기는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포기했어요. 근데 어느순간보니깐 어색하지 않을 사이는 되어있더라고요. 유세프님이 매니저님을 받치는 모양새 그리고 매니저님이 눈물을 쏟아낼 때 자연스럽게 품을 내주며 토닥이는... 그런 연인 같은 행동을 보며 테오님은 눈치를 채신 것 같았어요. 테오님의 풀려있던 주먹에는 힘이 들어갔고 매니저님의 행복을 보며 안도하던 얼굴은 사라졌었어요. 걱정하는 준님을 내버려 두고 테오님은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어요.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이 흘러도 테오님은 평소랑 같은 모습이였어요. 외형상으로는요. 안쪽의 감정은 계속 섞여서 어떤 감정인지 분간하기도 힘들었고, 테오님은 매니저님을 피해 다녔어요.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 하신 것 같지만 너무 대놓고 피하니 매니저님도 어쩔 줄을 몰라 했어요. 숨기는 게 서툴렀어도 테오님의 다른 특기가 하나 더 있죠. 가식적인 웃음. "매니저님이 요즘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 혹시 나 피해 다녀?"라고 물으면 테오님은 입술에 침 한 번 안 바르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죠. 피곤하다는 둥. 매니저님 보려고 가면 사라졌었다는 둥... 평소와 같이 활발해 보이면 매니저님은 안심하고 자리를 떠요. 그러고는 저에게 브리핑을 받죠. 최대한 매니저님과 마주치지 않으려고요. 근데 테오님은 몰랐을걸요? 매니저님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테오님의 감정은 갑자기 커졌어요. 차곡차곡 눌러온 그 큰 감정을 압축하고 또 압축해서 작은 상자에 담으려 노력하는데, 그게 순순히 들어가겠어요? 그 감정의 원인을 만날 때마다 전부 튀어나오는데. 그 감정이 어찌나 깊은지... 저는 테오님이 매니저님을 바라볼 때면 튀어나오는 감정에 깔려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였으니까요.
역시 당신도 고백이라도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는군요. 근데 고백이라는 건요. 확인이에요. 아니면 마음을 정리했다고 말할 수 정도는 있겠네요. 다른 사람이랑 이미 사랑에 빠진 걸 아는데 거기에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는 건 민폐라고요. 이제 겨우 행복해지려는 매니저님을 힘든 게 할 수도 있죠. 그 혼란이. 테오님도 그걸 알아요. 그래도 테오님이 그걸 마음에서 처리하려면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마음도 같이 썩을지도 몰라 보였어요. 저 살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진짜로요. 그래서 끝을 말하라고 했어요. 테오님은 당연히 매니저님이 불편하실 거라며 안된다는 의사를 보였어요.
"좋아했다고 고백하세요."
"좋아했다고?"
"과거로요. 말하면서 마음정리를 하는 거죠. 그래야 저를 포함해서 모두 괜찮아 질 것 같아요. "
"그래도 괜찮을까?"
그때 테오님은 떨고 있었어요. 매니저님이 겨우 찾은 행복을 자신이 망쳐놓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좋아했다는 마음을 고백하는 것도 테오님께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해 보였어요.
그거 알아요? 매니저실 뒤편에 이 커다란 나무는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에요. 나무 위에 올라가 앉아있으면 주변은 훤히 보이지만 다른 사람이 이 나무를 볼 때에는 이 나무 위에 누가 앉아있는지 잘 보이지도 않으니까요. 오늘 브리핑은 저 같은 초보가 할 게 아니라 첫 번째 매니저님이 해야 하는 그런 중요한 일이였어요. 저는 다시 감정에 깔리고 싶지 않아 그 나무로 숨어들었죠. 잠깐 잤을까요? 시계를 꺼내 보니 벌써 1시간이 지나있었어요. 브리핑이 끝난 지 30분은 더 지난 시간이였죠. 슬쩍 매니저실을 쳐다보니 매니저님은 혼자 열심히 일하고 계시더라고요. 농땡이 피운 게 걸릴까... 노심초사하며 나무에서 내려오려 하는데... 갑자기 숨쉬기가 불편해지며 몸이 무거워졌어요. 테오님이 매니저실에 들어와 있었어요. 저는 그 장면을 계속 지켜봤어요. 테오님은 매니저님께 계속 말을 하고 있었어요.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저는 그 말이 고백이라는 걸 알 수 있었죠. 점점 숨쉬기가 편안해지며 테오님의 감정이 밖으로 나가 매니저님에게 전해지고 있었어요. 마지막에 울고 있던 테오님은 이내 후련한 듯 눈물을 달고 웃었어요. 저는 테오님이 다 울며 나갈 때 까지 문 앞에서 조용히 기다렸어요. 테오님은 문을 열며 마지막을 말했어요.
"좋아했어요. 정말 많이 좋아했어요."
매니저실의 문이 닫히고 테오님은 그제야 저를 발견하셨어요.
"성공했네요?"
"내가 누군데."
테오님답게 짝사랑의 끝도 완벽했어요.
졸업 이틀 전 결혼식이 열렸어요. 사신지부 뒤편에서 열린 초졸한 결혼식이였지만 두 분은 행복해보였어요. 염원으로 인간께로 돌아가서 한 번 더 할 테니 상관없데요. 테오님은 괜찮아 보이셨어요. 연신 셔터 버튼을 눌러대며 매니저님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죠. 소심한 복수로 유세프님은 다 잘리게 찍어서 엘님의 사진으로 사진첩을 만들 수 밖에 없었죠. 저는 시노에게 엄청난 눈초리를 받았어요. 안 지키고 뭐했냐이러는데... 너무하지 않아요? 제가 그 상황에서 어떻게 둘의 사랑을 막는데요? 옆 지부 라이너님도 오셔서 축의금으로 나비를 주고 갔어요. 원혼 나비요. 결혼식 망칠 일 있냐는 시안님의 잔소리에 라이너님은 순수한 마음으로 주고도 욕먹냐며 결혼식 뒤편에서 작은 소동도 일었지요. 테오님은 매니저님께 유세프님이 속상하게 하면 저에게 확 와버리세요. 하며 유세프님을 째려보며 장난스럽게 웃었어요. 그 테오님이요. 그리고 역시 레전드는 키스. 아까부터 왜 이렇게 키스에 집착하냐뇨... 진짜 레전드였어요. 계속 매니저님의 이름만 부르고 입술까지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며 긴장한 유세프님대신 매니저님이 유세프님 정장을 끌어당기며 키스했죠. 무려... 1분이 넘어가도록... 진한 키스에 감동하며 박수를 치던 사신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안색이 창백해져 가고 결국 둘 다 질식사로 죽기 전에 세이사감님이 둘을 말렸어요. 여기 어디 사진이 있을 텐데...
"너 남의 누나 결혼식 사진을 그렇게 막 보여주면 어떡해."
"시노. 왔어? 아직 안 보여줬어. 너 약속 시각 무려 30분이나 늦은 거 알아? 손님이 지루해하시는데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럼 지부 구경을 시켜 드리던가."
"지부에 볼 게 어디있다고. 이 이야기가 훨씬 재밌지. 그렇죠? 여기가 시노사감이에요. 이 분을 따라가시면 되요."
저 혼자만 떠든 것 같지만 만나서 즐거웠어요. 다음에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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